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97
297회. 그게 무슨 개소리야?
교구현 외곽의 강성진.
땅거미가 질 무렵 연적하 일행이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강성진은 객잔을 찾기가 민망할 정도로 이십여 가구가 띄엄띄엄 있는 게 전부였다.
태을 선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흐음! 객잔은 없을 것 같은데…….”
“없소. 지난번에도 마을 끝에 있는 사당에서 하루 묵어갔었소.”
무상도제 장무덕이 회한 어린 눈으로 주변을 쓸어보았다.
처음 현무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사태의 심각성도 모르고 들떠 있었다.
칠리하촌의 답답한 생활에서 잠깐 바람을 쐬는 분위기였다.
쉬어 가는 자리마다 어떻게든지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속닥거렸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들을 지켜보는 것도 낙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먼저 가고 없다.
태무 선인이 불쑥 물었다.
“그럼 이번에도 그 사당으로 가야겠지요?”
상념에서 깨어난 장무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사이에 객점이 생겼을 리 없으니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니 과연 사당이 나타났다.
이십여 가구의 마을 규모에 비하면 과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컸다.
장무덕이 사당 앞에서 짤막하게 설명했다.
“오래전에는 꽤 큰 마을이었다고 하더이다. 전쟁을 거치면서 마을이 줄어들었다고 들었소.”
선두에 있던 곤륜삼선이 ‘아!’ 하고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 안으로 들어서던 장무덕이 멈칫거렸다.
관리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군데군데 야영을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는 그게 현무대의 흔적으로 보였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던 그는 과거 자신이 묵었던 곳에서 먼 자리로 찾아갔다.
뒤이어 사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적당히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이리저리 흩어졌다고 해도 같은 공간이다 보니 서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천노도 심통은 착 붙어 다니는 연적하와 십전무후 남궁연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귀영자군이나 시산마도 혁무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무덕이나 곤륜삼선과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아 붙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를 모아 와 불을 피웠다.
추워서라기보다는 간단하게 요리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등짐에서 솥단지와 갖가지 요리 재료를 꺼내 놓았다.
자기 몫의 건량만 가지고 다니던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귀영자군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둘은 염탐조의 잡부를 자처했다.
혁무춘은 솥단지의 물이 끓자 쌀과 육포, 갖가지 야채와 향신료를 쏟아부었다.
죽도 아니고 탕도 아닌 기이한 형태였지만 냄새만큼은 그럴듯했다.
요리가 완성되자 두 사람은 연적하와 남궁연에게 음식을 가지고 갔다.
“총순찰님.”
귀영자군이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릇을 바쳤다.
혁무춘도 남궁연 몫의 그릇을 연적하 앞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불퉁한 얼굴로 지켜보던 심통이 자리에서 일어나 솥단지로 걸어갔다.
어느 틈에 솥단지 주변에는 장무덕과 곤륜삼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심통은 멋쩍은 얼굴로 그들 속에 끼어들어야 했다.
태을 선인이 눈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다.
“녹림의 음식이 생각보다 괜찮군요. 이것에도 이름이 있습니까?”
“우리는 ‘돼지죽’이라고 하오.”
“아!”
곤륜삼선과 장무덕이 묘한 눈으로 죽을 내려다보았다.
생각없이 먹을 때는 괜찮았는데 돼지죽 소리를 들으니 조금 꺼림칙했던 것이다.
어느 틈에 돌아온 혁무춘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돼지죽이라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되오.”
귀영자군은 묵묵히 그릇에 음식을 퍼 담아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혁무춘도 급히 음식을 담아 귀영자군의 옆으로 이동했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요리를 하면서부터 겨우 음식에 손을 댈 수 있었다.
“귀영자군 님, 무슨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거 없다.”
“그런데 얼굴빛이…….”
귀영자군이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쯧! 쓸개 빠진 놈.”
잡부 노릇을 한다고 정말 자신이 잡부인 줄 아는 모양이다.
연적하의 가슴에 팔주령이라는 기물만 없었어도 상황은 역전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목을 노렸다면…….’
그랬다면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을 게다.
자신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연적하는 넘지 못할 산이 아니었다.
누가 가슴에 그런 괴상한 걸 달고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나 말이다.
‘제길…….’
입맛이 썼다.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잡부로 만족해하는 혁무춘을 보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다시 기회가 올까?
귀영자군은 연적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근심 따위는 개에게 줘 버렸는지 남궁연과 열심히 뭔가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이내 어두워졌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계속해서 불을 유지했다.
이번에는 요리가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다.
이것만큼은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닌 연적하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며칠 전 깜빡 잠들어 불을 꺼트린 적이 있는데, 그날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곤히 자다가 개처럼 밟혔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불씨를 지켰다.
사람들은 일렁이는 불빛을 받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 가다가 하나 둘씩 잠이 들었다.
자정(밤 12시)쯤 됐을까?
“안 돼!”
누군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적이다!”
“지금 무슨 일이오?”
“헉! 뭡니까?”
비명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귀영자군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혁무춘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 외부인이 침입하기라도 했느냐?”
불을 지키고 있던 혁무춘의 손이 연적하를 가리켰다.
“총순찰님이 악몽이라도 꾸신 것 같습니다.”
귀영자군과 곤륜삼선은 연적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 목소리에 깬 연적하가 도리어 남궁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었다.
‘씨벌, 하다 하다 이젠 별 미친 짓을 다 하네…….’
귀영자군은 다시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누웠다.
곤륜삼선도 별일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심통은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전에도 악몽을 꾼 적이 있지만 저렇게 소리를 치지는 않았었다.
대체 무슨 꿈을 꾸었길래 그렇게 자지러졌을까?
연적하 정도 되는 고수가 비명을 지를 정도라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연 공자의 꿈은 그냥 꿈이 아닌데…….’
세상 사람들은 십전무후가 천기를 읽는다고 떠받든다.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가 깨나도 모를 것이다. 연적하가 이미 육신통을 얻었다는 걸.
그의 꿈은 다가올 미래다.
자신은 여러 차례 그의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심통은 자꾸만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뭘 그렇게 봐? 사람 무안하게.”
“그냥 궁금해서요.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렇게 고함을 치셨습니까?”
심통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때가 때인 만큼 미리 알아 두어야겠다 싶어서다.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아, 예.”
심통은 연적하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눈을 감았다.
“적하야, 정말 괜찮은 거야?”
남궁연이 묻자 연적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괜찮을 리가 있나.
꿈에서 남궁연을 구하러 가려는 순간, 암흑이 그녀를 삼켜 버렸다.
그 암흑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남궁연을 삼킨 암흑은 찰나지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문양만 남아 있었다.
비록 꿈속이지만 그녀를 잃은 충격이 너무 커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어떻게 됐는지 그 뒤로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깼으니까.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던 연적하가 남궁연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자신은 알고 있다.
그 일은 반드시 언젠가 일어난다.
만약 노력으로 피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서 그런 식으로 남궁연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직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도 털어놓지 못했는데…….
“누님.”
“응?”
남궁연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저 혼자 요동쳤다.
“그게 그러니까…….”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 봐.”
그녀의 자상한 말에 연적하는 조금 주눅이 들었다.
누나가 동생을 돌보듯 하는 느낌이라 선뜻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악몽이 그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한참 제 입술을 물어뜯던 연적하가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저는 누님이 좋아요. 누님으로가 아니라 여자로 좋아요. 누님을 위해서라면 하늘 끝이든, 지옥 밑바닥이든 다 갈 거예요.”
“…….”
남궁연은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언제고 이런 날이 오기를 꿈꾼 적은 있다.
하지만 그날이 이런 궁벽한 산골의 사당 안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자다 말고 부스스한 몰골로 고백이라니.
남궁연이 멍하니 보고만 있자 연적하는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누님에게는 제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한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누님은 저를 좋아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너무 부담…….”
“좋아해.”
“네?”
“나도 너를 남.자.로. 좋아한다고. 너를 위해서라면 하늘 끝이든 지옥 밑바닥이든 갈 수 있어.”
남궁연은 특별히 그를 위해 ‘남자로’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인간관계에 서툰 그가 다른 뜻으로 착각할까 봐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다.
“아, 그게, 그러니까…….”
뜻밖의 화답에 당황한 연적하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지라 그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다.
“고, 고마워요.”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남궁연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어쩔 줄 몰라 하는 연적하 덕분에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나도 고마워.”
남궁연이 살며시 연적하의 손을 잡았다.
연적하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강하게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감개무량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조물딱거렸다.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작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던 연적하가 무심코 말했다.
“이런 손으로 잘도 싸웠네요?”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맡기고 있던 남궁연이 가만히 그를 밀어냈다.
“왜요?”
“장 대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어디 똥이라도 누러 갔겠죠.”
지금 연적하의 관심은 늙다리 장무덕이 아니라 남궁연에게 있었다.
연적하가 굶주린 사자처럼 다시 남궁연의 손을 잡아 갔다.
남궁연이 그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네가 소란을 피운 뒤로 시간이 제법 지났어. 근처에 있었다면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야.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생길 일이 뭐가 있다고요? 풍지산은 아직 반나절이나 더 가야 하는데.”
“아직 반나절이나 더 가는 게 아니라, 고작 반나절 거리야. 장 대협 같은 고수가 전력으로 달리면 왕복하는 데 한 시진(2시간)이면 충분해.”
“설마 장 대협이 혼자 풍지산에 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 갈 곳이라고는 그곳밖에 없잖아.”
“장 대협이 거길 왜 혼자 가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장 대협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야지.”
“아니, 그분은 오밤중에 어딜 가셨대?”
연적하는 남궁연과의 오붓한 시간이 방해받게 되자 대놓고 툴툴거렸다.
심통이 슬그머니 일어나 앉았다.
“공자님.”
“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적당히 하시고 정신 좀 차리십쇼!’
그러나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뭐? 지금 잘 자고 있던 장 대협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심술이 나 있던 연적하는 괜히 언성을 높였다.
아까부터 귀를 쫑끗 세우고 있던 곤륜삼선과 귀영자군, 혁무춘이 슬금슬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