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0
300회. 풍화겁륜, 바람과 불의 바퀴
신안통을 시전 중인 곤륜삼선과 기문진식에 해박한 남궁연이 먼저 산 길로 접어들었다.
연적하는 그다음으로 귀영자군과 시산마도 혁무춘을 보냈다.
그들이 달아날까 봐 앞장세운 것이다.
그런 뒤에야 느긋하게 산길로 걸음을 옮겼다.
반각(약 7분)쯤 산을 올랐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미에 있던 연적하가 선두의 곤륜삼선들에게 소리쳤다.
“도사님들! 우리가 팔문팔상진이라는 곳에 들어온 거 맞아요?”
태을 선인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시퍼런 귀화가 활활 타오르는 눈이 연적하를 향했다.
“아까 연 공자의 앞에 있던 표지목부터 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연 공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미 사방이 막혀 있습니다.”
“막혀 있다고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사방이 숲이고 나무고 그런데요?”
“그렇게 보이시나 보군요. 그건 공자께서 바라는 심상(心想)일 뿐입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이라고요?”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지목부터 지금까지 풍지산의 자연스러운 풍광이 펼쳐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심상이라니?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 길 외에는 갈 곳이 없으니까요.”
“설마 돌아가는 것도 안 된다고요?”
“이미 동서남북은 물론 위와 아래도 뒤죽박죽인 상태입니다. 돌아간다고 해도 처음의 자리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기문진식의 무서운 점이지요.”
“위와 아래도 뒤죽박죽이라는 건 무슨 소리인가요?”
그러자 남궁연이 말했다.
“궁금하면 하늘을 봐.”
“하늘요? 어?”
연적하의 입이 벌어졌다.
파란 하늘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하얀 운무(雲霧)였다.
“씨벌, 하늘이 왜 저 모양이지?”
“그냥 안개가 낀 게 아닐까요?”
뒤따라 하늘을 본 귀영자군과 혁무춘도 한마디씩 던졌다.
안개라는 혁무춘의 말에 귀영자군이 바로 반박했다.
“무식한 놈. 우리 앞이 이렇게 훤한데 무슨 안개 타령이냐?”
“아, 그렇긴 하네요.”
혁무춘이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늘을 살피던 연적하는 귀영자군과 혁무춘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젠 두 사람이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으니 남궁연에게 가는 것이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행여나 거리가 벌어질세라 부지런히 따라붙었다.
잠시 후 두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왔다.
곤륜삼선과 남궁연은 위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그게 바른길이어서가 아니라 무상도제 장무덕이 갔음 직한 길로 가기 위해서다.
한참 걷던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말했다.
“누님, 진식이라는 게 원래 이래요? 계속 걷기만 하네요? 한 식경(약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아. 생문이나 휴문이 아닌 경우는 큰 환란을 당하게 돼.”
“환란요?”
그때 갑자기 안개가 훅 하고 밀려들었다.
“응, 이제 시작되려는 모양이네.”
안개가 덮쳐오자 곤륜삼선의 입에서 육갑비축(六甲秘祝)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임병투자 개진열전행(臨兵鬪者 皆陣列前行)!”
주문의 효과인지 안개는 이내 흩어졌다.
안개가 사라지면서 그들의 눈앞에 감추어져 있던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헛!”
태을 선인이 뒷걸음질 쳤다.
오 장(약 15미터) 앞에 사람보다 몇 배나 커 보이는 인면지주가 있었다.
단지 한 마리라면 기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백 마리 천 마리가 되면 공포다.
한 마리 인면지주 뒤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인면지주들이 뭉쳐 있었다.
인면지주들은 파도처럼 한곳으로 몰려갔다가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인면지주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태을 선인이 중얼거렸다.
“장 대협?”
인면지주 속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사람은 지난밤 슬그머니 사라졌던 무상도제 장무덕이었다.
그때다.
뒤늦게 태을 선인을 발견한 인면지주가 천천히 움직였다.
연적하가 태을 선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게 뭐예요?”
“인면지주라고 하는 영물입니다. 거미의 몸에 사람 머리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지요.”
“사람 말도 해요?”
사람의 머리통을 가졌기에 물어본 것이다.
“못하지요. 생김새만 닮았을 뿐 사람이 아니니까요.”
순간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인면지주의 입에서 ‘키키’ 하는 기묘한 소리가 났다.
그러자 근방에 있던 인면지주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장(약 6미터)여 거리까지 느릿하게 다가온 인면지주가 갑자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츠츠츠.
인면지주의 입에서 쏘아진 거미줄이 마치 화살처럼 태을 선인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연적하가 먼저 검을 뽑아 벼락처럼 내리쳤다.
거미줄이 연적하의 검에 철썩 달라붙었다.
인면지주는 지면에 떨어지기 전까지 세 번이나 거미줄을 토해 냈다.
그때마다 연적하는 가볍게 검을 휘둘러 거미줄을 막았다.
일 장(약 3미터) 앞에 떨어져 내린 인면지주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어렸다.
“저거 웃는 거 맞죠?”
“그렇게 보입니다만 아닐 겁니다.”
태을 선인은 인면지주가 웃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어 부인했다.
“기분 나쁜 얼굴이네.”
중얼거리던 연적하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신에 손가락 굵기의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래서야 베기도 어렵겠다고 생각한 연적하는 발바닥으로 검신을 슥 닦았다.
아니 닦으려 했다.
하지만 검신에 붙은 거미줄은 떨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황당하게도 그의 발바닥이 거미줄에 붙어 버렸다.
“이거 뭐지? 왜 이렇게 질겨?”
연적하가 발바닥을 검신에 붙이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때다.
다시 한번 인면지주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먹이가 거미줄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이젠 그냥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태을 선인이 재빨리 검을 뽑아 인면지주를 찔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을 선인의 팔이 흔들렸다.
검에 맞은 충격으로 인면지주는 태을 선인의 앞으로 툭 떨어졌다.
순간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달려들었다.
퍼억. 퍽.
두 노도사의 칼이 인면지주의 몸통과 다리를 후려쳤다.
처음에는 튕겨 났지만, 두세 번 같은 자리를 베자 초록색 체액이 튀었다.
“캬아악!”
인면지주는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뒤로 달아났다.
인면지주가 지나간 자리로 초록색 체액이 길게 늘어졌다.
그사이 연적하에게 다가간 남궁연이 검끝으로 거미줄을 살짝 건드렸다.
“보기보다 질겨요.”
“그러네.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천잠사보다 질기지만 불에는 약해. 삼매진화로 녹이면 될 거야.”
“아니 장 대협은 멀쩡해 보이던데 왜 나만 이러지?”
“그분은 검풍으로 거미줄을 밀어냈을 거야.”
“아! 그러면 되겠구나. 젠장.”
툴툴거리던 연적하는 전신으로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화르륵-.
시뻘건 불길이 연적하의 몸을 휘감았다.
과연!
불에 닿자마자 그 질기던 거미줄은 눈처럼 맥없이 녹아 사라졌다.
보고 있던 구천노도 심통이 혀를 내둘렀다.
“허! 무슨 놈의 삼매진화가 산이라도 태울 기세로세.”
곤륜삼선도 놀란 얼굴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의 공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삼매진화를 보니 상상을 초월한다.
손바닥 하나만 해도 놀라운데 온몸을 삼매진화로 덮어 버리다니?
인면지주를 살피고 있던 태무 선인이 짧게 외쳤다.
“이번에는 떼거리로 몰려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십여 마리의 인면지주가 마치 간이라도 보듯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말했다.
“장 대협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어.”
“맡겨만 주세요!”
연적하가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연적하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자극을 받았는지 인면지주들도 빨라졌다.
몇몇은 튀어 오르고, 몇몇은 미친 소처럼 연적하를 향해 저돌적으로 몰려갔다.
츠츠츠-.
공중에서 거미줄이 쏟아졌다.
검풍을 생각하던 연적하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바람은 물론 불까지도 조화를 이룬 초식이 떠올라서다.
구천세법의 사 식 풍화겁륜(風火劫輪)이라면 인면지주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검기가 쏟아져 나갔다.
팔괘의 방위로 촘촘히 뻗어 나간 검기는 이내 거대한 륜으로 변했다. 풍화겁륜이라는 이름답게 바람과 불의 조화가 거미줄을 집어삼켰다.
치칙. 칙.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미줄들이 사라졌다.
풍화겁륜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처럼, 한 바퀴 돌 때마다 더욱 몸집을 불려 나갔다.
콰르르르르-.
집채만큼 커진 ‘바람과 불의 바퀴’가 인면지주들 위를 밟고 지나갔다.
“캐액!”
“캑!”
짧은 비명과 함께 인면지주들이 터져 나갔다.
바람과 불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검기인지라 인면지주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연적하가 검 끝을 장무덕에게로 돌리자 풍화겁륜의 바퀴도 그리로 향했다.
콰르르르르-.
장무덕은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사방이 인면지주들로 막힌 탓도 있지만, 마지막 한 방울의 진기까지 끌어 쓴 뒤라 이미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처처처척-.
도를 지면에 축 늘어트린 그의 몸으로 거미줄이 촘촘하게 달라붙었다.
장무덕은 눈앞까지 가린 거미줄을 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떼려 해도 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만 쉬고 싶다.’
삶의 의지는 오래전에 꺾였다.
그냥 죽기가 억울해서 한 마리라도 더 데리고 가려고 버틴 것뿐이다.
이제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조차 없으니 바라던 대로 된 셈이다.
‘천 마리쯤 죽였을까?’
그렇다면 손해는 아니다.
아니 인면지주와 같은 영물 천 마리와 맞바꾸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이다.
허허로운 웃음이 배 속에서 밀고 올라왔다.
“흐흥흥흥…….”
거미줄로 막힌 입 대신에 한쪽 콧구멍으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몸에 인면지주들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죽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캑!”
“캬악!”
“캭!”
어느 순간부터 인면지주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힘들게 잡은 먹이를 앞에 두고 이젠 저들끼리 싸우는 모양이다.
‘아무 놈이나 빨리 먹어라.’
우두커니 서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눈이 가려져서 그런지 흔히 말하는, 죽음 직전에 과거가 보이는 현상은 없었다.
대신 팔황신모가 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신화지경에 들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거라. 특별히 너에게만은 깨달음을 나눠 줄 터이니.
죽음 앞에서 장무덕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인면지주들에게 먹힐 텐데 신화지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문득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허허. 내가 헛살았구나. 죽기 직전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니…….’
허허로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무엇인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은 주마등(走馬燈)이 아니라 꽤나 낯선 지금 자신의 모습이었다.
‘저게 나라고?’
한순간 두정(頭頂)의 백회에서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뭔가가 꿰뚫었다.
뒤이어 머릿속에서 극통이 느껴졌다.
“윽!”
비명이 한쪽 콧구멍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콧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줄줄 흘러내렸다.
코피였다.
장무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지불식간에 언령의 주박에서 해방된 그는 가아(假我)를 버리고 진아(眞我), 즉 참된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생의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