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7
307회. 검법이 아닐 수도 있어
붉은 사막 위에 이 남 일 녀가 나타났다.
지문(地門)으로 사라진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그리고 십전무후 남궁연이다.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지문으로 들어갔는데 처음 보는 풍광이다.
붉은 모래로 된 땅이라니?
“누님, 여기가 정말 지문이에요?”
“모르겠어. 진축을 볼 수가 없어서.”
‘진축을 볼 수 없다’는 말에 연적하와 심통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이내 연적하가 눈을 찌푸렸다.
“어? 이상하네?”
아까는 어두운 밤하늘이었는데 지금은 대낮처럼 밝았다.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되는 느낌이다.
그제야 심통도 한마디 했다.
“남궁 소저, 조금 전까지 초저녁이었는데 왜 이렇게 하늘이 밝은 거요?”
“팔문의 영향이겠지요. 시간은 초저녁이 맞을 거예요. 진법에 들어온 뒤로 대략 두 시진(4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니까.”
그녀의 말에 심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에서 일어난 역변의 횟수를 생각하니 두 시진이 맞는 것 같았다.
“공자님, 실로 대단한 진법 아닙니까?”
“그러게.”
연적하도 심통의 의견에 동의했다.
진법과 술법에 이토록 어마무시한 힘이 있을 줄은 몰랐다.
“쩝, 그나저나 큰일이로군요.”
“왜?”
“하늘이 막혔으니 다시 눈뜬장님이 됐잖습니까?”
“…….”
연적하가 떨떠름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사방이 광활한 사막이라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남궁연이 먼저 움직였다.
“일단 가자. 여기가 지문이라면 어느 길로 가도 목적지에 닿을 거야.”
연적하와 심통이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일각(15분)쯤 걸었을까?
한동안 잠잠하던 심통이 연적하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또 왜?”
“천둔검이 왜 안 되는지 아시나 싶어서요.”
“몰라.”
“그럼 남궁 소저에게라도 물어보십시오. 모르는 게 있으면 노력을 해야지요.”
심통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왜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귀찮았지만 심통이 좋은 뜻에서 한 소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궁연은 두 사람의 대화를 한쪽 귀로 흘려들으며 앞만 보고 걸었다.
솔직히 자신도 심통만큼이나 왜 천둔검이 안 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연적하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어색한 침묵은 그들의 오 장(약 15 미터) 앞 모래가 들썩거리면서 끝났다.
“또 뭐가 나오려나 봅니다?”
심통이 힐끔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그가 땅속에서 기어 나온 강시에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아서다.
스르륵-.
악어만큼이나 덩치가 큰 전갈들이 모래를 뚫고 올라왔다.
공중에 들린 꼬리는 사람의 눈높이라 보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연적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갈이네.”
그도 심통이 강시의 일로 자신을 힐끔거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강시를 처음 본 터라 놀랐을 뿐이다.
이젠 강시라 해도 웃으면서 잡을 수 있는데 겁쟁이 취급이라니!
연적하가 단검을 들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차차창!
그의 단검과 전갈의 독침이 만나자 쇳소리가 났다.
생각과 달리 전갈의 꼬리가 잘리지 않자 연적하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보검이라 해도 괜찮을 만큼 예리한 단검에 맞고도 멀쩡하다니 기가 막혔다.
“와아! 뭐야? 왜 이렇게 센 건데?”
“흐흐흐. 저것들이 이매망량이라는 걸 잊으신 모양입니다.”
심통이 놀리듯 한마디 하고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검기를 씌운 심통의 검이 하얗게 빛났다.
서걱. 서걱. 서걱.
연달아 세 개의 꼬리를 잘라 낸 심통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도 철강시보다는 약한 것 같은……. 으헉!”
심통이 비명과 함께 수선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잘린 꼬리에서 사방으로 녹색의 체액이 튀었는데 그게 닿는 곳마다 녹아내렸다.
그의 옷에도 군데군데 구멍이 났다.
“이런 제길! 독입니다, 독!”
체액은 주변의 다른 전갈들에게도 튀었지만 내성이 있는지 멀쩡했다.
뒤늦게 심통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꼬리를 자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몸에 묻은 거 아냐?”
“느낌이 좋지 않아서 바로 피했습니다. 옷에만 조금 닿았을 뿐입니다.”
“꼬리에 독침이 있는데 자르면 저 난리니 큰일 났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연적하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수십 마리였다.
그런데 사방의 모래가 계속 들썩이는 걸 보면 곧 전갈로 가득 찰 모양이다.
잠시 생각하던 남궁연이 검을 뽑아 들었다.
“베지 못한다면 밀어내고 가야지.”
그녀는 즉시 대연검법의 천풍구(天風驅)를 펼쳤다.
의형검기의 경지에 든 그녀인지라 검기는 곧 강한 바람이 되어 앞으로 몰아쳐 갔다.
휘이이이잉-.
차르륵. 차륵.
좌우로 밀려난 전갈들이 엉기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남궁연은 전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틈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천풍구로 만든 길은 오 장(약 15미터)이었지만 전갈을 뚫고 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전갈에서 벗어나자 심통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역시! 힘이 능사가 아니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님?”
“당연한 소리를…….”
연적하의 음성이 기어 들어갔다.
쉽게 생각해 밀어붙이려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어서다.
심통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럴 때 뭐라도 떡하니 보이면 참 좋을 텐데……. 신력이 가로막고 있으니 원…….”
천둔검에 대해 남궁연에게 조언을 받으라는 소리다.
연적하는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늙은이야. 모르는 게 있어야 묻지.’
답답해하는 심통의 마음은 안다.
하지만 솔직히 뭘 물어봐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천둔검의 검결은 완전히 터득해서 어디 하나 막히는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안 되는 걸 뭘 물어보란 말인가?
터덜터덜 걸어가던 연적하는 슬쩍 남궁연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래, 그냥 말이라도 해 두자.’
심통이 계속 저러는데 묻지 않으면 그녀가 섭섭해 할 수도 있었다.
“누님.”
“응?”
“아까 제가 운무를 자른 거 기억나시죠?”
“응.”
“그게 천둔검이라는 거거든요.”
연적하는 남궁연에게 자신이 무당파에서 천둔검을 배웠다는 걸 말했다.
“그 천둔검이 왜 안 되는 걸까요? 똑같이 했는데 안 되니까 좀 당황스럽네요.”
“너는 천둔검이 뭐라고 생각해?”
남궁연이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에게 듣지 않았다고 해서 생각까지 멈추는 건 아니었으니까.
“화룡 진인이 여동빈에게 가르쳐 준 검법이잖아요?”
“그래, 화룡 진인과 여동빈은 도사였어. 그것도 술법에 능한 도사들이지.”
연적하는 남궁연의 말을 알아들었다.
도사와 술법은 자신과 꽤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누님, 지금까지 도사들도 익히지 못했다고 하던데요?”
“그건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해. 모든 도사가 득도(得道)를 원하지만 득도했다는 사람은 없거든. 그런 점에서는 불가(佛家)도 마찬가지야. 모두 부처가 되기를 바라지만 부처가 된 사람은 없어.”
알쏭달쏭한 말에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천둔검이 되다 말다 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검법은 몸으로 터득하는 거야. 몸이 기억하면 머리가 잊어도 펼칠 수 있어. 하지만 술법은 조금 달라. 몸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남궁연이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와 가슴을 콕콕 찍어 보였다.
“내 생각에 천둔검은 단지 검법이 아닐 수도 있어.”
“검법이 아니라고요?”
“아까의 천둔검을 생각해 봐. 그걸 두고 검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건 그렇네요?”
연적하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천둔검은 보통의 검법과를 달리했다.
그건 초식이 아니라 ‘일점(一點)과 무량(無量)’이라는 크기에 관한 것이었다.
“여동빈은 검사 이전에 술사였어. 너는 똑같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었을 거야. 검법이나 술법에 우연이란 없으니까.”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누님 말대로 약간 다른 점은 있어요. 아까 성공했을 때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어떤 느낌이 들었는데?”
“머릿속이 구결로 가득 찬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
“앞으로 그 느낌을 잘 떠올려 봐. 그럼 성공 확률이 올라갈 거야.”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돼요. 기억대로 하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대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연적하가 허탈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 펼칠 수는 없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심통이 불쑥 끼어들었다.
“공자님, 답이 딱 나왔네요. 술법을 배우십쇼. 검법이 아니라면서요? 그럼 술법을 배우셔야지요.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릴 겁니다.”
“뭐? 나더러 말코 도사 흉내를 내라고?”
연적하가 펄쩍 뛸 때다.
남궁연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배워 두면 확실히 천둔검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런가요?”
연적하의 말투가 대번에 부드럽게 바뀌었다.
손바닥 뒤집듯 한 그의 태도에 심통이 기막힌 얼굴로 중얼 거렸다.
“내가 말할 때는 말코 도사 흉내가 어쩌고 하시더니, 금방 그런가요? 아이고! ‘누님을 위해서라면 하늘 끝이든, 지옥 밑바닥이든 다 갈 거예요’ 할 때 알아봤지만, 진짜 너무하다.”
연적하는 듣지 못한 척 걷기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심통의 푸념은 모래 언덕 위에서 멈췄다.
백여 장(약 300미터)쯤 아래, 눈에 익은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누님, 저거 지문 맞죠?”
“응.”
남궁연의 안색이 밝아졌다.
계속 조마조마했는데 역변이 아니라 지문 안으로 들어왔던 모양이다.
“어서 가시지요. 이번에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심통이 쾌속하게 달려 나갔다.
지금까지 계속 남궁연이 길잡이를 자처해서 미안한 마음에 나선 것이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나는 듯이 그의 뒤를 따랐다.
지문 앞에 도착한 심통은 유엽도를 빼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 많던 전갈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남궁 소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오?”
기둥을 유심히 살피던 남궁연이 답했다.
“저 두 개의 기둥이 진법의 중심 같아요. 저걸 부수면 지문도 깨질 거예요.”
“알겠소.”
대답과 함께 심통이 기둥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신형이 막 거대한 돌무더기를 스쳐 지날 때다.
콰르르르르-.
바위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돌무더기가 위로 굼실굼실 밀려 올라갔다.
깜짝 놀란 심통은 일단 옆으로 거리를 벌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돌무더기는 키가 십 장(약 30미터)에 달하는 석인(石人)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아!”
석인이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에 주변의 모래 언덕이 한차례 풀썩거렸다.
거대한 석인을 보고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건 또 뭐야?”
그러나 석인의 등장으로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붉은 모래 아래에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전갈이 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