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6
306회. 걱정은 마음속으로 하라고
풍지산.
선녀암.
신당.
쿠쿵! 쿵! 쿵! 쿵!
산 아래에서 뇌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팔황신모는 읽고 있던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 도교 경전)를 내려놓았다.
가만히 뇌성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무래도 팔문팔상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천지맹에 그 정도로 뛰어난 술사가 있었단 말인가?’
팔문팔상진을 깨려면 술법이 최소한 출신입화(出身入化)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재밌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상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팔황신모의 마음이 달아 올랐다.
도가의 술사들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운기(運氣)의 단계.
응기와 축기를 수련하는 술사들이 이에 해당된다.
응기 십 성이 축기 일 성이고, 축기 십 성이면 영통에 진입한다.
둘째는 영통(靈通)의 단계.
축기 십 성에 도달한 뒤 ‘오천사십팔일(약 14년)’간 수련하면 비로소 ‘양신(陽神)’을 얻게 된다. ‘내단’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술사에게 있어서 또 다른 몸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득약(得藥)’이라 한다.
‘양신’의 수련은 ‘정(精)’과 관계되었기에 ‘운정(運精)의 단계’라고도 부른다.
이 ‘양신’을 수련하다 보면 어느 순간 출신입화, 즉 반인반선(伴人半仙)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의 술사들이 꿈에도 바라는 극히 현실적인 목표다.
셋째는 ‘양생’, 넷째는 ‘성선(成仙, 신선)’이다.
‘양생’의 단계에서는 불로장생하게 되고, ‘성선’의 단계에서는 ‘득물(得物)’까지도 가능하다.
‘양생’과 ‘성선’은 모두 ‘초월지경’이라 이때부터는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팔황신모가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은 ‘양생’의 단계.
그녀가 유독 불로불사에 집착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런 이유에서다.
‘누굴까?’
팔문팔상진은 무공으로 깰 수 없다.
설사 천하십대고수가 힘을 모은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팔황신모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팔문팔상진에 들었다는 것은 결국 선녀암이 목표라는 말이다.
기다리면 알아서 찾아올 텐데 수고를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다시 태평청령서를 펼쳤다.
***
콰르르르- 화아악-.
무너져 내린 땅 밑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십전무후 남궁연은 부드럽게 몸을 날려 아직 멀쩡한 땅에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 속속 도착했다.
심통이 정면의 좌우 측에 삼 열로 세워진 깃발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저곳만 통과하면 되는 건가?”
“서둘러야겠어요. 깃발 주변으로 다시 영기(靈氣)가 모이는 것 같아요.”
남궁연의 말에 연적하와 심통은 깃발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선명하게 보이던 깃발의 글자는 어느새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오십 장(약 150미터) 넓이로 갈라졌던 운무가 일 장(약 3미터)으로 줄었다.
폭이 좁아지자 운무가 퍼지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공자님, 시원하게 한 번 더 잘라 보시지요?”
“그럴까?”
연적하는 다시 검결지를 들어 올리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선천무량!”
“…….”
그러나 천둔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공자님?”
“왜 안 되지? 선천무량! 선천무량!”
연적하가 몇 번이나 소리쳤지만 천둔검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적하야, 나중에 생각해 봐. 지금은 일단 가야 해!”
남궁연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경공술로 달려 나갔다.
지금은 기다려 줄 시간이 없었다.
반 시진(1시간) 이상 걸려 왔으니 조만간 역변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떨어져 나간 다른 사람들은 두 번의 역변을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머뭇거리던 연적하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심통이 연적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며 말했다.
“이제 안 되는가 봅니다?”
연적하는 심통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도 심통은 힘이 남아도는지 자꾸만 물었다.
“안 되는 겁니까? 내력이 달리나요? 술법은 내력과 관계가 없지 않나요? 공자님?”
“심란한데 좀 조용히 해 줄래?”
“아니 저는 걱정이 돼서.”
“걱정은 마음속으로 하라고 이 늙은이야!”
“아니, 잘못은 천둔검이 했는데 왜 저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아! 쫌!”
연적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달렸다.
‘고약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천둔검이 나오질 않아서 답답한데 옆에서 왜 저렇게 깐죽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천둔검은 왜 안 나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술법처럼 구결이라도 외워야 하는 건가?’
문득 생각해 보니 구천기도 움직이지 않은 것 같다.
‘아까는 구천기가 저 혼자 움직였는데? 구천기는 왜 움직였던 거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천둔검과 구천기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때 달려가던 남궁연이 멈춰 섰다.
“뭔가 있는 것 같아.”
남궁연이 정면을 가리켰다.
깃발들 사이, 오 장(약 15미터) 앞의 땅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마치 땅속에 있던 지렁이가 땅 위로 나올 때처럼 말이다.
뒤늦게 도착한 심통이 아는 척을 했다.
“땅의 정괴가 된 토룡(士龍, 지렁이)이라도 나오려는 모양입니다.”
“술사 다 됐네? 별걸 다 알아?”
연적하의 비아냥을 심통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흐흐. 제가 좀 알죠. 이게 다 남궁 소저를 따라다니면서 주워들은 겁니다.”
“에혀! 내가 바보지.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랑 무슨 말싸움을 한다고.”
연적하가 고개를 저을 때다.
들썩거리던 땅에서 뭔가 ‘툭’ 튀어 나왔다.
시커먼 사람의 손이었다.
“으헉!”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연적하는 비명과 함께 남궁연의 소매를 잡았다.
절대고수인 연적하도 두려워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요괴다.
한창 겁 많은 어린 시절 창고에 갇힌 그는 요괴나 귀신 따위를 극도로 꺼려 했다.
거울 속을 들어갔다 나온 뒤로 그런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천외천의 무공을 지니고도 소스라치게 놀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구의 시체가 땅 밑에서 올랐다.
신체의 절반이 썩은 것 같았지만 단지 썩었다고 하기도 뭐했다.
나머지 절반은 마치 강철처럼 검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시체들을 살피던 남궁연이 중얼거렸다.
“신기하게 생겼네. 강시 같기도 하고 건예자 같기도 하고……. 뭘까나?”
연적하가 남궁연의 옷깃을 꽉 움켜잡고 물었다.
“꿀꺽, 건예자는 뭐에요?”
“광산에서 일하다 매몰된 광부의 시체가 지기(地氣)를 흡수하면 저렇게 변한대.”
“저 시체들이 죽은 광부라고요?”
“그걸 잘 모르겠어. 생긴 건 건예자인데 풍지산에 광산이 있다는 기록은 본 적이 없거든? 그냥 땅에 묻힌 시체가 변한 걸까?”
“이매망량이 된 강시가 아니겠소?”
심통의 말에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었다.
그때 멀찍이서 어기적거리던 시체들이 갑자기 저돌적으로 달려왔다.
삐거덕. 삐거덕. 삐거덕-.
“흐흐흐. 우리 공자님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네. 뭐가 무섭다고 그러십니까? 그래 봐야 칼 한번 휘두르면 무처럼 썰려 나갈 시체들을.”
말과 함께 심통이 유엽도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곧이어 비룡승천이 펼쳐졌다.
따따땅!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유엽도가 튕겨났다.
“헉!”
놀란 심통은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머리 한두 개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니미럴! 뭐가 이렇게 단단해?’
오히려 유엽도의 이빨이 나가지는 않았을지 걱정될 정도의 반탄력이다.
“크아아!”
시체들이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심통은 정신없이 유엽도를 휘둘러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팔을 걷어 냈다.
텅텅텅텅!
기괴한 쇳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연신 뒷걸음질 치던 심통이 소리소리 질렀다.
“아이고! 공자님! 살려 주십쇼! 이놈들에게 칼이 안 박힙니다!”
뒤늦게 평상심을 되찾은 연적하가 슬쩍 한 걸음 내디뎠다.
“시체들이 금기(金氣)를 흡수해서 철강시가 된 것 같아.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될 거야.”
뒤이어 남궁연은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 장여 남아 있던 폭이 이제는 삼 척(약 90센티)으로 줄었다.
‘큰일이네.’
시간은 없는데 철강시로 변한 시체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 난감했다.
한편 심통의 싸움을 지켜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심통의 허리춤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금강저로 자꾸만 눈이 갔다.
“누님, 지기를 흡수했건, 금기를 흡수했건, 저 철강시를 움직이는 건 이매망량이죠?”
“그렇지.”
순간 연적하가 심통에서 소리쳤다.
“심 노인! 금강저를 써 봐! 아껴 뒀다가 뭐 할 거야! 죽으면 끝이라고!”
그 말에 심통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유엽도를 갈무리했다.
뒤이어 금강저를 손에 들고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퍽퍽퍽퍽!
이번에는 철강시들이 질그릇처럼 깨져 나갔다.
신이 난 심통은 철강시 속을 누비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으흐흐흐! 씨버럴 것들아! 본좌가 구천노도 심통이시다!”
철강시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지만 금강저를 당해 내지 못했다.
삐거덕. 삐거덕-
퍽퍽퍽!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간 철강시들이 길 양편으로 산처럼 쌓였다.
백여 구 이상 때려 부수자 앞이 조금 열렸다.
빈틈을 발견한 남궁연의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이 번득였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깃발에 쓰인 글씨뿐 아니라 깃발까지 보이다 말다 했다.
진축이 사라지면 지문(地門)도 찾을 수 없다.
“적하야! 이젠 가야 해!”
막 달려가려는 남궁연의 손에 연적하가 자신의 검을 쥐어 주었다.
남궁연은 묵묵히 받았다.
사양해 봤자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게 뻔해서다.
그녀는 검을 들고 듬성듬성 서 있는 철강시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시체를 만지고 싶지 않았던 연적하는 가지고 다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순간 단검이 한차례 진동했다.
‘뭐야?’
단검을 들고 살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어쩌면 손바닥을 통해 자신의 맥이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그럴 거야.’
연적하는 다시 시체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단검보다 절반쯤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더 신경이 쓰였다.
남궁연은 한 마리 미꾸라지처럼 철강시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가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검을 사용했다.
그럴 때마다 ‘땅’ 하는 쇳소리와 함께 철강시가 뒤로 나뒹굴었다.
깃발 사이로 오십 장(약 150미터)쯤 달려가자 거대한 기둥 두 개가 나타났다.
남궁연이 외쳤다.
“지문이야!”
두 개의 기둥은 마치 반딧불이처럼 흐릿한 어둠 속에서 깜빡거렸다.
깜빡거리는 주기가 조금씩 길어졌다.
남궁연은 급히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거의 닫혔어. 지문이 사라지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녀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지문까지는 아직도 십 장(약 30미 터)이나 남았는데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틀렸어.’
더 이상은 쥐어짤 힘도 없다.
남궁연이 절망 속에서 탄식할 때다.
돌연 연적하가 남궁연과 심통의 손을 잡고 비연보를 극성으로 펼쳤다.
팟-.
두 개의 기둥 사이로 유성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곧이어 두 개의 기둥과 빛은 거짓말처럼 팔문팔상진 안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