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5
305회. 선천무량(先天無量)과 득물 (得物)
연적하가 구천노도 심통을 힐끔 바라보았다.
분위기를 깨는 발언이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뭐라 하기가 그랬다.
그래도 그렇지 감히 십전무후 남궁연의 말에 딴지를 걸다니!
“심 노인은 항상 삐딱해. 좀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 봐.”
“저도 공자님 나이 때는 그랬습니다만, 세상이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거 다 핑계야.”
“핑계라고요? 긍정적인 거 다 좋다 이겁니다. 저 희끄무레한 운무는 어쩔 겁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저게 사라진답니까?”
급기야 심통이 회색 운무를 가리켰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될 수도 있지.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
“예, 예. 되겠지요. 어딘가로 떠내려간 곤륜삼선을 찾는다면 말입니다.”
연적하가 아니꼬운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심 노인이 곤륜삼선 아들이라도 돼? 왜 그렇게 곤륜삼선에 목을 매?”
“몰라서 물으십니까? 신안통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곤륜삼선이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제가 왜 그런 말코 도사들을 찾겠습니까?”
심통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곤륜삼선의 아들이라니?
곤륜삼선을 왜 찾는지 뻔히 알면서 놀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문득 연적하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될 수도 있다’고 한 말은 본심이었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실없어 보일지 몰라도 아까부터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물속에 처박혔을 때 어떤 음성이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음성처럼 느껴진 영감이다.
-허심으로 기다리라.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구천기의 핵심은 허심(虛心)이다.
그것은 빈 마음일 수도 있지만,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包羅天地]’는 천둔검의 검결에도 허심과 관계된 구절이 있다.
치심일허(置心一虛) 순상즉비(純想卽飛)가 그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순수한 생각[想]은 그 자체로서 위로 날아올라 간다는 소리다.
천둔검의 ‘치심일허’와 구천기의 ‘허심’이 같은 걸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고?
그야 느낌이 비슷하니까.
여동빈이나 구천현녀 모두 도가의 신선이니 기본적인 생각은 비슷할 것이었다.
전에는 뜬구름 같은 소리로 여겨졌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구결은 무중생유(無中生有) 허공득물(虛空得物).
그러니까 결국 허심으로 기다리면, 순수한 생각[想]은 그 자체로서 위로 날아올라 가고, 무에서 유가 생겨나듯 허공에서 물건을 취할 것[得物]이라는 소리다.
‘가만, 순수한 생각은 위로 올라가고 허공에서 물건을 취한다고?’
문득 의형검기(意形劍氣)가 떠올랐다.
검술이 지고의 경지에 오르면 생각한 대로 검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을 의형검기라 한다.
검결의 내용에 따라 검기는 용이나 호랑이 형상으로 바뀌기도 한다.
때로는 바람이나 벼락으로 변할 때도 있다.
그 모두가 의형검기로 인한 현상이다.
그것은 모두 의형(意形), 즉 실물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생각[意]이다.
그런데 천둔검은 ‘물건을 취한다’고 했다.
최근 도사들과 어울리면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다.
술법을 사용하는 도사들이 바라는 궁극의 경지가 ‘득물’이었다.
득물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득물 앞에서는 약제술이건, 단약이건, 연단이건, 제련이건, 별 의미가 없다나?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어 내니 그런 것이리라.
‘천둔검도 득물일까?’
검기니, 심검이니, 무형검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의념(意念)이 실체화된 것들이다.
그렇다면 득물은?
‘의념의 실체화’ 너머에 있는 경지일까?
술사들의 세계에서는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의 세계에서는 아직 모른다.
검으로 ‘득물’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없으니 비교할 수가 없어서다.
연적하는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천둔검은 득물인가?
‘무중생유 허공득물’의 구결만 보면 ‘득물’에 관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도교 문파에서는 ‘천둔검’을 재현하지 못했을까?
도사들은 검술뿐 아니라 도술도 배운다.
오히려 술법을 모르는 자신보다 훨씬 더 득물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사들은 천둔검을 얻지 못했다.
‘왜지?’
한순간 연적하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연적하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심통이 슬쩍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공…….”
심통은 말하다 말고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놀랍게도 연적하는 선 채로 흔히들 말하는 입정(入靜)에 든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남궁연을 보았다.
남궁연은 이미 알고 있던 듯 가만히 검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심통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무인에게 입정은 큰 깨달음이 있을 때 찾아오는 것으로, 그 자체가 기연이다.
그는 부러우면서도 연적하의 깨달음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아무리 큰 깨달음을 얻었어도 진법에서 나가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연적하는 깨어나지 않았다.
남궁연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수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진법이 바뀔 징조였다.
일각(15분)?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변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진법은 반 시진을 주기로 바뀌니 그 전에 연적하가 깨어나야 한다.
‘적하가 빨리 깨어나야 할 텐데…….’
강제로 그를 흔들어 깨우면 모처럼의 입정을 훼방하는 것밖에 안 된다.
마침내 물줄기가 마르고 바닥이 드러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긴장으로 남궁연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연적하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
드드드드-.
지면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아!’
남궁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곤륜삼선이라도 있다면 자신들의 위치라도 알았을 텐데 지금은 눈뜬 장님이다.
심통이 이제 어쩔 거냐는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그녀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연적하에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미안해.’
남궁연의 손이 막 연적하의 어깨에 닿았을 때다.
입정에서 막 깨어난 연적하가 잠에서 깬 아이처럼 눈을 깜빡였다.
남궁연은 한순간 헷갈렸다.
자신이 그를 깨운 건지, 그가 스스로 깨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이젠 피해야 할 때다.
“적하야. 진식이 변하고 있어. 진축이 안 보이니 무작정 달리는 수밖에 없어.”
순간 연적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운무를 열면 보인다면서요?”
“그랬지. 설마, 열 수 있어?”
“글쎄요.”
쩌어어억-.
지면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멀리서부터 서서히 틈새가 벌어졌다.
그때 연적하가 하늘을 향해 검결지를 내뻗었다.
정말 될까?
술법을 몰라도 득물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해 봐야 알겠지만 묘하게도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마치 술사라도 된 것처럼 천둔검법의 구결을 암송했다.
“치심일허(置心一虛) 순상즉비(純想卽飛)…….”
머릿속에 말이 가득 찬 느낌이다.
불쑥 ‘이건 언령과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에 가득 찬 운무를 자르는 검’을 떠올리자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무중생유(無中生有) 허공득물(虛空得物)!”
천둔검아 나와라!
나오라는 천둔검은 안 나오고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던 구천기가 꿈틀거렸다.
아직 뭔가 부족한 모양이다.
콰르르릉- 쾅!
뚝뚝 떨어져 나간 땅거죽이 무저갱 같은 지하로 무너져 내렸다.
심통이 ‘으헉!’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고, 공자님, 일단 피하시지요! 죽은 뒤에 운무를 가른들 무슨 소용이…….”
그의 말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연적하가 버럭 소리질렀다.
“닥쳐!”
연적하가 운무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선천의 기는 한 알의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한 알의 알갱이에 ‘무량(無量)’이 담겨 있다는 소리다.
구천기의 핵심이 ‘허심’이라면 천둔검의 핵심은 ‘선천무량’이리라.
“나오라고! 선천무량(先天無量)!”
‘선천무량’의 깨달음이 입을 통해 천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휘우우웅-.
연적하의 단전에 있던 구천기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러자 주변의 대기가 그를 향해 빨려들었다.
콰르르릉-.
흙은 물론 돌과 나무와 심지어 집채만 한 바위까지도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회오리의 크기는 무려 십 장(약 30미터).
무게와 크기 따위를 초월한 기이한 모습이다.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오리 안쪽의 지면은 더 이상 갈라지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안쪽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쿠쿠쿠쿵! 쿵!
하늘에서 쉬지 않고 뇌성이 울렸다.
기이한 회오리와 하늘을 번갈아 보던 심통의 입에서 ‘헉!’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검이 떠 있었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까딱이자 검도 따라 움직였다.
검의 궤적을 따라 ‘쿵쿵’ 하는 뇌성이 쉬지 않고 울렸다.
심통의 시선이 연적하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엇! 검이 있다?’
처음에는 이기어검의 일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연적하의 검은 허리춤에 얌전히 매달려 있었다.
‘하기야 연 공자님의 검은 저렇게 크지도 않지.’
심통은 다시 하늘로 눈을 돌렸다.
십 장(약 30미터)? 아니 오십 장(약 150미터)?
하늘에 높이 떠 있어서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하여간 컸다.
땅 위에서라면 누구도 저런 검을 들고 다니지 못하리라.
‘그래서 하늘에 숨겼나?’
천둔검의 실체를 모르는 심통은 연적하의 뜻에 의해 커진 것을 모르고 오해했다.
무량은 말 그대로 끝이 없음이다.
알갱이 한 알만큼 작아질 수도 있고, 하늘을 덮을 만큼 커질 수도 있다.
쿠쿠쿠쿵!
거대한 검은 지평선 끝까지 가른 후에 홀연히 사라졌다.
연적하의 입꼬리가 귀에 걸쳐졌다.
‘이게 득물이구나!’
콰르르르르-.
십 장 밖에서 소용돌이치던 흙과 돌과 나무와 바위들이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쩌적- 쩌저적-.
결계가 사라졌는지 지면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찢어진 천처럼, 오십여 장(약 150미터) 넓이로 갈라진 운무 사이로 어둑어둑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밤이 깊지 않아 별은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남궁연의 말대로 곳곳에 세워진 진축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 장(약 3미터) 길이의 장대에 하얀 깃발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깃발마다 붉은색 글자가 거꾸로 적혀 있다.
글자를 확인한 남궁연이 냉소를 쳤다.
“흥! 갑자동명대신하신 자청공 명원덕? 정말 육정육갑의 신장들을 불러냈구나.”
“누님, 깃발에 적힌 게 신장들 이름이에요?”
“응. 저기 정면에 세 개의 깃발과 좌우 두 개씩의 깃발이 보이지?”
“네.”
“이곳이 지진(地陣)이라는 뜻이야. 곤(坤)에 해당하는데 지문(地門)이 있는 곳이야.”
“지문요? 팔문의 하나인 그 문?”
“맞아. 저 세 개의 깃발을 지나면 좌우편에 다시 삼 열로 세워진 세 개의 깃발들이 보일 거야. 그 깃발의 중앙을 관통해야 지문이 나와. 그걸 부수면 돼.”
남궁연은 숨 쉴 틈도 없이 ‘지문’에 이르는 길을 설명했다.
복잡한 그녀의 말에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그냥 누님 뒤만 따라갈게요. 지문이 나오면 그때 가르쳐 주세요.”
“아, 그래. 가자!”
남궁연은 조금 전 하늘을 가른 연적하의 수법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녀는 바람처럼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운무로 하늘이 막히기 전에 지문까지 가려면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