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12
312회. 사해가 동도다.
무상도제 장무덕이 넌지시 물었다.
“남궁 소저, 유명교주가 왜 그 같은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좌중의 시선이 십전무후 남궁연에게 모아졌다.
유명교주의 전쟁 중지 제안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까닭이다.
“백두마군인 적월 공취산을 산 채로 잡아 오라고 한 걸 보면, 내분이 일어난 것 같아요.”
“그렇군…….”
장무덕은 일리가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태령 선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 아까 교주가 신당에서 차를 권할 때 ‘배은망덕한 당주들’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당주라면 백두마군 아닙니까? 그때만 해도 그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에 구천노도 심통의 입에 벌어졌다.
“허! 반역을 한 자가 적월만이 아니라는 거요? 그들은 천지맹과의 전쟁 중에 왜 교주를 배신한 거지?”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비록 내분이 일어났지만 그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거예요.”
장무덕이 의아한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교주는 백두마군들의 배신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게 유명교 존립을 위협할 정도였다면 어떻게든 감추었겠죠. 하지만 교주는 적하에게 적월을 잡아 오라고 했어요. 외부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맞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하긴 교주의 무위와 술법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곤륜삼선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곰곰 생각하던 장무덕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신화지경의 무위에 그 정도 술법이면…….’
현재 칠리하촌에 있는 천지맹은 삼백 정도.
교주라면 유명교가 두 조각 나도 천지맹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허! 그 마녀의 속을 알 수가 없군.”
장무덕의 탄식에 살짝 들떴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교주와 적하의 거래는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요. 총사가 알게 된다면 적하를 유명교에 부역하는 사람으로 몰아갈 거예요.”
그러자 장무덕이 한마디 보탰다.
“유명교 당주들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끼리만 아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소.”
“그것은 혹 ‘배은망덕’에 관한 말씀이십니까?”
태을 선인의 물음에 장무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걸 알면 총사가 전쟁을 계속 끌고 갈 수도 있소. 그는 교주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모르니 지금이 유명교를 괴멸할 때라 주장할 거요.”
“아!”
태을 선인은 그제야 장무덕의 말을 알아들었다.
총사가 이참에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 교주의 말만 전하자는 것이다.
곤륜삼선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신기수사 제갈승운의 분별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주인이 음식을 내왔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주인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궁연에게 방 하나가 주어졌다.
나머지 방 두 개는 곤륜삼선과 연적하와 심통, 장무덕이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방으로 들어간 심통이 인상을 찌푸렸다.
방은 제법 넓었지만 침상이 두 개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누군가 한 사람이 바닥에서 자야 한다.
노숙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침상 옆에서 개처럼 잘 수는 없었다.
연적하와 장무덕이 뒤따라 들어오자 심통은 재빨리 침상 하나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이쿠! 좋다. 공자님, 번거로우시더라도 옆방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나보고 나가라고?”
“남궁 소저의 방에 침상이 하나 남지 않습니까?”
순간 연적하가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런 소리 하지 마.”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강호라는 게 원래 그런 곳입니다. 강호에서는 남자 여자 따지면 안 됩니다. ‘사해가 동도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럼 저라도 양해를 구하고 그 방 침상을 사용하겠습니다. ‘사해는 동도’니까요.”
말과 함께 심통이 슬쩍 엉덩이를 떼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연적하가 벼락처럼 다가가 두 손으로 그를 내리눌렀다.
“그냥 앉아 있어. 내가 갈 테니까.”
“정말요? 그럼 제가 이 침상을 사용해도 되겠지요?”
“그래, 그러라고.”
연적하는 행여나 심통이 다른 소리를 할까 봐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연적하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장무덕이 말했다.
“녹림은 ‘사해가 동도’라는 말을 그렇게도 사용하는가 보군.”
“그럴 리가요. 비어 있는 침상을 놀리면 뭐 합니까? 이렇게라도 쓰면 좋은 거지요.”
“위험한 사람이군. 남궁 소저의 이름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거늘.”
“어차피 세상도 곧 공자님과 남궁 소저의 관계를 알게 될 겁니다.”
“흐음.”
장무덕은 못마땅하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지만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연적하와 남궁연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연적하는 당장 남궁연의 방으로 가지 못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차마 남궁연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탁자에 앉아 차가운 찻물만 홀짝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났다.
슬쩍 돌아보던 연적하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누님? 왜 안 주무시고?”
“그냥, 잠이 안 와서. 그러는 너는?”
남궁연이 연적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적하는 그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답했다.
“저도 아직 잠이 안 와서요.”
“그랬구나. 오늘 고생 많았어. 네가 아니었다면 모두 진법에서 죽었을 거야.”
“에이, 제가 뭐 한 일이 있나요. 누님과 곤륜삼선이 다 했지.”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운무를 잠깐 동안 가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마지막에 석인도 남궁연이 한쪽 다리를 부순 덕분에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저는 다 차려진 밥상에 젓가락만 얹었는데요 뭐.”
남궁연은 웃기만 했다.
본래 겸손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텐데, 그는 겸손과 담쌓은 사람이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모르는구나.’
그녀는 애써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자신의 능력에 안주하지 않게 하려면 그러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누님.”
“응?”
“교주가 녹림을 천지맹에서 탈퇴시키겠다고 약속하랄 때 왜 만류했어요? 나는 해약만 받고 대충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누님이 반대했잖아요.”
“너도 언령에 대해서는 들어 봤지?”
“예.”
“교주는 언령을 다루는 사람이야.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래야 언령을 사용할 수 있거든. 말이 자주 바뀌는 사람은 언령의 힘도 약해.”
“교주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관계없지 않나요?”
“우리는 교주의 술법에 대해 몰라. 교주와 약속을 하는 순간, 언령이 작용할 수 있어. 만약 심 선배의 해독이 무효화된다고 생각해 봐.”
“아…….”
그제야 연적하는 그녀가 왜 진실한 대답을 하게 했는지 깨달았다.
“그럼 적월을 교주에게 데리고 가야겠네요?”
“맞아. 교주는 너에게 말의 중함을 안다고 했어. 분명 언령과 관계된 소리일 거야.”
“와아! 무섭다. 앞으로 말을 섞지 말아야지.”
연적하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거짓말과 과장이 생활화된 녹림에게 유명교 교주는 너무 위험했다.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피로가 몰려오자 남궁연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누님, 피곤하면 먼저 가서 쉬세요.”
“같이 일어나자.”
남궁연이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그를 두고 홀로 가자니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다.
연적하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누님, 혹시 ‘사해가 동도’라는 말 아세요?”
“알지.”
“그게 강호에서 남자 여자를 따로 구별하지 않는 거라면서요?”
“누가 그래?”
“심 노인이요.”
“으흥, 그가 그런 소리를 했어?”
“네.”
“왜?”
“침상이 두 개 밖에 없다고 저더러 누님 방 침상을 쓰라더라고요.”
“아!”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에게 네 침상을 내주었니?”
“네, 안 그러면 자기가 누님 방의 침상을 빌려 쓰겠다고 해서요. ‘사해가 동도’라나 뭐라나 하면서 원래 그러는 거라고 했어요.”
“그럼 가자.”
“정말 제가 써도 되요?”
“그래, 이건 너와 나만 되는 거야. 다른 여자들과는 같은 방을 쓰면 절대 안 돼. 특히나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바람둥이밖에 없어.”
“그 늙은이가 나를 속인 거예요?”
“바닥에서 자는 게 어지간히 싫었나 보네. 아직 몸이 좋지 않은 건가?”
“하여간 그 늙은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 내가 가만두나 봐라.”
연적하는 씩씩거렸지만 방으로 달려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연이 그를 달래며 이끌자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다음 날 아침.
연적하와 남궁연은 조금 늦게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일찌감치 나와 식사를 하고 있던 다섯의 눈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람의 안색을 살피던 심통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험, 험, 공자님, 간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닥쳐.”
“아, 네.”
심통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바쁘게 젓가락만 놀렸다.
곤륜삼선은 늘 있는 다툼인지라 무덤덤한 얼굴로 식사에 열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이 반점을 나설 때다.
눈치만 보고 있던 심통이 연적하에게 바싹 붙으며 속삭였다.
“공자님, 사실은…….”
연적하는 말없이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댔다. 아무 소리도 말라는 뜻이다.
“아, 예, 예.”
심통은 힐끔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아까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지금은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가까이 붙으니 오히려 훈훈하다?
그를 속여 침상을 뺏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멍하니 서 있는 심통의 어깨를 연적하가 격려하듯 ‘툭툭’ 치고 앞서 나갔다.
‘공자님, 설마…….’
심통은 연적하의 빠른 성장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린아이 같던 그가 오늘은 녹림의 대장부처럼 보였다.
***
하남성.
낙양.
백마사.
접인전(接引殿)에 이른 아침부터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이 모였다.
평소 백두마군들의 회의를 주도하던 사람은 무산낭랑 이매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적월 공취산이 회의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하여 일원도관과 신월사, 은하장, 초월산장은 유명교를 떠나기로 뜻을 모았소.”
공취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매화가 소리쳤다.
“교주님을 배신하겠다는 소리인가요!”
“배신이 아니외다. 말씀드리지 않았소? 교주님과 우리의 길이 다름을 알았다고.”
“길이 다르다니요? 무조건 교주님을 따라야 하거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순간 공취산이 탁자를 ‘쾅!’ 하고 후려쳤다.
“무조건 교주를 따라야 한다니!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는 줄 아시오! 누구든 수련을 통해 천두마왕이 될 수 있소.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요!”
“헉! 당신들에게 천두마왕의 진언이 있나요?”
“그렇소. 우리는 십두마병, 백두마군은 물론 천두마왕의 진언까지 알고 있소. 이래도 우리에게 무조건 교주를 따르라고 할 게요?”
공취산의 말에 이매화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