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11
311회. 전쟁을 끝내겠다는 거요?
곤륜삼선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팔황신모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교주의 술법이 무공만큼이나 뛰어나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사람이 무공과 술법에서 그 정도 성취를 이루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팔황신모도 곤륜삼선 못지않게 놀란 상태였다.
그녀는 저들이 팔문팔상진을 그처럼 빨리 해체할 줄 몰랐기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팔황신모가 세 개의 잔에 차를 따랐다.
“육안과편(六安瓜片)이에요. 배은망덕한 당주들이 가져다준 것이지요. 대접해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아무쪼록 편하게 드세요.”
팔황신모는 가볍게 말했지만 곤륜삼선은 웃지 못했다.
그들은 ‘육안과편’과 ‘배은망덕’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지문(地門)의 문지기인 금강보살을 죽이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에요. 팔황은 내가 아끼는 제자들이라, 만약 그가 죽었다면…….”
팔황신모가 고개를 저었다.
곤륜삼선은 교주의 서늘한 눈빛에 흠칫 몸을 떨었다.
‘편하게 드세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기를 뿜어내니 난감할 뿐이다.
“하지만 이젠 안심해도 괜찮아요. 선인들은 내 손님이니까.”
“…….”
곤륜삼선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유명교의 교주가 손님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오늘은 무사할 모양이다.
“유명교는 알려져 있다시피 도가와 불가를 받아들인 종파예요. 지금이야 시절이 수상해서 못 하고 있지만, 언젠가 도관들과 교류를 가질 생각이에요. 곤륜파와도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군요.”
곤륜삼선들은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신한 발상이지만 무림공적인 유명교와 교류할 도관이 있을지 의문 이다.
“세 분은 어느 정도나 수도를 하셨나요? 아니, 어떻게 육정육갑의 신력을 꿰뚫어 볼 수 있었죠?”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거의 동시에 태을 선인을 보았다.
사제들의 압박에 태을 선인이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곤륜파에는 신안통이라는 술법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신력을 보았지요.”
“아, 신묘한 수법이로군요. 그것을 펼치려면 법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하나요?”
팔황신모는 곤륜삼선의 술법 경지가 궁금했다.
태을 선인은 답을 하기 전에 차부터 한 모금 마셨다.
물론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영통(靈通)의 단계는 지나야 합니다. 양신(陽神)을 허무심으로 갈고 닦으면, 신안(神眼)이 열리지요.”
뜬구름 잡듯 설명했지만 팔황신모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아하! 연신환허(鍊神還虛)를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세 분 모두 연신환허를 거치셨나요?”
팔황신모가 도가의 비결로 훅 치고 들어오자 태을 선인이 슬쩍 말을 돌렸다.
“팔문팔상진을 경험하고 나서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교주님과 팔황 분들은 운정(運精)의 단계에 계시겠지요?”
팔황신모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십 년 전에야 겨우 연허합도(炳虛合道)를 이룰 수 있었어요. 지금은 양생(養生)의 과정에 있지요. 팔황은 연신환허의 마지막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
태을 선인은 한순간 숨을 멈췄다.
교주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 내용은 실로 경천동지할만한 것이었다.
술사들이 평생 동안 수련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게 연허합도다.
‘허! 연신환허를 삼십 년 수련해야 연허합도에 도달하고, 연허합도를 삼십 년 수련해야 비로소 양생의 길에 접어들거늘…….’
그런데 벌써 연허합도를 이루고 양생의 과정이라니 기가 막혔다.
양생을 도사들은 반선지경(半仙之境)이라 한다.
그때부터는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 외모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진다.
태을 선인은 무심코 팔황신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술사가 되면 처음으로 응기법을 배운다. 응기 십 성에 도달하면 축기로 넘어간다.
응기와 축기를 ‘운기의 단계’라 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삼십 년이면 축기 십 성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뒤로 십사 년을 고련하면 득약, 즉 양신을 얻는다.
다시 말해 양신을 얻기까지 꼬박 사십사 년이 걸린다는 소리다.
연신환허와 연허합도의 수련은 모두 이 양신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십 년 전에 연허합도를 이루었다면 나이가 두 갑자(120세) 이상이라는 말인데…….’
교주의 얼굴은 많아야 초로(初老, 50세 전후)로 보였다.
눈은 맑았고 피부도 깨끗했다.
태을 선인은 교주의 나이가 궁금했지만 감히 물을 수 없었다.
“이제 더 궁금한 게 없나요? 그럼 내가 물어보도록 하지요.”
팔황신모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곤륜삼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곤륜파에 혹시라도 장생의 비결이 있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반 시진(1시간) 쯤 지났을까?
굳게 닫혀 있던 신당의 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뒤이어 곤륜삼선이 나오는데, 얼마나 시달렸는지 눈이 휑해 보였다.
곤륜삼선이 마당으로 내려가자 팔황신모가 말했다.
“오늘은 새로 사귄 도우들의 낯을 봐서 너희들의 무례를 용서해 주겠다. 이후로 다시는 풍지산에 얼씬거리지 마라. 그리고 장무덕.”
갑작스러운 호명에 먼 산을 응시하고 있던 장무덕이 고개를 돌렸다.
“천지맹의 맹주에게 가서 전해라. 유명교는 천지맹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천지맹이 정주에서 물러나면 낙양에 있는 유명교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해라.”
“전쟁을 끝내겠다는 소리요?”
“그렇다. 계속하기를 원한다면 이 몸이 낙양으로 가서 천지맹을 뿌리째 뽑아 버릴 것이다.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당신의 말을 믿으라는 거요?”
장무덕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팔황신모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때 남궁연이 나섰다.
“장 대협, 교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일 거예요.”
뜻밖의 말에 장무덕은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순간 팔황신모가 냉소를 날렸다.
“흥! 십전무후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군. 그 계집아이의 말대로다. 본교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이번에는 곤륜삼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생의 수련에서 핵심은 무의무념(無意無念)과 무사무심(無事無心).
비록 교주가 마도(魔道)를 걷고 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면 양생 수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까.
더구나 교주의 법력이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령에 가깝다.
상대는 물론 자신도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되니 더더욱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
남궁연과 곤륜삼선의 반응에 장무덕도 의심을 버렸다.
“알겠소. 그리 전하리다. 전쟁을 끝내겠다는 교주의 결단에 감사드리오.”
장무덕이 교주를 향해 읍을 해 보였다.
교주가 팔황을 이끌고 참전하면 천지맹은 하루를 넘기지 못할 터였다.
다 이긴 싸움을 끝내겠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만 풍지산을 떠나라. 저들이 하산하면 칠황은 진을 복구하도록 해라.”
“예.”
칠황의 대답을 끝으로 신당 문이 ‘탁’ 하고 닫혔다.
칠황이 일제히 장무덕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가라는 무언의 독촉이다.
장무덕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선녀암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지난번의 살겁을 생각하면 살아 있는 건 기적이었다.
“가십시다.”
장무덕은 무인으로 술법을 모른다.
팔황신모의 변심이 두려웠던 그는 서둘러 선녀암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풍지산을 다 내려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풍지산의 일은 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팔황신모와 팔황, 그리고 팔문팔상진은 가히 무림의 운명을 좌우할 만했다.
비록 교주의 무공은 견식하지 못했지만 술법만으로도 질린 상태였다.
연적하 일행은 술시 말(오후 9시)이 되어서야 하산을 마쳤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더 풍지산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서다.
다행히 달빛이 밝아 이동에는 어려움은 없었다.
슬슬 걷는 게 지겨워질 즈음 장무덕이 한곳을 가리켰다.
관도 옆쪽으로 불 꺼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비록 간판은 없었지만, 외관으로 보아 규모가 작은 반점이 분명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아직 식전이니 주인을 깨워 봅시다. 외진 곳이라 주인도 문전박대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소?”
“찬성입니다.”
“저도요.”
“저도.”
곤륜삼선은 장무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번화한 도시라면 주인이 싫어할 테지만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환영받을 게 분명했다.
장무덕이 고개를 돌려 연적하와 남궁연을 보았다.
팔문팔상진 이후로 두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게 습관이 돼서다.
연적하와 남궁연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장무덕은 두 사람의 의견까지만 확인한 후에 반점 입구로 걸어갔다.
유일하게 제외된 심통이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니 왜 내 의견은 안 물어보는 거지? 나만 녹림인가? 공자님도 녹림인데.”
막 출입문을 두드리려던 장무덕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라고 했나?”
“아,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통은 감히 그를 마주 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눈을 아래로 깔았다.
탕. 탕. 탕.
장무덕이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에 뉘십니까?”
“지나가는 과객일세. 늦었지만 식사와 잠자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반쯤 잠겨 있던 반점 주인의 목소리가 굵고 활기차게 돌변했다.
곧이어 초로의 사내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이쿠! 일곱 분이나 오셨네요?”
“왜, 방이 부족한가?”
“아닙니다. 큰방이 세 개라, 조금 좁겠지만 지내시는 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주인은 손님들이 그냥 나갈까 봐 염려가 됐던지 서둘러 안으로 안내했다.
“곧 음식을 내오겠습니다. 방은 드시는 동안 치워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반점 주인은 무엇을 먹겠냐고 묻지도 않고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작아 정해진 음식만 파는 것 같았다.
일곱 명이 적당히 흩어져 앉으니 식당 절반이 찼다.
반점에 앉은 뒤에야 사람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서서히 사라졌다.
연적하는 앉자마자 차가운 찻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커허! 시원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내가 다시 풍지산에 가면 심 노인 아들이다.”
맞은편에서 차를 홀짝거리던 심통이 실실 웃었다.
“흐흐, 그 말 기억해 두겠습니다.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했습니다. 조만간 팔자에 없는 아들이 하나 생기겠네요. 좋구나!”
“무슨 소리야?”
“벌써 잊으셨습니까? 교주에게 적월인지 풍월인지를 데려다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려면 풍지산에 올라가셔야 할 텐데요?”
“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교주가 천년만년 풍지산에 있을 것 같아? 내려갈 거야. 암.”
옆자리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무 선인이 문득 한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왜 교주가 풍지산에 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네요.”
남궁연이 태무 선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 분께서 교주와 오랫동안 말씀을 나누셨는데, 모르시겠던가요?”
“교주가 집요하게 장생비술에 대해 파고들어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장생비술’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장생은 특별한 재주가 없는 도사들의 소박한 바람인 까닭이다.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누님, 어차피 전쟁을 끝내자고 했으면 됐잖아요? 교주가 풍지산에서 뭘 하든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요. 이 정도만 해도 우리는 성공한 거예요.”
“그건 공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총사 놈도 이번에는 뭐라고 하지 못할 겁니다.”
심통의 말에 장무덕과 곤륜삼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탐조가 천지맹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