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8
328회. 녹림에 자격지심 있어요?
객점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를 향했다.
삼진도 송군청은 객점 분위기로 청년이 연적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본인의 확인이 필요한 법.
송군청은 연적하의 눈치를 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연적하예요.”
“연 공자님이셨군요. 석장촌의 이 처사께서 연 공자님에게 전해 달라는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송군청이 연적하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공손히 봉서를 내밀었다.
“아하!”
연적하는 탄성과 함께 봉서를 받았다.
기다리던 청첩장이 이제야 온 모양이다.
곧이어 송군청은 장부를 꺼내 연적 하에게 내밀었다.
“봉서를 받았다는 확인증입니다. 수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적하가 장부에 수결을 마치자 송군청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희 대림표국을 찾아 주십시오.”
“아, 예.”
연적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송군청은 읍을 해 보이고 돌아서 나갔다.
송군청의 군더더기 없는 모습에 남수경이 탄성을 흘렸다.
“와아! 정말 절도 있는 분이네요. 그나저나 공자님, 기다리던 청첩장인가요?”
“응. 열흘 후에 열린다네.”
“곧이네요? 조금 빨리 알려 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알려 준 것만도 감지덕지야. 말이 없어서 혼인 끝나고 따로 부르려나 생각했거든.”
“어머, 왜요?”
“왜냐고? 내가 녹림이잖아. 남들이 알면 뭐 좋을 게 있겠어?”
“그냥 녹림이 아니잖아요. 공자님은…….”
“그래 봐야 도적이지.”
연적하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창고에서 도망친 뒤로 처음 몇 년은 녹림에 대해 무관심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맺은 인연이 녹림이라 좋고 나쁨도 몰랐다.
그때는 그저 자신을 구해 준 형님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나중에 정의맹 사람들과 강호를 주유하면서 알았다.
세상에서 녹림이 어떤 위치인지.
사람들이 녹림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그리고 녹림도가 얼마나 악한 사람들인지를.
무공이 낮은 설차수, 유근식, 진설하의 기개 어린 모습과 남궁천, 남궁연의 의협심.
그들이 보여 주는 일상은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실은 오봉산에서 내려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저어, 혹시 녹림에 자격지심 같은 거 있어요?”
남수경의 물음에 주변에서 듣고 있던 상도, 월아, 금아가 뜨악한 얼굴을 했다.
연적하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연적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친구, 도적으로 살아 봤어?”
“아뇨.”
“도적놈과 도적님이 뭐가 다를 것 같아?”
“흐음.”
남수경은 그의 말에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만 알았지 정작 그의 감정은 몰랐다.
‘연 공자는 자신이 녹림이라는 걸 부끄러워하고 있구나.’
어쩌면 그게 정상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의 무공이 높지 않았다면 그도 도적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공자님은 산을 내려왔잖아요. 총순찰도 그만뒀고. 그럼 더 이상 녹림이 아니지 않나요?”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녹림의 태상호법이라는 걸 모르기에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내가 녹림 출신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아.”
“에이, 너무 출신에 연연하지 마요. 연꽃은 흙탕물에서 핀다고 하잖아요.”
“내가 연연하는 게 아니라, 외숙에게 껄끄러울 수도 있겠다는 걸 말한 거야.”
“아, 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공자님 혼자 궁상떠는 것으로 보일까나.”
남수경의 지적에 상도와 월아, 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적하는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사악한 녹림의 마두들도 기인 대접을 받는 게 세상 이치였다.
연적하가 남수경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성공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거냐? 에이, 속물.”
“끼리끼리 논다고 속물의 친구는 뭐다?”
“속물?”
“알면 식사나 하세요.”
남수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상도와 월아, 금아가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 와 연적하 앞에 늘어놓았다.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며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객점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인 건 분명해.”
때가 되면 맛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주니 극락이 따로 없다.
***
포목점을 주루로 바꾸는 공사는 오 일 만에 끝났다.
그사이 남초결은 구천노도 심통에게 만덕상방의 행수 장이유를 소개했다. 과거 남연객점을 판매하려던 인연이 그렇게 연결된 것이다.
장이유는 술과 안주의 재료는 물론, 요리사까지도 책임지고 공급해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주루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포목점 매매가 끝나고 칠 일 만이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속도다.
그날 저녁.
연적하는 남연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심통의 주루로 향했다.
멀리서 주루를 보던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심통이 입버릇처럼 ‘객점 옆에 주루를 내겠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됐다.
이래서 말이 중요한 모양이다.
문득 팔황신모와의 약속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언제고 잡아다 주면 되겠지.’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연적하는 팔황신모와의 약속을 후순위에 두고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사촌동생의 혼례와 술법을 배우는 일이다.
주루 앞에 선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간판 없는 주루나 객점도 흔하니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연적하가 안으로 들어서자 월아와 금아가 쪼르르 달려와 맞이했다.
“연 공자님, 어서 오세요.”
“왜 이제 오셨어요?”
연적하는 월아와 금아가 이끄는 대로 창가쪽 좋은 자리로 걸어갔다.
축하주를 마시던 만덕상방의 관계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상촌에 발을 걸친 상방이나 방파 치고 연적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중에 육십 대 노인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올렸다.
“연 공자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만덕상방의 방주 설운덕이라 합니다.”
“아, 예.”
연적하는 건성으로 화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설운덕은 더는 말을 걸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점소이를 대신해서 월아와 금아가 부지런히 안주와 술병을 날랐다.
슬며시 나타난 심통이 연적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아이고, 죽겠다. 무슨 잔일이 이렇게 많은지. 여기서도 부르고, 저기서도 부르고, 이거 괜히 시작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돈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웬 앓는 소리야?”
“흐흐, 그냥 생각보다 바쁜 것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공자님은 뒹굴뒹굴 혼자서 잘 노시는 것 같던데, 저는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일복이 많은가 봐. 부러워.”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쇼. 정말 징글징글합니다.”
“나처럼 사람을 써. 혼자 하려고 하니 그렇지.”
“공자님, 술집은 객점과 달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냥을 쓱싹할 수 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쓰기 어렵습니다.”
“그럼 혼자 해야지. 안 말릴게.”
“쩝, 믿을 만한 사람이 생기면 그때 계산대를 맡겨 보겠습니다.”
“가뜩이나 의심 많은 도둑놈 눈에 그런 사람이 퍽이나 생기겠다. 미련 떨지 말고 대충 살아, 대충.”
“대충해서 어느 세월에 돈을 갚겠습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돈 갚으라고 꽤나 괴롭힌 줄 알겠네. 여유 있게 살려고 시작한 일 아냐?”
“돈도 돈이지만, 엄한 놈에게 좋은 일 시켜 주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한마디로 돈 뜯기기 싫다는 소리다.
“쯧쯧! 하여간 그놈의 도둑놈 심보는 어딜 안 가요.”
혀를 차던 연적하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내일 아침에 외숙을 만나러 정주로 갈 거야.”
“그럼 당분간 객점에 안 돌아오시는 겁니까?”
심통이 아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가 혼례식에 참석했다가 무당산으로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어, 삼 년이라잖아. 그전에 나도 준비를 해 둬야지. 유명교에서 날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지가 않아.”
“왜요? 그래도 교주와는 이야기가 잘 끝나지 않았습니까?”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알잖아. 그날 보니까 교주도 정상은 아니더라. 그 인간이 내가 마음에 들어서 가만히 뒀겠어? 꿍꿍이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강호를 그렇게 몰라?”
“험, 제가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공자님께서 얼마나 잘 아시는지 보느라 그런 거지요. 생각 잘하셨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강호의 소문을 긁어모으고 있겠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 모양인데, 이를 어쩌나. 쓸 만한 소문을 이런 작은 주루에서 들을 수 있겠어? 하오문이 괜히 대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길바닥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술집 소문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죠. 그나저나 가시기 전에 주루 이름이나 하나 지어 주십시오.”
“내가?”
“공자님이 사 주신 주루니까 이름도 지어 주셔야지요. 저는 배움이 짧아서.”
“금월 어때? 어차피 제자들에게 물려줄 거라면서?”
“흠! 금월이라, 괜찮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적하가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을 심통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금월주루가 만들어졌다.
***
다음 날.
연적하는 행낭 하나를 등에 지고 남연객점을 나섰다.
과거 어리숙한 모습과 달리 관도를 따라 걷는 그에게선 제법 노련미가 엿보였다.
변한 것은 연적하만이 아니다.
천지맹과 유명교의 전쟁이 끝난 세상은 어수선의 극치였다.
그동안 눈에 잘 띄지도 않던 삼류 무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지를 건들거리며 껄렁대는 언행을 보면 누가 봐도 하오문 아니면 시정잡배다.
어쩌다 가끔 군소 방파의 무인들도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천지맹과 유명교의 전쟁이 정예 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최근 벌어지는 각축전의 주역은 하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오 무렵.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만두를 뜯어 먹던 연적하는 목이 막히자 허리춤에 매 두었던 조롱박을 집었다.
심통이 가는 길에 드시라고 챙겨 준 향설주가 든 조롱박이다.
“캬하! 좋구나! 는 개뿔. 미적지근 해서 못 마시겠네.”
한여름이라 조롱박 속의 향설주는 미지근하다 못해 따뜻할 정도였다.
“괜히 입맛만 버렸네. 물이 낫겠어.”
중얼거리던 연적하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미적지근한 술보다는 시원한 샘물을 담아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물론 얼마 못 가서 물도 미지근해지겠지만 술보다는 뒷맛이 나을 터였다.
하지만 관도에 샘물이 있을 리가 없다.
아쉬운 눈으로 조롱박을 내려다보던 연적하의 귀에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차 한 대가 요란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를 보니 벌써부터 숨통이 막히는 기분이다.
부랴부랴 일어난 연적하는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콰드드드드-.
바퀴를 따라 황토색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마차가 지나가자 연적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다시 나무 그늘로 걸어갔다.
“젠장. 이놈의 먼지. 나도 마차를 하나 구하든지 해야지. 더러워서 원.”
그때였다.
저만치 가던 마차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선회해 연적하에게 다가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욕을 듣고 온 줄 안 연적하는 먼 산만 바라보았다.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던 중년 남자가 물었다.
“소형제, 이쪽으로 가면 형양현이 나온다고 하던데, 맞는가? 초행길이라.”
“맞아요.”
“형양현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해가 질 즈음에는 도착할 거예요.”
“저런! 아직 한참 남았구먼. 그런데 소형제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형양현요.”
“그래? 잘됐구먼. 함께 가면서 길이나 좀 알려 주시게나. 갈림길 나올 때마다 가슴이 조여서.”
“저야 고맙죠.”
중년인의 제안에 연적하는 발딱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덥고 지겹던 차에 이게 웬 횡재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