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9
329회. 그런 혼인을 왜 한대요?
당연히 연적하의 자리는 마부석 옆이었다.
중년 사내는 본래 성격이 그런 건지 처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대했다.
“나는 백무상이라고 하네. 소형제의 이름은 뭔가?”
“연적하요.”
말 엉덩이만 보고 있던 백무상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녹림에서 워낙 유명한 이름이라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갔던 것이다.
청강 장검과 조롱박이 눈에 들어왔다.
검을 제외하면 이십 대 초반의 순하고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검도 보검과는 거리가 먼 그냥 흔한 검이다.
백무상은 녹림의 연적하와 자신이 태운 청년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하! 유명한 이름을 가졌구먼. 녹림에도 그런 이름의 고수가 하나 있다던데.”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연적하는 남의 이야기 하듯 말했다.
반나절 동안 함께 다닐 사람에게 위화감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아서다.
연적하의 대답에 백무상은 완전히 의심을 떨쳐 냈다.
얼굴과 눈빛만 보면 최소한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지금 연적하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맑고 순후했다.
그런 그를 녹림의 대마두 연적하와 연결 짓는 건 그에 대한 실례였다.
“검술을 익혔나?”
“예.”
“오호! 사문이 어찌 되는가?”
“가전 무공이에요.”
“아하! 가전 무공. 좋지. 가전 무공이라고 해도 기죽을 것 없네. 문파니 방파니 하는 것도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백무상은 강호에 발을 내디딘 연적하를 격려했다.
그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연적하가 물었다.
“백 대협은 사문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의천문에서 수학을 했었네.”
“혹시 칠파일문으로 알려진 그의 천문인가요?”
“그렇지. 잘 아는구먼?”
“에이, 의천문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연적하가 추켜세우자 백무상이 으쓱한 얼굴로 힘차게 말고삐를 흔들었다.
“이려!”
이미 잘 달리고 있던 말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백무상은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런 백무상을 보며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지맹에는 참여하지 않았나 보네?’
만약 천지맹에 있었다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잠시 후 무료해진 연적하가 슬쩍 운을 뗐다.
“그럼 백 대협도 천지맹에서 활약을 하셨나요?”
“그러지는 못했네. 나는 의천문에서 수학을 한 뒤 군문(軍門)에 투신했거든.”
“아!”
“나라의 녹을 먹는 이가 무림의 쟁투에 휘말리면 안 되지. 그건 의천문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네.”
“그러시구나. 지금은 군문에서 나왔나 봐요? 자유롭게 돌아다니시는 거 보면.”
“그런 건 아닐세. 공무 수행 중이라고 할 수 있지.”
백무상이 그 말을 하자 마차 안에서 가볍게 ‘어험’하는 헛기침 소리가 났다.
마차 소리에 묻힐 법도 한데 백무상은 듣고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험, 험, 그런데 소형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딱히 하고 있는 일은 없어요.”
“그런가? 요즘 강호의 방파와 상방에서 무인들 구한다고 난리던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던가?”
“그건 아닌데, 아직 오라는 데가 없네요.”
“하하하!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구먼. 오라고 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다녀야지.”
“돈이 좀 있기는 해요.”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수중에 아직 천 냥이나 남아 있어서 궁핍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백무상이 무심코 말했다.
“역시, 자네가 마차 어쩌고 할 때 알아봤지. 집안이 좋은가 봐.”
연적하는 계면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말하는 걸 보니 백무상은 자신의 투정 소리를 듣고 마차를 돌린 것 같았다.
“아뇨. 집은 망했어요. 제가 낭인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이 좀 돼요.”
“오호! 낭인 생활을 했구먼. 하기야 요즘은 낭인이 돈 벌기는 낫지. 방파들 간에 싸움이 좀 많아야 말이지. 그렇지 않은가?”
“예.”
연적하의 답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사실 청년 낭인과 중년 무관은 극과 극이라 할 만큼 거리가 멀어야 정상이다.
낭인의 눈에 무관은 ‘황실의 개’고, 무관의 눈에 낭인은 ‘인생의 패배자’였으니까.
반 시진(1시간)쯤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섰다.
백무상이 찌는 듯한 더위에서 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세운 것이다.
잠시 후 마차에서 초로의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백무상은 노인이 상관인 듯 그때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중을 들었다.
연적하는 가까운 나무 그늘에 앉아 그런 백무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아무리 의천문의 제자라 해도 군문의 서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다.
중년의 그가 강호 초출처럼 땀나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속으로 혀를 차는 연적하에게 초로의 노인, 정천호(정오품) 풍만표가 말했다.
“소형제, 그런 눈으로 볼 것 없네. 백무상의 말 한마디에 사지로 뛰어들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소형제 같은 장정 일천일백이십 명이 그의 명에 죽고 산다네.”
노인의 말에 연적하는 조금 놀란 척해 주었다.
“와아!”
풍만표는 피식 웃으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걸려 있는 패도가 걸리적거리는지 한쪽 옆으로 슬쩍 밀어냈다.
패도를 보고서야 연적하는 초로의 노인도 무장(武將)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백무상이 연적하의 곁에 털썩 앉았다.
“어이쿠! 이렇게 귀찮을 줄 알았으면 마부를 데리고 오는 거였는데. 괜히 고생을 사서 하고 있네.”
“왜 마부를 안 쓰셨어요?”
“어르신께서 사적으로 들를 곳이 있어 그냥 내가 모시고 있는 걸세. 공사가 분명하신 분이라.”
“백 대협이 모시고 다니는 건 괜찮은가 봐요?”
“내가 어르신의 수하이지만, 자청해서 모시겠다고 한 것이니 공적인 영역이라 볼 수 없지.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 소형제는 형양현에 무슨 일로 가나?”
“집안일요.”
“아, 낭인 일로 가는 게 아닌 모양이지?”
“예.”
“그렇구먼. 다행이네. 만약 소형제가 낭인 일로 가는 거면 동행하기 곤란하거든.”
“아하! 혹시 제가 백 대협을 팔아먹을까 봐요?”
“눈치가 빠른 친구로군. 맞네. 행여나 방파나 상방의 분쟁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면 안 되니까.”
“에이, 그럴 일 없어요. 진짜 집안일로 잠깐 가는 거예요. 그런데 두 분은 왜 형양현에 가시는 건데요?”
백무상이 풍만표 쪽을 힐끔 보았다.
연적하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풍만표는 가타부타 말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무언의 허락이다.
자신처럼 연적하라는 청년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진 게 분명했다.
“어르신의 먼 조카가 혼인을 해서, 겸사겸사 가는 것일세.”
백무상은 두 사람이 발령지로 가고 있음은 밝히지 않았다.
길에서 만나 동행하는 낭인에게 그런 비밀까지 말할 수는 없어서다.
“아, 혼인. 혼인하기 좋은 계절이기는 하죠. 먼 조카의 혼례에 참석하다니 정이 많으신가 봐요?”
연적하가 턱으로 초로의 노인을 가리켰다.
백무상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사돈 쪽에 문제가 좀 있어서 내키지 않아 하시네. 당사자인 조카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 같고.”
“그런 혼인을 왜 한대요?”
“집안에서 밀어붙이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겠지.”
“사돈 쪽에 문제가 있다면서 왜 밀어붙여요?”
“관인 집안이니 말 못 할 이유가 있지 않겠나.”
“말 못 할 이유요?”
연적하가 의아해 할 때다.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풍만표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러자 백무상이 황급히 마무리했다.
“남의 집안 이야기를 알아서 무엇 하려고 그러나. 조용히 쉬기나 하게.”
연적하는 번번이 훼방하는 노인에게 눈을 흘기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아니 뭐 좀 재밌을 만하면 어험이야.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을 못 하게 하든지.’
***
형양현.
석장촌.
방산 아래 외딴 집.
연적하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외숙의 집을 바라보았다.
다 떨어져 가던 나무 울타리는 튼튼한 담장으로 변했고, 본채도 지붕을 새로 얹어 그럴싸했다.
마당 한편에는 언제 지었는지 창고도 한 채 번듯하게 서 있었다.
과거 쓰러져 가던 단칸방 집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
연적하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툇마루에 앉아 있던 이우석이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적하구나! 어서 오거라. 날도 더운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여유 있게 알려 줬어야 하는데 날짜가 오락가락해서, 늦었구나.”
“괜찮아요. 어차피 더 올 사람도 없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적하의 속은 조금 쓰렸다.
남궁세가 사람들을 초대하지 못해서다. 한 달만 일찍 알았어도 남궁세가에 연락했을 것이다. 인편이 닿는 데만도 열흘이 넘으니 알릴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현령님과 관부분들이 참석하신다니까 너무 섭섭해 말거라.”
“관부요?”
“사돈 될 댁이 관인이라 관부에서 많이들 오는 모양이다.”
“그야 사돈이 그런 거고.”
연적하는 외숙 쪽 손님이 없다는 게 좀 신경 쓰였다.
무림의 행사라면 녹림도라도 부를 텐데, 외숙의 집에 녹림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네 지인들도 많이들 오신다더라.”
“제 지인이 누가 있다고요?”
“금의위 동 대인과 안찰사 서 대인이 이번에도 오신다고 하셨다.”
연적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와 안찰사 서경진이 또 한쪽 다리를 걸칠 모양이다.
때마침 대문을 열고 외숙모와 이유화, 이시화가 들어왔다.
“어머, 질자(姪子). 어서 와요.”
장소미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자신의 집안을 흥하게 해 준 연적하가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유화와 이시화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라버니. 어서오세요.”
“오라버니! 왜 이제야 오셨어요!”
곧 시집갈 이유화는 가만히 서서 눈인사를 했지만, 어린 이시화는 와락 달려들어 연적하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보다 못해 이우석이 한마디 했다.
“어허. 시화야. 그러다 오라비 팔 빠진다.”
“우리 오라버니는 무림 고수라 괜찮아요! 그렇죠? 오라버니?”
이시화가 온몸으로 반기자 연적하는 ‘하하’ 웃었다.
세상 때가 묻지 않은 그녀의 순수한 행동에 가슴이 뭉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딸이 하나 있음 좋겠다.’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연적하는 외숙이 부러웠다.
감정은 상대적이라 하던가.
이시화도 연적하가 자신을 이뻐한다는 걸 알고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소미가 한마디 할 정도였다.
“시화는 아빠보다 적하 오라버니가 더 좋은 것 같구나.”
“헤헤, 당연하죠.”
이시화의 망설임 없는 답변에 이우석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저래서 딸자식은 키우나 마나라니까.”
입으로는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이우석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연적하와 딸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원인 까닭이다.
한바탕 요란한 인사를 마친 뒤 정소미는 두 딸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먼 길을 온 연적하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다.
외숙과 둘만 남겨지자 연적하가 넌지시 물었다.
“외숙, 유화 남편 될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금의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금의위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외숙을 보았다.
금의위 사람이 어떻게 시골 촌구석의 여자를 알고 혼인을 한단 말인가?
“그래, 동 대인이 소개를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 네 덕분이구나.”
연적하는 암암리에 탄식했다.
‘이런 제길. 그래서 나중에 얘기를 하자고 했구나.’
곰곰 생각해 보니 동유수가 자신과 엮이려고 혼인을 앞세운 것 같았다.
‘뭐, 그래도 당사자들이 좋다면 그만이지.’
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혼인, 금의위면 어떻고 장사꾼이면 어떻단 말인가!
‘도적만 아니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