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6
356회. 신선불사(神仙不死)와 구도자
기대로 들뜬 연적하에게 청불노가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안법을 배우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뭔데요?”
“아무리 뛰어난 안법을 배운다 한들 법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법력이라는 말에 연적하는 시무룩해졌다.
공력이라면 모를까? 법력에는 자신이 없어서다. 남들보다 늦었으니 열 배나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까지 듣지 않았던가!
청불노가 품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이건 ‘발화부(發火符)’라는 것이다.”
“발화부요?”
“너도 공력과 법력의 차이에 대해서는 들어 봤을 게다. 법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 배웠느냐?”
“믿음요?”
“그래, 믿음이다. 선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술법을 사용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의 크기는 평생에 걸쳐 고민할 문제이고…….”
말과 함께 청불노는 ‘발화부’를 연적하에게 건넸다.
“‘불!’ 이라고 외쳐 보아라. 너에게 믿음이 있다면 ‘발화부’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청불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발화부는 술사들 사이에서 법력 유무의 시금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장 약하면서도 확실한 증명.
얼치기 술사들은 ‘발화부’를 이용해 순진한 백성들을 속이기도 한다.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나직이 ‘불’이라고 말했다.
순간 연적하가 들고 있던 발화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본래 손끝에서 ‘반짝’ 타고 말았어야 할 발화부는 마치 ‘화염승천부’처럼 불기둥으로 변했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들고 있던 발화부를 집어 던졌다.
퍼엉-.
오룡궁의 중앙에 불길이 떨어지며 사방으로 열기를 뿜어냈다.
“으헉! 부, 불이야!”
청불노는 호들갑을 떨며 품안에서 적우제염부(積兩制炎符)를 꺼내 사방에 뿌렸다.
허공에서 물이 터져 나와 불을 덮었다.
치이익- 치익-.
적우제염부에 갇힌 불길은 뜨거운 수증기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헉! 헉! 이놈아!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청불노의 말에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그럼 저도 일단 법력이 있는 거죠?”
가슴을 쓸어내리던 청불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답했다.
“하아! 네놈 때문에 수명이 줄어든 것 같다. 만약 오룡궁에 불이 났으면 너와 나는 십 년 면벽에 처해졌을 게다.”
“그래도 꺼졌네요? 그건 무슨 부적이에요?”
“적우제염부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녔는데 요긴하게 썼구나.”
“그런데 스승님, 저도 법력이 있는 거죠?”
“있다 뿐이냐? 많다. 네가 익힌 공법은 무림인의 내가기공이 아닌 것 같다. 몇 가지를 더 확인해 보면 알겠지.”
“확인요?”
“그래. 본래 발화부는 단지 법력의 유무만 가리기 위한 것이다. 네 내력이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법력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만약 내공과 법력이 같다면 무림 고수가 최고의 술사였을 게다.”
“유명교 교주는 내력과 법력이 무시무시하던데요?”
“그건 유명교의 공법이 특이해서 그런 걸 게다. 초능으로 무상의 공력을 얻는다면서?”
“예.”
“그는 본래 술사였을 것이다. 그러다 초능으로 화신지경의 내공을 얻었겠지.”
“아, 그런 걸까요?”
“너와는 반대의 길을 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너는 내공의 공법을 먼저 닦았으니까. 네 공법이 특이해서 술법까지도 가능하게 해 주는 것 같구나.”
청불노는 더 이상 연적하의 법력을 시험하지 않았다.
법력이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그 경지는 부차적인 문제인 까닭이다.
“‘발화부’를 보아서 알겠지만 네게는 이미 법력이 존재한다. 평생 동안 그것을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술사들이 괜히 백일기도, 천일기도를 하는 게 아니니라.”
“예.”
그 뒤로 청불노는 연적하에게 ‘통천안’을 비롯해 자신이 배우고 익힌 술법들을 전수해 나갔다.
법력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있음을 확인한 이상 가르치지 못할 것은 없었다.
***
연적하는 매일 밤 오룡궁에서 청불노에게 술법을 배웠다.
조금이라도 쉴라치면 청불노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다그쳤다.
그런 일로 허튼소리 할 스승이 아님을 알기에 연적하는 군말 없이 따랐다.
연적하의 일과는 언제나 같았다.
새벽에 독송을 하고, 오전에는 강론을 들었으며, 오후에는 남암궁을 뒤지고 다니고, 밤에는 오룡궁에서 청불노에게 술법을 전수받았다.
그해, 여름의 끝자락에 무당산으로 깜짝 놀랄 손님이 방문했다.
이른 아침.
무당산 산문.
“남궁 소저? 어서 오시오. 내 급히 태화궁의 청명자께 기별을 넣어 드리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산문을 지키고 있던 현우 도사가 급히 돌아서 태화궁 방향으로 달려갔다.
남궁연은 해검지에 가만히 서서 시간을 보냈다.
제자리에 남아 그녀를 힐끔거리던 현청 도사가 슬쩍 말을 걸었다.
“역시 외조부님을 뵈러 오신 거겠지요?”
십전무후 남궁연의 외조부는 지금은 태화궁의 태상장로인 청명자다. 그러니 그녀가 무당파에 온 것은 청명자를 만나기 위함일 터였다.
현우 도사가 태화궁으로 달려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궁연은 생긋 웃어 보인 후 무당산의 산세로 시선을 돌렸다.
일각쯤 지나자 현우 도사가 신선풍의 노도사를 모시고 돌아왔다.
태화궁의 태상장로 청명자였다.
청명자가 웃으며 다가오자 남궁연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할아버지. 그간 강녕하셨어요?”
“그래, 우리 연아가 웬일로 여기까지 왔을꼬?”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이 할아비를 보러 온 게 아니고?”
그러자 남궁연이 웃으며 청명자에게 봉함을 내밀었다.
“이건 아버지께서 보내는 서신이에요.”
청명자가 의아한 눈으로 봉함을 쳐다보았다.
‘허어! 대체 무슨 급한 일이기에 하나뿐인 딸을 무당산까지 보냈을꼬?’
서둘러 봉함을 개봉해 보니 그냥 평범한 안부 인사로 가득했다.
“이게 전부냐?”
“예.”
“쯧쯧! 실없는 사람 같으니. 고작 이런 일로 하나뿐인 딸을 무당산까지 보내?”
청명자가 현우 도사를 손짓으로 물리고 남궁연과 함께 산을 올랐다.
주변에 사람이 없자 청명자가 넌지시 물었다.
“네 아비가 달리 전하라는 말은 없었고?”
“네.”
그러자 청명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허어! 너는 남궁세가를 재건하느라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을 터인데. 고작 문안 편지를 전하게 했다는 말이냐? 그것도 남직례성에서 호광성까지?”
망설이던 남궁연이 실토를 했다.
“실은 제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온 거예요.”
“만나야 할 사람? 아, 이제 보니 무당파 장문인을 만나러 온 게로구나?”
청명자가 흐뭇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무림에서 ‘십전무후’ 소리를 듣고 있는 남궁연이다. 그녀의 위치라면 남궁세가와 무당파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왔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아니요.”
“아니라고?”
“예.”
“장문인이 아니면 대체 누구를 만나기 위해 네가 불원천리 달려왔다는 게냐?”
남궁연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오룡궁에 연두비라는 이름을 쓰는 수련자요.”
“오룡궁의 수련자?”
“예.”
외손녀의 말에 청명자는 우뚝 멈춰 섰다.
도무지 지금 남궁연이 하고 있는 소리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그러니까 네가 오룡궁의 수련자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예.”
청명자는 연두비라는 이름을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런 이름의 무림인은 없었다.
“흐음! 네가 이 먼 길을 달려와 만날 정도의 사람이라면 보통은 아닐 터. 뭐하는 사람이냐?”
“외조부님만 알고 계세요. 그가 연적하예요.”
“설마 녹림의 그 연적하를 말하는 게냐?”
“맞아요. 그가 술법을 배우고 싶어 해서 아버지가 오룡궁에 보냈어요.”
“검왕이 그를?”
청명자가 눈을 끔뻑였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여기서 왜 남궁벽의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와 그의 선친이 의형제였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저희와 왕래를 했어요.”
“그렇다 해도 네 부친은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인데 녹림의 고수를 오룡궁에 보냈다니 놀랍구나. 무당파의 눈치가 보여서 이름을 바꾼 건가?”
“그런 이유로 이름을 바꿀 사람은 아니에요. 장문인께서 보낸 편지에 뜻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확인차 제가 직접 와 본 거예요.”
“네가 직접 챙겨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냐?”
청명자가 남궁연을 빤히 보았다.
그는 무당산에서만 생활을 해서 아직 연적하와 남궁연의 관계를 몰랐다.
하지만 남궁연이 부랴부랴 달려온 것을 보고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궁연은 부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외조부에게도 알릴 일이었다.
“네. 손녀사위가 될 사람이에요.”
“…….”
‘손녀사위’라는 말에 한동안 청명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연적하는 녹림의 거마다.
그런 그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외손녀가 혼인을 할 예정이라니?
***
남궁연은 청명자에게 인사를 드린 후 오룡궁으로 향했다.
마침 강론 시간이라 수도자와 수련자들 모두가 오룡궁에 모여 있었다.
그녀는 마당에 서서 열린 문틈으로 오룡궁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열심히 수련자들의 뒤통수를 살피던 남궁연의 눈이 반짝였다.
눈에 익은 뒷모습이 있었다.
연적하다.
이제는 뒤통수만 봐도 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평소보다 조금 울퉁불퉁한 느낌이 들지만 그가 틀림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달 전 ‘조양(朝陽)의 고황(膏育)에 그늘이 졌는데 웬일인가?’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장문인의 글을 보면 연적하는 무당파에 가기 전에 병이 든 것 같았다.
만약 무당파에서 병들었다면 ‘웬일인가?’라고 물을 리가 없어서다.
장문인이 놀라 물을 정도의 병세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쓰러져 누워 있을까?
걸어는 다닐까?
온갖 불길한 상상으로 애만 태웠는데 오늘 보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남궁연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강론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큰 짐을 내려놓은 마당 한쪽에서 광성자의 강론에 귀를 기울였다.
오룡칠사의 일인인 광성자가 말했다.
“누군가 포박자에게 물었소. ‘신선은 죽지 않는다[神仙不死]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이에 포박자는 ‘사람이 모든 물건을 다 볼 수 없고,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없으며, 아무리 빠른 다리를 가졌어도 가 보지 못한 땅이 더 많고, 큰 지혜를 가졌다고 하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만물은 무한대인데, 어찌 자기가 보지 않았다 하여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소.”
도사들과 수련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선불사’를 믿지 않는다면 술법도 법력도 공허한 외침이 되는 까닭이다.
“포박자는 ‘불사(不死)의 도(道)’가 있다고 했소. ‘불사의 도’야말로 술법의 궁극. 유명교 교주가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도 바로 이 ‘불사의 도’를 얻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소.”
갑자기 유명교 교주 이야기가 나오자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 눈치 없게 말했다.
“유명교 교주가 ‘신선불사’를 추구한다면, 그도 ‘구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