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7
357회. 약사여래 백일운
도사들과 수련자들의 시선이 광성자의 입에 집중됐다.
도사들의 수련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명상과 호흡이 중심이지만 어떤 이들은 기이한 방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도(道)란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기에 도사들의 기행은 구도(求道)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신선불사를 추구하는 유명교 교주도 구도자인가?’라는 질문은 굉장히 민감한 것이었다.
광성자가 질문을 한 수련자, 장이도를 한번 쳐다본 뒤에 답했다.
“그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구도자일지도 모르오.”
“아아…….”
도사와 수련자 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유명교 교주를 구도자라고 하는 것은 도에 대한 모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그의 행위를 표현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그의 도는 마도(魔道)요.”
뒤늦게 도사들과 수련자들은 광성자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도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질문을 던진 장이도도 만족한 얼굴로 더는 묻지 않았다.
길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강론이 끝났다.
도사들과 수련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오룡궁을 빠져나갔다.
마당에 내려선 도사와 수련자 들은 연신 한쪽 구석을 힐끔거렸다.
인세에 보기 드문 미녀가 나무 그늘 아래 그림처럼 서 있어서다.
상청궁이나 태화궁이라면 모를까?
오룡궁의 도사들은 십전무후 남궁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곁눈질만 해 댔다.
오직 오룡궁의 궁주인 천명 도사만이 그녀를 알아보고 황급히 다가갔다.
“십전무후께서 오룡궁에는 어쩐 일이신가?”
천명 도사는 남궁연이 손녀뻘의 나이임에도 정중했다.
오룡칠사라고 해 봐야 십전무후의 명성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인 까닭이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다가 들렀어요.”
남궁연은 검왕 남궁벽의 이름으로 대충 넘어가려 했다.
조금 전 외조부에게 부친의 서신을 전하고 왔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술법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천명 도사는 아쉬운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오룡칠사들의 소원은 십전무후 같은 제자를 하나 키워 보는 것이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아직 제가 배운 것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서요.”
남궁연의 정중한 거절에 천명 도사는 입맛만 다셨다.
“혹시 연두비라는 청년을 만나러 왔소?”
연두비가 검왕의 추천으로 왔으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다.
“네. 그를 따로 볼 수 있을까요?”
“이제 점심시간이라 편한 대로 하셔도 되오. 사람들의 눈이 불편할 텐데, 차라리 연두비를 따로 불러드리리까?”
“아니요. 무당산이 넓으니 오룡궁 밖에서 만나면 괜찮을 거예요.”
남궁연은 어린 시절 무당파를 드나들어 낯설지 않았다.
천명 도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태화궁 태상장로의 손녀이니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럼 빈도는 이만 가 보리다.”
“네, 살펴 가세요.”
천명 도사를 보낸 뒤 남궁연은 쏟아져 나오는 수련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헛!’
한순간 남궁연의 눈이 커졌다.
뒷모습을 보고 분명히 연적하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전혀 달랐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남궁연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 왔다.
-누님. 저 맞아요. 해독이 덜 돼서 얼굴이 좀 부었어요.
귀에 익은 전음을 듣고서야 남궁연은 저 퉁퉁 부은 얼굴의 청년이 연적하임을 알았다.
그런데 해독이 덜 됐다니?
마음이 달아오른 남궁연이 연적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따라와.
나무 그늘에 서 있던 남궁연은 월동문을 지나 오룡궁 경내 밖으로 나갔다.
오룡궁을 벗어나자마자 남궁연은 경공술로 달려갔다.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산을 하나 넘은 뒤, 급하게 멈춰 섰다.
그 옆에 바람처럼 연적하가 내려섰다.
급하게 돌아선 남궁연이 연적하의 얼굴을 이모저모 살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깨끗하던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그게 제가 허창에서 청주삼협이라는 사람들과 알게 됐거든요.”
연적하는 청주삼협과 삼보절명 당운망에 얽힌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때 당운망이 낙월독정이라는 독을 썼어요. 그를 제압해서 해독약을 먹었는데, 독성분이 복잡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당운망이 그랬어?”
“네, 그리고 약사여래 백일운이라는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어요.”
“백일운은 강호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는데.”
“누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응, 명의로 유명한 사람이야. 내가 그를 찾아올 테니까 불편해도 참고 있어. 개방이랑 하오문에 협조를 요청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정말?”
다 죽어 가던 남궁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개방과 하오문이 나선다 해도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네, 무당산에 있어요.”
“무당산? 설마 남암궁에 들어간 거야?”
남궁연은 십전무후답게 무당산이란 말만 듣고 바로 남암궁임을 알아차렸다.
“맞아요. 단약을 만든다고 꽤 오래 전에 남암궁으로 들어갔대요.”
“가자.”
남궁연이 연적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딜요?”
“남암궁.”
남궁연의 기세에 눌린 연적하는 배가 고픈데도 북쪽으로 내달렸다.
***
무당산.
남암궁.
일진광풍과 함께 절벽 입구에 일 남 일 녀가 나타났다.
연적하와 남궁연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남암궁의 절벽을 둘러보던 남궁연이 물었다.
“어디까지 찾아봤니?”
“매일 조금씩 찾아다니느라 많이는 못 다녔어요.”
연적하가 앞장서 걸어가며 최근에 자신이 돌아다닌 지역을 가리켜 보였다.
“저기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까지 가 봤어요. 저기 꼭대기까지 싹 다 돌아다녔으니까, 그다음부터 찾으면 돼요.”
“쯧. 저 위쪽을 다 둘러봤다고?”
“네. 절벽이 높고 험해서 하루에 다섯 개 이상은 힘들더라고요. 기문 진식도 있고.”
연적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해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자 남궁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적하야.”
“예.”
“백일운은 무공을 모르는 의원이야. 험준한 곳에서는 버티지 못해. 기문진식과도 거리가 멀고.”
“아, 그래요?”
“그러니 일반인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을 거야. 십 장(약 30미터) 이상의 절벽은 볼 필요도 없어.”
“정말요?”
“그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걸 싫어한다고 해도 올라갈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십 장 아래까지만 조사하면 될 거야.”
“그, 그런 거예요?”
연적하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너무 어려운 곳을 뒤지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식수는 꼭 있어야 하니까.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낮은 지역을 찾아보자.”
말과 함께 남궁연이 절벽 안쪽으로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와 달리 남궁연은 손바닥 보듯 훤하게 남암궁을 꿰고 있었다.
그녀는 남암궁 입구가 아니라, 거의 전체를 종횡으로 휘젓고 다녔다.
남궁연은 한 시진(2시간) 동안 다섯 개의 동굴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그중 두 개에서 단약을 제련하고 있는 약사를 만났다.
이미 오래전에 방향감을 상실한 연적하는 남궁연의 뒤만 졸졸 따라갔다.
‘누님은 금방 약사를 찾는구나.’
왠지 느낌이 오늘 백일운을 발견할 것 같았다.
“누님. 약사를 찾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어요? 벌써 약사를 두 명이나 만났네요?”
그러자 남궁연이 피식 웃었다.
“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찾아다니면 돼. 먹는 거야 벽곡단으로 해결한다지만, 물은 매일 마셔야 하잖아.”
“아.”
“‘내가 평범한 의원이다’라는 생각으로 거처할 곳을 생각하면……. 갈 만한 장소는 정해져 있어. 예컨대 저런 곳이지.”
남궁연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산봉우리 아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곧이어 남궁연은 거침없이 달려갔다.
절벽 위 십 장쯤 되는 곳에 제법 커다란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남궁연이 뒤따라온 연적하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이 정도 높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장소야. 조용하고 아늑하잖아.”
“그러네요.”
연적하는 동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연!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가 동굴 안쪽을 기웃거릴 때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시오?”
순간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또 사람이 있다.
벌써 세 번째로 만나는 약사다.
그는 남궁연보다 한발 빠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룡궁의 수련자 연남천이라 합니다. 백일운이라는 약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남궁연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분명히 천명 도사는 그를 ‘연두비’라고 했었다. 그런데 ‘연남천’이라니?
“들어오시게.”
연적하와 남궁연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이전의 약사들은 ‘이곳에 그런 사람이 없소’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들어오시게’란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의 화로 앞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화로에 부채질을 하던 노인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룡궁의 수련자가 백일운을 왜 찾으시는가?”
연적하는 공손하게 답했다.
“제가 당운망이 만든 낙월독정이라는 독에 당했습니다. 그를 제압하여 해약을 먹었는데, 몸에 아직 독성분이 남아 있습니다. 약사여래 백일운이라는 분이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찾아다니던 중입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했소?”
“당운망이요.”
“쯧!”
혀를 차는 노인의 얼굴이 복잡해 보였다.
그 뒤로 노인은 별말 없이 살랑살랑 부채질만 해 댔다.
가만히 서서 노인이 하는 걸 지켜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굴에 화로를 피워 놓았는데 덥지가 않다?
가만히 화로를 살펴보니 아래에 불이 없었다.
불은 꺼진 지 오래된 듯 불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노인은 지금 차가운 화로에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미친 건가?’
호호백발의 노인이 그러고 있으니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연적하가 입을 떼려 하는데 남궁연이 말했다.
“약사여래 백일운 의원이 맞으시죠?”
그러자 노인은 뭐가 불만인지 뚱한 표정으로 남궁연을 올려다보았다.
“소저는 누구요?”
“저는 남궁연이라고 해요.”
“남궁세가 사람이신가?”
“네.”
노인은 남궁연을 모르는 듯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과는 어떻게 되는 사이고?”
“부친이세요.”
“그렇군.”
노인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다시 부채질에 전념했다.
연적하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약사여래 백일운 맞아요?”
그는 남궁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에 노인이 백일운이라 생각했다.
마지못한 얼굴로 노인이 답했다.
“맞소.”
그러자 연적하는 품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당운망이 참고하라고 불러 준 백팔 독의 이름을 적은 종이였다.
“이걸 참고해서 해독약 좀 지어 주세요. 이건 당운망이 불러 준 백팔 가지 독 이름이에요.”
하지만 백일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답답해진 연적하가 종이를 백일운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의원 할아버지? 당운망이 할아버지를 추천해 줬다고요. 부채질 그만하고 약 좀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소. 천 일간 이 단약을 제련해야 하는데, 아직 구십 구 일이나 남았소. 그러니 다른 사람을 찾아가 보시오.”
“불도 없는데 뭘 제련해요?”
“방해하지 말고 저리 비키시오. 불길을 낮추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뿐이오.”
연적하가 화로 아래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불씨는커녕 재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거대한 화로는 시원하다 못해 밑바닥이 차가울 정도였다.
‘뭐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