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8
358회. 중독 아니야
연적하는 슬쩍 약사여래 백일운의 얼굴을 살폈다.
흐트러짐 없는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장난이 아니면 뭐지?’
눈빛이 맑은 걸 보면 미친 것 같지도 않다.
장난도 아니고 미치지도 않았는데 불이 없는 화로에 부채질이라니?
도대체 왜?
연적하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때 십전무후 남궁연이 나섰다.
“백 의원님, 어떤 단약을 만들고 계신 거예요?”
무심한 얼굴로 부채질을 하던 백일운이 잠시 멈칫했다.
“……총명단, 아니, 불로단.”
“총명단인가요? 불로단인가요?”
“장생단이라고 했잖소. 쯧쯧! 젊은 사람이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말을 할 때마다 단약의 이름이 바뀌었다.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남궁연이 전음으로 속삭였다.
-나이가 드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 그래요?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연적하는 ‘휴!’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남궁연이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했으니 그런 것일 게다.
하기야 자신이 봐도 백일운의 상태는 이상했다.
미친 것도 아니고 제정신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라고나 할까?
“누님, 이제 어떻게 해요?”
연적하가 허탈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백일운에게 해독약 얻기는 틀렸다고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했다.
“당운망에게 해약을 만들라고 해야지.”
“그래야겠죠?”
그녀의 말대로 이제 믿을 사람은 삼보절명 당운망밖에 없었다.
그때 부채질을 하던 백일운이 말했다.
“누가 중독됐다고 해약을 만들라는지 원.”
순간 연적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 장황하게 설명을 했는데 벌써 잊은 모양이다.
“제가 당운망이라는 사람이 백팔 가지 독으로 만든 낙월독정에 중독됐다고 말했잖아요. 벌써 잊으셨어요?”
그러자 백일운이 한쪽 손을 까딱거렸다.
분위기가 가까이 오라는 것 같다.
연적하가 쭈뼛쭈뼛 다가가자 백일운이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툭 쳐 냈다.
“중독은 무슨. 나보다 더 건강한 몸이구먼.”
“물론 제가 할아버지보다는 건강하겠지만 그래도 중독된 건 맞거든요?”
“중독 아니야.”
“맞다니까요.”
연적하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쳤다.
그러자 백일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아! 의원이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 자네가 의원이야? 내가 의원이야?”
“할아버지가 의원인 건 맞지만…….”
연적하는 속으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잖아요.’라고 중얼거렸다.
“의원이 아니라면 아닌 거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무식하게 생겨서. 쯧쯧!”
“아니 무식이라뇨? 아무리 할아버지래도 말씀이 심하시네요!”
연적하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똑똑한 남궁연 앞에서 무식하다고 욕을 먹으니 짜증이 확 났다.
상대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만 아니었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 대 후려쳤을 게다.
“의원이 내린 진단을 아니라고 하는 게 무식한 거지.”
“아니, 할아버지. 이 얼굴을 보고 말씀하세요. 독성이 남아서 화기가 얼굴에 치솟은 거라고요.”
그러나 백일운은 화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어느 무식한 작자가 그런 소리를 해? 그건 그냥 명현현상(限眩現像)이야.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와중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그 정도로 얼굴이 뒤집어진 걸 보니 낙월독정이 제법 독했던 모양이네.”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요? 얼굴이 퉁퉁 붓고 진물 천지인데요?”
“그러다가 점차 가라앉을 거야. 몸에 독성분이 남아 있으면 눈두덩이부터가 달라. 혈색 좋은 자네 눈탱이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연적하가 멍한 눈으로 백일운과 남궁연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히 헛소리 같은데 워낙 자신있게 말하니 왠지 마음이 흔들린다.
아니 솔직히 믿고 싶었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 받아들이고 싶은 그런 이치로 말이다.
하지만 퉁퉁 부은 얼굴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백일운을 보면…….
“누님 생각은 어때요?”
연적하의 물음에 남궁연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도 연적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믿고 싶지만 선뜻 믿어지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꼬르륵-.
점심을 건너뛰었다고 연적하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연적하가 머쓱한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험, 팔선각에서 규칙적으로 먹다 보니 식사를 건너뛰면 이러더라고요.”
남궁연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거릴 때 백일운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누런 항아리에 벽곡단이 있네. 한 알 먹어 두면 기운이 날 게야.”
그 말에 연적하가 반색을 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연적하는 백일운이 가리킨 황톳빛 항아리로 다가갔다.
콩알만 한 환단이 항아리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벽곡단을 한 웅큼 집은 뒤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백일운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걸 알고 난 뒤로 믿을 수가 없어서다.
냄새를 맡아 보니 멀쩡한 것 같았다.
‘항아리에 가득한 걸 보면 만든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거야.’
상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자 남궁연에게 한 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도 한 알 털어 넣었다.
맛은 소청단에 비할 게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다.
연적하의 표정을 살피던 백일운이 물었다.
“어떤가? 먹을 만한가?”
“예, 괜찮은데요? 안 먹어 봤어요?”
“나는 곡기를 끊은 지 오래돼서.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군.”
“벽곡단은 맛이 없다고 들었는데 괜찮은데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어요?”
“비결은 무슨. 몸 생각해서 이것저 것 때려 넣어 만든 거뿐이라네.”
“뭘 넣었는데요?”
“신경 쓰지 말게. 허기를 달랬으면 그만이지. 뭘 자꾸 캐물어.”
백일운이 다시 화로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를 하다가도 백일운은 결국 화로에 집중했다.
연적하는 남아 있던 벽곡단을 슬그머니 항아리에 털어 넣었다.
배가 고파서 먹었지만 솔직히 찜찜했다.
‘먹을 만하냐?’고 묻던 백일운의 표정을 떠올리면 입맛이 싹 달아났다.
남궁연이 그런 연적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 역시 연적하가 주니까 먹었지 백일운이 그랬으면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남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백일운은 화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슬며시 시선을 주고받았다.
먼저 연적하가 동굴 입구 쪽을 가리키자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도움 말씀 주셔서 감사드려요.”
남궁연이 작별 인사를 했지만 백일운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갈 사람은 가야지. 남암궁을 뒤지고 다녀 봐야 아무 의미 없다네.”
연적하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아 한마디 했다.
“그러려고요. 할아버지를 만났으니까 이제 남암궁에 올 일도 없어요.”
이윽고 돌아선 연적하와 남궁연은 미련 없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을 벗어나고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일운의 상태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한참 만에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수련을 위해 남암궁까지 온 사람이 저렇게 될 수도 있나?”
“수련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으니까.”
“사람의 한계인가요?”
“그래서 도사들이 더 수련에 매진하는 건지도 몰라.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
“유명교 교주가 불로불사에 집착하는 것처럼요?”
“저런 모습을 봐서 그런지, 가능하다면 나도 그러고 싶은걸?”
“누님은 불로불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훗! 그걸 왜 나에게 물어? 그걸 믿는 게 도사들이잖아. 너도 그 길에 들어선 수련자고.”
남궁연의 지적에 연적하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다.
자신이 수련자가 된 것은 단지 술법을 배우기 위해서인 까닭이다.
“저는 불로불사에 관심 없어요.”
“왜?”
“혼자 오래 살면 뭐해요? 누님과 같이 불로장생한다면 몰라도.”
그 말에 남궁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녀의 수긍에 달콤한 기분이 든 연적하가 슬쩍 남궁연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남궁연이 손끝으로 그를 밀어냈다.
“가까이 오지 마. 땀 흘려서 냄새 나.”
“저는 누님 땀 냄새도 좋아요.”
“내가 싫으니까 좀 떨어지자. 나중에 씻으면.”
“쳇!”
연적하가 툴툴거리며 앞서 나갔다.
남궁연이 뒤따라가며 달랬지만 연적하의 기분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빠르게 걷던 연적하의 걸음이 느려졌다.
길도 모르는 그가 발길 닿는 대로 가기에 남암궁은 너무 험난했다.
뒤늦게 연적하가 한풀 꺾인 음성으로 물었다.
“누님, 어디로 가야 돼요?”
“이제 좀 풀렸어?”
“에이, 저 화 안 났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제부터는 내가 안내할게.”
말과 함께 남궁연은 뒤로 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연적하가 황급히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 시진(2시간)쯤 걷자 남암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벽이 나타났다.
남암궁의 입구에 오자 연적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백일운의 말이 사실일까요?”
“중독되지 않았다는 거?”
“네.”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가도……. 네 얼굴을 보면 아니다 싶고.”
“그렇죠? 저도 오락가락하네요. 이 얼굴만 아니면 그의 말을 믿고 싶은데.”
“참, 벽곡단 어땠어?”
“왜요?”
“난 괜찮았던 거 같아서. 어릴 때 벽곡단을 먹어 봤지만, 아까 그런 맛은 아니었거든?”
“벽곡단과 상관이 있어요?”
“항아리에 가득했잖아? 그건 만든 지 얼마 안 된다는 뜻이거든.”
“그래 봐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만든 거잖아요. 먹으면서도 찝찝했는데.”
연적하가 울상을 짓자 남궁연이 큰 소리로 웃었다.
“호호호!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백일운의 실력이 살아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어.”
“그러니까 그의 진맥도 맞을 거라고요?”
“응. 사실 중독의 여파라고 하기에는 네 얼굴 혈색이 괜찮거든. 백일운의 말을 듣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중독도 안 됐는데 얼굴이 왜 이 지경인 거죠?”
“그야 모르지. 백일운의 말대로 명현현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만약 명현현상이 아니라면요?”
“그때는 백일운에 버금가는 명의를 찾아봐야지.”
그녀의 말에 연적하가 울상을 지었다.
“명의를 찾을 때까지 이런 얼굴로 계속 살아야 한다고요? 그건 정말 싫은데.”
“너무 실망하지 마. 백일운의 진단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연적하가 축 처진 음성으로 답하자 남궁연이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네 느낌은 어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 아니면 그대로야?”
그녀는 백일운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오늘 처음 보는 터라 상태가 나아진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연적하가 침울한 얼굴로 답했다.
“조금씩 나빠지는 것 같아요.”
“…….”
예상과 동떨어진 답에 남궁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심 백일운이 맞기를 바랐는데 그냥 정신 나간 노인의 헛소리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