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
36회. 가족을 건드리더라고
선두에서 총표두 이문엽과 풍연초가 ‘백 냥 더’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때 뒤쪽 분위기는 또 달랐다.
오봉십걸의 막내 하소백이 사형도살 노양진을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연 오라버니, 저기 도끼 든 사내 옆에 있는 사람 말이에요. 얼굴이 무슨 쥐가 파먹은 만두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앞쪽을 살피던 연적하가 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고 곰팡이 핀 만두 같은걸?”
“풋! 곰팡이 핀 만두요?”
하소백은 비록 곰팡이 핀 만두를 본 적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웃겼다.
“큭.”
“흡.”
“프흐.”
곰팡이 핀 만두라는 말을 듣고 오봉십걸 중에 여럿이 실소를 흘렸다. 연적하의 말대로 노양진의 얼굴은 정말 곰팡이가 핀 만두처럼 보여서 더 그랬다.
잔뜩 굳어 있는 봉황표국의 표사들 속에서 긴장이 풀어진 오봉십걸의 모습은 눈에 확 띄었다.
노양진이 불쾌한 눈으로 오봉십걸들을 쏘아보았다.
언제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뒤에서 시시덕거리다니?
심지어 그중 몇몇은 자신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실실 웃기까지 했다.
‘저 미친 연놈들이 죽으려고 감히.’
처음에는 돈을 더 뜯어낼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마음이 바뀐다.
속으로 이를 갈던 노양진이 어려 보이는 놈과 반반한 여자 둘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와 계집들은 뭐가 좋아서 실실 처웃고 지랄이냐? 날아가는 참새의 거시기라도 함께 보았느냐? 눈알을 뽑아 버리기 전에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게다.”
연적하와 두 여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곰팡이 핀 만두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멈췄으면 별일 없이 넘어갔을 텐데, 노양진은 자신의 말에 취해 한마디를 더 붙였다.
“오줌똥도 못 가리는 병신 같은 새끼. 어느 창녀가 너 같은 새끼를 낳았는지 모르겠……. 컥!”
노양진은 미처 말을 맺지도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소동으로 ‘백 냥 더’에 관한 논의도 중단됐다.
혁련후와 이문엽, 풍연초의 시선이 일제히 노양진에게로 향했다.
세 사람은 노양진이 왜 넘어갔는지 몰랐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비명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노양진은 죽지 않고 발딱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본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표정이었다. 예컨대 혁련후가 놀랐다면, 이문엽은 멍했고, 풍연초는 올 게 왔다는 식이다.
“끙! 머리야. 갑자기 무슨 일이지?”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노양진과 혁련후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혁련후가 다가가 노양진의 이마에 박혀 있던 일 문짜리 동전을 떼 내었다.
“쯧! 노 제, 운이 좋았다.”
만약 동전이 세로로 박혔다면 뼛속까지 파고들어 단번에 죽었을 것이다.
뒤늦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린 노양진은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허둥대는 얼굴이다.
정신없는 부채주를 대신해 혁련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느 고인이시오! 우리 적사채가 잘못한 게 있다면 나와서 가르침을 내려 주시오!”
연적하가 한 손으로 일 문짜리 동전을 짤랑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네놈이냐!”
뭔지는 모르지만 당했다고 생각한 노양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갔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나가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튕겨 났다.
철퍼덕.
뒤로 나가떨어졌던 노양진이 비틀 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양쪽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혁련후는 양쪽 팔을 맥없이 축 늘어트린 노양진에게 주춤주춤 다가갔다.
그리고 구멍 난 옷을 찢어 상처를 확인하니 일 문짜리 동전이 살 속에 박혀 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저건 애송이의 손에 들려 있던 동전이다.
녹림의 고수 사형도살 노양진을 동전으로 제압하는 사람이 있다니!
노양진은 그 잘 쓴다는 도를 뽑아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혁련후는 저도 모르게 한차례 진저리를 쳤다.
애송이가 손쓰는 것을 눈앞에서 놓쳤기에 충격은 더 심했다.
‘씨펄, 골치 아프게 됐군.’
이대로 덮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수하들 앞에서 면이 서질 않는다.
고민하던 혁련후는 천천히 연적하를 향해 돌아섰다.
“애송이, 네가 한 짓이냐?”
“가족을 건드리더라고.”
말이 짧다.
혁련후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일단 참았다. 성질 같아서는 바로 도끼를 휘두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동전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는 적사채의 부채주다. 부채주를 건드리고도 이대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연적하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부채주인 줄은 몰랐네. 부채주가 잘못했으면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지?”
연적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쉬익.
혁련후의 옆에 있던 도적 하나가 ‘윽’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그 뒤로도 연적하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동전 일곱 개가 모두 사라졌다.
혁련후 주변에 있던 일곱 명의 도적도 뒤로 나자빠졌다. 그들 모두 이마에 동전이 박혀 있었다. 동전의 면에 맞은 이들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세로로 박힌 이들은 꽤나 심각해 보였다.
“너, 너, 이놈, 감히…….”
혁련후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수하들이 픽픽 쓰러지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연적하가 박도를 천천히 뽑았다.
“말해 봐. 내가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되는지.”
혁련후는 소년의 무심한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지?’
저 애송이의 눈에는 주변을 둘러싼 적사채 산적들이 안 보이는 걸까?
벌써 부채주까지 여덟이 당했다.
남은 숫자는 쉰둘.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면 분명 표사들까지 합류할 게다. 표사들이야 어찌어찌 비벼 볼 수 있겠는데, 저 애송이가 영 마음에 걸린다.
손에 들고 있는 도끼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진다.
전면전은 피해가 너무 크니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
“애송이! 내가 적사채의 채주니, 나에게 물어라.”
마음을 정한 혁련후가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한순간 연적하의 눈에서 신광이 번득이더니 박도가 공간을 갈랐다.
투두둑.
세 토막 난 도낏자루가 맥없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박도의 넓은 도면이 혁련후의 뺨을 후려쳤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혁련후의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휘청이던 혁련후가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나 부릅뜬 그의 눈동자에 더 이상 전의는 남아 있지 않았다. 부채주처럼 도끼 휘두를 틈조차 없이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봉황표국과 오봉십걸들은 팔공산을 벗어났다. 그렇지만 가까운 마을이 없어 노숙을 해야 했다.
표국 사람들은 관도에서 조금 비껴난 들판에 불을 피우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솥단지가 걸려 있는 걸 보니 저녁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곽자의와 몇몇 표사들이 직접 오봉십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한참 음식을 먹던 한채연이 불쑥 말했다.
“큰 오라버니, 별일 없겠죠?”
물론 녹림대회를 두고 한 말이다.
풍연초가 조금은 자신 없는 얼굴로 답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표사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우연히 잠깐 동행한 것뿐이니까.”
탁고명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형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녹림이 좋은 게 뭡니까? 그때그때 꼴리는 대로 하는 거 아닙니까?”
“하긴, 도둑놈이 도둑질만 하라는 법 있어? 돈 되는 건 다 할 수 있는 거지.”
풍연초는 찜찜함을 떨쳐 버린 얼굴이다.
***
하남성 개봉 백세상방.
방주의 집무실에 두 사람이 마주하고 앉아 있다. 백세상방의 방주 이세창과 와룡장의 안주인 백미주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허허, 요즘 와룡장의 이야기가 개봉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개봉에 무관이 진출할지도 모른다면서요?”
“그건 백세상방과의 일이 잘 풀려야 가능한 이야기예요. 아직도 창해무관과 와룡장을 두고 고민 중이신 건 아니겠지요?”
“어이쿠! 제 앞에서 창해무관 이름은 꺼내지도 마십시오. 지난해에 그쪽 사람들 때문에 입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세창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창해무관은 개봉에 있는 군소 무관 중 하나다. 이세창은 그곳 출신 무사들을 고용했다가 다른 상방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모를 당했다.
도적들에게 제대로 저항 한번 못 해 보고 물건을 내주는 것은 물론, 통행세를 부풀려 돈을 착복했다는 소문까지 돌아다녔다.
“어머, 그런데 왜 본장과의 계약을 미루고 계시는지요? 설마 와룡장의 무사들이 다른 무관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다만 상행 경험이 없는 와룡장에 맡겨도 되는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말이 좀 많아서 말입니다.”
이세창은 닳고 닳은 장사꾼답게 어떻게든 돈을 깎으려고 뜸만 들였다.
백미주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녀 역시 이세창이 싼값에 부려먹으려고 저런다는 걸 알고 있다. 와룡장이 버티면 결국은 계약을 하자고 매달릴 게 분명하다.
그러나 와룡장은 그때까지 기다릴 여력이 없었다. 연씨 일족에 자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솔직히 그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상방과 계약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와룡장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고약한 늙은이. 뻔히 이쪽 사정을 알면서…….’
백미주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신이 조바심을 내면 이세창이 더 시간만 끌 거라는 걸 알아서다.
“하아! 장사하시는 분이라 다르시네요. 제가 졌어요.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 보세요.”
그러자 이세창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제가 장사치지만 상대를 후려쳐 등골까지 빼먹지는 않습니다.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거든요. 백세상방과 와룡장 모두에게 좋은 조건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은요?”
“월봉으로 한 사람당 은자 한 냥 오백 문입니다. 그 정도라면 상행의 경험이 없는 와룡장에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
백미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군소 무관 출신이 상방에서 받는 월봉은 평균 은자 두 냥. 은자 한 냥이 천 문이니, 그들에 비해 무려 오백 문이나 적게 받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백미주가 너무 싸다고 반박하려는 순간 이세창의 말이 이어졌다.
“와룡장이 아직 상계에서 신용을 쌓지 못했으니, 그중에 오백 문은 상행이 완료된 시점에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상행 중에 물건을 분실하면 오백 문의 지급은 없는 것으로 하고요. 그런 조건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오십 명의 호위무사가 필요한데, 지금 바로 은자 오십 냥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이세창은 등골까지 빼먹을 기세로 최대한 후려친 뒤에 현금으로 유혹했다. 와룡장의 자금 사정이 나쁘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장난이다.
백미주는 상대의 수작을 뻔히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제안을 수락하면 은자 오십 냥이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세창이 떡밥을 조금 더 던졌다.
“와룡장이 신뢰를 쌓게 되면 은자 두 냥으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분실률이 다른 상방보다 낮아지면 세 냥까지 드릴 수 있고요.”
“하아! 그 신뢰는 언제쯤 쌓이게 되는 건가요?”
결국 백미주는 이세창에게 백기를 들었다.
사실 호위무사가 급하기는 이세창도 마찬가지였지만, 백미주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 집안에만 있던 백미주에게 노회한 상인 이세창은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반년을 봅니다.”
결국 여섯 달 동안 은자 한 냥 반에 무사들을 쓰겠다는 소리다. 젊은 무사들의 목숨값치고는 매우 싼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백미주는 멍한 얼굴로 이세창이 내미는 계약서에 수결을 마쳤다. 그렇게 와룡장은 백세상방과 계약함으로 강호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