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1
381회. 숨 쉬는 것처럼 쉬워
구천노도 심통이 안주로 나온 닭 구이 한 점을 집어 들며 물었다.
“공자님의 마음은 어떠신데요?”
“갈까 말까 생각 중이야. 어차피 일은 다 끝났잖아. 그냥 무당산으로 돌아가자니 조금 아쉽기도 하고.”
“지금의 그 얼굴로 방문해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네. 가지 말까?”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연적하의 눈빛을 보니 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져서 반대하기도 뭐했다.
“오룡궁의 연남천으로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그들의 본래 모습을 보게 될지 누가 압니까?”
“오! 그거 괜찮은데?”
심통의 말에 연적하는 무릎을 탁 쳤다.
확실히 ‘삼장을 멸문시킨 배다른 동생 연적하’보다는 ‘오룡궁의 연남천’이 나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연가무관의 개관식에 참가하는 것이지 누구로 가느냐가 아니니까.
솔직히 자신의 정체를 알려 봐야 환영할 사람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환하게 웃는 연적하를 보며 심통은 피식 웃었다.
입만 열면 연씨와 인연을 끊었다고 하더니 말처럼 쉽지 않은가 보다.
“연무백이 머리를 제법 잘 쓰나 봅니다. 지금이 무관이든 방파는 열기에 좋은 때지요.”
“그런 거야?”
“강호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정파의 힘도 약하고, 유명교의 힘도 약해졌으니. 누구라도 세를 넓혀서 우뚝 설 만하지요.”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도 나는 객점이 좋더라. 귀찮게 무관은 뭐하러 세운대?”
“연무백이 정상이고 공자님이 이상한 겁니다.”
“심 노인도 주루 주인이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해?”
“저야 공자님 말씀마따나 언제 관에 들어가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한창때인 공자님과는 다르지요. 저와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아 몰라. 난 마음 편히 놀고먹을 수 있는 게 제일 좋아.”
“그러시는 분이 무당파에서 술법은 왜 배우십니까? 그냥 객점에서 놀아도 될 텐데.”
“유명교에 맞아 죽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유명교만 아니었으면 난 은거했어.”
심통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건 연적하의 말이 맞았다.
그가 숨더라도 세상은 결국 그를 찾아내 유명교 앞에 세울 것이다.
‘파천마군(녹림 총채주) 님이 가장 먼저 달려올 테지.’
이럴 때 보면 능력이 출중한 게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술법은 배울 만하십니까?”
“어, 다들 나에게 재능이 있대. 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었어.”
“공자님이요?”
심통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적하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기는 하지만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 눈빛 뭐야? 나를 아주 멍청이로 생각했나 본데,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물론 멍청이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공자님이 천재도 아니지 않습니까?”
심통이 빤히 바라보자 연적하는 헛기침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험, 모르지. 술법에 재능이 있었던 건지도.”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공자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심통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연적하가 언성을 높였다.
“알아? 내가 어떤 사람인데?”
“흔한 청년?”
“이런 젠장. 나를 너무 잘 아는군.”
연적하는 향설주를 입에 털어 넣은 뒤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걸 보면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심술을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적하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나도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해. 이상하게 술법이 잘돼.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돼. 심지어 어떤 때는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잘돼.”
“헐! 부럽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해도 안 되는 게 술법이라던데.”
“그러니까 말야.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분명히 법력을 쌓은 적이 없거든? 그런데 평생 수도한 도사들 보다 술법이 더 잘돼.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하기야 저도 오늘 깜짝 놀랐습니다. 주문도 아니고 그냥 말씀으로 술법을 깨 버리셨잖습니까? 백우선이라는 늙은이가 공자님 눈치를 슬슬 보는데,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공력과 법력이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어.”
심통이 부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무인의 기공이 물리적인 힘이라면, 술사의 법력은 정신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공력과 법력’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다른 성질이다.
자신을 비롯한 무인들은 그랬다.
하지만 연적하에게는 그런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나도 구천기를 수련하는데 왜 연 공자님에게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구백 자’와 ‘삼백 자’의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
심통의 속도 모르고 연적하가 계속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술법이 그냥 된다니까? 과장하는 게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쉬워.”
“허!”
왠지 모를 박탈감에 심통은 향설주를 병째 집어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자신도 ‘금강저’를 득한 뒤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개의 진언을 외웠다.
한 달쯤 전에는 시험 삼아 미친 사람을 붙잡고 축귀(逐鬼)를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입만 아프지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날 미친 사람에게 뺨까지 얻어맞았다.
그런데 연적하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술법이 술술 된단다. 그것도 숨 쉬는 것처럼.
“그래서, 공자님은 언제까지 무당파에서 수련하실 겁니까?”
“처음에는 삼 년을 꽉 채우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뭐, 술법이 숨 쉬는 것처럼 쉽다니까 그러셔야지요. 언제쯤 나오시게요?”
“늦어도 여름에는 내려올 생각이야. 하루라도 빨리 교주와의 약속을 지켜야지 불편해서 안 되겠어.”
“예? 뭐가 불편하신데요?”
심통이 묻자 연적하는 그에게 언령의 저주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아, 얼굴의 부스럼. 이거 해독이 덜 돼서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유명교 교주의 언령에 당해서 그런 거래. 기억나? 교주에게 내가 백두마군을 잡아다 주기로 약속한 거?”
“예. 그게 언령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랬나 봐. 나쁜 현상을 더욱 나쁘게 만들어 준다네? 스승님이 생전에 이 주박(呪糖)을 풀어 주려고 했었는데 너무 강력해서 실패했어. 내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거라 그걸 이행해야 풀린대.”
“허! 언령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냥 평범한 대화였잖습니까?”
“그랬지. 그러니까 유명교 교주를 상대할 때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돼. 나도 이번 일로 많이 배웠어.”
“무시무시하네요. 그런데 왜 당가 놈에게 해약을 만들라고 하신 겁니까?”
“약은 많을수록 좋은 거야.”
“아, 그런 겁니까?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더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미리 사람을 죽인다고? 사람이 그러면 못 써.”
“공자님께서도 평소에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찜찜한 걸 남겨 두면 안 된다고.”
“어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그런 일로 누굴 죽인 적은 없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여하튼 독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심통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적하의 얼굴을 보았다.
저 지독한 부스럼이 유명교주의 언령에 의한 결과라니 놀라울 뿐이다.
***
이월 초하루.
하남성.
낙양.
고성촌.
황하의 지류인 낙하(洛河)를 끼고 발달한 고성촌은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표국과 상방은 물론 무관(武官)도 자그마치 두 개나 됐다.
이제 개관할 연가무관까지 합치면 세 개.
기존 무관들이 반대했지만 연가무관의 젊은 관주는 개관을 밀어붙였다.
이른 아침.
연가무관의 안채에 이 남 일 녀가 마주 앉았다.
와룡검객 연무백과 그의 처 양이화, 그리고 둘째 연승백이다.
양이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룡무관과 백호무관에서는 온다고 하던가요?”
“그러겠다고 합디다. 와서 좋은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 기대하지 마시오.”
연무백의 말에 연승백이 한마디 했다.
“형님, 시골 무관에서 하는 말이니 귀담아들을 것 없습니다.”
“귀담아들으면 안 되지. 칼부림이 날 텐데. 한 귀로 듣고 흘릴 생각이다.”
연무백과 연승백은 정의맹과 천지맹을 거치면서 제법 노련한 무인의 태가 났다.
그래도 젊은 혈기는 어쩔 수 없는지 말로 안 되면 싸울 생각부터 했다.
하지만 천성이 부드러운 양이화는 달랐다.
“그래도 같은 무관이니 대화로 잘 풀어 보세요. 미우니 고우니 해도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잖아요. 지역사회에서 신망이 높은 사람들에게 밉보이면 안 되죠.”
“형수님, 우리도 대화로 잘 풀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밥그릇 싸움입니다. 그들과 우리는 경쟁 상대지 협력할 사이가 아니에요.”
“그래도…….”
“두고 보세요. 그들이 오늘 온다 해도 축하한다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깽판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죠.”
처와 동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무백이 화제를 돌렸다.
“승백아, 설주는 확실히 오겠다고 했지?”
“예, 마침 해원상방에 급한 일이 없어 며칠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적하는…….”
연무백이 슬쩍 양이화의 눈치를 살폈다.
삼장(와룡장, 백가장, 양가장)이 망한 뒤로 연적하와 양이화는 원수 아닌 원수가 됐다.
연씨와 백씨들이야 연적하에게 지은 죄가 있어 할 말이 없었지만 양씨는 다르다.
사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안이 몰락했으니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특히나 연가무관은 양이화의 외가(外家)에서 지원해 세우게 된 무관이다.
연무백의 입장에서는 처 앞에서 얼굴을 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적하의 이름이 나오자 온화하던 양이화의 얼굴에 서리가 내렸다.
“천응표국을 통해서 배첩만 보냈어요. 어차피 오지도 않을 놈이니까. 그 정도만 해도 할 도리는 다 한 거죠.”
연무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오라고 해도 오지 않을 녀석이다.
아니, 와도 고민이다.
자신의 처가 칼을 갈고 있으니 와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터였다.
한편 양이화는 연적하의 이름이 나온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양가장은 문을 닫았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와룡장에 자금을 댔다는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이다.
연적하의 이름만 들어도 피가 거꾸로 치솟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연승백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그런데 정 관주와 심 관주가 비밀리에 사람을 끌어모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람을?”
연무백이 눈을 찌푸렸다.
청룡무관의 관주가 관일섬 정오량이고, 백호무관의 관주가 반월도 심양섭이다.
그러니 결국 청룡무관과 백호무관이 사람을 모은다는 소리였다.
“저도 어제 우연히 알게 됐는데 아무래도 뜬소문 같지는 않더라고요.”
“시골 무관에서 사람을 모아 봤자 거기서 거기지.”
“형님, 철혈방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낙양에서 철혈방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철혈방은 낙양에서 세력이 가장 큰 사파다.
본래 방주는 거력신도 주연신.
하지만 그는 유명교 십두마병인 사악도부 좌양선에게 방주 자리를 빼앗기고 부방주가 되었다.
그런데 좌양선은 유명교와 천지맹의 싸움이 본격화될 무렵 백마사로 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현재는 죽었다느니 명왕교로 갔다느니 소문만 무성한 상태.
지금의 철혈방은 다시 부방주인 주연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정 관주가 철혈방에 인맥이 있나 보더라고요.”
“인맥?”
“사망검과 아는 사이랍니다.”
“사망검 이철원?”
연무백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철원은 철혈방의 당주이자 주연신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연무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거력신도가 온다면 모를까? 사망검 따위는 내 상대가 못 된다. 더구나 우리 뒤에는 호천맹이 있다. 철혈방이 아무리 제멋대로라 해도 관여하지 않을 게다.”
“그렇겠지요?”
연승백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던져 본 소리인데 오락가락하는 형수 얼굴을 보니 제대로 먹힌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