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2
382회. 누구 끗발이 더 높을 것 같은가?
하남성.
낙양.
고성촌.
정오 무렵.
마을 어귀로 두 남자가 들어섰다.
대나무 등짐을 진 연적하와 행낭 하나 없이 맨손으로 따라나선 구천노도 심통이다.
“심 노인은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 잔하고 있어.”
“그냥 같이 가면 안 됩니까?”
“왜?”
“공자님에게 시비 거는 놈들이 있으면 제가 대신 정리를 해 드리려고요.”
“누가 시비를 건다고 그래?”
“낙양까지 오시는 동안 욕을 많이 보시지 않았습니까? 또 그럴까 봐 그러는 거지요.”
심통의 말에 연적하는 잠시 멈칫했다.
확실히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 이목을 끌기는 한다.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나쁜 쪽으로 그랬다.
낯선 거리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은 열이면 열 멀리 피해 다녔다.
그래도 그건 괜찮다.
힘 좀 쓴다 싶은 사람들은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지 왜 돌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을 해 댔다.
물론 그럴 때마다 심통이 나서서 자근자근 밟아 주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
그래도 명색이 적선 수행 중인데 폭력을 부르는 얼굴이라니.
“괜찮아. 연가무관은 정파 쪽이잖아. 얼굴로 시비 거는 사람들은 없을 거야.”
연적하의 말에 심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정파 놈들은 겉과 속이 다르니 대놓고 지랄하지는 않을 게다.
“그럼 공자님. 저는 제일 큰 주루에서 한잔하고 있겠습니다. 볼일 마치면 들러 주십쇼.”
“알았어. 가 봐.”
연적하가 심통에게 손을 까딱였다.
혹시라도 심통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해서다.
자신의 얼굴은 부스럼으로 퉁퉁 부어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심통과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체를 짐작할 수도 있으니까.
눈썰미 좋은 사람에게 의심을 받으면 정체가 들통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연남천이라는 법명을 쓰고 다닌 의미가 없다.
심통도 그런 연적하의 미묘한 기분을 알기에 먼저 휘적휘적 걸어갔다.
연적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걸음을 떼어 놓았다.
겨울이었지만 워낙 큰 마을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병장기를 휴대한 무인도 드문드문 보였다.
연적하는 막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청년 하나를 불러 세웠다.
“형장(兄丈).”
“나를 부른 거요?”
뒤를 돌아보던 청년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지나쳐 갈 때는 몰랐는데 정면으로 보니 아무래도 두창에 걸린 것 같아서다.
“뭐 좀 물어볼게요. 이 마을에 연가무관이라고 새로 개관한 무관이 있다는데, 혹시 어딘지 아시나요?”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새로 개관한다는 무관이 어디 있는지는 아오. 이 길로 쭉 가다가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시오. 그 끝에 무관이 하나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소.”
“아, 감사합니다.”
연적하가 인사를 했지만 청년은 말을 끝내자마자 어느새 저만치 가 버렸다.
뻘쭘한 얼굴로 청년의 뒷모습을 보던 연적하는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일다경(약 20분)쯤 걸어가자 과연 다리가 나왔다.
연적하가 막 다리에 올라서는데 뒤 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각종 병장기와 험악한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사파의 무인들 같다.
그들 중에 누군가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연적하에게 소리쳤다.
“비켜라!”
연적하는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리 위를 지나갔다.
연적하는 그들을 먼저 보낸 후에 느긋하게 다리로 올라섰다.
“쯧쯧!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저러는지 원.”
어차피 조금 빨리 가 봐야 거기서 거기인 것을 왜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
연가무관.
연가무관의 안주인 양이화는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니며 개관 준비를 했다.
남자들이야 손님들과 인사만 하면 그만이지만 여자는 다르다.
접대 준비로 양이화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둘이나 되는 찬모로 부족해 동네 아낙들까지 끌어모아 상차림을 관리 감독했다.
와룡검객 연무백은 자신의 옆에 있으라고 했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한겨울에도 양이화는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녀는 마당의 탁자에 깨끗한 면포를 깔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하아!”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그녀에게 찬모가 다가와 물었다.
“마님, 이제 음식 준비는 다 한 것 같은데 여자들을 어떻게 할까요?”
“모두 몇 명이나 왔죠?”
“열 명요.”
“세 분만 남기고 보내세요.”
“예.”
찬모는 아낙을 셋이나 남기라는 말에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갔다.
양이화가 열린 부엌문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은 찬모와 동네 아낙들만 보이지만 곧 손님들로 가득할 게다.
사람들에게 연가무관에 관한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
음식 대접은 그것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양가장에서 어머니가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란 덕분에 어려움은 없었다.
양가장을 떠올리니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뒤이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양가장을 폐가로 만든 사람이 떠올랐다.
‘연적하…….’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이름이다.
그의 사연을 남편에게 들었지만 그렇다고 연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자신과 양가장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양이화가 이제는 사라진 양가장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 있을 때다.
‘꽝!’ 소리와 함께 연가무관의 대문이 열렸다.
뒤이어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와 마당에 놓인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찬모와 동네 아낙들이 허둥지둥 부엌으로 몸을 피했다.
양이화는 도망쳐 온 여자들을 진정시킨 후에 조심조심 밖으로 나갔다.
객청.
처가 쪽 손님들과 차를 마시던 연무백, 연승백, 연설주가 멈칫했다.
아직 개관식도 하지 않았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서다.
연설주가 놀란 눈으로 연무백을 보았다.
“오라버니?”
“불청객이 온 모양이다. 정가장에서 오신 분들은 그냥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연무백의 말에 산해검 정격천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우리가 남도 아니고. 자네는 우리 정가장에 일이 생기면 모른 척할 겐가?”
“그럴 리가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검진강호에서 우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지. 누굴 믿겠는가?”
말과 함께 정격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온 정가장의 무인들도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일어섰다.
“그러시다니 더는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일은 저희 형제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니 무리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를 말인가. 우리는 그저 자네들 뒤에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겠네. 그럼.”
정격천이 여유 있게 앞을 가리켜 보였다.
연무백, 연승백, 연설주가 문을 열고 대청마루로 나갔다.
그들의 뒤로 정가장의 무인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마루에 서서 마당을 내다보던 연무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당은 이미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저래서는 개관식은 무리다.
화가 치밀어 오른 연무백이 내력을 끌어 올린 후에 버럭 소리쳤다.
“누가 연가무관에서 이 소란인가!”
쩌렁쩌렁한 그의 외침에 난장을 피우던 무인들이 멈칫했다.
곧이어 무인들 속에서 사십 대 후반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망검 이철원이었다.
“여어, 연 관주? 나 철혈방의 외당 당주 이철원이오.”
“이제 보니 이 당주셨군요. 우리 연가무관은 호천맹에 속한 무관인데 철혈방에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연무백은 우선 호천맹을 앞세웠다.
하지만 호천맹이라는 이름은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다.
“연 관주는 우리 철혈방의 방주님이 누군지 모르나 보군? 우리 방주님은 유명교의 십두마병이라네. 호천맹과 우리 방주님 중에 누구 끗발이 더 높을 것 같은가?”
연무백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가 유명교에 굴복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칠파일문이 세운 호천맹은 유명교의 아래라 할 수 있었다.
결국 호천맹을 앞세워 손해를 본 셈이다.
“흐음!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우리 연가무관은 철혈방과 관계가 없습니다. 왜 개관식에 찾아와 이러는 것인지 알려 주십시오.”
“관계가 없다고 끊어서 말하면 안 되지.”
“연가무관과 철혈방이 어떤 관계인지요?”
연무백은 화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 참으며 이철원을 응시했다.
자신이 정파에 속했으니 연가무관은 정파의 무관이다.
그에 반해 철혈방은 낙양에서 유명한 사파.
사파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고성촌이 낙양에 있으니 우리 철혈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 않나?”
되지도 않을 소리에 연무백은 이를 갈았다.
저건 누가 봐도 억지로 갖다 붙이는 소리였다.
“그래서요?”
“고성촌에 무관을 내려면 철혈방의 허락부터 구했어야 한다는 말이지.”
“우리 연가무관은 호천맹 소속인데 왜 철혈방에 허락을 구하라는 겁니까?”
“왜냐고?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 방주님이 호천맹보다 끗발이 높다고.”
“허락할 마음은 있습니까?”
“물론 안 되지.”
“안 된다?”
연무백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이철원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고성촌에는 이미 두 개의 무관이 있지 않은가? 손바닥만 한 마을에 무관이 두 개야. 다른 마을로 옮기는 게 피차 좋을 걸세.”
“피차라고 하시면 또 누가 좋을 거라는 겁니까? 청룡무관? 백호무관?”
“그건 연 관주가 상관할 바 아니고. 옮길 건지 아닌지나 말하게.”
“나는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죽을 수도 있어.”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이철원의 눈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그에 맞춰 연무백의 말도 짧아졌다.
“능력은 있고?”
“크크큿!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인지 모르겠지만 간덩이는 제법 크구나.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것이냐?”
“이철원이라며?”
연무백의 말에 철혈방도들 속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저런 씨버럴 놈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눈 깔아 새끼야!”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자 뒤에 서 있던 정격천이 슬쩍 한 걸음 나섰다.
“나는 개봉 정가장의 주인인 산해검 정격천이오. 이 대협, 자고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소.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건 들어 주기 어려운 소리요. 다른 방법은 없겠소?”
“없지는 않아.”
“그게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오.”
“저 여자를 나에게 바치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 주지. 어때?”
이철원의 손가락이 전각 옆에 초조한 얼굴로 서 있는 양이화를 가리켰다.
순간 꼭지가 돌아 버린 연무백이 벼락처럼 칼을 뽑아 들고 이철원에게 날아갔다.
“닥쳐라!”
이철원은 흠칫 놀랐지만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호에서 굴러먹은 마두답게 마주 달려가며 검을 뽑았다.
차차차창-.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정격천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무백과 이철원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팽팽해 보이지만 연무백이 조금 안정감 있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서른이 넘는 철혈방도들이다.
저들은 정가장의 무인 일곱으로 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수다.’
고성촌에 있는 무관들의 뒷배를 충분히 조사하고 움직였어야 했다.
그래도 정파에 속한 무관들이 사파인 철혈방을 앞세울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