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92
392회. 굉장한 가족이네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양이화가 막 전표의 합산을 끝낼 즈음, 연설주가 끼어들었다.
“소협, 그 부적 저희에게 팔아 주세요.”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던 철혈방의 부방주 거력신도 주연신이 화들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미 계산이 끝난 물건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법은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협?”
주연신의 물음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연설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남천의 부적은 주연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워서라도 얻어 낼 가치가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철혈방에서는 우리 연가무관을 공격했어요. 남천 소협이 돌아가고 난 뒤에 연가무관을 다시 노릴 수도 있다고요.”
“절대 그럴 일 없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고성촌에 얼씬거릴 것 같으냐?”
“내일 일은 알 수가 없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연가무관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해요. 청룡무관과 백호무관이 또 무슨 짓을 꾸밀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새 언니?”
연설주는 양이화를 끌어들였다.
제멋대로인 남천이 그래도 그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걸 알아서다.
양이화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설주와 주연신을 보았다.
상거래로 치자면 이미 돈까지 냈으니 주연신이 부적을 가져가는 게 맞다.
하지만 시누이인 연설주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키지 않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녀의 손을 들어 주어야 했다.
“아가씨의 말에도 일리는 있네요.”
주연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천이 아까부터 양이화의 말대로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양이화가 거들자 연설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주연신을 보았다.
“주 부방주님, 제자도 없는 우리 연가무관의 입장을 좀 고려해 주세요. 철혈방은 부적 없이도 지금까지 잘 운영해 오셨잖아요?”
“괜히 욕심부리지 마라. 너에게 이 부적을 살 만한 돈은 있느냐?”
“돈은 어떻게든 될 거예요. 연가무관뿐 아니라 정가장도 있는데 이백열 냥도 마련하지 못하겠어요?”
주연신은 연설주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이대로 물러날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린 계집애의 딴지에 거래를 물리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소협, 저는 소협에게 은자를 지불하고 부적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를 무르자고 하는군요.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고집을 부리겠습니까? 저는 그저 소협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어찌할까요?”
지켜보던 연적하가 ‘쯧쯧’하고 혀를 찼다.
본래 벽력(辱)을 관장하는 신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다.
당연히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게 빌어야 한다.
실제로 오룡궁의 다른 도사들은 그렇게 부적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구천현녀’의 이름을 앞세웠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과 ‘구천현녀’의 관계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벽력부가 발현되었다.
그날 이후 적지 않은 오룡궁 도사들이 ‘구천현녀’로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거기서 얻게 된 결론은 ‘구천현녀’와의 교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구천현녀’와의 교감이 없으면 부적을 쓸 수가 없다.
자신이 만든 부적은 그랬다.
그래서 주연신에게 떠넘기려고 했다.
‘멍청한 누이. 욕심만 많아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면서 덤벼드는구나.’
연씨들의 것이니 심법 구결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쓸 때 알아봤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왜 저렇게 손해를 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벽력부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주 부방주님.”
“예, 소협.”
“저 아가씨가 고집을 부리니 조금 양보해 주는 건 어떻겠어요?”
풀 죽어 있던 주연신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조금 양보하라고 하는 걸 보니 모두 넘기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조금이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나?”
“반반씩 나누죠.”
“예, 소협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연적하의 결정에 연설주가 다시 한 번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한 개를 살게요.”
주연신은 입맛이 썼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저 욕심 많은 계집에게서 열 개라도 건진 게 다행이었다.
“일백열 냥이다. 돈이 있느냐?”
“잠시만요.”
연설주가 황급히 제 오라비들에게 달려갔다.
연씨 형제자매가 오십 냥을 마련했고, 정가장주 산해검 정격천이 육십 냥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연설주는 주연신에게서 부적 열한 장을 샀다.
모든 계산이 끝나자 주연신은 철혈방, 삼살문, 귀도방을 이끌고 돌아갔다.
그제야 낭인들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무백은 낭인 하나를 따로 불러 고성촌의 의원을 데리고 오게 했다.
그가 장내를 수습하는 동안 연승백과 정격천은 연설주에게 다가갔다.
셋은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견물생심이라고 환란이 지나가자 부적의 분배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한참 눈치를 보던 연설주가 말했다.
“각자가 낸 금액대로 부적을 나누는 게 낫겠죠?”
정격천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여섯 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연설주는 정격천에게 여섯 장의 부적을 건넸다.
정격천은 부적을 받자마자 정가장 무인들 곁으로 돌아갔다.
여동생과 둘만 남게 되자 연승백이 먼저 운을 뗐다.
“조금 전에 네가 주 부방주에게 말했지? 청룡무관과 백호무관이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른다고. 다섯 장의 부적은 연가무관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자.”
“그건 그 사람이 부적을 모두 가져가는 게 보기 싫어서 한 말이야. 남천 소협이 뒤에 있는데 누가 감히 연가무관을 넘보겠어?”
“그래서? 사십 냥을 네가 냈으니 연가무관에는 한 장만 주겠다고?”
“상단을 호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아? 하지만 고성촌에서는 부적 쓸 일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한 장으로 만족해.”
“이게 돌았나. 네 눈에는 나와 무백 형이 반푼이로 보이지? 연가무관을 보호하기 위해서 산 거니까 다 내놔.”
“다 내놓으라고? 미쳤어? 내가 몇 달 동안 모은 돈을 쏟아부었다고! 연가무관이 위태롭다면 나도 뭐라 안 해! 하지만 이제 별일 없을 게 확실하잖아. 오라버니야말로 욕심 좀 그만 부려.”
“뭐? 미쳤다고? 이게 말이면 다인 줄 아나? 너 정말 혼 좀 나 볼 테냐!”
두 사람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낭인들이 힐끔거렸지만 이미 화가 난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뒷수습을 하고 있던 연무백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무슨 일로 싸우는 거냐?”
“이 계집애가 연가무관을 위해 부적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더니 독식하겠다잖아.”
“뭐? 계집애? 말조심해. 내가 아직도 와룡장에서 오라버니 눈치나 보던 어린애인 줄 알아?”
연승백이 연무백을 향해 하소연하듯 말했다.
“글쎄, 이렇다니까. 이게 머리 좀 컸다고 아주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해.”
연설주가 다시 한번 빽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니까!”
보다 못한 연무백이 중재에 나섰다.
“보는 사람이 많으니 둘 다 그만해라. 그리고 승백이 너는 동생이라 해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설주 너도 감정을 가라앉히거라.”
“감정은 가라앉히겠는데 내 부적은 못 내줘요. 큰 오라버니도 그런 줄 아세요.”
연설주는 끝까지 부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연무백이 씁쓸한 눈으로 연설주를 보았다.
자신에게는 돈이 없다.
그래서 조금 전 부적 살 돈을 갹출하자고 할 때 한 푼도 내놓지 못했다.
연승백이 꿍쳐 놓은 돈을 탈탈 털어 마련한 열 냥이 전부였다.
그게 또 이런 사달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하아! 연가무관을 위해서라고 하더니…….’
지금 보니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그랬던 모양이다.
왠지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
어머니가 싫다며 집을 나가더니 왜 어머니를 쏙 빼닮는지 모르겠다.
“승백아, 네 걱정은 알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철혈방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게다.”
“그래도…….”
“고성촌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다른 방파가 끼어들겠느냐? 청룡무관과 백호무관도 더는 딴생각을 하지 못할 게다. 아닌 말로 그 두 개의 무관은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니 설주가 하자는 대로 해 주자.”
“알았어. 설주 너 실망이다. 내 부적이나 내놔.”
연승백이 손을 내밀자 연설주는 재빨리 부적 하나를 건넸다.
“큰 오라버니 말 못 들었어? 그 부적 가지고 있어 봐야 쓸 일도 없을 거야. 매일 상행에 나서야 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
“흥! 너는 항상 네 입장이 우선이지. 연 숙부의 와룡검을 두고도 그랬어. 못된 계집애.”
“오라버니가 나보다 더 이기적이라는 걸 잊지 마. 한쪽 팔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잖아.”
순간 연승백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뭐라고? 이 계집애가 말이면 다인 줄 알아! 내가 이기적이라 팔을 잃었다고? 너 같은 이기주의자들이 상방에서 돈을 벌 때 나는 강호 도의를 위해 싸웠다! 이 팔은 그 싸움에서 잃었고! 어디서 헛소리야!”
연설주가 반박하려 할 때 연무백이 나섰다.
“그건 승백이 말이 맞다. 유명교와의 싸움에서 다친 것을 그런 식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지금 그 말은 설주 네가 사과를 해야겠다.”
“큰 오라버니는 둘째 오라버니가 곁에 있으니까 편들어 주시려나 본데. 나는 사과하지 않겠어요. 둘째 오라버니가 연 숙부의 와룡검이 법보인 줄 알고 얼마나 욕심을 부렸어요? 나는 그걸 지적했을 뿐이에요.”
“이 계집애가 정말!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너는 어땠는데? 와룡검을 되찾아 와야 한다며 칠리하촌까지 온 게 누군데? 큰형이 포기한 와룡검의 소유권을 아득바득 가져간 건 너야! 그게 평범한 검이었으니 망정이지, 법보였으면 네년은 나를 죽이고라도 빼앗아 갔을 거다!”
급기야 연승백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그의 독설 앞에 연설주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네? 잘 알았어. 앞으로 나 볼 생각하지 마.”
냉기를 풀풀 날리던 연설주가 휙 돌아섰다.
“설주야.”
연무백이 불렀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굉장한 가족이네요?”
연적하의 중얼거림에 양이화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깥양반과 달리 시동생들이 좀 거칠어요.”
“그래요?”
연적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연무백은 남궁세가에서 십 년간 제대로 된 훈육을 받고 자랐다.
그에 반해 연승백과 연설주는 백미주 아래에서 컸다.
‘확실히 큰형은 달라졌구나.’
장성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가지고 놀던 철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양이화의 얼굴에 그늘이 없었다.
연적하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할 일이 없자 슬그머니 숙소로 돌아갔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구석에 세워 두었던 등짐을 짊어졌다.
‘계속 남아 있어 봐야 부담스럽기만 하지.’
연설주가 다른 건 몰라도 맺고 끊는 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이 오밤중에 미련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숙소를 나서자 아직 마당에 남아 있던 양이화가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소협, 이 밤중에 가시게요?”
“네, 더 이상 빈객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라니요. 오히려 저희가 남천 소협께 은혜를 입었는 걸요. 그나저나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바쁜 일이 있어서요. 그리고 이거…….”
연적하가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