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96
396회. 공진검(空塵劍)과 포룡검(捕龍劍)
손가인은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답식에 관한 거짓 정보를 동료 수련자들에게 돈 받고 팔다가 걸렸다니?
무당파와 같은 명문 정파에서 그런 일을 하고도 쫓겨나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녀는 남들의 시선을 피해 손으로 괴상한 얼굴의 남자를 가리켜 보였다.
“지금 말한 그 사람, 저기 여협들 속에 있는 남자 맞죠?”
만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눈치 볼 것 없소. 팔선각에서 연남천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말요?”
“봄에 새로 올라온 수련자들만 모르지 다른 사람은 다 안다오. 오룡궁의 도사님들도 죄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뭐.”
“아니, 그런 사람이 왜 아직도 팔선각에 남아 있는 건가요? 무당파는 제자들의 인성을 중요시할 텐데.”
그러자 천상동이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소저도 그 내막을 알면 그놈의 기막힌 운빨에 감탄할 게요.”
“운빨요?”
“한마디로 천운이 따랐소. 오룡궁의 최고 기인인 청불노가 그를 기명제자로 삼았소. 그것도 하필이면 우화등선하기 직전에. 그 바람에 그가 무슨 짓을 하건 아무도 건드리지 않게 된 거요.”
만황주가 한마디 거들었다.
“팔선각의 수련자들은 청불노가 늙어서 노망이 난 것으로 여기고 있소.”
“세상에…….”
손가인은 고개를 저었다.
어째 들을수록 점입가경이다.
우연히 연적하와 시선이 마주친 만황주가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다.
“그 외에도 많은 추잡한 이야기가 있으나 말해 봐야 우리 입만 더러워지니 그만하겠소.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하리다. ‘그 사람의 성품은 얼굴에 드러난다’는 말을 잊지 마시오. 험, 그럼 이만.”
만황주가 여제자 앞에서 뭉기적거리려는 천상동을 재촉해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가던 손가인은 연남천을 힐끔 보았다.
과연! 얼굴을 보니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런데 팔선각 최고의 여걸(女傑)들은 왜 저런 자를 멀리하지 않는 걸까?
‘이상하네.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고…….’
그녀는 기회가 되면 여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언제부터인가 여동빈의 속가제자들은 연적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가장 뛰어난 청천석과 백설연이 그를 따라다니니 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적선수행에서 돌아온 연적하는 술법, 부적뿐 아니라 검술에도 손을 뻗었다.
하산하기 전에 오룡궁의 모든 걸 배우기 위해서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청천석과 백설연은 아득바득 그와 보조를 맞추었다.
동원(東園).
광해 도사가 흐뭇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검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속가제자들이 늘어났다.
본래 무당파는 검술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룡궁의 검술은 무공이 아닌지라 인기가 없었다.
제사나 축귀에서 사용되는 검무(劍舞)라서 그렇다.
만약 상청궁이나 태화궁의 검술이었다면 동원이 제자들로 미어터졌을 것이다.
“기초적인 검술은 어제로 끝이다. 이제부터는 오룡궁의 절학인 공진검 (空塵劍)과 포룡검(捕龍劍)을 가르쳐 주겠다. 이 두 가지 검술은 퇴마의 궁극기이니 잘 배워 두도록 해라.”
그러자 이도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사님, 퇴마는 부적이나 주문이 더 낫지 않습니까? 왜 검술을 궁극기라고 하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도주의 말에 속가제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제로 퇴마에서는 검술보다 부적과 주문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검술이 궁극기라는 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리였다.
“잘 지적했다. 너 오래전에 태화궁에서 검술을 배웠다고 했지?”
“예.”
“검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은 무엇이냐?”
“수법이라 하심은?”
“이를테면 검법이냐? 아니면 찌르거나 베거나 쳐 내는 단순한 동작이냐?”
“말씀하신 대로 찌르거나 베거나 쳐 내는 수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따지고 보면 검법이라는 것도 찌르거나 베거나 쳐 내는 것이었다.
정해진 동작에 보법이 가미된 것이 검법일 뿐이다.
그러니 찌르거나 베거나 쳐 내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검법을 사용하겠지?”
“그렇습니다. 아…….”
대답하던 이도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광해 도사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이를테면 ‘공진검’과 ‘포룡검’은 ‘태화궁의 검법’이라 할 수 있다. ‘부적’이나 ‘주문’은 퇴마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지. 마치 찌르거나 베거나 쳐 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으로 안 되는 악귀를 만나면 어찌 해야겠느냐? 퇴마를 중지하고 오룡궁에 도움을 요청할까? 나라면 꽁꽁 감춰 두었던 궁극의 수법으로 악귀를 처단할 것이다만.”
여화조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훌륭한데 왜 술사들은 검법을 사용하지 않는 건가요? 대부분 부적과 주문으로 끝내는 것 같던데.”
“네 말속에 답이 있다. 부적과 주문으로도 퇴마가 되니 검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술사들이 몸 쓰는 걸 싫어해서 그런 것도 있다.”
마지막 말에 속가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룡궁 도사들은 피식 웃었다.
광해 도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검법이야말로 게으른 술사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생각해 보거라. 부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느냐? 천만의 말씀. 괴황지에, 경면주사에, 붓에, 기름까지. 그 모든 걸 버무려서 만드는 게 부적이다. 도사들이 왜 대나무 등짐을 지고 다니는 줄 아느냐? 퇴마의 장비를 가지고 다니느라 그런 것이다. 하지만 검법만 제대로 익혀 두면 등짐이 필요 없느니라.”
광해 도사는 마치 떠돌이 약장수처럼 검법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연적하는 격하게 공감했다.
질리도록 등짐을 지고 다녔던 그는 ‘등짐이 필요 없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잠시 후 광해 도사가 목검을 들고 중앙으로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단지 검법만 펼쳐서는 안 된다. 그건 그냥 검무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라도 공진검과 포룡검을 배워서 펼칠 수 있다. 그러나 퇴마를 하려면 법력이 검법을 받쳐 줘야 한다. 그것은 내단과 신념이다.”
특이하게 광해 도사는 ‘신실한 믿음’을 거론하지 않았다.
몇몇 속가제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광해 도사는 공진검을 펼쳤다.
우우웅-.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기이한 공명음이 울렸다.
광해 도사가 공력이 없는 술사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 검무는 반 각(약 7분)이나 지속됐다.
속가제자들은 검무보다는 공명음에 정신을 팔았다.
검명은 아닌데 어떤 원리로 저런 소리가 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눈치다.
압권은 마지막 동작이었다.
광해 도사가 검결지를 검신에 얹고 수직으로 목검을 내리그었다.
우웅-.
한순간 광해 도사의 앞쪽 허공에서 선명한 진동음이 일어났다.
이윽고 대기가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세찬 파동이 장내를 휩쓸었다.
만약에 그것이 경력이었다면 부상자가 속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몸이 한차례 흔들린 것만 느꼈을 뿐이다.
광해 도사가 목검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이것이 공진검의 십팔 초식이다. 다수의 악귀를 상대해야 할 때는 공진검이 최선이다. 만약 너희가 혈육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악귀였다면, 조금 전의 파동에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
속가제자들과 도사들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뭔가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쓸데없는 느낌이 들어서다.
분명 공진검이 일으키는 현상은 신기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기꾼들이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대지만 대부분 악귀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 ‘산산조각 난다’는 말은 확인할 길이 없다.
반화선이 옆에 있는 손연수에게 속삭였다.
“사저, 그래도 소리 하나는 쓸 만한데요? 보여 주기 용으로 딱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손연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실효성은 없지만 술법의 신기함을 보여 주기에는 저만한 것도 없으리라.
“그런데 사매는 십팔 초식이나 되는 저 초식을 다 외울 수 있겠어?”
“아! 그러네요.”
“누구라도 저 어려운 걸 외울 시간에 다른 걸 수련할 것 같은데.”
“하아! 검술이 인기가 없는 이유를 알겠네요.”
사람들의 애매한 반응에 광해 도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자신도 검무가 필요한 자리라면 모를까? 퇴마식에서는 공진검을 쓴 적이 없다.
오룡궁의 검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귀를 상대로 한다.
그러니 현실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했다.
무용(無用)한 검술을 익히겠다고 십팔 초식이나 되는 검초를 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호기심으로 왔다가 몇 초식 배운 것으로 만족하고 떠났다.
‘뭐 그래도 언젠가는…….’
끝까지 배워 보겠다고 퇴마 검술에 헌신하는 사람이 나오리라.
젊은 시절의 자신처럼 말이다.
“공진검이 악귀 떼를 상대하는 검법이라면 포룡검은 반대다. 오직 하나를 제압하기 위한 검법이다. 포룡검의 용은 악룡(惡龍), 즉 악마를 잡는 검술이다.”
광해 도사가 다시 검술을 펼쳤다.
“동쪽 산이 불을 뿜으면[東山吐焰] 형체를 떠나 참으로 변한다[離形歸眞]…….”
광해 도사의 검첨이 동쪽을 가리켰다가 어느 순간 정면으로 향했다.
그때 연적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심코 검술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구천기가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뭐지?’
연적하는 검결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통천안(通天眼)의 주문을 외웠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한편 광해 도사의 포룡검도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산이 갇히고 물이 흐르면[山囚水流] 용은 잡히고 마귀는 멸망한다[捕龍滅魔]!”
검첨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동서남북 사방을 점한 후 허공으로 향했다.
광해 도사는 ‘포룡멸마’를 외친 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속가제자들과 도사들은 목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진검을 본 직후라 포룡검에도 뭔가 특별한 게 있기를 기대하는 눈초리다.
그러나 포룡검은 무희들의 검무처럼 화려하기만 했지 그 이상이 없었다.
광해 도사의 자세가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그는 검첨을 하늘로 쭉 뻗은 채 왼쪽 무릎까지 한껏 위로 쳐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지면을 박차고 올라 태양이라도 찌를 듯한 기세다.
광해 도사는 한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누가 봐도 힘겨운 자세로 검첨을 노려보는 광해 도사의 모습은 광대 같았다.
“풋!”
결국 반화선이 실소를 흘렸다.
여화경과 손연수가 책망하듯 가볍게 그녀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런 백화궁 제자들을 보며 피식 웃던 백설연의 시야에 연남천이 들어왔다.
그는 놀란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자은사에서 수라마존의 마공을 상대할 때도 무덤덤하던 그가 왜?
“연 소협,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저게 안 보여요?”
백설연은 연적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끝은 광해 도사의 검첨이 가리키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오월의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을 말이다.
“구름요?”
“…….”
연적하는 답하지 않았다.
목검 끝에서 뻗어 나간 시퍼런 영기(靈氣)가, 허공 한 지점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격류(激流)처럼 휘몰아치는 저 영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포룡검이라는 도가에서 흔한 이름 속에 저런 흉포함이 들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