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95
395회. ‘내단’과 ‘신실한 믿음’
강론을 듣고 있던 수련자들과 도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운 도사가 ‘구천현녀뇌성보화천존’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려서다.
처음에는 ‘그런 신이 있었나?’ 의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잘못 말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오랜 시간 강론하다 보면 말이 꼬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백운 도사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미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경직되어 있던 강론 분위기가 풀어진 듯하자 편안하게 말을 이어 갔다.
“뇌법(雷法)에 대한 궁금한 점이 있습니까?”
물론 새로 들어온 수련자들을 배려한 질문이었다.
역시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수련생 하나가 머뭇머뭇 손을 들어 올렸다.
“뭔가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까지 뇌법에 대해 강론하셨잖아요?”
“맞습니다. 정확히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의 뇌법이지요.”
이번에는 바르게 말했다.
몇몇 수련자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새로 입산한 여자 수련생, 십언 청산문의 손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신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한 달 전쯤 입산해서 술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요. 특히나 지금 말씀하신 뇌법의 경우, 그런 술법이 정말 가능한 건가요? 이론적으로 말고 실제로요. 그게 가능하다면 뇌법으로 유명한 술사가 있어야 하잖아요?”
한마디로 실제로 뇌법이 가능하냐는 말이다.
입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이 가질 만한 궁금증이었다.
백운 도사와 연남천의 뇌법을 목격한 여동빈 수련자들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신입 수련자들은 일리가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뇌법과 같은 술법이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것과 뇌법으로 유명한 술사가 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
백운 도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흩어졌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것은 법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법력요? 저도 공력과 법력의 차이쯤은 알아요. 하지만 무림인들은 검풍, 검기, 심지어는 신검합일의 경지까지 나가잖아요. 왜 술사들만 그러지 못하는 건가요?”
“아까 뇌법을 강론할 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강론이 길어서 뭘 물으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뇌법을 어떻게 사용한다고 했던가요?”
“아, 내단(內丹)을 근본으로 하여 부적과 주문을 함께 사용한다고 하셨지요.”
“잘 들으셨군요. 법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내단’과 ‘신실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단’은 무인들처럼 조식(調息, 숨쉬기), 즉 운기행공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적’이나 ‘주문’입니다. 그건 기교와 암기력이 아닌 ‘신실한 믿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이라는 말에 손가인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맞다.
그 부분을 깜빡했다.
도교의 술법은 당연히 도교 신앙에 기초한다.
믿음이 법력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믿음에 있다.
믿음의 유무(有無)와 그 크기를 대체 누가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내단을 키운 술사는 많습니다. 토납법에 매진하면 그 경지가 깊어지니까요. 마치 무인의 내공이 깊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만큼은 수련으로 얻을 수가 없어요. 동의하십니까?”
“……예.”
“약간의 법력만 있다면 뇌법은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단의 경지와 믿음의 깊이에 따라 발현되는 것이 다릅니다. 나중에 배우게 될 기회가 있다면 알겠지만, 대부분은 찌릿한 정도로 끝나고 맙니다. 내단과 신심이 그 정도인 거지요. 뇌법으로 유명한 술사가 없는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팔선각에서는 수련자들에게 독송과 경전을 읽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답식은 겉으로 드러난 절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수련자들에게 믿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술사가 만들어질 테니까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뇌법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정확합니다.”
“하아! 쉽지 않은 일이네요.”
손가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도교에는 많은 신이 있다.
신들에 대해 알기도 어려운데 믿어야 술법이 완성된다니.
그때 누군가 말했다.
“모든 걸 믿음 탓으로 돌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아무도 하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삼십 대로 보이는 신입 수련자였다.
백운 도사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론이 달궈지다 보면 가끔 저렇게 도발적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의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남채고’의 수련자 화경부라고 합니다.”
화경부는 십언 신검문의 소문주였지만 ‘남채고’까지만 밝혔다.
백운 도사가 담담한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믿음에 달린 문제라고 하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냐고 묻는군요. 불가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게 가장 옳은 대답이겠지요?”
오룡궁 도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뇌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 드리지요.”
백운 도사가 수련자들을 이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가는 길에 백운 도사는 연남천을 힐끔 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뇌법을 증명하는 자리인지라 그를 끌어들이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그가 ‘구천현녀’의 주문으로 뇌법을 하면 그것도 난감했다.
백운 도사는 품 안에서 벽력부(霹靂符) 하나를 꺼냈다.
연남천의 벽력부를 본 뒤로 뇌법을 갈고닦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렸다.
이제는 뇌성으로 끝나지 않고 벼락까지 부를 수 있다.
뇌법이 무엇인지 보여 주마.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시여, 다만 의지하오니 신력으로 벽력을 드러내 주소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但慿霹靂威神力]!”
그는 주문과 함께 부적을 허공으로 던졌다.
돌연 마당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묵직한 우렛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한 줄기 벼락이 수련자들 앞에 떨어졌다.
번쩍-.
순간 수련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모두가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술법을 보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가장 강력하다는 뇌법.
천지조화를 직접 목격한 화경부와 손가인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오늘의 강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뇌법은 문답식을 통과하면 배울 수 있는 술법 중에 하나입니다. 아무쪼록 모두가 문답식을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수련생들은 놀란 눈으로 백운 도사를 힐끔거렸다.
점심 시간.
연적하는 봄기운이 만연한 팔선각을 둘러보다가 조금 늦게 식당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배식을 받자마자 가까운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같은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무심코 둘러보았다.
모두가 낯설었다.
하필 신입들이 가득한 자리에 앉은 모양이다.
그러려니 하며 젓가락질을 하는데 맞은편 여자가 슬며시 일어났다.
그릇에 아직 음식이 가득해 힐끔 올려다보니 급히 시선을 회피한다.
척 봐도 자신 때문에 자리를 옮기려는 눈치다.
여자 얼굴이 낯익어 다시 보니 강론 때 가열차게 질문하던 사람이었다.
역시나, 여자는 뒤로 돌아 반대편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씁쓰름했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전염병일지도 모를 사내와 마주 앉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식사에 집중하려는데 옆자리 남자가 툴툴거렸다.
“에이, 뭐야. 나도 옮겨야 하나. 빈 자리도 많은데 왜 이리로 와.”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싶어 보니 화경부라는 남자였다.
울컥한 연적하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다.
그보다 한발 먼저 화경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 탁자로 옮겨 갔다.
한순간 자리는 쾌적해졌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아, 이 잡것들이…….’
좀 익숙해질 만하면 새 얼굴이 와서 이 지랄들이다.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천천히 식사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끙끙 앓으며 음식을 씹던 연적하는 결국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경부와 돌아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먹고 있는 그들을 보니 새삼 화가 치밀었다.
무심코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걸 저들은 모르리라.
강호에서 저랬다가는 뒤에서 칼 맞기 십상이다.
저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가르침이 필요하다.
“이 개…….”
그의 입에서 막 육두문자가 나오려는 순간,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남천 소협!”
‘여동빈’의 속가제자 백설연이었다.
‘너희는 백 소저 덕분에 산 줄 알아라.’
연적하는 노기를 누르고 백설연의 자리로 걸어갔다.
백설연과 함께 식사를 하던 백화궁의 여제자 셋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언제 오셨어요?”
“강론 직전에요. 강론 듣고 산책하다 온 거예요.”
연적하는 네 여자들 속에 끼어 앉았다.
이도주와 청천석은 먼저 먹고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반겨 주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떠났던 입맛이 슬슬 돌아왔다.
연적하는 오랜만에 동문들과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즐겼다.
깔깔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손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여동빈’의 속가제자들이 기괴한 얼굴의 남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자 수련자들에게 백설연과 백화궁 출신의 세 아가씨는 흠모의 대상이다.
그녀들이 저 사내와 저렇듯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니?
특히나 백설연은 출중한 미모로 수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 그녀마저도 저 이상한 사내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마치 그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뭐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쪽에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결국 손가인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식당을 나가는 그녀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연남천이 왔소.”
“나도 봤소. 적선수행을 나갔다기에 여름에나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제길, 어떤 놈은 운이 좋아 훨훨 잘도 날아가는데 우리만 이게 뭔지. 원.”
“대신 얼굴이 작살나지 않았소. 그 얼굴로 ‘여동빈’으로 갈래? 지금 얼굴로 ‘남채고’에 있을래? 물으면 나는 지금 얼굴로 ‘남채고’에 남을 거요.”
“풉!”
손가인은 연남천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이 일어난 그녀는 두 수련자에게 다가갔다.
“저어, 실례지만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묘령의 아가씨가 말을 걸어오자 만황주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물어보시오. 팔선각에 대해서 우리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거요.”
천상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문답식만 벌써 여덟 번 넘게 했으니까. 문답식에 관한 거라면 잘 찾아오셨소.”
손가인은 손사래를 친 후에 나직이 말했다.
“아니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연남천이라는 사람이에요.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러자 만황주가 빠드득 이를 갈며 답했다.
“그놈에 대해서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요. 모두가 속고 있소. 그놈이 어떤 놈이냐 하면…….”
만황주와 천상동은 연적하가 팔선각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소상히 가르쳐 주었다.
기가 막힌 그의 만행에 손가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기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