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0
400회. 현령의 아들이라면서?
양사강은 아침부터 기분이 찜찜했다.
어젯밤 손아귀에 틀어 쥐고 있던 손가인을 백설연에게 빼앗기다시피 내어 준 탓이다.
죽산현 현령의 장자인 그는 도하방 방주 만석화에게 무공을 배웠다.
도하방은 죽산현을 휘감고 흐르는 도하(堵河)에 뿌리를 둔 방파다.
도하방의 모체는 도하상방.
도하상방에서 낭인들을 끌어모아 세운 방파가 도하방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정사지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양사강도 그런 도하방의 영향을 받아 의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반반한 계집을 포기할 수는 없지.’
비록 손가인이 죽계현 청산문 문주의 딸이지만 뒤탈은 걱정하지 않았다.
도하방의 세력이 크고, 죽산현과 맞붙어 있는 죽계현 현령이 부친의 친구인 까닭이다.
다만 백설연이라는 훼방꾼이 문제다.
동심문은 말만 문(門)이지 규모가 거의 무관(武館) 수준이었다.
‘백설연의 뒤에 무당파만 없으면 그냥 밟아도 되는데.’
아무리 본산이 속가제자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해도 같은 지역이라면 또 다르다.
무당파, 동심문, 청산문 모두 십언에 있으니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양사강은 아침의 강론 시간 내내 ‘욕망’과 ‘뒤탈’ 사이에서 갈등했다.
욕망은 ‘본능’이고 뒤탈 걱정은 ‘이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정사지간의 인물들은 대부분 이성보다 본능이 더 강했다.
양사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론이 끝날 즈음 그는 손가인과 백설연을 모두 손에 넣기로 결심했다.
우선순위는 있었다.
손아귀에 들어온 손가인을 먼저 취하고, 그다음이 백설연의 차례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손가인이 보이지 않았다.
강론 시간이 끝나면 팔선각 외곽을 어슬렁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하선고’ 주변은 물론 그녀가 자주 가던 외원(外院)까지 탈탈 털었지만 허사였다.
찾는 걸 포기하고 터덜터덜 식당으로 향하던 그의 눈이 번득였다.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오룡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손가인에게 다가갔다.
“손 매. 여기 있었어? 그런 줄도 모르고 한참 찾았잖아.”
그런데 이게 웬일?
어젯밤까지만 해도 ‘양 가가(哥哥)’라고 하며 안기던 여자가 오늘은 눈을 찌푸린다.
“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누구야? 말만 해. 내가 아주 작살을…….”
“그런 일 없어요. 왜 저를 찾아다니셨나요?”
차가운 손가인의 응대에 양사강은 한순간 멍했다.
잠자리만 하지 않았지 자신의 여자나 다름없던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설마 백설연에게 한소리 듣고 그러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백설연의 잔소리를 싫어했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손 매, 갑자기 왜그래?”
“양 공자님께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그런 생활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런 생활이라니?”
양사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무당파에서 싫어할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범죄는 아니다.
무당파가 호색(好色)은 몰라도 음주까지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고 외원에서 술을 마시는 생활요. 이제 그만둘 거예요. 저도 이제 본격적으로 문답식 준비를 할 생각이에요.”
“누구 마음대로 그만둔대?”
“내 맘대로요. 왜요? 내가 제대로 수련을 하겠다는데 뭐 잘못됐나요? 양 공자님이나 나나 술법을 배우기 위해서 오룡궁에 온 거잖아요?”
“난 허락 못 해.”
“내 수련이 양 공자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요?”
두려움으로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지만 손가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젯밤만 해도 자포자기한 상태였기에 그의 손길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여동빈’으로 올라가 연남천의 옆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더 이상은 들쥐로 살고 싶지 않았다.
손가인의 말에 양사강은 더 이상 군자인 척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냐고? 당연하지. 넌 내 거니까. 내 허락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다.”
“차, 착각하지 말아요.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양 공자님의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아니라고? 내 품에 안겨서 아양을 떨 때는 언제고? 세상 모두가 네년이 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부인한다고 너와 나의 관계가 없던 일이 되는 줄 아느냐?”
“닥쳐요! 거듭 말하지만 나는 양 공자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말하려거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나타나면? 어쩔 테냐? 나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할 건데? 어젯밤에는 너도 좋아했잖아.”
양사강이 조롱하듯 빙글빙글 웃으며 손을 뻗었다.
손가인은 이를 악물고 그의 손을 쳐 냈다.
“경고하는데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왜? 우리 사이에 안 될 게 어디 있다고? 설마 너도 백설연 흉내를 내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돼. 괜히 튕기지 말고 이리 오라니까.”
양사강은 금나수로 손가인의 손목을 잡아 갔다.
청산문 문주의 차녀인 손가인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응수하자 말다툼은 싸움으로 변했다.
지나가던 수련자들이 힐끔거리자 양사강은 마치 장난인 양 싱글싱글 웃었다.
그걸 본 수련자들은 두 사람의 사랑싸움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평소 두 사람이 다정하게 붙어 다녔기에 그러려니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사강의 손은 점점 더 은밀한 부위를 노렸다.
그러자 당황한 손가인의 손발이 흐트러졌다.
정정당당하게 겨루었어도 양사강이 이겼을 싸움이다.
하물며 수치심에 휩싸여 허둥대는 손가인이 그의 상대가 될 리 없다.
양사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가인의 몸을 이곳저곳 주물러 댔다.
그의 음탕한 짓에 손가인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양사강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양사강이 뻔뻔하게 손가인을 품에 안은 순간, 누군가 빠르게 달려왔다.
백설연이었다.
“양사강! 무슨 짓이냐!”
양사강은 급히 손가인을 풀어 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손 매와 잠시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소. 백 소저는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오?”
그러자 손가인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가 저의 주인 행세를 하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강제로…….”
“강제는 무슨, 좋다고 헐떡여 놓고. 백 소저는 어젯밤에 보고도 그러시오?”
순간 백설연이 언성을 높였다.
“보기는 뭘 봤다고 그러느냐! 아! 어젯밤 네놈이 외원에서 술판 벌이는 걸 보았느냐고? 그거라면 보았다. 궁주님 앞에서 증언할 수도 있다.”
그녀의 입에서 ‘놈’ 소리가 나오자 양사강도 참지 않았다.
“지금 본 공자에게 네놈이라고 했느냐? 오냐. 네년이 그러고도 죽산현에서 살 수 있는지 보겠다. 동심문에 일이 생기면 모두가 네년의 그 주둥아리 탓인 줄 알아라.”
양사강의 협박에 백설연이 움찔했다.
도하방주 만석화의 포악함은 인근 죽계현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그의 제자가 양사강이니 협박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런 이런. 오룡궁에서, 그것도 오룡궁 제자에게, 욕설과 협박이라니. 그러면 쓰나.”
연적하였다.
위축되어 있던 백설연과 손가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연 사제.”
“연 소협.”
연적하는 두 사람에게 눈인사를 보낸 후 양사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찔끔 놀란 양사강이 급히 읍을 해 보였다.
“‘이철괴’의 수련자 양사강이라 합니다. 연 소협의 대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
연적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영광은 무슨. 빈말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마.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몰라? 방금 말해 줬잖아. 오룡궁에서, 오룡궁 제자에게 욕하고 협박하면 돼? 안 돼?”
“그건…….”
양사강이 뭐라고 변명하려 할 때다.
그의 코앞에 도달한 연적하가 얼굴을 바싹 디밀고 다시 물었다.
“돼? 안 돼?”
“오해십……. 윽!”
연적하의 발길질에 정강이를 맞은 양사강이 한 발로 펄쩍펄쩍 뛰었다.
“나, 나는 죽산현……. 악!”
벼락처럼 날아든 발끝이 반대쪽 정강이를 때리자 양사강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돼? 안 돼?”
“내 아버지가……. 캑!”
죽산현 현령의 아들이라는 말을 하려던 양사강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연적하가 들었던 발을 내려놓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양사강의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 있었다.
“돼? 안 돼?”
그제야 양사강은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안 되오. 그런데 나는 죽산현……. 컥!”
양사강의 머리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되돌아온 그의 양쪽 눈두덩이는 주먹 크기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뒤로 양사강은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백 사저에게 욕한 것은 오룡궁 제자에게 욕한 것과 같아. 특히나 나와 백 사저는 같은 ‘여동빈’의 제자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절대 아니오. 내가 어찌 감히 연 소협을 만만하게 볼 수 있겠소.”
“그런데 왜 백 사저에게 욕을 해?”
“그건 백 소저가 먼저 욕을 했기에 부득이하게……. 악!”
양사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얼굴을 덮은 두 손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백 소저에게 욕먹을 짓을 하면 돼? 안 돼?”
“아, 안 되오.”
양사강은 또 맞을까 봐 허겁지겁 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잘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옆구리로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답답한 신음과 함께 양사강의 상체가 한쪽으로 넘어갔다.
양사강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술사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처맞고만 있는 자신이 이상했다.
‘내 이 미친놈을…….’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이 상대가 휘두르는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종국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멍하니 앉아 있는 양사강의 귀로 연남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죽산현 현령의 아들이라면서?”
순간 양사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자신이 현령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도 때렸다면 중죄다.
“그렇다. 죽산현 현령이 내 부친이시다. 감히 그걸 알고도 내 몸에 손을 댔느냐!”
양사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수련자들과 도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팔선각 ‘이철괴’의 관리자인 청선 도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달려왔다.
“머, 멈추거라!”
청선 도사를 본 양사강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세웠다.
“연남천! 고작 속가제자 주제에 나를 건드려? 네놈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그의 호통에 화답하듯 청선 도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양 공자, 이게 무슨 일이오? 연남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우리 양 공자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말이다!”
무당파는 십언의 관리들에게 육파일문 수장 못지않은 대우를 해 왔다.
그건 무당파뿐 아니라 다른 육파일문도 비슷했다.
관(官)과 무림이 제아무리 ‘우물물’과 강물 같은 불가침의 관계라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한 지역의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강호란 본디 불법과 탈법이 일상인 곳이다.
현령에게 찍히면 포정사나 안찰사가 움직이고, 그렇게 되면 칠파일문이라 해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병장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것부터, 지역을 관리하는 것까지 통제받기 시작하면 쇠락하는 건 시간문제.
청선 도사가 마치 제 가족이 맞은 것처럼 펄펄 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