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1
401회. 왜 저놈을 싸고돌아요?
청선 도사가 기막힌 눈으로 연남천을 보았다.
술법이 뛰어나 오냐오냐했더니 이젠 오룡궁을 말아먹으려고 한다.
십언 죽산현 현령 양호주는 오룡궁의 손 큰 후원자였다.
절기 때마다 재물을 보내오는 것은 물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와주던, 허울뿐인 호천맹보다 오룡궁에 더 도움이 되는 관리였다.
오룡육사가 깐깐하지 않았다면 양사강은 벌써 ‘여동빈’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를 ‘이철괴’에 잡아 두고 있는 것만도 미안한데 두드려 패다니?
연적하가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여동빈’의 백 사저에게 욕하고 협박해서 훈계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다.
청선 도사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룡궁 경내에서 손찌검이라니! 네가 어디서 뭐 하다가 온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오룡궁에는 오룡궁의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이 혹시 오룡궁에서는 서로 욕하고 협박해도 괜찮다는 건가요?”
청선 도사는 연남천이 물고 늘어지자 얼른 말을 돌렸다.
“여기는 신성한 도관이다. 도관에서 시정잡배들처럼 주먹다짐을 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
“이 쥐새끼가 먼저 욕을 하고 협박도 했다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대무당파 제자에게 욕하고 협박하는 놈을 그냥 둬요? 그것도 무당파 경내에서?”
“어허! 쥐새끼라니. 그 경망스러운 말투부터 고쳐라. 양 공자의 부친은 죽산현 현령으로 평소 오룡궁에 큰 도움을 주는 분이시다. 무슨 오해가 있었겠지.”
청선 도사가 적극적으로 양사강을 비호했지만 연적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해는 무슨, 내가 두 귀로 직접 들었는데. 인마. 너 백 사저에게 욕하고 협박했어? 안 했어?”
연적하의 물음에 양사강은 무심코 답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청선 도사 앞에서 또 때릴까 싶어서다.
순간 눈앞이 번쩍하더니 상체가 뒤로 세차게 넘어갔다.
쿵.
연이어 안면 부위와 지면에 충돌한 뒤통수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고통과 수치심에 휩싸인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친 듯 소리 질렀다.
“으아아아아!”
태어나서 이런 망신은 처음이다.
자신을 귀빈 대우하던 무당파에서 복날 개처럼 두드려 맞고 있다니!
충격을 받기는 청선 도사도 마찬가지다.
무당파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질서와 규율이 확실하다.
지금 연남천의 행동은 도에 지나쳤다.
사정이야 어쨌건 오룡궁 경내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 양사강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하극상이기도 했다.
“연남천! 그만두지 못할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청선 도사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팔선각 수련자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연적하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했는데요?”
얼굴을 딱 한차례 걷어찬 게 전부인데 뭘 자꾸 그만두라는 건지 모르겠다.
“너, 너…….”
흥분한 청선 도사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속가 제자들은 본산 어른들을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보통은 ‘어험’ 하고 헛기침만 해도 알아서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저놈은 대놓고 말해도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어디서 저런 망종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식당으로 가던 수련자들뿐 아니라 오룡궁 도사들까지 몰려들었다.
비칠거리며 일어선 양사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속가제자는 수련자를 마음대로 때려도 되는 겁니까! 청선 도사님! 뭐라고 말씀 좀……. 악!”
갑자기 날아든 주먹에 맞은 양사강이 입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어, 어, 이빨, 이빨……. 아아아!”
손바닥에 이빨이 툭 떨어지자 양사강은 또다시 울부짖었다.
“너 이놈! 그만하래도!”
청선 도사의 호통과 양사강의 절규로 오룡궁 앞마당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연적하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양사강이 오룡궁 도사들을 이용해 빠져나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파르르 떨던 청선 도사가 양사강과 연남천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너 이놈! 사문의 존장(尊長)을 능멸하다니! 정녕 파문이라도 당하고 싶은 게냐!”
“헉! 무당파 제자를 욕하고 협박한 놈을 때리면 안 되는 거예요? 몰라서 그랬어요. 음, 무당파 제자를 괴롭히면 좋은 대접을 받는구나. 역시 명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청선 도사는 기막힌 눈으로 연남천을 보았다.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 부스럼으로 뒤덮여서 더 그랬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누가 들어도 헛소리였다.
“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너는 ‘여동빈’에서 나오지 마라.”
“식사는요?”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아, 예. 그럼 저놈은요? 저놈도 나쁜 짓을 했는데.”
“양 공자는 의각에서 치료를 받게 할 것이다.”
“치료는 무슨 치료요? 안 돼요. 저런 놈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요.”
“그건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와아, 답답하네. 그럼 치료가 끝난 뒤에 벌을 주나요?”
“팔선각의 수련자에게 벌을 주고 말고는 무당파 원로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럼 나만 벌을 받는 거예요?”
“‘여동빈’에서 대기하는 것은 벌이 아니다.”
“아니 갇혀서 식사도 못 하면 그게 벌이지 뭐가 벌이에요?”
청선 도사는 연남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자 화를 버럭 냈다.
“너 이놈! 뭘 잘했다고 계속 말대답이야! 양 공자의 몰골을 보아라! 멀쩡한 사람을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그냥 넘어가기를 바랐더냐!”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놈이라니까요.”
“이놈이 그래도!”
청선 도사가 아득바득 대드는 연남천의 뺨을 후려쳤다.
아니,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번쩍 쳐들린 그의 손목은 연적하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구경하던 수련자들과 도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당파 경내에서 속가제자가 그를 나무라는 본산 어른을 제압하다니?
무당파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눈앞에서 하극상이 일어나자 도사들은 황급히 수련자들을 돌려보냈다.
수련자들은 떠나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룡궁 최고의 술사와 본산 어른이 무슨 일로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다.
자기로 인해 난리가 났지만 연적하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청선 도사는 전형적인 술사라 육체의 힘이 약했다.
손목이 잡힌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초로의 도사를 보고 있으려니 왠지 짠하다.
“도사님, 왜 그렇게 저놈을 싸고돌아요?”
“너는 술법의 경지를 믿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무당파의 법도가 얼마나 엄한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저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묻지도 않았잖아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만 하고.”
“…….”
동문서답하던 청선 도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 점은 자신도 인정한다.
양사강이 죽산현 현령의 아들이라서 가급적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남천의 행동이 용납되는 건 아니다.
“설사 양 공자가 무슨 잘못을 했다. 해도 일개 속가제자인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도사님 같은 분이 나섰어야죠? 그렇죠?”
“…….”
연남천이 자신을 책망하자 청선 도사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양사강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백주 대낮에 오룡궁 앞에서 잘못할 일이 뭐가 있다고.’
청선 도사의 시선이 연남천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여자 수련자에게 향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한쪽 팔이 붙들린 채로 그랬다가는 꼴만 우스워지는 까닭이다.
주변 정리를 끝낸 오룡궁 도사들이 연적하와 청선 도사에게 다가왔다.
‘여동빈’의 담당자 산월 도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만 놓아 드리거라.”
그제야 연적하는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청선 도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남천과 산월 도사를 번갈아 보다가 홱 하고 돌아갔다.
고개를 젓던 산월 도사가 연남천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이놈이 백 사저에게 욕을 하고 협박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대 쥐어 팼더니 청선 도사님이 와서 저놈 편을 들길래…….”
산월 도사의 시선이 양사강을 향했다.
두 눈두덩이가 퉁퉁 부었고, 코도 주저앉은 게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저런 몰골을 보았으니 ‘이철괴’의 관리자인 청선 도사가 화를 낼 만도 하다.
“양 공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소?”
산월 도사의 정중한 질문에 양사강은 연남천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행여나 그가 또다시 팰까 봐 겁이 나는 눈치다.
“괜찮으니 말해 보시오.”
산월 도사가 거듭 권하자 양사강은 폭포처럼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쪽에 있는 손 매와 저는 연인 사이였습니다. 팔선각의 수련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손 매와 저는 어젯밤까지 애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저를 멀리하더군요. 그 일을 두고 말다툼을 하는데 백 소저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녀가 저를 모욕하기에 저도 욱하는 마음에 욕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때 연 소협이 나타나 감히 무당파 제자에게 욕을 했다며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양사강의 말에 산월 도사는 눈을 찌푸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난해한 것이 남녀 간의 싸움이 아니던가.
산월 도사가 손가인을 보며 물었다.
“양 공자의 말이 사실이오?”
“그와 잠깐 가깝게 지냈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오늘부터 문답식을 준비할 거라고, 그래서 더 이상 함께 어울리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럴 수 없다며 자기 뜻에 따라야 한다면서 저를…….”
손가인은 양사강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말했다.
“흐음…….”
산월 도사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양쪽 말을 다 들어 보니 치정(溪情)에 얽힌 것이었다.
물론 양사강이 백설연을 욕하고 협박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하지만 양사강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연인이 하루아침에 변심했으니 그보다 더한 소리가 나왔어도 이상할 게 없다.
‘죽산현 현령의 아들이니 더 참을 수 없었겠지.’
문제는 연남천이다.
일단 원로원으로 넘어가면 결정은 장문인이 내리게 된다.
양사강을 저 지경으로 만든 것으로도 부족해 사문의 어른인 청선 도사를 제압까지 했으니……
무당파의 엄한 규율을 생각하면 파문은 기본이고, 단전까지 부술지 모른다.
‘허어! 궁주인 천명 도사님이 봐주려 해도, 장문인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고민하던 산월 도사가 입을 열었다.
“남천아. 청선 도사가 원로를 거론했으니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게다. 내 어떻게든 일이 커지지 않게 만들어 보마. 이후로는 책잡히지 않도록 행동에 조심하도록 해라.”
“예. 그런데 저 쥐새끼는 어떻게 되나요?”
“하아! 양 현령은 무당파의 큰 손님이시다. 지금까지만의 일로는 양 공자에게 죄를 묻기 어려울 것 같다.”
양사강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여동빈’의 관리자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었다.
“아, 그럼 안 되는데.”
산월 도사가 이번에는 양사강에게 물었다.
“양 공자, 공자도 이번 일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게요. 공자께서는 어찌할 생각이오?”
“글세요.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아버지께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부친의 힘으로 해결을 보겠다는 소리다.
산월 도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올해 오룡궁에 삼재(三災)가 낀 모양이다.
죽산현 현령이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 오룡궁 운영은 엉망이 될 게 분명하다.
산월 도사가 복잡한 얼굴로 서 있을 때다.
연적하가 긴장을 풀고 있는 양사강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어이, 쥐새끼. 아빠한테 달려가서 일러. 꼭 일러야 돼. 내가 그 말을 하면서 한 대 더 때렸다는 것도.”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양사강의 머리가 한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