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5
405회. 누구 마음대로 죄인이래
호북성.
십언.
토문.
이른 아침.
무당산 입구에 삼백의 군마(軍馬)가 나타났다.
기마병 뒤로 장창병과 도검병, 궁병의 질서 정연한 모습이 보였다.
정천호 황부승의 부대다.
중무장한 황부승의 부대는 마을을 관통해 무당산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혼비백산한 마을 사람들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천백여 명의 장졸이 다 지나간 뒤에야 사람들은 하나 둘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무당산을 보며 큰일이 아니기를 기원했다.
기마대는 무당산 산문에 도착해서야 멈춰 섰다.
산문을 지키고 있던 도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기마대를 향해 나아갔다.
“빈도는 현청이라 합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는지요?”
군마 위에서 무관이 딱딱한 어조로 답했다.
“죄인 연남천을 잡으러 왔다. 그를 내어 주든지, 조용히 뒤로 물러나라.”
“대인, 연남천은 오룡궁의 제자이니 오룡궁에 기별을 넣게 해 주십시오”
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파를 무력으로 짓밟으러 온 게 아니라 무력시위가 목적인 까닭이다.
물론 무당파가 거세게 저항하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청 도사가 오룡궁 방향으로 달려갔다.
기다리는 동안 후미에 있던 장졸들이 기마대의 뒤까지 따라붙었다.
곧이어 정천호 황부승과 양호주 현령이 나란히 산문 앞에 도착했다.
기마대 지휘관 부천호 심연수는 말에서 내려 황부승에게 다가갔다.
“오룡궁 관계자를 데려오겠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는 중입니다.”
황부승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파는 십언의 명문 도관인 만큼 고관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아무리 군부의 힘이 강하다 해도 마구잡이로 무당파를 토벌할 수는 없었다.
양호주 현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심 부장(副將)님, 무당파 장문인이 아니라 오룡궁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소. 무당파가 직접 나서지 않는 걸 보니 죄인을 내어 줄 모양이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룡궁 궁주가 제자를 순순히 내어 줄지…….”
양호주가 말끝을 흐렸다.
무당파 장문인이 아니라 오룡궁으로 달려갔다니 뭔가 이상했다.
“내주지 않으면? 우리 군세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심연수가 불쾌한 눈으로 양호주를 보았다.
천호소(千戶所)의 군사면 무당파도 토벌할 수 있다.
그런데 고작 죄인 하나를 두고 고민이라니?
“천호소의 군사로 부족하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무림인들의 제 식구 감싸기가 어디 보통이어야 말이지요. 그걸 의협(義俠)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목숨까지 거는 족속들이 아닙니까.”
그러자 황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일세. 변방에서 오랑캐들과 싸울 때 무림인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체면과 의리에 목숨을 걸더군. 단순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야.”
황부승이 양호주의 편을 들자 심연수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잠시 후 산에서 한 무리의 도사들이 내려왔다.
모두가 오룡궁의 도사들이었다.
오룡궁의 도사들과 때를 맞춰 무당파 장문인과 장로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과 오룡궁 궁주 천명 도사가 무관들의 앞으로 나섰다.
“빈도는 무당파 장문인 영결이라 합니다.”
“오룡궁 궁주 천명입니다. 오룡궁의 제자에 관한 일로 찾아오셨다고요.”
영결상인과 천명 도사의 소개가 끝났음에도 무관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좋은 뜻으로 온 게 아니라 굳이 통성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무관들을 대신해 죽산현 현령 양호주가 나섰다.
“본관은 죽산현 현령 양호주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소. 오룡궁의 속가제자 연남천은 본관의 장자를 이유 없이 상해하였소. 이에 그에 대한 추포령이 내려졌으니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소.”
천명 도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인, 비록 연남천이 양 공자에게 손을 쓴 것은 사실이나 양 공자도…….”
“도사! 말조심하시오! 시시비비를 가리라고 관부가 있는 것이오. 설사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 해도 관부에 고변하면 될 일. 자력으로 은원을 해결하는 것은 나라에서 금하고 있소. 내 아들의 실수는 차치하고, 연남천은 국법을 어기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죄인이오. 오늘 그를 내놓지 않으면 무당파도 벌을 면치 못할 게요!”
“대인, 양 공자의 일은 유감이나…….”
양호주가 천명 도사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내놓겠다는 거요? 말겠다는 거요? 무림 문파들의 방종이 도에 지나쳐 천호소의 장졸들까지 지원을 나왔소. 도사의 말 한마디에 무당파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장문인 영결상인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양 대인, 무당파의 제자라 해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연남천의 행동이나 죽산현의 관병은 물론, 천호부의 군사까지 동원되어야 할 정도의 중한 죄입니까?”
“무당파가 이처럼 그를 감싸고도니 군부까지 나선 게 아니오.”
“하아! 하면 연남천은 어떤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사사로운 감정으로 고관의 자제를 때려 몸을 상하게 했으니 그에 맞는…….”
양호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당파 도사들 속에서 ‘흥!’ 하는 냉소가 들려왔다.
양호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할 말이 있으면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라!”
도사들 틈 속에서 일반인 복장을 한 청년 하나가 휘적휘적 걸어 나왔다.
부스럼으로 뒤덮인 청년의 얼굴을 본 양호주가 짧게 소리쳤다.
“네놈이 연남천이냐!”
“역시 하는 걸 보니 그 아들에 그 아버지로군. 맞아요. 내가 연남천이에요.”
연남천이 당당하게 나오자 양호주는 급히 황부승에게 고개를 돌렸다.
“장군! 저 어린놈이 연남천입니다.”
양호주는 이르듯이 말하고 슬쩍 무관들의 뒤로 빠졌다.
괜히 앞에서 얼쩡거리다 무당파 도사나 연남천에게 봉변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다.
부천호 심연수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본관은 십언 천호소의 부천호 심연수다. 죄인 연남천은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연적하가 불쾌한 얼굴로 심연수에게 말했다.
“저 아저씨가 누구 마음대로 죄인이래?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나. 이봐요. 겉모습만 보고 사람 함부로 대하다가 큰코다쳐요.”
연남천의 말에 무당파 도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연남천이 괴팍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천호소의 장수에게 아저씨라 니.
그가 녹림의 태상호법임을 아는 영결상인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였다.
당사자인 심연수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이놈! 정녕 관을 보아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구나!”
연남천을 노려보던 심연수가 지휘관인 정천호 황부승에게 소리쳤다.
“장군! 보시다시피 말로는 안 될 놈입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지지 않고 연적하가 말을 보탰다.
“나를 얼마나 봤다고 말로 안 된대. 이제 딱 한마디 했구만.”
심연수와 무당파 도사들의 시선이 황부승의 입을 향했다.
그러나 황부승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연남천을 지그시 응시했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그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하다.
‘뭔가 있다.’
대군을 앞에 두고 태평스러운 상대를 보니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황실은 물론 고관대작의 자제 중에 저런 몰골의 인사는 없었다.
“장군! 명을 내려 주십시오!”
심연수의 노기 가득한 음성에 황부승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뒷배가 누구라도 일단 제압하지 않을 수 없다.
“죄인을 추포하라! 저항하면 죽여도 좋다!”
황부승의 명이 떨어지자 심연수가 기마대에 신호를 보냈다.
전면에 포진하고 있던 삼백의 기마대가 측면으로 비켜났다.
평원이라면 모를까?
산지에서 기마대는 별 쓸모가 없어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심연수가 손을 까딱이자 이백 명의 도검병이 선두로 나섰다.
도검병 뒤로 오백의 장창병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무당산 초입이 장창병의 창으로 뒤덮였다.
장창병 뒤에 자리한 일백의 궁병은 창끝에 가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도검병과 장창병이 피워 내는 농염한 살기가 스멀스멀 무당산을 잠식해 나갔다.
정예군의 작전을 가까이서 본 도사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군대가 무섭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상상을 초월한다.
무림의 고수라 해도 도검과 장창의 숲을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황부승의 군대가 돌격 준비를 마치자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도사들을 뒤로 물렸다.
괜히 연남천과 천호소의 싸움에 휘말리면 일이 더 커지는 탓이다.
결국 산문 앞에는 연남천만 홀로 남았다.
간담이 큰 사람도 쫄릴 만한 상황이건만 연남천은 여유 만만했다.
‘인생 뭐 있어. 안 되면 산으로 달아나면 되지.’
여차하면 다시 오봉산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눈치 보며 살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할 만큼은 해야 저들도 오룡궁을 어려워할 게다.
이참에 오룡궁의 술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그가 품에서 부적을 꺼낼 때다.
오룡궁 궁주인 천명 도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연남천! 오룡궁의 술법은 천리를 따라야 하느니라! 무고한 인명을 해치지는 말아라!”
“아, 예.”
연적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물론 작정하고 장졸들을 죽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생각대로만 되던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다 보면 계획에 없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법.
그런 것까지 배려하면 평생 술법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쳐라!”
심연수의 우렁찬 외침에 돌격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도검병들이 앞으로 내달렸다.
“와아아!”
도검병들이 악귀 같은 얼굴로 달려 오자 연적하는 재빨리 ‘흑운만리부(黑雲萬里符)’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문과 함께 허공에 부적을 뿌렸다.
“하늘 밖에서 검은 바람이 불면 검은 구름이 만 리를 덮는다[天外黑風 黑雲萬里]!”
휘이이잉-.
돌연 무당산을 중심으로 바람이 몰려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강한 바람 속을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날아다녔다.
뒤이어 검은 구름이 무당산 초입을 뒤덮었다.
그래도 도검병들은 미친 소 떼처럼 앞으로 돌격했다.
그들은 흙먼지에 눈을 질끈 감고 달리며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병장기를 휘둘렀다.
채챙. 챙. 챙-.
먹구름과 흙먼지 속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후방에서 도검병의 돌격을 지켜보던 황부승이 심연수에게 물었다.
“저건 대체 뭔가?”
“오룡궁이 술법으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제길. 저런 말은 없지 않았나! 양 현령!”
숨죽이며 지켜보던 양호주가 황부승 앞으로 달려 나가 머리를 조아렸다.
“연남천은 오룡궁 제일의 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술이 분명합니다.”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건가! 진즉에 알려서 대비를 하게 했어야지!”
“송구합니다, 장군.”
“쯧쯧! 심 부장.”
“예!”
“술법은 눈속임이라지?”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흑운(黑雲)이 사라지면 도검병을 불러들이고 원거리에서 활로 조져라. 화살에는 눈이 없으니 현혹될 일도 없을 터. 놈을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리란 말이다.”
“존명!”
심연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흑운에 잠긴 산문을 노려보았다.
일각(15분)이 지나자 구름도 흙먼지도 아침 안개처럼 스르륵 흩어졌다.
심연수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진격한 이백 명의 도검병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은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길을 잃고 무당산으로 깊숙이 들어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십여 명이 온전한 것도 아니다.
흑운 속에서 아군들끼리 교전을 했는지 제 발로 서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