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6
406회. 황상(皇上)의 숨겨진 검
산문을 가리고 있던 흑운(黑雲)이 사라지자 부천호 심연수가 짧게 명했다.
“부상자들을 빼내라.”
꿋꿋하게 서 있던 장창병들이 우르르 달려가 도검병들을 한쪽 옆으로 끌어냈다.
마침내 산문 앞에 연적하만 홀로 남았다.
그는 피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서서 천호소 병사들을 응시했다.
누가 봐도 당랑거철(幢郞拒散)과 같은 형국이지만 묘하게 박력이 느껴진다.
정천호 황부승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천생 장군감이로군. 이런 데서 죽기는 아까운데…….”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정예로 키운 도검병들이 상했으니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상대의 모습에 탄복한 황부승은 자신이 진두지휘에 나서기로 했다.
강적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다.
황부승이 움직이자 심연수는 슬쩍 그의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상관의 심기를 읽고 부장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황부승의 시선이 궁병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궁병들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연남천의 술법을 처음 본 상청궁의 도사들은 기막힌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그들도 오룡궁의 술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축귀나 제의 등의 주술적 행동에 불과했다.
실제로 부적으로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미약한 천둥소리나 바람 따위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의 술법이라는 것이 자연현상과 크게 구별되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연남천은 달랐다.
뒤늦게 상청궁의 원로들은 ‘그래서 장문인이 연남천을 지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저 정도 술법이라면 무당파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영결상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은 것과 직접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허! 과장이 섞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대단하구나.’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기명제자로 삼은 청불노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처음에는 천외천의 검공으로 난국을 돌파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술법만으로 여유 있게 천호소의 군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멍하니 지켜보는 영결상인에게 무양 진인이 슬그머니 다가갔다.
“장문령부를 사용하실 만하군요. 정사파를 통틀어 저런 경지에 이른 술사는 없을 겁니다. 호천맹에서 알면 아주 좋아하겠습니다.”
영결상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술사만은 아니지만 장로들이 수긍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젠 활이라는 거지?”
궁병들이 활시위를 당기자 연적하는 잠시 멈칫했다.
화살쯤이야 맨손으로도 쳐 낼 수 있다.
아니 이형환위에 가까운 신법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연남천 체면이 있지.”
중얼거리던 그는 품 안에서 또 다른 부적을 꺼냈다.
흑운차일부(黑雲遮日符)다.
‘태양이 먹구름을 만나면 구름에 가려진다’는 다소 요상한 술법.
청불노에게 배운 술법으로 아직 써 먹어 본 적은 없다.
스승도 배우기만 했지 평생 시전해 본 적 없다는 광역의 술법이었다.
연적하의 손에서 부적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궁병들도 활시위에서 손을 뗐다.
촤촤촤촤-.
백발의 화살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연적하와 궁병의 중간쯤 되는 하늘에 검은 구름 한 조각이 생겨났다.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자 사람들의 눈길도 아래로 향했다.
화살의 빠른 속도를 좇느라 사람들은 흑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퍼퍼퍼퍽-.
산문과 주변의 지면에 화살이 세차게 박혔다.
연적하는 미꾸라지처럼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화살 비를 피했다.
“계속 쏴라!”
부천호 심연수가 궁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궁병들이 화살집에서 부랴부랴 화살을 꺼내 다시 시위에 걸었다.
하지만 누구도 화살을 쏘아 보내지 못했다.
다시 화살을 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태양이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방금까지 환했는데 갑자기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산문 앞에 있던 죄인은 물론이고 자신이 들고 있는 활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동서남북도 알기 어렵다.
궁병들은 행여나 실수로 아군에게 화살을 날릴까 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순간 역전의 노장인 심연수가 큰소리로 외쳤다.
“쏘지 마라! 섣불리 움직이지도 마라! 해가 다시 나올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라!”
궁병들은 손에서 힘을 빼고 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병사들이 내는 숨소리만 새액새액 들려왔다.
정천호 황부승은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연남천의 능력이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그에 따른 대비를 했을 것이다.
휘하에 술법을 아는 이가 없으니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길게 내쉴 때다.
“일이 잘 안 풀려요?”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화들짝 놀란 황부승은 애검을 뽑아 휘둘렀다.
쉬익-.
그러나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을 뿐이다.
황부승은 급히 검을 회수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누구냐!”
다시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뭘 그렇게 놀라요? 나예요.”
말과 함께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순간 황부승은 저도 모르게 ‘윽!’하고 짧은 신음을 흘려야 했다.
미증유의 암경이 상체를 압박해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설마 연남천인가? 분명 오룡궁의 술사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지금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힘은 분명히 무인의 내력이었다.
“끄응! 연남천인가.”
“맞아요.”
황부승 휘하의 장졸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답답하지만 앞이 보이질 않으니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는 황상께서 임명한 무장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투항해라.”
“투항은 아저씨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너의 이런 행동은 오룡궁과 무당파에 좋지 않다. 그래도 괜찮은가?”
“나를 핑계로 오룡궁을 건드리면 당신이 제일 먼저 죽어. 그다음은 누가 좋으려나? 죽산현 현령? 어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
황부승은 답하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대는 무당파의 제자인데 어찌 그리 잔인무도한 말을 함부로 하는가?”
“잔인무도? 사돈이 남의 말 하고 있네? 산문 앞에 얌전히 서 있는 사람한테 화살을 그렇게 날리고.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내 재주가 부족했으면 지금쯤 고슴도치가 됐을 거야.”
“나는 병부의 무관으로 명령에 따를 뿐이다. 죄인에게 자비로운 나라는 없다. 감히 황상의 신하들을 죽이겠다고 하는 그대와 비교하지 말라.”
“그래서 끝까지 해 보시겠다고?”
연적하의 몸에서 농염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숨 막히는 살기에 황부승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범죄자에게 굴복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 그의 의지는 연적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젠장.’
이럴 때가 고민이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납작하게 엎드려야 하는데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악인이라면 죽든 살든 끝까지 찍어 누르면 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래서는 살려도 죽여도 찜찜하기만 할 뿐이다.
연적하가 황부승의 생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구름이 서서히 걷혔다.
“장군!”
오 장여(약 15미터) 떨어져 있던 심연수가 저돌적으로 달려왔다.
뒤이어 근처에 있던 오백의 장창병들이 연적하와 황부승을 에워쌌다.
처처척!
장창병들의 긴 창끝이 연적하를 향했다.
“연남천! 장군님의 몸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라! 그러지 않으면!”
심연수는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사실 칼자루를 쥔 쪽은 연남천이라 협박이 통할 리가 없어서다.
연적하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황부승과 장창병들을 둘러보았다.
지휘관을 제압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일이 꼬였다.
‘무림인과 무관은 다른 건가?’
무림인들은 힘으로 찍어 누르면 적당한 선에서 머리를 수그렸다.
정사파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그런데 눈앞의 무관은 달랐다.
버티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이제 어쩐다…….’
연적하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십여 명의 무관들이 나타났다.
힐끔 돌아보던 심연수가 황급히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장창병들이 심연수를 위해 부랴부랴 겨누고 있던 창끝을 하늘로 올렸다.
장창병을 가르며 뛰어간 심연수가 선두의 무관에게 군례를 올렸다.
“장군님! 소장은 천호소 부장 심연수입니다!”
정이품의 도지휘사 신명휘가 씁쓰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찰사 부사 한경대와 죽산현 현령이 사적인 일로 천호소 장졸을 움직인 죄가 드러났다. 지금 즉시 천호소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해라.”
“존명!”
심연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아갔다.
잠시 후 천호소의 장졸들이 일사불란하게 장내를 떠나갔다.
도지휘사 신명휘 일행은 그대로 말을 몰아 산문 앞까지 달려갔다.
연적하는 황부승의 어깨에서 슬그머니 손을 뗐다.
암경에서 풀려난 황부승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는 후다닥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도지휘사 일행의 앞으로 다가갔다.
“장군님.”
황부승이 고개를 숙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모멸감과 수치로 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말에서 내린 신명휘는 황부승을 일견 한 후에 그를 지나쳐 갔다.
황부승은 말없이 대장군 신명휘의 뒤를 따랐다.
내내 굳어 있던 신명휘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바뀌었다.
“연 공자, 말씀은 많이 들었소이다. 호북성의 군권을 책임지고 있는 도지휘사 신명휘요.”
“아, 예, 오룡궁의 제자 연남천이라고 합니다.”
신명휘와 함께 온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가 웃으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게 됐소. 십언의 도사(都事)가 일 처리를 너무 빨리해서 한발 늦었소. 빠른 수습을 위해 대장군까지 모시고 왔으니 용서해 주시오.”
“하하. 용서라니 별말씀을요.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인데.”
신명휘가 황부승을 돌아보았다.
“황 장군, 운이 좋았어. 바쁜 동안에도 조상님을 잘 모신 모양이야.”
황부승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부사와 양 현령이 뭔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니?
그건 술사에게 잡혀 죽을 뻔한 휘하의 장수에게 할 소리가 아니었다.
“장군님, 연…… 공자를 아십니까?”
신명휘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며 나직이 말했다.
“자네도 들어 봤을 텐데. ‘황상의 숨겨진 검’에 대해서.”
“헛, 천외검선?”
황부승은 자기가 말하고도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최근 무장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 있다.
황상의 친위대인 금의위를 외부에서 은밀히 돕는 절대의 고수가 있다나.
천외천의 무공을 지닌 그를 무장들은 ‘천외검선’이라 불렀다.
그저 황실에서 흘린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