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
43회.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대했던 화용독심 남궁연 대신 오라비인 청운검 남궁천이 불쑥 끼어들었다.
“문주님, 동생이 사라진 제자의 이름을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아, 그의 이름은 고학검 등초라고 하네.”
“등 소협이었군요. 그가 사흘 전에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쯤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점심을 먹고 나갔다 들었네.”
“그렇군요. 그리고 또, 비룡문의 소문은 누구에게 들으신 겁니까?”
“문도들 중에 봉황표국을 드나드는 제자가 있네. 거기서 들었다고 하더군.”
꼬박꼬박 답하던 승천문주 일검진천 마곤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화용독심에 무불통지로 소문난 남궁연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정작 그녀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갔다.
게다가 사람을 앞에 두고 ‘동생이 궁금해 할 것 같다’면서 묻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남궁연이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코앞에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검왕 남궁벽까지도 그런 남궁천의 기행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 남궁세가에서는 이런 기괴한 대화가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마곤은 남궁천의 질문에 답을 했다.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물어본 뒤에야 남궁천은 만족한 듯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장시간 동안 마곤은 남궁연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정말 이것으로 된 걸까?
미심쩍은 눈으로 남궁연을 힐끔거리는 마곤의 귀로 남궁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 동생이 조금 내성적이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꺼려 합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대신 나섰습니다. 어지간한 건 다 물어봤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아, 그렇구려.”
마곤이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내성적인 게 아니라 저 정도면 벙어리 수준이었다.
그때 남궁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곤과 남궁벽에게 묵례를 해 보이고 대청을 빠져나갔다. 마치 몸종이라도 되는 듯 남궁천이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붙었다.
갑자기 두 사람이 사라지자 마곤은 멍한 눈으로 남궁벽을 바라보았다.
남궁벽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보셨다시피 딸애가 조금 과묵한 편입니다.”
“아, 예…….”
마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소문에 혹해서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
마곤이 남궁세가를 찾아온 그날, 남궁연은 세가의 사람들을 이곳저곳으로 보냈다. 그녀가 등초의 집을 방문한 건 그다음 날이었다.
남궁연이 타인과 말을 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벙어리는 아니다. 그녀는 등초의 어머니에게 몇 가지를 물은 뒤 등초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등초의 집에서 승천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남궁천은 그런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동생의 사색에 방해가 될까 봐 일절 말을 걸지는 않았다.
남궁연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주변을 세심히 살폈고, 때로는 거리의 노점상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궁천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나뿐인 동생이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남궁연의 걸음이 점점 골목을 벗어나 소호 쪽으로 향했다.
호수를 따라 한참 걷던 남궁연이 멈춰 섰다.
그녀의 표정은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왜?”
남궁천의 물음에 남궁연은 대답 대신 바닥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녀는 무언가를 따라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이지만 동생을 오랫동안 지켜본 남궁천은 알고 있다. 저 표정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든 거라는 것을.
남궁천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화용독심이니 무불통지니 하는 배경에는 무속의 색채도 가미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동생을 타고난 점복술사로 믿는다. 저런 기이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게다.
‘하아! 연아. 조금만 평범하게 가면 안 되겠니?’
추리에 여념이 없는 남궁연과 달리 남궁천의 머릿속은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숲을 헤치고 앞으로 전진하던 남궁연이 갑자기 멈춰 섰다.
뒤늦게 남궁천은 동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뭇가지로 대충 가려 놓았지만 그 아래 있는 것은 분명 시체였다.
아마도 등초이리라.
동생이 실종자를 찾았지만 사인을 규명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남궁천은 나뭇가지를 걷어 내고 등초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흠! 목이 잘려 절명했구나.’
다른 데는 긁히거나 찢어진 상처가 없었다.
손에 검을 쥐고 있는 걸 보니 누군가와 싸우다가 당한 모양이다.
품 안에 있는 호패를 보니 역시나 등초였다.
돈주머니와 호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강도를 만난 건 아닌 것 같다. 하기야 고학검과 같은 고수가 강도 따위에게 당했을 리가 있나.
남궁연은 일각(15분) 정도 오빠의 어깨너머로 시체를 살핀 후에 물러섰다.
그제야 남궁천도 조사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에 난 자상을 보니 도검에 당했구나. 다른 상처가 없는 걸 보면 몇 합 버티지 못한 것 같고. 고학검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고수의 짓이겠지?”
“패산도 황염동.”
남궁천은 동생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왜 죽였을까?”
“…….”
남궁연은 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도대체 황염동이 왜 등초를 죽였는지 알 수 없어서다.
황염동에게 직접 물어보면 답을 해 줄까?
손을 툭툭 털던 남궁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이러다가 괜히 천도문과 승천문의 싸움으로 번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황염동은 천도문, 등초는 승천문의 제자다.
승천문에서 제자의 죽음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남궁세가를 방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비룡문은 어떻게 승천문에 일이 터질 거라는 걸 알았지?”
남궁천의 물음에 남궁연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비룡문의 정체에 대해 예측조차 할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
남직례성.
부양.
관도 위로 열한 명의 남녀가 걷고 있다. 오봉산으로 돌아가는 오봉십걸 일행들이다.
여행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던가.
오봉십걸들의 행색은 낡고 때에 찌들었지만 눈에는 정광이 가득했다. 행동에서도 처음 하산했을 때와 달리 제법 완숙한 강호인의 표시가 났다.
그래서인지 몰려다님에도 불구하고 시비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정사파를 막론하고 오봉십걸들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없어서다.
“형님들, 출출한데 뭐 좀 먹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넷째인 허임달이 삼홍반점이라는 간판을 가리켜 보였다.
풍연초와 탁고명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하던 참에 ‘먹자’는 소리를 들으니 허기가 급격히 밀려왔던 것이다.
삼홍반점은 손님들로 가득했지만 점소이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탁자 두 개에 나누어 앉은 오봉십걸은 차갑게 식은 찻물로 목을 축였다. 이전과 달리 부잡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묵묵한 모습이 제법 무인다웠다.
구밀복검 심양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오봉십걸들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뭘 배웠길래 저렇게 기도가 변했지?’
고작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오봉십걸들의 기도는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었다. 내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지금은 눈에서 안광이 번득인다.
아직 자신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그들이 수련한 기간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속도다. 설사 마공이라고 해도 저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무슨 흡정대법이라도 익힌 사람들 같으니…….’
타인의 공력을 뽑아 먹지 않고서야 저렇게 단시일 내에 내력이 쌓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저들과 매일 함께 생활했기에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인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저들은 연적하에게 배운 백자구결 하나로 저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나도 좀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심양각은 옆자리에 앉은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이내 심양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이미 내공술을 익히고 있다. 게다가 백자구결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느낌상 자신이 익힌 내공과 맞지 않았다.
자신이 익힌 내공은 사공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봉십걸들의 곁에 있으면 뒷머리가 묵직해지면서 불편해진다. 서로 상극이라 그렇다.
‘아서라, 괜히 욕심 부리다가 내공만 깨진다.’
오십 년 적공을 이제 와서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각쯤 지나자 각종 요리가 두 개의 탁자 위에 가득히 쌓였다.
오봉십걸들은 지금까지의 품위를 내버리고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음식에 달라붙었다.
오봉십걸들이 한창 쩝쩝거리며 음식에 빠져 있을 때다.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반점 안으로 들어왔다.
쪼르르 달려간 점소이가 손님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로 그들을 안내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그들은 습관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중 하나가 심양각을 보고는 옆에 앉은 장년인에게 속삭였다.
“고 대주님, 저 늙은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누구?”
의천검객 고척이 찻잔을 입에서 떼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 삼절검 이상문이 심양각을 가리켰다.
고척이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노인은 심양각을 닮았다. 하지만 오 년쯤 전에 만났던 심양각과는 약간 달랐다. 심양각은 하남성에서 이름을 떨치는 마두로 가만히 있어도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런데 지금 저기 떨어져 있는 노인의 얼굴은 제법 온화해 보였다. 무림인 특유의 날카로움은 있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사악함이 없다.
그가 정말 심양각일까?
고민하던 고척이 이상문에게 말했다.
“자네가 가서 알아보게. 일행이 있는 것 같으니 문제를 일으키지는 말고.”
“예.”
이상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양각을 향해 걸어갔다.
아까부터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심양각은 자리가 불편한 듯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정의맹의 고수들이 자신을 알아본 것 같아서다.
보다 못한 다섯째 곡산청이 물었다.
“심 노제, 잘 먹다 말고 갑자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러나?”
“그게 속이 좀 더부룩해서…….”
“그럼 그만 먹고 쉬게. 노숙을 오래 하니 이젠 몸이 버티질 못하는가 보네. 쯧!”
‘이놈아, 너도 정의맹에 쫓겨 봐라.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나.’
심양각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차를 홀짝거렸다.
그때 이상문이 심양각의 근처에 와서 정중히 말했다.
“실례합시다. 본인은 정의맹 풍운대의 삼절 이상문이라 하오.”
‘정의’이라는 말에 오봉십걸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녹림의 최대 적은 정의맹이다. 상방과는 협상이 되지만 정의맹은 아니다. 그들과는 거래 자체가 성립되질 않는다. 그들은 마치 녹림도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임기응변에 뛰어난 넷째 허임달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아! 정의맹의 분이셨군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오 년 전에 하남에서 구밀복검 심양각이라는 마두를 놓친 적이 있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노인이 심양각을 닮은 것 같아서……. 저자가 심양각이 맞다면 우리 풍운대에 넘겨주시기를 바라오.”
허임달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심양각을 돌아보았다.
심양각은 똥이라도 씹은 듯한 얼굴로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머뭇거리던 허임달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아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는 심 뭐라는 마두가 아닙니다. 그의 이름은 방통으로 우리 비룡문에서 궂은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방 노제, 뭐하나. 정식으로 인사 드리지 않고.”
그러자 심양각이 엉거주춤 일어나 읍을 해 보였다.
“방통이라고 합니다.”
이상문은 날카로운 눈으로 심양각을 쏘아보았다.
‘흠! 아무리 봐도 심양각인데…….’
하지만 계속해서 심양각이라고 밀어붙이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일단 사내가 노인을 방통이라 부르며 지시를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심양각은 저렇게 고분고분한 인간이 아니다.
심양각과 같은 마두가 저런 남자의 지시를 따른다고?
그거야말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다. 심양각은 누구보다 약육강식을 신봉하는 자로 자신보다 하수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