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9
439회. 혹시 알아요? 생활력이 강할지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부지런히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안찰사 쪽의 일방적인 이야기이니 걸러 들을 부분도 분명히 있으리라.
죽산현 현령의 아들 양사강이 얻어 맞고 피해자 행세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끙! 그렇다 해도 돈을 강탈하지는 말았어야 하는데. 아직 녹림의 버릇을 못 버렸구나.’
만약 그런 것이라면 한 번쯤 단단히 주의를 줄 생각이다.
무당파 제자라는 사람이 밖에서 강도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니까.
돈보다는 상해를 입힌 일이 중하니 그 부분을 좀 더 명확히 듣고 싶었다.
“허면 그 젓가락도 그때 일어난 일입니까?”
“아니오. 그 뒤로 무한의 음식점에 있는 연남천을 호위가 목격하고 장 공자에게 알렸던 모양이오. 장 공자는 그를 강도라 생각해 빈객들과 함께 찾아가 따졌다고 하오. 그때 연남천이 빈객들을 제압하고, 장 공자에게 손을 썼소. 저항하지 못하는 장 공자의 양어깨에 구멍을 내고, 남근에 젓가락까지……. 후우!”
안찰사 부사 구양수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뒤 계속해서 말했다.
“마침 함께 출동했던 무한포방 관인들의 증언도 같았소. 이제 어쩌시겠소? 그런 연남천을 내어놓겠소? 아니면 싸고돌다가 그와 함께 피를 보시겠소?”
“…….”
영결상인은 가타부타 답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그와 같았다면 대체로 거짓은 아닐 것이다.
‘연남천은 녹림에도 발을 걸쳤지만 악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젓가락 부분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꽉 막혔다.
영결상인이 망설이자 구양수가 넌지시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모르겠지만 안찰사이신 장 대인의 사촌 누이가 미인(美人)이시오. 황실에서 나서면 무당파도 화를 면치 못할 게요. 장 대인께서 대로하기 전에 조용히 연남천을 내어 주는 것으로 하십시다.”
영결상인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이건 무당파에 대한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당파가 무림에서 위상이 높다 해도 황실 눈에는 민간의 작은 방파에 불과했다.
황실에 찍혀 자금줄이 막히면 세력은 자연히 위축된다.
영결상인으로서는 일생일대의 고민거리를 떠안게 된 셈이나 마찬가지.
그의 시름이 깊어졌다.
구양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영결상인을 보았다.
고작 속가제자의 처분 하나를 두고 장문인이 저렇게 고민할 줄은 몰랐다.
노회한 그는 분위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장문인의 고민은 그를 잡아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설득함에 있다는 것을.
‘설마 무당파와 속가제자 하나를 맞바꿀 셈인가?’
어쩌면 안찰사와 척을 진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관부에서 무림 방파를 대놓고 견제한 적이 없으니까.
상방이었다면 미인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알아서 바짝 엎드렸을 것다.
그러나 무림 방파는 위태로움을 경험하지 않아서 처신이 미숙한 것 같다.
“흠! 보아하니 쉽게 결정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안찰사께 그리 전하리다.”
“…….”
구양수가 짐짓 대화를 끝낼 듯했음에도 영결상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연남천이 누군가.
오룡궁 최고의 술사이며, 녹림의 태상호법이다.
현실적으로 그를 잡을 수도 없거니와,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내외적으로 손가락질만 받게 될 것이었다.
강물과 우물물의 비유가 있으리만큼 무림인들은 관부의 간섭을 싫어한다.
그런데 무당파에서 제자를 잡아다 바친다?
제자가 대역 죄인이 아닌 이상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끝내 영결상인이 침묵하자 울컥한 구양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장문인의 지금과 같은 태도를 안찰사 대인께 그대로 전하겠소. 연남천이라는 무뢰한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것도 같구려.”
이건 무당파에 대한 비난이었다.
영결상인은 한숨만 푹푹 내쉴 뿐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대답도 구양수의 성에 차지 않을 게 뻔해서다.
구양수가 객청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영결상인이 급히 뒤따라가려 했지만 수행원들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안찰사 부사 구양수는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얼굴로 무당파를 떠났다.
안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영결상인의 주변으로 무당파 원로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영결상인은 조용히 집무실로 돌아갔다.
지금은 갑자기 휘몰아친 바람이 잦아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
산서성.
신성현(墓城縣).
신시(오후 3시) 무렵.
이두마차 한 대가 마을로 접어들었다.
원한 하늘과 좌우를 살피던 마부가 애매한 얼굴로 뒤쪽을 힐끔거렸다.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이렇게 큰 마을을 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젠장, 얼어 죽겠네.’
마차 안도 춥겠지만 밖은 정말 지독했다.
쉬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이심전심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마차 안에서 젊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날도 추운데 다관(茶館)이라도 찾아봐요!”
“예, 예!”
마부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행히 마차 주인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 하루를 이 마을에서 묵겠다는 소리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급한 일이 아닌 이상 한겨울엔 쉬엄쉬엄 가는 게 말과 사람 모두를 위해 좋다.
다관 여월(如月).
연적하와 공취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차를 마시던 손님들이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한 번씩 입구쪽을 힐끔거렸다.
연적하와 공취산이 빈자리를 찾아 앉자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는 분들 같은데, 어디서 오셨어요?”
다관의 여자는 자연스럽게 말부터 걸었다.
“정주요.”
연적하의 말에 여자, 주성희는 배시시 웃었다.
고지식하게 답하는 걸 보니 아직 세상에 찌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용정차, 벽라춘, 모봉차, 운무차 등이 있어요.”
“나는 용정차요.”
연적하는 귀에 익은 용정차를 고르고 공취산에게 턱짓을 해보였다.
“나도 같은 걸 마시겠다.”
“용정차에는 연심, 기창, 작설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
두 사람이 멀뚱거리자 주성희는 짧게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차를 딴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달라요. 청명에 딴 여린 새싹이 연심, 곡우에 따면 기창, 그리고 입하에 딴 게 작설이지요.”
물론 채취한 찻잎의 위치나, 모양 등에 따른 구별도 있지만 그건 생략했다. 절기에 따른 구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 난 연심.”
“난 작설로 하겠다.”
‘연심’을 선택한 연적하와 달리 공취산은 ‘작설’에 마음이 갔다.
인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자신과 가장 늦게 딴 찻잎이 어울릴 것 같아서다.
“주루로 갈 줄 알았는데 웬 찻집이냐?”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아니잖아. 교구현까지 칠 일이면 간다는데.”
풍지산이 교구현에 있으니, 칠 일 후 공취산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유명교주는 그를 살려 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본래 술을 즐겨 마시지도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차분해져서 술 생각이 달아났다.
“뭐 하는 사람들 같으니?”
중년 여주인의 질문에 주성희는 새로 온 두 손님을 힐끔 쳐다보았다.
청년과 노인. 소지한 짐이 없어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차 하나로 온 걸 보면 상인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잘 모르겠어요.”
“젊은 남자가 좀 순해 보이지?”
“험한 일을 안 해 봤는지 손이 곱상하더라고요.”
“저런 남자는 집안이 아주 좋아야 돼. 안 그러면 괜히 여자만 고생시킨다니까.”
“혹시 알아요? 생활력이 강할지.”
두 여자가 손님을 두고 뒤에서 노닥거릴 때 다관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앙.
녹수방의 외당 당주 좌사는 다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갔다.
손님들 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 보니 다른 용무가 있는 게 분명 했다.
점원과 수다를 떨던 여주인이 급히 그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제가 이곳 주인인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 다관에서 우리 녹수방의 보호를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맞느냐?”
“거절했다기보다는 이미 다른 곳에서 관리를 받고 있어서요.”
“청로방을 말하는 것이냐.”
“예.”
여주인이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무림 방파 간에 상권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하필 자신의 다관이 걸린 모양이다.
“우리 녹수방은 유명교로 들어갔다. 그러니 너는 청로방과 거래를 끊어라.”
“예?”
여주인이 황당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그게 다관이 청로방과 거래를 끊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고?
“호천맹이 유명교에 굴복한 것은 너도 알고 있겠지?”
“예? 예…….”
“청로방은 호천맹 소속이고, 우리 녹수방은 유명교다. 그렇다면 청로방과 녹수방 중에 누가 위냐?”
“녹수방인가요?”
“그렇다. 그러니 너의 다관은 녹수방의 보호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궤변이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여주인은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 행여나 다관이 피해를 입을까 봐 아예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다관을 보호하는 곳이 녹수방이든 청로방이든 상관없었다.
“대협, 제가 녹수방에 보호비를 내면 청로방에는 내지 않아도 되나요?”
“그렇다.”
“청로방에서 인정하지 않으면요?”
“그들이 찾아와 보호비를 요구하면 녹수방에 알려라. 우리가 정리해 주겠다.”
옆에서 듣고 있던 주성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협, 그보다는 녹수방에서 직접 청로방에 말해 두는 게 빠르지 않나요?”
“험, 청로방에 말해도 그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예? 청로방에서 다관에 계속 보호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들이 찾아오면 우리 녹수방을 부르라고.”
이번에는 여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녹수방이 우리 다관에 보호비를 요구하지 않게 해 주시는 거죠?”
“아무렴. 그렇다마다. 그렇게 해 줄 테니 계약서에 수결을 해라.”
좌사가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여주인 앞에 내밀었다.
여주인은 내키지 않았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계약서를 받았다.
거절하면 바로 행패를 부릴 태세인지라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막 계약서에 수결하려고 할 때다.
“이야! 저걸 또 믿네. 재밌다 재밌어.”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흠칫 놀란 여주인이 붓을 내려놓았다.
수결이 중단되자 좌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와 함께 왔던 녹수방 방도들이 우르르 몰려가 연적하의 주변을 에워쌌다.
연적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공취산에게 말했다.
“내가 객잔을 할 때 손님들에게 이런저런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 그중에 하나가 저런 거야. 방파들끼리 해결을 봐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으면 저런다네? 저 계약서를 쓰면 다관 주인은 양쪽에 돈을 바쳐야 돼. 두 방파가 지켜 주니 시비 거는 놈들은 없을 거야. 돈을 못 벌어 그렇지.”
그의 말에 여주인이 황망한 눈으로 좌사를 보았다.
좌사는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중간에 끼어든 청년의 자리로 이동했다.
“너, 뭐 하는 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