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85
485회. 빛 좋은 개살구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이른 아침 연무장.
남천 연적하에게 월아, 금아가 쉬지 않고 덤벼들었다.
비무임에도 불구하고 날 선 진검을 사용하다 보니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나른한 연적하의 표정을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그에 반해 월아와 금아는 바짝 긴장한 얼굴이다.
심통의 간청으로 이루어진 비무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연적하의 검이 월아와 금아의 검을 한 차례씩 두드렸다.
챙! 챙!
가공할 검력에 휘말린 월아와 금아의 몸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그동안 연적하는 검을 갈무리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월아와 금아가 재빨리 납검한 뒤에 허리를 숙였다.
“사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무장 밖에서 구경하던 구천노도 심통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공자님, 어떻습니까? 그래도 쓸 만하지요?”
스승의 질문에 월아와 금아가 눈을 반짝이며 연적하를 보았다.
“그럭저럭.”
애매한 답에 월아와 금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쁜 평가는 아니지만 칭찬이라 보기도 어려워서다.
“사조님을 상대로 그 정도 했으면 잘한 게다. 가서 너희들끼리 연공하거라.”
“예.”
월아와 금아가 한목소리로 답한 뒤 연무장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자님, 저도 한 수…….”
“안 돼. 오늘은 아침에 가 볼 데가 있어.”
“예? 어디를 가시게요?”
“백운도관에서 꼭 방문해 달라고 해서 오늘 간다고 했어.”
“백운도관요?”
“여강현에 있는 도관인데 어려움이 있다나 봐.”
“무당파의 도관인가요?”
“당연하지. 아니면 내가 왜 거길 가? 동문이니까 살펴 주는 거지.”
“그러시군요. 참! 유명교에서는 아직 답이 없습니까?”
“아직 없어. 왕복하는 데만 최소한 석 달이니까 조바심 내지 마.”
“그래도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네요?”
“하긴 벌써 팔월이니. 시간 참 잘 간다.”
“흐흐, 신혼이시니 시간 가는 줄 모르신 거겠지요. 부럽습니다.”
“부러우면 심 노인도 장가를……. 아, 그건 안 되겠구나. 가뜩이나 얼마 남지도 않은 사람 훅 갈라.”
“거참. 가긴 어디를 간다고 그러십니까. 제 검은 머리를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심통이 윤기 나는 자신의 흑발을 가리켜 보였다.
이젠 정말 ‘반로환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심통의 머리카락은 검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염소 수염까지도 새까맸다.
“그래서 목숨 걸고 장가가 보겠다고? 하여간 이기적인 늙은이라니까.”
“누, 누가 장가를 간다고 했습니까?”
“아닌데 왜 말을 더듬어? 이 응큼한 늙은이야.”
연적하가 걸음을 떼어 놓았다.
심통이 그런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두 사람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주고받으며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
여강현.
백운도관.
사시 정(오전 10시).
염소수염의 노인과 청년이 백운도관을 방문했다.
심통과 연적하다.
두 사람이 열린 문을 통해 도관 앞마당으로 진입하자 도사 하나가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오늘은 외부인의 참배를 받지 않습니다만.”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나섰다.
“안에다가 남천 연 공자님께서 오셨다고 전하게.”
남천 연 공자라는 말에 도사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남직례성에서, 그것도 무당파 산하의 도관에서 ‘남천’이라는 도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남천 도우(道友)이십니까? 저는 백운도관의 소해라고 합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소해 도사는 기별을 넣는 게 아니라 직접 안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시간을 절약하게 된 연적하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해 도사가 앞장서자 연적하와 심통이 그 뒤를 따랐다.
연적하와 나란히 걷던 심통이 슬쩍 물었다.
“공자님, 저 도사가 왜 공자님께 ‘도우’라고 한 겁니까?”
그건 문파가 다른 도사들끼리나 사용하는 호칭이다.
무당파 도관에서 왜 연적하를 문외자처럼 대하는 건지 모르겠다.
“배분을 계산하는 게 어려운가 보지.”
“왜요?”
“나는 본산제자가 아니라 속가제자잖아. 그런데 스승은 ‘오룡칠사’의 한 분이고. 어떻게 불러야 할지 헷갈릴 거야. 그러니 ‘도우’라고 퉁치고 나간 거지.”
앞서가던 소해 도사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배분 관계가 애매해서 그랬는데 그걸 지적당하니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관주의 집무실.
백운관주 차산 도사는 연적하와 심통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남천 사제, 나도 ‘오룡칠사’님들께 술법을 배웠으니 사제라고 해야겠지? 나 좀 도와주게.”
“무슨 일인데요?”
연적하는 갑자기 늙은 사형이 생겼음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차산 도사가 ‘오룡칠사’에게 직접 술법을 배웠다면 사형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도관을 자주 찾아 주시는 귀빈이 계시네. 합비의 도사(都事, 정 7품)인 유여흥 대인이신데, 그분 아들에게 고약한 귀신이 붙어 있네. 어찌나 기운이 강하던지 내가 축귀(逐鬼)를 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더라고.”
“아…….”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축귀를 부탁할 모양이다.
그거라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할 수 있다.
석경장에 처박힌 뒤로 적선 수행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적하의 속도 모르고 차산 도사는 계속해서 우는소리를 했다.
“그런데 그분이 최근에 ‘천운도관’을 기웃거리신다는 말이 있어서 말일세. ‘천운도관’은 전진파 제자가 세운 도관인데, 무당파가 전진파에 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유명교와의 일로 정신이 없겠지만…….”
“예. 도와 드릴게요.”
“응? 지금 뭐라고 했나?”
주절주절 앓는 소리를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차산 도사가 되물었다.
“도와 드리겠다고요.”
“헉! 정말인가? 그래 주면 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비록 백운도관이 무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매일 사제를 위해 상향(上香)도 하고…….”
연적하가 길어지는 그의 말을 끊었다.
“괜찮아요. 동문지간에 무슨 은혜요. 그래서 그 유 대인의 아들은 지금 어디 있는데요?”
“아직은 자택에 있을 걸세. 내 유 대인께 아들을 데리고 나오시라 청해 보겠네. 오가는 데 반 시진(1시간) 정도 걸리니 그동안 차라도 마시고 있게.”
“그러세요. 그럼, 오면 불러 주세요.”
“고맙네.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마음이 급해진 차산 도사는 체통도 잊고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람을 보내러 나간 차산 도사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냉기가 빠진 미적지근한 차를 마시던 심통이 무료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이 축귀도 하십니까?”
“어, 왜?”
“술법이나 익히시지 축귀는 왜 배우셨습니까?”
심통은 평소 축귀를 ‘엉터리 도사들의 돈벌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무당파에서 그걸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연적하까지 그 대열에 낄 줄은 몰랐다.
“축귀가 어때서? 귀신에게 잡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건데.”
그의 대답에 심통이 실실 웃었다.
“흐흐, 공자님도 원. 애들도 아니고.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건 다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늙은이 같으니. 귀신이 없으면 상제(上帝)도 없고, 등선(登仙)도 없어. 뭘 알고 떠들어.”
“에이, 귀신이랑 상제가 같습니까? 거기다가 등선은 또 왜 가져다 붙이십니까? 완전히 다른 얘기구먼.”
“귀신도, 상제도, 우화등선도,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이야기라고. 심 노인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믿겠다는 거잖아.”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믿겠다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심통은 끝내 의견을 꺾지 않았다.
아무리 연적하를 모시고 있어도 아닌 건 아니었다.
‘허어! 무당파 도사 놈들이 멀쩡하던 우리 공자님을 버려 놓았군.’
전에는 귀신의 귀 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이젠 무려 축귀까지 하신단다.
답답해진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을 때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차산 도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사제! 유 대인 가족들이 아들을 데리고 천운도관으로 갔네! 우리도 서둘러 천운도관으로 가 보세나.”
“천운도관에는 왜요?”
“그들이 축귀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해야 할 게 아닌가. 축귀에 실패하고도 요설로 속여 넘길 수 있으니까. 그래 놓고 천운도관이 백운도관보다 낫다고 하면 큰일 아닌가.”
“그렇기는 하네요.”
축귀에 성공한다면야 다행이지만 차산 도사처럼 그들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참관하는 게 나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백운도관의 도사들과 함께 천운 도관으로 향했다.
***
여강현.
천운도관.
관주 집무실.
우암 도사가 ‘합비 도사 유여흥과 그 가족이 왔다’고 하자 천운도관 관주 선인자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귀신 들렸다는 아들도 함께 왔던가?”
“장정들이 한 소년을 꽉 붙들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쩔쩔 매는 얼굴을 보면, 틀림없이 유 대인 아들일 겁니다.”
“그렇게 망설이더니 결국 우리 쪽으로 왔구먼. 하늘이 우리 천운도관을 돌보심이야.”
우암 도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차산 도사도 실패할 정도로 강한 악귀인데, 구마(驅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우리에게는 ‘백팔금광주(百八金光珠)’가 있지 않은가.”
말과 함께 선인자가 탁자 위에 금색으로 빛나는 염주를 올려놓았다.
“‘백팔금광주’라면 세상없는 악귀라 해도 한길로 왔다가 열길로 달아날 걸세.”
“그렇기는 합니다만…….”
우암 도사가 말을 흐렸다.
백팔금광주는 출처가 불분명한 법보였다.
‘부처님 진신사리로 만들었다고 하긴 하는데…….’
저렇게 금색으로 빛나는 사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하나 정도면 그런가 보다 할 텐데, 밤톨만 한 염주 백팔 개가 죄다 금빛으로 번쩍인다.
보기는 좋은데, 왜 자꾸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렵게 모신 귀인의 가족이니 잘 돼야 할 텐데…….’
우암 도사의 염려와 달리 축귀를 위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청각.
때가 되자 선인자는 ‘축향신주’를 외우며 청동향로에 향을 피웠다.
향연(香煙)이 삼청(三淸)의 신인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의 신상을 뿌옇게 감쌌다.
이윽고 선인자는 ‘금광신주’를 세 번 외웠다.
“……금광속현, 복호진인. 급급여율령(金光速現 覆護真人 急急如律令)!”
그는 벽사(僻邪)의 기운이 전신에 가득 깃들자 우암 도사에게 손짓을 보냈다.
우암 도사가 천운도관의 도사들과 함께 소년을 번쩍 들고 제단으로 전진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백운도관의 도사들이 삼청각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천운도관의 도사들은 퇴마 의식에 집중하느라 불청객들을 막지 못했다.
“끄아아아!”
도사들에게 들려 나가는 소년의 입에서 섬뜩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년은 미친개처럼 허연 거품을 입에 물고 버둥거렸다.
선인자는 턱을 꼿꼿이 세우고 백운도관 도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축귀 의식이 시작됐으니 거기 앉아서 구경이나 하라는 눈빛이다.
차산 도사는 어차피 그럴 요량으로 온 터라 군말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운도관 도사들이 조용히 앉자 천운도관 도사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입에서 피거품이 뭉글뭉글 나오자 선인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우암 도사와 천운도관의 도사들은 쉬지 않고 ‘해원결주’의 주문을 외웠다.
그들은 이것으로 부디 망자의 원한이 풀어지기를 바랐다. ‘해원결주’의 효과일까?
소년의 발작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선인자는 재빨리 ‘백팔금광주’를 소년의 목에 걸었다.
“크크큿!”
순간, 축 늘어져 있던 소년이 웃으며 팔과 다리를 힘차게 내질렀다.
“어이쿠!”
“억!”
소년의 사지를 누르고 있던 우암 도사와 천운도관 도사들이 뒤로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