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98
498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연적하가 십두마병들을 가르고 앞으로 달려갈 때, 청운검 남궁천은 십두마병 하나에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내상을 입은 남궁천에게 불리한 싸움이건만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십두마병이 남궁천의 명성과 검술에 눌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십두마병의 경우 다른 마두들과 달리 위기의 순간에 몸을 사린다.
죽어서 마물이 되기를 극도로 꺼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남궁천은 검술 하나로 상대를 몰아세울 수 있었다.
급기야 검의 와류(禍流)에 휘말린 십두마병이 박도를 손에서 떨어트렸다.
가가가각! 챙-.
남궁천은 검 끝으로 십두마병의 어깨를 찔러 무력화시킨 뒤 연적하에게 달려갔다.
그때 연적하가 팔황신모에게 청사를 날렸다.
쉬이익-.
팔황신모가 흠칫 놀란 얼굴을 할 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그 순간 화살처럼 날아가던 청사가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가늘게 검명을 울었다.
우웅-.
무리(武理)를 초월한 그 모습에 놀란 남궁천은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천하십대고수들이라 해도 타인의 이기어검을 멈춰 세우지는 못한다.
연적하와 같은 고수의 이기어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기이한 복식의 사람은 그걸 간단하게 해냈다.
동생의 납치로 끓어올랐던 피가 빠르게 식었다.
잠시 대화가 오간 후 스스로를 ‘금사(金莎)’라고 한 사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연적하의 청사가 도리어 주인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만약 연적하의 대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비명횡사를 했을 것이다.
곧이어 청사를 회수한 연적하가 정체불명의 괴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의 성격상 끝을 보려는 분위기다.
남궁천에게는 그것이 동귀어진으로 보였다.
그래서 죽기보다 싫었지만 흥분한 연적하를 잡았다.
지금 팔황신모와 괴인에게 덤벼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하니까.
“적하야, 그만해. 여기서 더 나가면 너뿐 아니라 석경장의 사람들도 다친다.”
“하지만 형님. 저 마녀가 누님을……. 누님이 사라졌다고요.”
“그래도 죽은 건 아니잖아. 하지만 계속 싸우면 석경장 사람들이 죽는다.”
“…….”
연적하가 투기를 거두자 청사에 담겨 있던 검광이 스르륵 사라졌다.
금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척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림자의 안색을 살피던 팔황신모가 남궁천에게 말했다.
“잘 생각했다. 오늘처럼 경사스러운 날에 피를 볼 필요는 없겠지. 약속대로 오늘은 너희를 모두 보내 주겠다. 그를 데리고 물러가도록 해라.”
남궁천이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누르며 물었다.
“그런데 내 누이는 어떻게 된 거요? 분명히 저곳에 있는 걸 보았소만.”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순간 연적하가 소리쳤다.
“마녀야! 누님은 죽었느냐 살았느냐!”
“살아 있을 게다.”
“얼버무리지 말고 확실히 말해!”
팔황신모가 그 이상은 자신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연적하는 팔황신모의 눈을 응시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진실이었다.
“무슨 술법을 쓴 거냐.”
“초혼…….”
“거기까지. 산 자여, 너희는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 떠나라.”
금사가 팔황신모의 말을 막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연적하를 쳐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온전한 신격(神格)이 아닌지라 자칫 자신도 소멸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팔황신모는 강림자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금사’라고 이름을 밝힌 신의 뜻이 그렇다면 따라야 했다.
연적하는 금사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인지 귀신인지조차 모르겠다.
눈에 보이고 말을 하니 쳐다보지, 실상 그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적하는 말없이 돌아섰다.
계곡 입구에는 어느새 백두마군들과 십두마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계곡을 빠져나가자 구천노도 심통과 삼보절명 당운망, 월아, 금아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전신에 피 칠갑한 걸 보면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온 모양새다.
심통이 불안한 얼굴로 계곡 안쪽을 힐끔거렸다.
“공자님, 가모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몰라.”
“모른다고요?”
연적하가 답하지 않자 심통은 남궁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궁천이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교주의 술법에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만 가르쳐 주지 않더군요.”
“그럼 교주의 목을 비틀어서라도…….”
“계곡에 교주보다 뛰어난 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살아서 풍지산을 내려갈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인 상황입니다.”
“…….”
‘교주보다 뛰어난 고수가 있다’는 말에 심통은 입을 꾹 다물었다.
교주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보다 뛰어난 고수라니?
‘그렇게 엄청난 고수가 연 공자님과 청운검을 곱게 놓아주었다고?’
심통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굴곡진 인생 경험에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다.
***
선녀암 신당.
늦은 밤.
팔황신모가 조심스레 강림자 금사에게 물었다.
“제가 어찌 불러야 할지요?”
“금사라 해라.”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것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님의 진명(眞名)이신가요?”
“왕들의 하늘에서 나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은 것이냐?”
금사가 야릇한 눈으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이름은 그것의 본질을 알게 해 주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심할 경우 존재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다.
팔황신모가 진명을 거론한 것은 그걸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호기심일까?
“저는 오랜 세월 금사님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금사님께서는 저의 소원이 무엇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팔황신모가 떠보듯 금사를 바라보았다.
“불로불사. 필멸자들의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소원이지.”
팔황신모의 눈이 빛났다.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 맞는 것 같다.
그 신이 아니라면 이토록 당연하다는 듯 말하지 못했으리라.
“필멸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아침 이슬과도 같지요. 저는 금사님의 영원한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나의 진명은 킨샤사. 우샤스 킨샤사라 한다.”
팔황신모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드디어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감동은 크지 않았다.
팔황신모는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빛 아래 그림처럼 서 있는 흑기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삼두견은 소멸했지만 흑기사는 연적하의 공세에서 살아남았다.
그것만 보아도 흑기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흑기사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는 왜 말을 못 하는지 궁금합니다.”
금사가 흑기사를 힐끔 보고 답했다.
“‘헬리고스’가 왔군. 그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격(格)이 낮아서다.”
“격이라고 하심은?”
“너는 ‘왕들의 하늘’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필멸자들은 열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를 수 없는 곳이니라. 몇 개의 우주를 건너야 하는 아주 먼 곳이지.”
“아…….”
팔황신모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몇 개의 우주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역오망성은 삼십육천의 존재를 불러오는 신비의 지식이다. ‘헬리고스’로서는 원통할 일이지만 제물과 법력의 한계로 신격의 일부만 강림한 것 같다.”
“그도 왕인가요?”
“‘왕들의 하늘’은 세 분의 천신(天 神)과 여덟 왕, 그리고 아홉 군주가 다스리는 곳이다. ‘헬리고스’는 군주의 위(位)에 도전하는 존재이지.”
팔황신모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군주도 아니고 고작 군주의 위에 도전하는 존재라고?’
그런 격의 일부가 강림했을 뿐인데도 저처럼 강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 ‘왕들의 하늘’이란 어떤 곳이기에!
‘그렇다면 당신의 위치는 어디입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런 팔황신모의 생각을 읽은 금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몸과 천자마는 아홉 군주 중에 하나다.”
거론하지도 않은 천자마의 이름까지 나오자 팔황신모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천자마를 아십니까?”
“그와 나는 경쟁하는 관계다.”
“경쟁요? 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후훗! 놀랄 것 없다. ‘왕들의 하늘’에서는 모두가 경쟁을 하니까. 신격을 가진 존재는 군주가 되기 위해, 군주들은 왕이 되기 위해, 왕들은 천신이 되기 위해.”
“경쟁에서 낙오되는 일도 있나요?”
“물론이다. 낙오 끝에 신격을 잃고 타락한 왕과 군주도 부지기수니라.”
“신격을 잃고 타락하면 어떻게 됩니까?”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지. ‘왕들의 하늘’에 있는 반신 급의 괴물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
팔황신모는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왕들의 하늘’이 어떤 곳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았다.
문득 품 안에 있는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이 떠올랐다.
‘욕계(欲界)?’
왕재천(王在天), 즉 ‘왕들의 하늘’은 아직 욕망을 떨쳐 버리지 못한 자들의 세계인 모양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불로불사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은 득도하여 윤회를 벗어나느니 어쩌느니에는 관심이 없다.
금사의 말대로라면 ‘왕들의 하늘’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곳이다.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라니!
“천자마는 제가 염마왕의 권속이라 ‘왕들의 하늘’로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금사께서는 방법이 있으시겠지요? 어떻게 해야 ‘왕들의 하늘’로 갈 수 있습니까?”
대답 대신 금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향기를 음미했다.
필멸자들이 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좋은 물건이다.
팔황신모가 말을 이었다.
“저를 제물로 드리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염마왕은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다. 네 영혼이 저승에 매여 있다면 삼십육천으로 갈 수 없다.”
“정말 제 영혼이 저승에 매여 있습니까?”
팔황신모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던 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염마왕의 권속이니 저승에 속해 있다. 설사 득도(得道)를 하더라도 저승을 벗어나지 못한다. 천자마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니라.”
“득도를 해도 저승을 벗어나지 못한다고요?”
팔황신모가 기막힌 얼굴로 금사를 보았다.
득도도 불가능한 일이건만, 득도를 해도 저승이라니?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염마왕도 저승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의 권속인 네가 무슨 수로 저승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저승을 지나야 비로소 삼십육천에 이르니……. 지금의 너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지.”
“하지만 금사님께는 방법이 있으시죠?”
팔황신모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금사를 보았다.
금사가 신이라 해도 현세에 강림한 이상 자신을 거스르지 못한다.
삼두견은 물론 신격을 가졌다는 흑기사도 그랬다.
역시나 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만, 네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금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지혜의 신’이자 ‘아홉 군주’의 하나인 ‘우샤스 킨샤사’의 뒤틀린 욕망이 마각을 드러냈다.
불로불사에 눈이 먼 팔황신모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왕들의 하늘로 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영혼을 염마왕에 저당 잡히고, 사문까지 몰살시켰는데 무슨 일이든 못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