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4
514회.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지
달에 대한 연적하의 소감(所感)을 공지유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달이 하나일 수는 없잖아요.”
공지유에게 달은 언제나 세 개였기에 하나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연적하는 삶의 자리가 다름을 알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그가 수긍했다고 생각한 공지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거 아세요? 저 달이 세 분의 천신을 의미한다는 거?”
“그래요?”
“모르셨구나.”
“천신이 셋 있다는 건 알아요.”
‘셋 있다’니 어째 좀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공지유는 티 내지 않았다.
“가장 왼쪽이 구전범천, 중앙이 광명진천, 오른쪽이 마혜수라천이에요. 봄에는 구전범천이 가장 밝고, 여름에는 광명진천, 가을에는 마하수라천이 밝아요.”
“겨울에는요?”
“겨울에는 세 천신이 모두 빛을 잃어요. 그래서 그런지 구주의 겨울은 길고 혹독해요. 이러다 다 얼어 죽겠다 싶을 즈음에야 슬며시 봄이 찾아온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마하수라천이 가장 밝은 거 맞죠? 그럼 지금이 구주의 가을인가요?”
“훗! 절기도 모르고 사셨나 봐요? 가을 맞아요. 질 좋은 ‘영지 선초’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죠. 다행히 이번에는 우리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늘 이렇지는 않아요. 대부분 허탕으로 끝나죠. ‘영지 선초’는 인연이 닿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거든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빈털터리인 천태종 제자 장천세만 봐도 영지 선초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성공도 성공이지만 운이 좋았어요. 사실 연 소협이 아니었다면 ‘영지 선초’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목숨도 잃었을 거예요.”
연적하가 공지유를 힐끔 보았다.
강도나 다름없는 장천세를 욕할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종문 제자가 두려워서 아예 언급을 회피하는 걸까?
궁금해진 연적하가 슬쩍 운을 뗐다.
“종문 제자들도 따지고 보면 무도인이잖아요? 그런데 장천세는 왜 그렇게 못됐대요? 천태종이 좀 문제가 있는 종문인가요?”
그런데 공지유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원래 범인(凡人)이 금지된 영물을 죽이면 종문에서 그렇게 해요. 천태종은 종문 중에서 덕망이 높아요. 진짜 무서운 종문은 황천주에 있는 광염종이죠. 광염종은 똑바로 쳐다만 봐도 죽인다고 하더라고요.”
“허! 쳐다본다고 죽여요? 무슨 무도인이 마교 같은 짓을 한데?”
“마교는 뭔가요? 마천에 있는 종문 같은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 그렇구나.”
공지유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구주’의 ‘종문’은 모르면서 ‘마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니 신기한 사람이다.
공지유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연적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종문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어요?”
“어떤 행동요?”
“자기들 마음대로 빼앗고 죽이잖아요.”
“마음대로는 아니고 사람들이 규칙을 어길 때만 그렇게 해요.”
“종문이 정한 규칙이잖아요.”
“구주의 지배자가 종문이니 종문의 규칙을 따르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불만도 없다?”
“불만은 있죠.”
“어떤 부분에서요?”
“종문의 제자가 되는 문이 너무 좁아요.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어요.”
“…….”
연적하는 공지유가 종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종문의 지배에 순응하면서, 한편으로 종문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종문의 제자가 되고 싶어요?”
“당연하죠. 우리 같은 일반 무인들의 평생소원이 그거잖아요. 물론 스물다섯 살을 넘기면 포기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종문에 있죠.”
“왜 스물다섯 살을 넘기면 포기해요?”
“종문 제자가 되려면 ‘비승과해’를 통과해야 하는데, 스물다섯 살까지만 참가할 수 있으니까요.”
“나이를 속이면?”
“죽어요.”
“무시무시하네요?”
“그게 왜 무서워요?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지. 종문을 속이고 살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죠.”
“어떻게 항상 진실만 말하고 살아요? 아까는 우리도 종문을 속이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죽을 뻔했죠. 이판사판이라 생각해서 속임수를 썼던 거예요. 어차피 죽게 될 거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그래서 더 연 소협께 감사하는 거고.”
“복잡하네요.”
연적하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거짓말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종문을 속이려 했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뒤죽박죽이다.
평범한 사람이 종문에 절대복종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 같은 것일까?
“공 소저는 왜 종문에 들어가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공지유가 착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녀는 세상을 그저 운에만 기대어 살고 싶지 않았다.
종문과 야수, 마천의 마귀 들에게 고통받는 삶이 너무도 싫었다.
그가 더 묻지 않자 공지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연적하는 한동안 우두커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궁연도 어딘가에서 저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달을 보고 있을 것이다.
‘누님, 내가 어떻게든 찾을게요.’
시간은 걸릴 테지만, 반드시 찾는다.
찾아서 함께 석경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천신님들. 누구라도 좋으니 부디 굽어살펴 주세요.’
연적하는 맑은 밤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달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
이틀 후.
정오 무렵, 공지섭과 조원들은 천관산맥의 초입인 재약산에 도착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여유를 되찾았다.
재약산을 내려가자 거짓말처럼 거대한 마을이 나타났다.
지척에 울창한 숲과 위험한 야수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다.
연적하는 낯설지만 한편으로 익숙한 광경에 부지런히 좌우를 살폈다.
번화한 거리 좌우편으로 객점, 약재상, 잡화점, 의복점, 음식점, 대장간 등이 있었다.
촌놈처럼 기웃거리는 그를 보며 공지섭이 말했다.
“이곳은 운문현입니다. 천관산맥의 초입에 있어서 점포가 유난히 많지요. 정각성의 무인과 약초꾼들이 죄다 운문현으로 몰려오거든요.”
“정각성요?”
“정각성을 모르시는군요? 수약주의 열세 개 성 중에 하나입니다.”
“와아! 수약주가 엄청 크네요?”
연적하는 수약주의 크기에 깜짝 놀랐다.
‘가만있어 보자. 아홉 개의 주가 있다니까, 그럼 성이 몇 개인 거야?’
그 속에서 남궁연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조장님, 점심은 ‘진미각’에서 먹어요!”
공지유가 길 건너편의 음식점을 가리켜 보였다.
입구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걸 보니 음식 맛이 뛰어난 모양이다.
공지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어디라도 가서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기는 했다.
진미각.
입구에서 일각(15분)을 기다린 끝에 공지섭 일행은 진미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점소이가 빈자리로 안내하고는 주문을 받아 갔다.
식당 안의 손님들 대부분은 공지섭 일행처럼 일반 무인들이었다.
아마도 천관산맥의 야수 때문이리라.
멀리 떨어져 있는 늙은 약초꾼 무리를 보던 연적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약초꾼은 좀 위험하지 않나요?”
그러자 잔에 물을 따르던 정우생이 답했다.
“약초꾼들은 재약산과 천관산맥의 경계까지만 갑니다. 더 갔다가 야수를 만나면 잡아먹히니까요.”
“아.”
“어떤 이는 욕심으로 더 깊이 가기도 하지만, 그때는 운에 맡겨야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공지섭이 끼어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천관산맥 초입까지 가는 약초꾼들도 많습니다. 사실 재약산이라고 야수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어차피 위험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영기가 가득한 산으로 가겠다는 거죠.”
“일반 산에도 야수가 살아요?”
“호랑이나 곰, 늑대, 멧돼지 따위가 없는 산은 없습니다. 일반 약초꾼들 입장에서 어느 산이든 위험하죠.”
“그렇구나.”
“위험하지만 ‘영지 선초’를 찾으면 몇십 년은 놀고먹어도 되니까요.”
공지유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위험하지만 약초꾼도 선망받는 직업 중에 하나예요. 사실 우리 같은 무인보다는 약초꾼이 ‘영지 선초’를 더 잘 캐거든요. 게다가 무인의 경우 전부 사문에 바치지만 그들은 개인이 다 가져가니까.”
공지유는 어쩐지 아쉬운 얼굴이다.
하기야 귀한 ‘천년화령적지’를 사문에 고스란히 바치게 생겼으니 아깝지 않다면 거짓이리라.
그즈음 주문한 요리가 차례대로 나왔다.
‘천년화령적지’와 쓸개를 얻은 탓에 주문이 조금 과했나 보다.
탁자 위에 고급 요리가 가득 쌓이자 주변 무인들이 힐끔거렸다.
그래도 공지섭과 조원들은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조심했겠지만 연적하의 무위를 믿고 방심한 것이다.
누군가 냉소를 날렸다.
“흥! 얼빠진 놈들. ‘영지 선초’를 구했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는구나.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지.”
한순간 식당 안이 잠잠해졌다.
경각심을 주려는 것인지, 조롱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식당의 무인들은 공지섭 일행이 ‘영지 선초’를 구했다고 믿었다.
순간 공지섭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너무 안이했다.
‘더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운문현은 ‘영지 선초’를 노리는 무인으로 가득한 도시.
그런 곳에서 눈에 띄는 짓을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게다.
이렇게 되면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연적하가 있지만 종문 제자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골치 아파진다.
그들이라면 장천세처럼 ‘장생불사 곰’의 쓸개 냄새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빨리 운문현을 뜨는 수밖에 없다.
공지섭은 듣는 귀가 많아 말로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후루룩, 쩝, 쩝…….”
그가 흡사 돼지처럼 흡입하기 시작하자 조원들도 열심히 먹어 댔다.
공지섭의 조원들이 먹기에 집중할 때다.
조금 전 비아냥대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정말 돼지 새끼들처럼 처먹는군.”
“…….”
‘돼지’라는 말에 공지섭의 움직임이 멎었다.
스스로를 비하하느라 돼지라고 한 적은 있지만, 남에게 듣기는 처음이다.
조원들도 분노한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구주의 일반 무인에게 ‘돼지’는 ‘무능’과 ‘나태함’, 그리고 끝내는 ‘죽임당할 운명’을 의미했다.
공지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들 앞에서 그런 조롱을 당하고도 참는 건 사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조양성 현천문의 사람이오. 우리를 ‘돼지’라고 조롱한 분은 누구요? 자신이 있다면 얼굴이나 봅시다.”
현천문은 조양성에서 이름이 알려진 문파였다.
무려 열 개나 되는 조를 천관산맥에 투입할 정도로 세력이 컸다.
빤히 보던 사람들이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벽을 등지고 앉아 있던 초로의 사내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 났다.
“노부는 천지문의 장로인 금부진이다. 네가 감히 내 얼굴을 보자고 했느냐?”
순간 공지섭의 얼굴이 굳었다.
천지문은 수약주를 대표하는 오대 문파 중의 하나로 세력도 강하지만, 무엇보다 종문 제자를 많이 배출해 성주들도 어려워하는 문파였다.
아무리 그래도 앞에서 돼지 소리를 듣고도 침묵할 수는 없는 노릇.
공지섭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금 장로님처럼 덕망 높으신 분께서 왜 저희를 ‘돼지’라고 조롱하십니까?”
“네 말은 틀렸다. 우선 나는 덕망이 높지 않다. 그리고 왜 ‘돼지’라고 했냐고? 그야 너희가 ‘돼지’처럼 처먹으니까. 네놈들 쩝쩝거리는 소리에 입맛이 다 떨어졌다. 나에게 자신 있으면 얼굴을 보이라고 했겠다? 너야말로 무슨 배짱으로 노부를 보자고 한 거냐?”
달그락. 삐꺽.
금부진과 함께 앉아 있던 천지문 제자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공지섭을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