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9
519회. 진검강(眞劍罡), 강철과 금강석
마물 독안귀마의 정체를 묻는 연적하의 질문에 공지유가 답했다.
“독안귀마는 신수(神獸)였어요.”
“아하! 신수가 신격을 잃고 마물이 되었다?”
“네.”
“그런 건 종문 제자들이 잡지 않아요?”
“신수라면 종문에서 벌써 잡으러 왔겠죠. 그런데 마물은 또 달라요.”
“종문이 마물은 싫어해요?”
“마물을 좋아하는 건 아마 마천의 마귀들일 거예요. 타락한 신격은 오히려 해(害)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서 종문 제자들이 나서지 않는 거군요?”
“그렇죠. 종문 제자라고 해도 마물을 처리하려면 법기(法器)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법기를 가진 분들은 최소한 ‘원영’의 경지라 초빙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요.”
“‘원영’이면 수명이 삼백 살이라는 반선?”
“후후, 맞아요. 그분들이 아니면 마물은 손도 못 대요. 종문 제자들도 달아나기 바쁠걸요?”
연적하는 그제야 공지섭 일행이 월악산을 두고 천관산맥까지 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마물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도 궁금하네.’
강호의 마물과 ‘왕들의 하늘’에 있는 마물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공지유에게 마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자꾸 강호의 마물처럼 느껴진다.
마물이라면…….
그런 연적하의 생각이 전해졌는지 공지유가 정색을 하고 만류했다.
“혹시라도 독안귀마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절대로요.”
“그런데 마물에게서 돈 될 만한 게 있나요? 신수였으면 영석(靈石)이 나오지 않나요?”
“오염돼서 못 쓴대요. 깨끗한 영석이 나오면 종문에서 벌써 잡았겠죠.”
“그건 좀 아쉽네요.”
정말 마물의 영석이 쓸모가 없다면 그저 위험한 괴물에 불과할 뿐이니까.
“네, 그러니까 더더욱 월악산 근처에도 가지 마세요.”
“위험한 게 마물밖에 없어요? 야수는요?”
“월악산의 야수는 ‘초목급’이라 무인들에게 큰 위험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어요. 삼 년간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변화요?”
“사람 발길이 끊어졌으니까 어떤 야수가 살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여전히 ‘초목급’만 살고 있는지, 아니면 ‘동급’이라도 자리를 잡았는지…….”
“야수들도 이 산 저 산 옮겨 다녀요?”
“야수들도 다른 짐승처럼 영역 다툼을 하거든요. 그 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해요.”
“산과 산 사이가 공도로 끊겨 있거나, 마을이 있으면요?”
“공도나 마을을 지나겠죠?”
“끔찍하네요.”
“그래서 문파나 방파가 있는 마을은 더 번성하고, 없는 마을은 죽어가죠. 마을도 사람처럼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인 셈이랄까요.”
연적하가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야수처럼 공도를 지난다는 거죠?”
“어디요?”
공지유와 조원들이 연적하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지유가 의아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거짓말할 사람도 아니고, 농담할 분위기도 아닌데 뭘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야수가 있어요?”
“삼백 장(약 900미터)쯤 앞 언덕 너머요.”
“…….”
공지유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언덕 너머란다.
‘연허’가 아니라 반선(半仙)이라는 ‘원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갈 때쯤이면 가까운 산으로 들어가겠죠?”
“그럴 것 같네요.”
야수가 가고 있는 방향은 분명히 공도 건너편의 큰 산이었다.
“다행이네요.”
공지섭과 조원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야수의 등급도 모르거니와, 목숨 걸고 싸워 봐야 얻을 게 없는 까닭이다.
당장 돈이 궁한 사냥꾼도 아니고, 고기 몇 점 얻자고 야수와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은 공지섭 일행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야수가 산으로 들어가기 직전 지나던 사두마차를 습격한 것이다.
연적하는 야수가 말을 찢어 죽이자마자 속도를 높였다.
삼백여 장을 단숨에 달려간 그는 청사로 황소만 한 붉은 여우를 찔렀다.
콰직!
캐애앵!
붉은 여우가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붉은 여우는 연적하를 향해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사두마차의 사람들은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덜덜 떨기만 했다.
뒤늦게 공지섭과 조원들이 도착했다.
붉은 여우를 본 공지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철급(鐵級)’의 야수 천년호리(千年狐狸)였다.
깊은 산에나 있다는 ‘철급’ 야수가 공도에 나타나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연 소협! 조심 하십쇼! ‘철급’ 야수 천년호리입니다!”
공지섭의 외침에 긴장한 연적하는 청사에 공력을 더욱 밀어 넣었다.
우우웅-.
청사의 끝에서 눈부신 검강이 뻗어났다.
검강을 본 천년호리는 덤벼들지 않고 탐색이라도 하듯 연적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는 동안 천년호리의 몸 위로 붉은 기운이 어렸다.
홍염(江焰) 같은 기운을 두른 천년호리가 쾌속하게 연적하를 덮쳤다.
준비하고 있던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청사로 힘껏 찍었다.
퍽-.
청사는 천년호리의 기운을 뚫었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 틈에 연적하에게 도달한 천년호리가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흥!”
연적하가 냉소를 치며 검을 다시 내뻗었다.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玄女降臨)이다.
천년호리의 이빨과 청사가 마주쳤다.
보통의 야수 같았으면 입으로 검이 날아오면 피할 텐데 천년호리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홍염을 뚫은 쇠붙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가각-.
쇠가 바위를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년호리의 입에서 불꽃이 튀었다.
칼이 이빨에 닿았지만 천년호리는 더욱 입을 크게 벌렸다.
반드시 상대의 목줄기를 물어뜯겠다는 무식할 정도의 집념이 엿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검강이 홍염을 가르고 마침내는 입 속까지 후벼 팠다.
콰자작-.
천년호리는 입안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자 ‘캐앵!’하는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연적하와 천년호리 사이에 한 뼘은 됨 직한 하얀 조각이 떨어졌다.
천년호리의 송곳니였다.
천년호리는 공포와 경악이 담긴 눈으로 연적하를 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연적하는 굳이 달아나는 야수를 쫓지 않았다.
공지유가 달려와 땅에 떨어진 송곳니를 주워 들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천년호리의 송곳니예요! 와!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들었는데 잘리기도 하네요? 연 소협, 이거 제가 가져도 돼요?”
“그러세요.”
연적하가 허락하자 공지유는 이빨을 갈무리했다.
‘쯧쯧!’ 하고 혀를 차던 공지섭이 물었다.
“네가 싸워 얻은 것도 아닌데 이빨을 가져다 무얼 하려고?”
“천년호리의 이빨이 얼마나 단단한지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요.”
“네가 애들이냐? 천년호리의 이빨을 자랑하게.”
“‘동급’ 야수의 송곳니를 목에 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뭘 그래요? 이건 무려 ‘철급’이라고요. 종문 제자도 ‘원영’이 아니면 건드리지 못한다는 ‘철급’요.”
말하다 말고 공지유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연허’의 경지인 그는 어떻게 천년호리를 쫓을 수 있었을까?
“연 소협, 정말 종문 제자가 아닌 게 맞아요?”
“네. 몇 번을 물어도 아닌 건 아닙니다.”
“이상하네. 종문 제자라고 해도 ‘연허’는 ‘철급’ 야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데.”
“‘철급’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연적하는 공지유의 말이 조금 이상했다.
천년호리는 몸에 두른 붉은 기운이 강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강호의 마물과 비슷한 것 같은데?’
물론 천년호리가 끝까지 싸우지 않고 달아났으니 이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담담한 그와 달리 공지유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대단하냐고요? ‘동급’ 야수만 해도 무인 대여섯 명이 감당하기 어려워서 피해요. ‘철급’은 ‘연허’가 적어도 두 명은 달라붙어야 겨우 상대할 수 있고요. 연 소협 혼자서 천년호리를 쫓아낸 게 이상한 거예요.”
“‘연허’의 종문 제자들이 천년호리를 상대하지 못해요?”
“그들이 천년호리에게 진다는 말은 아니에요. 천년호리의 몸에 두른 붉은 기운을 ‘홍염’이라고 하거든요. 그걸 어쩌지 못해서 그냥 피해 다녀요. 어차피 싸워 봐야 답이 없으니까.”
“아…….”
연적하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천년호리의 몸에 깃들었던 기운은 평범하지 않았다.
청사의 강기로도 본체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연 소협은 ‘홍염’을 어떻게 깨신 거예요? 천년호리가 깜짝 놀라서 달아나던데.”
공지유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허’의 경지에서 천년호리의 ‘홍염’을 찢고 송곳니까지 자른 사람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설마 ‘원영’의 반선들이 쓴다는 ‘진검강(眞劍罡)’은 아니겠죠?”
“‘진검강’요?”
“‘연허’의 검강과 ‘원영’의 검강을 구별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에요. ‘연허’의 검강이 ‘강철’이라면 ‘원영’의 검강은 ‘금강석’이라고들 해요.”
“글쎄요. 제가 아직 ‘원영’의 검강을 본 적이 없어서…….”
마음 한편으로 연적하는 ‘경지’가 아니라 ‘검법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구천구검은 단순한 검법이 아니다.
자신이 강호에서 법보 없이 마물을 척살할 수 있었던 것도 구천구검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공지유에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마부와 마차의 손님들이 다가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연적하를 종문 제자로 생각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잠시 후 마부는 살아남은 말을 추슬러 떠났다.
공지섭 일행도 다시 산음현을 향해 움직였다.
그날 밤.
공지섭 일행은 곡수현 외곽에 있는 삼천(三天)의 신당에서 하룻밤 묵었다.
연적하는 그날 처음으로 제단 위에 세워진 삼천의 신들을 보았다.
삼천은 불가의 사천왕상처럼 과장되게 묘사되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특히나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마하수라천’은 영락없이 아수라였다.
삼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아수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연적하가 ‘마하수라천’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공지섭이 말했다.
“신기하지요? 악인들을 심판하는 신이 마귀처럼 생겼다니. 마귀가 마귀를 심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 평범한 인간인 제가 틀린 거겠지요?”
그러자 공지유가 끼어들었다.
“그건 오라버니가 몰라서 그런 거에요. 심판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악인들을 심판하려면 독해야 된다니까요.”
“아, 그러셔? 그래서 너는 ‘마하수라천’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저 녀석은 말뿐입니다. 어릴 때부터 ‘마하수라천’을 무서워했거든요.”
공지섭이 이르듯 말하자 공지유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특별히 ‘마하수라천’을 무서워한 건 아니에요. 그냥 심판이 두려워서 그랬던 거죠.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다 의미가 없더라고요. 삼천의 신이 정말 심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생각해요?”
연적하의 질문에 공지섭과 조원들도 궁금하다는 눈으로 공지유를 보았다.
사람들 이목이 쏠리자 공지유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종문의 제자들은 상위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수련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종사가 ‘하늘의 문’을 열고 ‘입신’에 들어가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그런 존재가 ‘구주’에 무슨 애정이 있다고 남아서 심판을 하겠냐고요. 얼른 더 좋은 세계로 가고 말지. 내 말이 틀렸어요?”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라 사람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확실히 상위의 세계로 가고 싶어서 신이 된 존재들에게 심판은 어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