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8
518회. 새 하늘의 ‘영웅’과 타락한 ‘성좌’
공지섭이 문주를 거론하자 공지유가 입을 삐죽였다.
“맞아요. 우리 문주님이 배포는 작아도 계산은 정확하신 분이죠.”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왠지 문주가 인색하다고 비난하는 것 같아서다.
당황한 공지섭이 서둘러 문주의 입장을 변명하듯 말했다.
“하나의 문파를 운영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줄 아느냐? 내 입장만 생각할 게 아니라 문도 전체를 봐야지. 문주님이 몇 사람에게만 후하다고 생각해 봐라. 공평하게 운영하느라 그런 것을…….”
“누가 뭐래요? 공평하게 조금씩 주시니까 그러는 거지.”
말을 하다 말고 공지유가 연적하에게 속삭였다.
“조원들이 암시장에 팔겠다고 그걸 챙긴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문주님이 다 좋은데 그런 면에서 좀스러워서. 그렇게라도 돈을 모으려는 거죠.”
“아…….”
연적하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원들이 목숨 걸고 ‘장생불사 곰’의 쓸개를 챙길 정도면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공지섭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그냥 외면했다.
말을 길게 할수록 왠지 문주만 욕 보이는 것 같아서다.
“그래도 연 소협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 통 크게 쓸지도 몰라요.”
그녀는 자신이 없는지 애매하게 마무리했다.
공지섭이 별말 없는 걸 보니 문주가 정말 짜긴 짠 모양이다.
마침내 배가 포구에 정박했다.
항구에 내려선 연적하가 감회 어린 눈으로 목선을 돌아보았다.
땅을 밟자 안도감이 밀려올 정도로 힘든 뱃길이었다.
고작 강 하나를 건너는데 이렇게 마음고생이 심할 줄은 몰랐다.
‘연허’의 경지인 자신도 위험천만 한데 일반인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배에서 내린 촌부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왁자지껄 떠들며 몰려 다녔다.
죽은 사내와 함께 있던 여자만 침울한 얼굴이다.
연적하는 이내 잡념을 털고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철선이 있는 곳이니 눈여겨봐 둘 생각이다.
“여기는 어딘가요?”
그의 질문에 공지유가 답했다.
“곡수현의 조강포구예요. 현천문은 이곳에서 이틀 거리인 산음현에 있어요.”
“아, 네.”
“철선을 타시려는 거죠?”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한겨울에는 철선도 못 다녀요. 강이 꽁꽁 얼어붙거든요.”
“이렇게 큰 강이 얼어요?”
“바다도 어는데요 뭐. 구주의 겨울은 정말 춥거든요. 종문 제자들도 잘 안 돌아다닐걸요?”
“언제부터 겨울이 시작되는데요?”
“두 달 정도 후부터요.”
“강이 얼면 관도로 다니나요?”
“관도가 뭐예요?”
“나라에서 관리하는 길요.”
“아, 공도(公道)를 말씀하시나 보다. 맞아요. 공도를 이용하셔야 해요.”
“공도로 가면 더 오래 걸리겠죠?”
“한산주까지요?”
“네.”
“안 가 봐서 모르겠지만, 대략 석 달 정도 걸릴 거예요.”
“뱃길보다 한 달 정도 더 걸리는 셈이네요?”
“산을 돌아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산을 관통하면 빨라질 테지만 야수 때문에.”
“야수는 천관산맥처럼 깊은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야수는 구주의 모든 산에 있어요.”
그때 정우생이 끼어들었다.
“야수만 있으면 다행이게요? 마물을 만나면 끝장입니다. 종문의 제자라 해도 법기(法器)가 없으면 달아난다고 하니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죠.”
“마물요?”
강호의 십두마병을 떠올린 연적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 세계에도 십두마병과 같은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물이라니?
“아, 마물도 모르시겠구나. ‘입신’의 존재들이 주화입마에 빠지면 ‘반신(半神)’의 마물이 됩니다. 반쪽짜리 신격이지만 종문 제자들도 감당하기 어렵죠. 그래서 법기가 없으면 피해 다닌다고 합니다.”
“입신에 든 존재라면……. 사람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수(神獸) 같은 경우 근본은 야수지만 신격을 얻어서 입신의 반열에 오른 거니까요. 신수가 마물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 입신이 신격을 얻은 존재라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사람이든 야수는 신격을 얻었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면 마물이 됩니다.”
“신이 되었다면서 주화입마에는 왜 빠지는 건데요?”
“강제로 신격을 빼앗기면 주화입마에 들 수가 있다고들 하더군요.”
정우생의 막힘없는 답에 공지유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와아! 정 사형이 이렇게 박학다식할 줄 몰랐네. 그런 걸 어떻게 알았대요?”
“언젠가 사벌주에서 온 음유시인이 말하는 걸 들었다.”
“사벌주의 음유시인을 봤다고요?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도 노랗다는?”
“사벌주 사람들이 가끔 수약주를 거쳐 한산주로 가곤 하지 않느냐. 올해 봄인가? 주점에 갔다가 운 좋게 음유시인을 본 적이 있다.”
“뭐라고 하던가요?”
공지유의 눈이 반짝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벌주의 음유시인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들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웅과 신들의 비밀을 노래하고 다닌 까닭이다.
종문의 제자들도 음유시인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하는 영웅과 신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연적하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지금은 ‘왕들의 하늘’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 두는 게 중요했으니까.
“구주에 새 하늘의 영웅이 도래할 거라나 뭐라나.”
“새 하늘의 영웅요? 드디어 종문에 새로운 종사가 나타난다는 뜻인가요?”
“그건 모르겠다. 다만 새 하늘의 영웅이 ‘타락한 성좌’를 심판하고 ‘하늘의 문’을 연다고 하더라. 사벌주에서 그런 신탁을 받은 무녀가 있대.”
“‘타락한 성좌’요? 그게 뭐지?”
정우생이 음성을 낮추었다.
“‘여덟 왕’과 ‘아홉 군주’를 의미한다는 소리도 있다만, 알 수가 있나. 은유로만 끝내는 사람들이니.”
“…….”
공지유가 놀란 눈으로 정우생을 보았다.
‘여덟 왕’과 ‘아홉 군주’는 이 세계의 최고 지배자들이다.
그들 중에는 종문 출신도 있으니 종문에서 좋아할 소리는 아니었다.
정우생이 소리를 낮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도 한껏 소리를 죽였다.
“그런데 말이 좀 안 맞는 거 아니에요? 타락한 성좌와 싸우려면 ‘하늘의 문’을 열고 ‘입신’에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심판을 하고 ‘하늘의 문’을 연다고요? 아무리 영웅이래도 사람의 몸으로 그럴 수가 있어요?”
“난들 아나. 무녀가 그런 신탁을 받았다는데.”
“어쨌든 종문에서 싫어할 소리네요?”
아까부터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타락한 성좌’를 왜 ‘왕’과 ‘군주’라고 해요?”
공지유가 주위를 둘러본 후에 나직이 답했다.
“세 개의 달에 천신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 ‘왕’과 ‘군주’들의 별도 있다고 믿거든요. 그러니까 성좌를 ‘왕’과 ‘군주’에 연결해서 생각하는 거겠죠.”
“그럼 종문에서 싫어한다는 거는요?”
“‘입신’에 든 ‘종사’ 가운데 ‘군주’가 된 존재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종문에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죠. 제 생각에 그렇다는 거예요.”
“아하!”
그제야 연적하는 공지유가 한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성좌라니 정말 신이라는 건가?’
강호에도 별호에 별소리가 다 붙지만, 그걸 글자 그대로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곳의 ‘입신’은 정말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공지섭 일행은 조강포구를 벗어나 공도로 들어섰다.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려도 될 정도로 길은 넓고 잘 닦여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돌은 판석 같았다.
“와! 길에 깔린 거 판석인가요? 공도는 다 이렇게 판석이 깔려 있어요?”
그러자 공지섭이 가볍게 웃었다.
“하하! 전부는 아닙니다. 대도시 인근만 판석이고 대부분 잡석입니다. 도시에서 먼 곳은 그냥 흙을 다져 놓기만 했고요. 그래서 공도만 봐도 그곳이 도시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하!”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판석이 깔린 길을 보았다.
천상계의 길로 보이던 공도가 조금은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세계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뻥 뚫린 공도 위로 이두마차와 사두마차가 쉬지 않고 오갔다.
부러운 눈으로 마차를 보는 연적하에게 공지유가 말했다.
“마차로 모셔야 하는데 죄송해요. 수중에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도시를 오가는 마차가 있나요?”
연적하는 조강포구로 갈 때를 대비해 물었다.
지금이야 공지섭 일행과 함께 걷고 있지만, 혼자 갈 때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도시마다 역참(驛站)이 있어요. 그곳에서 말이나 마차를 구하시면 돼요. 마차를 얻어 타도 되고요.”
“얻어 탈 수도 있어요?”
“네, 선표로 배를 타는 것처럼 마표(馬票)로 마차에 탈 수 있어요.”
정우생이 지나가는 사두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사두마차들은 대부분 도시를 오가는 역참의 마차들인데 마표로 탈 수 있습니다. 이두마차는 개인 소유가 많지만요.”
“그럼 한산주로 갈 때도 역참의 사두마차를 이용하면 되겠네요?”
“그렇긴 한데 도시에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주(州)와 주를 운항하는 철선과 달리 마차는 옆 도시까지만 가거든요. 물론 그것도 꽤나 장거리이긴 합니다만.”
“겨울에도 역참에서 마차를 운행하나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자리가 차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할 테지만, 하기는 할 겁니다.”
“몇 명까지 채워야 움직이나요?”
“사두마차에는 여섯이 탑니다. 겨울에는 절반인 세 명만 모여도 움직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안 되네요?”
고작 세 명만 있으면 출발한다니 안심이 됐다.
그러자 공지유가 한마디 했다.
“무량하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에 도시를 벗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역참의 마차를 타려면 며칠은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그렇군요.”
연적하는 역참의 이용 방법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두 달 후가 겨울이면 한산주로 가는 도중에 강이 얼어붙을 것이다.
그럼 싫든 좋든 도시의 역참에서 사두마차를 얻어 타야 하리라.
철선과 사두마차를 생각하니 문득 돈에 생각이 미쳤다.
‘금자 서른 냥이면 한산주까지는 무난하게 가겠지?’
문제는 한산주에 도착한 다음이다.
한산주에 십전무후 남궁연이 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혹 있다 해도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을 찾는 일에도 돈이 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돈을 모아야겠는데?’
곰곰 생각하던 연적하는 옆에서 걷고 있던 정우생에게 넌지시 물었다.
“정 형, 짧은 시간에 돈을 벌려면 뭐가 좋을까요?”
“짧은 시간이라면 ‘영지 선초’죠.”
정우생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답했다.
“‘영지 선초’요?”
“구주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한 게 ‘영지 선초’니까요. 상단에 들고 가면 무조건 고가로 매입해 줍니다. 상단에서는 그걸 종문에 넘기지요. 그 차액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개인에게 구매해서 종문에 되판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개인에게 금 열 냥에 샀다면, 종문에 스무 냥을 받고 넘기는 식입니다.”
“두 배나요?”
“세배를 받는 것도 있습니다. ‘영지 선초’는 구한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니까요.”
“‘영지 선초’를 구하려면 천관산맥까지 다시 나가야 하나요?”
연적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대답 여하에 따라 힘들게 온 길을 돌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건 아닙니다. 현천문이 있는 산음현에도 ‘영지 선초’를 구할 곳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천관산맥까지 갔어요?”
정우생 보다 공지유의 대답이 빨랐다.
“본래 ‘영지 선초’는 영기가 충만한 지역에 많거든요. 산음현에도 그런 곳이 있어요. ‘월악산’이라고 아주 영기로 가득한 산이죠.”
“그런데 왜 멀리 천관산맥까지 간 거예요?”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산음현 문파들은 ‘월악산’으로 다녔어요. 그런데, 아까 마물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설마 마물 때문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독안귀마’가 ‘월악산’에 자리를 잡은 뒤로 일반 문파는 출입을 못 하고 있어요.”
“‘독안귀마’? 그건 사람인가요? 아니면 신수종인가요?”
이름만 들어서는 강호의 마두 같은데 신수도 마물이 된다니 확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