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0
520회. 공(公)과 사(私)
자신의 말에 사람들이 놀라자 공지유는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우생이 반박한 것이다.
“공 사매, 종문의 제자가 ‘천신’을 목표로 하는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천신’들이 종문의 제자라는 증거도 없잖아. 우리는 ‘입신’에 든 존재가 누군지 모른다고. 심지어 최초의 ‘마하수라천’이 ‘마천’에서 나왔다는 신화도 있어. 그러니 ‘천신’들이 모두 상위 세계를 목표로 한다는 건 조금 억지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공지유의 말을 듣고 ‘종문’만 생각하던 조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신으로 만족하는 존재도 있을 것 같았다.
입신에 든 존재가 ‘종문’ 출신만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종문’은 단지 ‘구주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구주’가 전부가 아니다.
당장 동편의 험난한 천관산맥만 넘어가도 마천이 있지 않던가.
이 넓은 세상에 어디 ‘마천’만 있을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서쪽 바다 건너에도 뭔가 살고 있을 터였다.
북쪽의 대설산과 남쪽의 사막 너머도 알려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종문’이 아니더라도 입신에 들 존재는 많을 것이었다.
조장인 공지섭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당장 그만 보아도 종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종문’에서만 ‘입신’이 나온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공지유도 자신의 주장에 담겨 있는 허점을 깨달았는지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다물자 후끈 달아올랐던 토론의 열기는 금세 식었다.
열심히 떠들던 공지유가 입을 다물어 조용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연적하는 저녁으로 정체불명의 죽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세 개의 달이 지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보름달이 비추던 강호의 밤보다 두 배는 밝은 느낌이다.
‘도둑들 먹고살기가 힘들겠네.’
녹림 출신이라 그런지 밤일하는 도둑이 먼저 생각났다.
무공의 고수들에게 이 정도 밝기는 대낮과 별 차이가 없을 터였다.
세 개의 달과 천신 셋.
천신이 정말 실재한다면 그들은 사람일까?
아직 마천의 존재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구주의 주민인 공지유가 천신과 종문을 연결해 말한 것도 이해가 간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구주가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었으리라.
‘구주’와 세상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왕들의 하늘’은 처음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넓었다.
이 넓은 세계에서 십전무후 남궁연과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그녀를 만나기도 전에 늙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맥이 빠진다.
“제기랄!”
연적하는 답답한 마음에 밤하늘을 향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 * *
수약주.
산음현.
현천문.
정오 무렵.
마침내 현천문에 도착한 공지섭과 조원들은 의기양양하게 정문을 통과 했다.
그리고 문주의 집무실인 ‘순우각(純佑閣)’까지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갔다.
연락을 받고 마당 앞에 나와 있던 문주 소천우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공 조장! 먼 길 오가느라 수고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예, 연 소협의 도움으로 몇 차례 위기를 넘겼습니다. 연 소협이 아니었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공지섭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자 소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함께 온 분이 연 소협이라는 분이냐?”
“예, 천관산맥에서 야수에게 쫓길 때 저희를 구해 주셨습니다. 종문의 제자가 아니심에도 벌써 ‘연허’의 경지에 든 고수십니다.”
소천우가 흠칫 놀란 눈으로 낯선 청년을 보았다.
종문이 아닌데 저렇게 젊은 나이에 벌써 ‘연허’라니?
그는 연 소협이라 불리는 청년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저는 현천문의 문주인 소천우라고 합니다. 부족한 제자들을 도와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연 소협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문주인 소천우는 감사 인사를 하면서도 보답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만했다.
“석가장의 장주인 연적하라고 합니다. 뭘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허허! 말씀하시는 걸 보니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집니다. ‘연허’에 드셨으니 천하가 연 소협의 발아래 있는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아무쪼록 저희 현천문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머무실 곳은 있습니까? 특별히 정한 곳이 없다면 계시는 동안 저희 현천문의 객사에 모시고 싶습니다만.”
일단 숙식은 제공해 주겠다는 소리다.
그는 조금 더 지켜보다가 연적하에 대한 대우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풍족한 문파였다면 돈 자루부터 안겼겠지만 사실 현천문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초행길이라 정한 곳은 없어요. 이것도 인연이니 현천문에 신세를 좀 질게요.”
연적하는 소천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한 푼이라도 돈을 아끼고 모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대충 연적하와의 일이 정리되자 소천우는 공지섭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의 결과를 묻고 있는 것이다.
공지섭이 품 안에서 기름종이에 꼭꼭 싼 뭔가를 꺼내 바쳤다.
“말씀하신 ‘금란축여’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운이 닿아 ‘천년화령적지’를 얻었습니다.”
‘천년화령적지’라는 말에 소천우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천년화령적지’로 ‘금란축여’ 백 뿌리를 구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어디 백 뿌리뿐일까!
‘금란축여’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천년화령적지’는 다르다. 돈으로 살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종문에 바치면 상상할 수 없는 혜택으로 돌아온다.
소천우는 무심코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천년화령적지’를 본 그가 혹시라도 자기 몫을 주장할까 싶어서다.
하지만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천년화령적지’가 오롯이 공지섭과 조원들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공지섭이 말했다.
“천지문의 장로에게 빼앗길 뻔했지만 연 소협이 막아 주었습니다.”
“천지문?”
소천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공지섭을 보았다.
천지문은 수약주를 쥐고 흔드는 다섯 개 문파 중에 하나였다.
“예, 자기 입으로 천지문의 장로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알고 있느냐?”
“금부진이라고 했습니다.”
“흠! 천지문의 사람들과는 그게 전부냐?”
“연 소협께서 금 장로의 단전을……. 깨뜨렸습니다.”
“금 장로의 단전을 부쉈다고?”
소천우가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공지섭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천년화령적지’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함이다.
천지문과의 충돌은 현천문에 악재인지라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공지섭이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자 연적하가 나섰다.
“그 장로라는 늙은이가 원한을 품길래 삭초제근(削草除根) 차원에서 손봐 줬어요. 왜 문제 있어요?”
연적하가 빤히 바라보자 소천우는 차마 ‘그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 원한을 품었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잘하셨습니다. 다만 천지문에서 어떻게 나올지…….”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질게요. 됐죠?”
“송구합니다. 은혜를 입었지만 저희 현천문의 힘이 워낙 미약하여…….”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현천문이 ‘촛불’이라면 천지문은 ‘횃불’ 정도는 됐으니까.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소천우를 보았다.
보은(報恩)에 대해 언급할 줄 알았는데, 천지문과 자신의 갈등을 부각시키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마치 과거 천지맹의 군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와 자신의 상성은 꽤나 좋지 않았다.
과거를 회상하던 연적하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순우각.
소천우는 측근에게 연적하를 객사로 모시라 명한 뒤, 공지섭을 데리고 전각으로 들어갔다.
“연 소협과 어떻게 만났는지 소상히 말해 보거라.”
“천관산맥에 들어간 지 닷새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동급’ 야수인 백이금모(白耳金毛)가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더군요. 낙오된 무인이라 생각해 백이금모를 쫓아 주었는데, 그가 연 소협이었습니다.”
“네가 오지랖을 부렸구나.”
소천우는 공지섭의 행동을 오지랖으로 일축했다.
공지섭은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연허’의 경지에 든 고수에게 그랬으니 ‘오지랖’ 소리를 들어도 쌌다.
“연 소협이 천관산맥의 지리를 모른다고 해서 함께 다녔습니다.”
“지리를 모른다고? ‘연허’의 고수가?”
“천관산맥뿐 아니라 ‘구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허! ‘구주’를 모른다? 그런 사람이 ‘연허’라고? 그가 ‘연허’인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연 소협이 ‘초목급’ 야수를 때려 죽이는 걸 보았습니다. ‘의기발현’만으로 금 장로를 제압했고, 곡수현에서는 검강으로 천년호리까지도 쫓았습니다.”
“천년호리? 그건 ‘철급’ 야수가 아니더냐? ‘연허’가 홀로 ‘철급’ 야수를 쫓았다고?”
“예, 그의 검강에 천년호리의 송곳니가 잘렸습니다. 지유가 그것으로 목걸이를 만들겠다고 챙기기까지 했습니다.”
“말도 안 된다. 천녀호리의 ‘홍염지기’를 ‘연허’가 베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게다. 그건 ‘원영’의 반선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사실입니다. 연 소협의 검공은 실로 신비했습니다.”
“나는 그가 심히 수상쩍구나. ‘구주’도 모르는 ‘연허’의 고수가 검강으로 ‘홍염지기’를 베었다?”
“솔직히 그가 ‘연허’인지 ‘원영’인지는 제자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와 조원들을 여러 번 구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천년화령적지’도 그가 아니었다면 천지문에 빼앗겼을 겁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수상한 것은 수상한 것이지. 그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현천문의 제자라 하겠느냐?”
틀린 지적이 아닌지라 공지섭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가 객사에 머무는 동안 잘 지켜보도록 해라. 나는 아무래도 그가 마음에 걸린다.”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구주 사람이 구주에 대해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럼 천관산맥에는 어떻게 들어갔다더냐?”
“…….”
공지섭이 대답하지 못하자 소천우가 말을 이었다.
“그의 나이로 볼 때 그는 종문의 제자가 분명하다. 수약주에서 자신이 종문 제자임을 숨기는 사람이라면 뻔하지 않으냐?”
“그 말씀은 설마?”
“그래, 그는 아마도 ‘천지종’의 제자일 게다.”
문주의 입에서 ‘천지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공지섭의 얼굴이 굳었다.
한산주의 ‘천지종’과 수약주의 ‘소요종’은 원수지간인 까닭이다.
오백여 년 전 ‘천지종’이 ‘소요종’을 수약주에서 쫓아낸 적이 있다.
그날 이후 구주에서는 한산주를 ‘상주’, 수약주를 ‘하주’라 불렀다.
물론 소요종은 백여 년 간의 전쟁 끝에 수약주를 되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수약주에 ‘하주’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만약 연적하가 ‘천지종’의 제자라면 ‘소요종’이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너는 오늘의 일을 비밀로 하고, 연 소협을 가까이서 지켜보거라.”
“그가 정말 ‘천지종’의 제자일까요?”
공지섭은 반신반의했다.
연적하의 무위를 생각하면 문주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종문 제자가 아니라고 말하던 연적하의 표정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야 시험해 보면 알게 될 일.”
“시험요?”
“소요종의 종문 제자라면 천지종의 무공을 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설마,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소요종에 알릴 생각이십니까? 그는 본문의 은인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공과 사를 구별하라고. 만약 그가 ‘천지종’의 간자(間者)라면 우리는 멸문당하고 말 게다.”
“하지만 저와 조원들이 입은 은혜를 어찌 사적(私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지켜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것으로 충분히 기회를 준 것이다.”
문주인 소천우의 단호한 태도에 공지섭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