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3
533회.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죠
겉으로 드러난 일만 보면 금단문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독안귀마는 동방유에게 찔리기 전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다 동방유가 찌르자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그래서 정일도와 구석정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이 볼 때 이번 싸움에서 연적하가 한 일은 처음의 공방전이 전부였다.
애석하게도 일반인들은 ‘진경(眞景)’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들은 연적하가 독안귀마의 술법에 당해 헛손질을 한 것으로 여겼다.
연적하는 사람들의 말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독안귀마가 쓴 수법을 알 수 없었기에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것이다.
잠시 후 독안귀마의 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공지유는 현천문을 대표해 연적하와 동방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연 대협, 동 선배님,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독안귀마의 손아귀에서 살아난 사람은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내가 뭘 했다고요.”
연적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동방유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화답했다.
“모두 연 대협의 공이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독안귀마가 연 대협에게 집중할 때 허를 찌른 것뿐이었소.”
겸손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독안귀마를 물리친 게 자신이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구석정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스승님이시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독안귀마의 옆에 다가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스승님께서 홀로 독안귀마를 물리치러 가실 때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제자의 칭송에 동방유가 계면쩍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평생의 운을 오늘 다 쓴 것 같다. 오늘과 같은 행운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게다. 그나저나 연 대협, 독안귀마가 다시 외악(外岳)으로 나오겠습니까?”
“혹시 영지 선초를 채취하는 것 때문에 그러시나요?”
“그렇습니다.”
연적하의 반문에 동방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악이 안전하다면 제자들과 며칠 더 영지 선초를 찾으러 다니고 싶었다.
“제 느낌에 외악은 당분간 안전할 것 같은데, 모르죠. 독안귀마가 복수를 하겠다고 다시 외악으로 나올지…….”
“영물이나 신수는 제 영역을 벗어 나지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독안귀마가 내악(內岳)을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습니까?”
“조금 전의 일로 외악을 포기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연적하는 일정 부분 긍정했다.
독안귀마가 신수(神獸)였다 해도 본질은 짐승이니 본능에 충실하지 않을까?
아까부터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엿보던 정일도가 슬쩍 끼어들었다.
“오늘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으니 내악에 처박혀 지내지 않을까요? 월악산에 입산한 인간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그럴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러기를 바랐다.
연적하는 물론 금단문이나 현천문에도 영지 선초가 필요한 까닭이다.
동방유가 연적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연 대협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저는 가지고 온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있을 겁니다.”
연적하는 단호했다.
독안귀마가 내악으로 달아났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 독안귀마를 만난다고 해도 괜찮다.
놈의 마지막 수법은 대단했지만, 그래도 ‘포룡검’이 통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동방유의 표정이 밝아졌다.
연적하만 외악에 남아 있다면 독안귀마도 두렵지 않았다.
“허면 저희도 외악에 조금 더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독안귀마가 외악으로 나오면 다시 힘을 합쳐 물리치는 것으로요.”
그는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힘을 합쳐 물리치자는 것은 동맹의 제의다.
월악산에서 위험한 것은 독안귀마뿐이 아니다.
영지 선초를 채취한 순간 외부인은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
연적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독안귀마가 다시 출몰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지요.”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동방유는 마치 큰 거래라도 성사시킨 것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작은 금단문이 현천문처럼 큰 문파와 손을 잡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날 저녁.
현천문과 금단문은 야영지에서 다시 만났다.
연적하와 현천문 사람들은 전과 다름없었지만, 금단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금단문에서 공수해 온 풍부한 요리 재료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연적하 일행은 사양하지 않았다.
육포와 쌀, 말린 채소 따위에 질린 탓이다.
연적하 일행은 모닥불 주위에 쪼그리고 앉아 닭고기를 구워 먹었다.
닭은 물론 금단문에서 준 것이다.
기름기가 쫙 빠진 닭다리를 쭉 찢어서 뜯어먹던 유익현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금단문 분들이 엄청 친절하네요? 금단문이 짜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봐요?”
공지유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백호 사체를 발견했다고 하더라. 독안귀마가 잡아먹고 남은 거라는데 횡재한 거지.”
“백호요?”
“그냥 백호가 아니라 ‘은급’ 백호래.”
“와! ‘은급’요? 그거 영지 선초만큼이나 귀한 건데. 진짜 좋겠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 눈에 띄었어야 하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그걸 누가 말해 준 거예요? 그런 보물을 얻으면 쉬쉬하지 않나요?”
“구 모라고 하는 사람이 닭을 줄 때 가르쳐 준 거야. 백호뿐인지 알아? ‘일엽선초’도 찾았대.”
“허! 진짜 그 사람들 대박이네요. 그 정도면 십 년치 운영비는 건진 거 아니에요? 닭이 아니라 소를 한 마리 잡아다 줘도 되겠다.”
“사제, 욕심부리지 마. 그것도 그 사람들 운이야.”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유익현이 부러운 눈으로 금단문 쪽을 힐끔거렸다.
‘은급’ 백호만 해도 보기 드문 횡재인데 ‘일엽선초’까지 구하다니!
오물오물 고기를 씹던 공지유가 문득 생각난 듯 연적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연 대협, 아까 독안귀마를 만났을 때요.”
“네.”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던데, 혼잣말을 하신 건 아니시죠?”
“네, 독안귀마가 말을 걸더라고요.”
“어머! 진짜요? 신수는 만물과 소통한다고 하더니 정말 신수였나 보네! 그런데 독안귀마가 언제 말을 걸었어요? 연 대협 말씀을 못 믿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는 투레질 소리만 들은 것 같아서요.”
연적하가 제 머리를 기름이 번지르르한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머릿속으로 소리가 들렸어요.”
“아, 머릿속으로…….”
공지유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헛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그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놈이 뭐래요?”
연적하는 적당한 선에서 둘 사이의 일을 가르쳐 주었다.
“……자기를 독안귀마로 부르라고 하더니 그때부터 미친 것처럼 날뛰더라고요.”
넋을 놓고 듣던 공지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원래 독안귀마의 이름이 화풍(和風)이었구나. 신수답네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신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야수가 수련으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가는 건 아닐 테고.”
“사람하고 약간 비슷해요. 야수에도 등급이 있다는 건 아시죠?”
“예, 초(草), 목(木), 동(銅), 철(鐵), 은(銀), 금(金)이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금급’ 야수가 영기를 흡수해서 천 년 이상 살면 ‘영물’이 돼요. 거기서 수천 년 동안 더 영기를 흡수하면 ‘신수’가 되는 거예요.”
“수천 년요?”
“네, 종문 제자들도 그 정도 수련을 하잖아요. 야수도 비슷해요. 종문 제자가 아니면 야수를 상대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신수끼리는 왜 싸운대요?”
“종문 제자들도 싸우잖아요. 아홉 명의 군주와 팔 왕, 세 분의 천신도 싸워서 그 자리에 오른 거고요.”
“그러니까 그냥 수련만 하지 왜 싸우냐고요? 신격을 잃으면 마물이 될 수도 있는데.”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죠.”
공지유가 손가락으로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밤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종문 제자는 신수는 목표는 하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그걸 위해서 수련을 하지만 싸워서 빼앗는 것만큼 빠른 길도 없다.
“수련으로 부족하대요?”
“수련으로 천 년 걸릴 게 싸워서 빼앗으면 하루잖아요.”
“신격을 싸워서 빼앗을 수 있어요?”
“신격도 그 본질은 영지 선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어요.”
“무시무시하네요. 무슨 세상이 그렇게 뺏고 뺏기고 그런데요? 적당한 선에서 같이 살지.”
그러자 공지유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적당한 선요? 저희 같은 일반인도 평생 뺏고 빼앗기면서 살잖아요. 하물며 종문의 제자나 영물, 신수들은 말할 것도 없죠.”
“그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자연의 본성에 좋고 나쁨이 어디 있어요? 백호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나쁜 건가요? 사람이 백호를 죽여 가죽을 취하는 건 좋고요?”
공지유의 물음에 연적하는 머뭇거렸다.
‘강호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으면 강도라 부르며 손가락질하는데…….’
뺏고 빼앗기는 게 당연한 이곳에서도 그럴까?
“저기, 조금 벗어난 질문 같은데……. 뺏고 빼앗기는 게 자연의 본성이면 도둑이나 강도는요?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기는요? 나쁜 짓이죠. 그래서 관병과 문파에서 주기적으로 토벌하잖아요.”
“뺏고 빼앗기는 게 자연의 본성이라면서요? 본성대로 사는 걸 왜 나쁘다고 해요?”
공지유가 머뭇거리자 유익현이 거들었다.
“본성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게 있으니까요.”
“아, 그런가.”
연적하는 더 묻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다 쓸데없는 소리였다.
요컨대 상대가 누구건 뺏기지 않으면 되는 거다.
대화의 열기가 가라앉아 조용해질 즈음, 공지유가 지나가듯 말했다.
“점점 추워지네요.”
한서불침(寒暑不侵)의 연적하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많이 추워졌나요?”
“네, 이젠 불이 약해지면 추워서 깰 정도니까요. 며칠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그렇군요.”
어쩐지 공지유와 유익현이 모닥불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싶었다.
공지유와 유익현이 잠든 뒤에도 연적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른쪽의 달, 마하수라천이 눈에 띄게 밝았다.
그만큼 겨울이 바짝 다가왔다는 뜻이다.
‘다 얼어 죽겠다 싶을 즈음에야 봄이 온다’고 하던가.
그 전에 어떻게든 십전무후 남궁연을 찾아야 할 텐데 고민이다.
‘잘 지내고 있는 거죠. 누님?’
땅바닥에 누워 세 개의 달을 보던 연적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금단문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월악산으로 올라갔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던 유익현이 부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네요.”
“그러게.”
공지유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어렸다.
‘은급’ 백호와 ‘일엽선초’를 얻은 사람들이 욕심도 많지, 뭘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한쪽에서 행낭을 꾸리던 연적하가 물었다.
“그런데 ‘천년설연화(千年雪蓮花)’는 어떻게 생겼어요?”
공지유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가르쳐 주지도 않은 상품(上品)의 영지 선초를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다.
“음, 그건 국화와 배추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곳에서만 자라요. 보시다시피 외악에는 그런 곳이 없어요.”
“내악에는 있고요?”
“네, 설산(雪山)이라고 워낙 험해서 일반인은 가지도 못해요. 종문 제자들도 오르기를 꺼려 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문 제자들도 오르기를 꺼려 할 정도라면 불가능에 가깝다는 소리다.
‘아니 그 사람들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했지?’
인상을 찌푸리던 연적하의 눈에서 벼락처럼 안광이 번득였다.
‘어라? 그 말은 설산에 있다는 거잖아!’
어디 처박혔는지 짐작조차 못 하는 다른 영지 선초들보다 훨씬 수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