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4
534회. 연적하가 갈 때, 우리도 간다.
독안귀마가 내악(內岳)으로 달아난 날로부터 칠 일이 지났다.
그동안 금단문 사람들은 ‘일엽선초’의 군락지를 하나 더 찾아냈다.
하지만 연적하 일행은 도라지 한 뿌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독안귀마는 더 이상 외악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들 독안귀마가 내악에 자리를 잡았든지,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고 믿었다.
그러자 금단문에서는 사람들을 열 명이나 더 보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영지 선초를 한 뿌리라도 더 캐기 위해서다.
금단문 사람들이 월악산에 드나든다는 소문은 금세 공화현에 퍼졌다.
공화현과 인근 네 개 현에 자리한 문파들이 월악산 야영지를 방문했다.
사람들이 찾아오자 금단문은 꼭꼭 숨겨 왔던 비밀을 털어놨다.
공화현과 인근 네 개 현이 발칵 뒤집혔다.
“현천문과 금단문에서 독안귀마를 내악으로 쫓아냈다!”
“금단문 일대제자 동방유의 검공에 독안귀마가 내악으로 달아났다!”
“금단문에서 ‘은급’ 백호를 잡고, ‘일엽선초’ 스물다섯 뿌리를 캤다!”
물론 ‘은급’ 백호의 사체를 취한 것이지만 소문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잡은 것으로 났다.
사실 독안귀마를 쫓아낸 것에 비하면 ‘은급’ 백호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연적하의 이름도 오르내렸지만 이내 동방유에 묻혔다.
공화현 상인들은 ‘월악산의 외악이 안전하다’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피트렸다.
지난 삼 년간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월악산 인근 다섯 개 현의 무인들이 마지막 한탕을 위해 공화현으로 몰려갔다.
산행을 마치고 야영지로 돌아온 연적하 일행은 하루 만에 꽉 찬 야영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기도 어려웠다.
겨우겨우 자리를 찾아가니 앞뒤 좌우로 낯선 무인들이 가득했다.
황당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연적하가 공지유에게 물었다.
“월악산에 원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삼 년간 입산이 금지되어 있어서 평소보다 더 몰려온 것 같아요.”
“허! 경쟁이 치열해지겠네.”
“아직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곳이 외악뿐이니까요.”
공지유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며칠간 꾸준히 사람이 늘어나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야영지가 꽉 차다니?
독안귀마가 내악으로 달아난 게 칠 일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과한 열기였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장사꾼 놈들이란! 무슨 돼지고기 세 근에 육백 문이나 받아? 거기가 요리점이야? 아무리 야영지라고 해도 그렇지, 생고기값을 왜 그렇게 비싸게 받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마을에서 파는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 아닙니까? 아무리 겨울 전이라고 해도 그렇지 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월악산 특수를 누려 보겠다는 거지요.”
“하여간 도둑놈들이라니까. 그런 건 사 주지 말아야 해. 아무도 안 사면 값이 내릴 거 아냐.”
“안 사면 야영지에서 버틸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사는 거죠.”
“그나저나 성호야, 독안귀마가 외악에 없다는 건 확실한 거냐?”
“예, 금단문에서 투입한 사람이 열셋입니다. 그 사람들 정보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지 않습니까? 문도의 절반을 보낼 정도면 안전할 겁니다.”
“거 참! 동방유의 무공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무슨 기연이라도 얻었나.”
“독안귀마가 연 모라는 고수에게 신경을 쓸 때 기습했다니 사실일 겁니다. 정면 대결을 해서 쫓아냈다면 헛소문일 게 분명하지만요.”
“연 모라는 고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느냐?”
“현천문의 손님이라는 것 외에 다른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희한하단 말이야. 조양성에 연씨 성을 가진 고수는 없었는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다른 성에서 왔겠죠.”
“흠! 종문의 제자도 아닌데 독안귀마와 맞설 수 있는 고수라니. 참 신기하단 말이야.”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은 고기가 익자 조용해졌다.
연적하 일행도 서둘러 숙영지 중앙에 모닥불을 피우고 솥단지를 걸었다.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금단문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연적하 일행은 다시 수약주 전통의 잡탕죽으로 돌아갔다.
후후 불며 죽을 먹던 유익현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연 대협, 쌀이 이틀치 정도 남았는데…….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세요?”
“뭐라도 찾을 때까지요.”
“아, 예…….”
유익현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야영지에 상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면 생필품을 조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공지유가 조심스레 말했다.
“앞으로 칠 일 정도 지나면 노숙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장사꾼들이 가격을 두 배 세 배 후려치면 거의 끝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연적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표정과 달리 속은 타들어 갔다.
겨울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영지 선초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금단문 사람들이 ‘은급’ 백호에 ‘일엽선초’까지 구하는 동안 쌀만 축낸 셈이다.
이대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영지 선초를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봄에도 허탕을 칠지 모른다.
여름, 가을, 계속해서 영지 선초를 구하러 다닐 걸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제길, 누님을 찾아야 하는데 엉뚱하게 월악산에서 무슨 짓이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왕들의 하늘’까지 와서 십전무후 남궁연이 아니라 영지 선초를 찾으러 다니게 될 줄이야!
표시 나지 않게 속으로 끙끙 앓던 연적하가 지나가듯 물었다.
“공 소저, 그 ‘천년설연화’ 말이에요. 값은 얼마나 나가요?”
“못해도 금 삼백 냥은 받을 거예요.”
풀 죽어 있던 연적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삼백 냥이면 수약주의 일을 마무리하고 한산주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팔려요?”
“그럼요. 그건 종문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영지 선초거든요.”
약재상이 목표인 유익현이 한마디 거들었다.
“‘천년설연화’는 만병통치약이라 아무 약재상이나 가지고 가면 바로 매입해 줄 겁니다.”
“혹시 설산에 가실 생각은 아니죠?”
공지유의 물음에 연적하는 웃기만 했다.
어딘지 찜찜한 느낌에 공지유가 다시 물었다.
“설산은 내악에 있어요. 독안귀마가 내악에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설산에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순간 공지유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저건 ‘내악에 들어가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연 대협, 절대 안 돼요. 지난번에 독안귀마와 싸워 보셨잖아요?”
“누가 독안귀마와 싸우러 가나요? 독안귀마는 말이니까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일년 내내 추운 설산에는 없을 거예요.”
“그, 그렇기는 한데. 설산까지 가려면 내악을 지나야 하니까 문제죠.”
“괜찮아요. 저 혼자 경공술로 가면 설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
공지유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무위라면 독안귀마를 만나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공지유와 유익현이 연적하의 설산 발언에 놀라 멍하니 있을 때다.
“실례합시다. 말씀을 들으니 현천문 분들 같은데, 맞소?”
공지유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던 옆자리의 무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네, 저는 현천문의 삼대제자 공지유예요. 무슨 일이시죠?”
“아, 나는 적산현 고산문의 일대제자 곽초성이오. 이야기를 들으니 저쪽 분이 독안귀마와 싸웠다고 하던데, 혹 연 모라는 분이시오?”
곽초성이 자신을 가리키자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말씀은 많이 들었소. 독안귀마와 홀로 싸우셨다고?”
“예.”
“젊어 보이는데 대단하시오. 그런데 설산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소만. 정말 내악에 들어가실 생각이오?”
“당장은 아니고요. 월악산을 떠나기 전까지 영지 선초를 구하지 못하면, 한번 가 볼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독안귀마가 내악에 있다고 하던데 괜찮겠소?”
“아시다시피 한번 싸워 봤는데, 막 죽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대단하시오.”
곽초성은 연적하의 전신을 슬쩍 훑어보았다.
딱히 고수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겉모습만 봐서는 기생오라비인데 독안귀마와 싸웠다니 기이할 뿐이다.
독안귀마를 제외하면 통하는 이야기가 없는지라 대화가 지지부진했다.
실망한 곽초성은 덕담을 던지고 다시 고산문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승인 곽초성이 돌아오자 이대제자 신성호가 물었다.
“스승님, 정말 현천문의 사람들이 맞답니까?”
“그렇다는구나.”
역시 이대제자인 백설헌이 불쑥 끼어들었다.
“저들 중에 누가 연 모예요?”
“가운데 앉아 있는 청년이 연적하라고 하더구나.”
“어머, 셋 다 어려 보이는데 정말 현천문 사람들이 맞아요?”
곽초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봐도 소문과 실제가 다른데 제자들은 오죽할까.
현천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성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소문은 믿을 게 없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독안귀마와 싸우기는 했던 걸까요?”
곽초성은 대답하지 않고 모닥불가에 굴러다니는 잔가지를 발로 밀어 넣었다.
자신도 그게 궁금했다.
독안귀마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독안귀마가 월악산에 있기는 한 걸까?
삼 년 전 월악산에서 일대 참사가 일어난 뒤로 누구도 월악산을 찾지 않았다.
‘외악에 이토록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곽초성의 눈이 월악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독안귀마가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집 주변에 들끓고 있는데 가만히 두고 본다고?
월악산을 제집으로 여기던 독안귀마가?
연적하가 내악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것도 영 수상쩍다.
거기까지 생각한 곽초성이 중얼거렸다.
“독안귀마가 월악산에 없었다면…….”
그렇다면 동방유와 연적하가 독안귀마를 쫓아냈다는 게 설명이 된다.
가만히 스승을 지켜보고 있던 신성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예? 독안귀마가 월악산에 없다고요?”
“너희들 눈에 연적하가 독안귀마와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룰 고수로 보이느냐?”
“전혀요.”
신성호가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그건 백설헌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보니 딱 본문의 삼대제자인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런 사람이라면 벌써 소요종에 들어갔을 거예요.”
“사매의 말대롭니다. 그 정도 재능이면 소요종에서도 천재 소리를 듣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연적하는 종문 제자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형,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종문 제자가 아니래요. 그건 확실해요.”
곽초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는 스스로 석경장의 장주라고 했다. 종문과 관계가 없다는 소리지.”
순간 신성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스승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독안귀마가 없었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됩니다. 금단문이 유명세를 얻으려고 장난을 친 겁니다. 외악이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독안귀마가 내악에 처박혀서 안 나온다? 새빨간 거짓말이지요.”
“아!”
백설헌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이번 일로 금단문과 동방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긴 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곽초성이 입을 열었다.
“수일 내로 연적하가 내악에 들어갈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또 소문이 돌겠지. 연적하와 금단문에서 내악의 독안귀마를 쫓아냈다고.”
“와! 진짜 웃긴 사람이네요.”
백설헌이 황당한 눈으로 현천문의 자리를 힐끔거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연적하라는 놈의 귀싸대기를 날려 주고 싶었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런 그녀의 귓가로 곽초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금단문만 꿀을 빨게 둘 수는 없지. 내악의 독안귀마는 우리 고산문이 쫓아낸 것으로 만들 것이다. 연적하가 내악으로 갈 때, 우리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