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7
537회. 절망의 맛
고산문의 사람들은 일대제자이자 최고수인 곽초성이 단숨에 제압당하자 기함을 했다.
적산현의 고산문은 공화현의 금단문보다 크다.
전반적으로 금단문보다는 고산문 제자들의 수준이 더 뛰어났다.
고산문의 일대제자 곽초성이 금단문의 일대제자 동방유보다 고수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산문 사람들은 독안귀마가 나타났을 때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동방유가 한 일이라면 당연히 곽초성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날 동방유의 곁에는 연적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켜본 연적하는 소문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협잡꾼 기질이 농후한 연적하보다 자신들이 더 뛰어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서 곽초성이 단 한 번의 내려찍기에 당한 것이다.
고산문 사람들은 일제히 이학주를 보았다.
순간 이학주는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 피해라!”
말과 함께 이학주는 솔선수범했다.
이학주가 몸을 돌려 뛰자 이학주의 제자들은 우르르 그를 따라갔다.
신성호와 백설헌은 한순간 멈칫했다.
최소한 스승의 생사라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헉!’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놀랍게도 독안귀마의 발아래 깔린 스승은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스승을 두고 달아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몸을 돌려 달아나는 신성호와 백설헌의 귓가에 ‘푸륵!’ 하고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비웃음 같았다.
그러나 수치심도 그들의 걸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스승에 대한 정리(情理)보다는 생존의 욕구가 더 강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게 있다.
독안귀마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다.
흑풍(黑風)이 신성호와 백설현을 휘감아 장천봉 정상에 돌려놓았다.
먼저 달아난 이학주와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산문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독안귀마의 눈치만 살폈다.
피에 젖은 눈으로 고산문 사람들을 보던 곽초성이 푸들푸들 웃었다.
처음에는 이해하면서도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냥 웃음만 나왔다.
신성호와 백설헌은 스승을 볼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나 이학주는 그러지 않았다.
“왜 웃소? 사형 때문에 모두가 다 죽게 되었는데 미안하지도 않소?”
그제야 신성호와 백설헌도 슬쩍 얼굴을 들었다.
얼핏 방귀 뀐 놈이 도리어 성내는 것 같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들 모두 외악(外岳)에서 한가하게 영지 선초를 찾으러 다니고 있었을 테니까.
곽초성도 뒤늦게 그걸 깨달았는지 입을 열었다.
“모두가 내……. 윽!”
독안귀마가 앞발로 곽초성의 등짝을 내리눌렀다.
이윽고 긴 혀로 마치 당과를 핥듯이 곽초성의 머리를 세심하게 핥았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려 곽초성의 머리를 물어 갔다.
고산문 사람들은 차마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독안귀마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다.
먹잇감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즐기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들의 경우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렇게 했다.
고산문의 사람들을 모은 것도 그래서다.
독안귀마는 인간이 절망에 잠식되어 가는 과정을 별미로 여겼다.
그래서 모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자, 기다렸다.
적당한 시점에 인간들이 눈을 뜨면 보란 듯 ‘와그작!’ 씹어 줄 생각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모아 놓은 거니까.
덕분에 곽초성의 똥줄만 탔다.
독안귀마가 단숨에 씹어 삼켰다면 찰나의 고통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독안귀마는 그의 머리를 절반쯤 입에 걸치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정신이 멀쩡한 곽초성에게 그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인간이 죽으면 칠공이 열린다.
근육을 지탱할 힘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죽을 만큼 놀라도 칠공이 열릴 때가 있다.
지금 곽초성이 그랬다.
그의 하반신이 누렇게 물들어 갔다.
갑자기 거름 냄새가 진하게 밀려오자 고산문 사람들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때 독안귀마가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 눈앞에서 곽초성의 머리가 터지기 직전, 비검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독안귀마는 파란 광망에 싸인 비검을 알아보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만약 고집스럽게 곽초성의 머리를 씹었다면 하나뿐인 눈알이 터졌을 것이다.
푸르륵! 푸륵!
독안귀마가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머리를 돌렸다.
아래에서 얼마 전 자신의 영기를 갉아 내던 인간이 달려오고 있었다.
분노한 독안귀마는 흑풍으로 변해 사내에게 날아갔다.
콰콰콰콰-.
‘외악’에 이어 ‘내악’의 장천봉에서 다시 한차례 접전이 벌어졌다.
흑풍과 청광이 만났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청명한 하늘에서 우렛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쿠쿵! 쿵!
고산문 사람들은 연적하와 독안귀마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흑풍’이 독안귀마라면 ‘청광’은 연적하의 이기어검이다.
흑풍과 청광은 마치 유령처럼 이쪽에서 번쩍, 저쪽에서 번쩍거렸다.
입을 쩍 벌리고 보던 이학주가 중얼거렸다.
“사형,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었네요. 동방유도 기연을 얻었었나 봅니다.”
스스로 동방유보다 고수라고 소개했던 곽초성의 얼굴은 붉다 못해 검게 물들었다.
동방유는 찔러서 패퇴시켰는데, 자신은 잡아먹힐 뻔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 주제에 동방유보다 고수라고 으름장을 놨으니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가 땅이 꺼져라 탄식할 때다.
이대제자 백설헌이 조심스럽게 말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놀랍게도 그때까지 곽초성은 자신이 실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숨 돌릴 틈도 없이 독안귀마와 연적하의 싸움이 이어져서다.
개처럼 킁킁거리며 주위를 살피던 고산문 사람들의 시선이 곽초성에게로 향했다.
그의 주변에서 유독 냄새가 심하니 자연 그렇게 된 것이다.
곽초성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치심에 그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어 갈 때다.
히히힝-.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고산문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독안귀마에게로 향했다.
흑풍은 어느새 사라지고 독안귀마의 본신(本身)이 보였다.
청광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독안귀마의 몸통을 때리고 있었다.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 지르던 독안귀마는 산 아래로 내달렸다.
두두두두-.
요란하던 말발굽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청사를 조종하고 있던 연적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살았네.”
또 그 이상한 수법을 쓰나 했는데 독안귀마는 제풀에 지쳤는지 그냥 떠나가 버렸다.
싸움이 길어져 체력전으로 갔으면 솔직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의 동방유와 달리 고산문 사람들은 투기를 잃은 상태였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멍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은 독안귀마가 머리통을 ‘똑똑’ 잘라먹어도 제 순서를 기다릴 사람들이다.
절망은 그처럼 무섭다.
무엇이건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넋 놓고 죽음만 기다리니 말이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연적하가 고산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왜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독안귀마와 싸우러 오신 분들 아니에요?”
이학주가 급히 머리를 숙였다.
“소, 송구합니다. 저희는 금단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악까지 왔던 것이지, 결코 독안귀마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고산문 사람들은 감히 입도 뻥긋 못 하고 연적하의 눈치만 살폈다.
“나도 내악에 독안귀마가 있다고 했는데. 내 말도 믿지 못한 거네요?”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 눈이 어두워 미처 대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내려가다가 느낌이 싸해서 다시 왔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어요?”
이학주가 남 앞에 나서기 부끄러운 사형을 대신해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연 대협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잊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더 늦기 전에 얼른 외악으로 나가요. 나는 바쁜 사람이라 일일이 따라다니며 도와줄 수 없으니까.”
“예, 예,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즉시 외악으로 가겠습니다.”
이학주는 자존심을 버리고 굽실거렸다.
그가 본 연적하의 무위는 종문 제자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직은 아니라 해도 곧 종문에 들어갈 테니 나이와 상관없이 큰 어른이었다.
이대제자들은 행여나 연적하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산문 사람들이 하산하자 연적하는 다시 바람처럼 설산으로 달려갔다.
설산.
설산이라고 해도 중턱까지는 월악산의 여느 봉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적하는 중턱에서 잠시 쉬면서 육포를 씹어 먹었다.
그는 호리병에 담아 온 물로 입가심을 한 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자아, 슬슬 찾으러 가 보실까? 호박잎처럼 생겼다고 했었나? 아닌가?”
큰일에 집중하고 나면 모든 게 멍해질 때가 있다.
연적하가 지금 그랬다.
전력을 기울여 독안귀마와 싸우고 난 뒤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 바람에 ‘일엽선초’처럼 직접 본 것이라면 모를까?
이름만 알고 있는 ‘천년설연화’의 경우 다른 것과 설명이 섞여 버렸다.
자신도 이상하다는 걸 알았지만 한 번 꼬인 개념은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니, 호박잎에 배추를 섞었다고 했나? 아, 씨, 호박잎이랑 배추랑 또 뭐가 있었는데……. 무는 분명히 아니고.”
머릿속에서 단어 하나가 뱅뱅 맴도는데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이럴 때면 십전무후 남궁연이 미치도록 그립다.
“아 몰라. 호박잎이든 배추는 보면 알겠지. 눈밭에 풀이 흔한 것도 아니고.”
억지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산을 오르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게 어째 느낌이 싸하다.
기감을 퍼트려 보니 마치 바람처럼 가벼운 그것은 독안귀마였다.
“이 미친 말이 왜 나를 노리지?”
설마 끝을 보겠다는 것일까?
하지만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는 것은 독안귀마도 알고 자신도 안다.
온전한 신격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독안귀마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런데 왜 뒤를 덮치기라도 할 것처럼 저렇게 따라붙는 것일까?
“눈밭에 들어가야 나가떨어지려나?”
연적하는 독안귀마를 떨쳐내기 위해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날아올랐다.
쉬이익-.
하늘을 향해 쏘아진 화살처럼 그의 신형이 위로, 위로 올라갔다.
단숨에 팔분 능선까지 오른 연적하는, 허공답보의 신법으로 눈밭에 착지했다.
무릎까지 눈에 박히자 비로소 설산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고민이네. 호박이는 배추는 눈에 파묻혀서 안 보이는 거 아냐?”
연적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래서는 설산에 ‘천년설연화’가 있다 해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쩝! 쉬운 일이 없네. 하기야 그러니 금 삼백 냥이나 하는 거겠지?”
낙천적인 연적하는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답설무흔과 같은 경신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희귀한 영지 선초를 뛰어다니며 찾을 자신이 없어서다.
덕분에 그의 뒤로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지나간 것처럼 길게 눈이 파헤쳐졌다.
휘이잉-.
하얀 눈 위에 길게 이어진 자국 위로 흑풍이 나타났다.
흑풍은 이내 독안귀마로 변했다.
연적하의 추측과 달리 독안귀마는 유령마처럼 눈 위를 편안하게 걸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