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38
538회. 너의 영기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연적하는 눈밭 위를 착실하게 걸어 다녔다.
행여나 급하게 서두르다가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살폈음에도 ‘천년설연화’로 보이는 것은 찾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 풀때기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눈에 덮인 탓이다.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는 곳에서 영지 선초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눈을 헤치며 나가던 연적하가 멈춰 섰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석양이 빨갛게 물든 게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한다.
하산을 하자니 지금까지 올라온 거리가 아깝다.
고민하던 연적하는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자신의 무공이 뛰어나도 야영지와 설산을 오가는 것은 무리였다.
“하아! 이럴 때는 축지법이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
야영지와 설산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피로도 덜할 터였다.
그는 해가 지기 전에 쉴 곳을 찾기 위해 다시 움직였다.
반 시진(1시간)쯤 돌아다녔을까?
마침 적당한 자리가 보였다.
바위와 잡목들이 눈보라를 막아 주었는지 바닥에는 눈도 많지 않았다.
연적하는 바위를 등지고 앉았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모두가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독안귀마 때문이다.
“그놈도 바위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하겠지.”
어느덧 주위가 은근한 어둠에 잠겼다.
불빛은 없었지만 눈 덮인 산이라 그런지 야영지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피로가 풀리자 연적하는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를 주웠다.
추위도 추위지만 독안귀마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불이 필요했다.
가지고 다니던 부싯돌로 모닥불을 피우자 조금 더 아늑한 느낌이다.
연적하는 불 옆에 땡땡 얼은 호리병을 풀어 놓고, 육포와 만두를 뜯어 먹었다.
하늘 위에 세 개의 달이 떠올랐다.
매일 밤마다 봐서 그런지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듯 가장 오른편의 달이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연적하가 정면을 향해 외쳤다.
“야! 인간적으로 잠잘 때는 귀찮게 하지 말자!”
독안귀마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타닥타닥’ 하고 불똥 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 진짜, 그냥 잘 수도 없고…….”
연적하가 설원을 노려보았다.
야영지를 오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만 생각했는데 막상 쉬려니 독안귀마가 걸렸다.
“젠장, 그냥 야영지로 돌아갈 걸 그랬나?”
밤새 독안귀마와 신경전 벌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로가 밀려온다.
근처에 마물이 돌아다닌다는 걸 알면 누구라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그 마물이 반나절 내내 자신의 주위를 맴돌았다면?
“지금이라도 갈까?”
연적하는 안전과 영지 선초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내악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몰라…….”
그는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밀어 넣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하산해야 하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설산에서 버틸 생각이다.
독안귀마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신천응(神天鷹)처럼 자신을 노리고 온 줄 알았다.
그러나 하는 짓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경계심에 따라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본능적으로 그에게 이끌렸다.
저 연적하라는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빼앗긴 신격과 관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저 인간의 기운은 자신의 영기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 기운은 신격밖에 없다.
하지만 하루를 지켜보니 그것도 아니다. 저 인간의 기운은 신격과 달랐다.
신격은 아니다.
만약 저 인간이 입신(入神)에 들었다면, 자신은 첫 격돌에서 이미 죽었을 것이다.
신격은 아닌데 신격에 가까운 뭔가가 있다는 소리다.
한때 신수였던 자신의 영기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기운은 뭘까?
그 기운을 얻는다면 신천응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천응을 생각하자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인간에게서 그 기운을 빼앗아야 한다.
야수와 영물로 신격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독안귀마는 기적을 죽이고 어둠 속에서 연적하를 응시했다.
그가 잠들면 번개처럼 달려가 머리를 ‘와그작’ 씹어 삼킬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는 말이 있다.
한 시진 이상 멍하니 모닥불을 들여다보던 연적하는 눈을 끔뻑거렸다.
불의 열기에 눈이 말라서 그런지 뻑뻑했다.
억지로 하품을 하자 눈물이 맺혀 눈은 편안해졌지만,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하품으로 신체의 긴장이 풀려 느슨해진 탓이다.
일단 잠이 밀려오면 천하장사라도 당해 내지 못한다.
몽롱한 눈으로 불꽃을 들여다보던 연적하의 머리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연적하는 짧은 꿈을 꾸었다.
책을 읽고 있던 십전무후 남궁연이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았다.
연적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누님!”
남궁연이 배시시 웃으며 뭐라고 말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답답해진 그가 소리쳤다.
“누님! 잘 안 들려요!”
부지불식간에 귀가 열리고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명이라는 걸 만나게 된다면 인간이 할 일은 두 개야. 순응하거나, 혹은 극복하거나. 언젠가 가혹한 운명을 맞닥뜨려도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때는 하늘이 또다시 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 순응할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누님, 왜 그런 소리를 해요?”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
“뭘요?”
“운명을.”
말과 함께 남궁연이 읽고 있던 책을 연적하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탁-.
불꽃 튀는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울렸다.
흠칫 놀란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마 위 한 뼘 거리에 말발굽이 보였다.
그의 몸이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이동했다.
뒤이어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쿵!’ 하고 말발굽이 떨어져 내렸다.
연적하는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어느새 그의 손에 청사(靑蛇)가 들려 있었다.
“이 미친 말아! 그 좋은 꿈을 방해해? 너 오늘 죽었다!”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연적하는 허공에서 구천구검을 펼쳤다.
현녀강림(玄女降臨)의 검기가 독안귀마를 난자했다.
콰자자작!
독안귀마는 검기에 두들겨 맞았지만 이내 흑풍으로 변해 장내를 빠져나갔다.
연적하가 질풍처럼 따라붙으며 연신 검기를 쏟아 냈다.
우르릉- 꽈광!
설원에서 한차례 숨 가쁜 추격전이 벌어졌다.
독안귀마는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달아났고, 연적하는 미친놈처럼 검기를 난사했다.
고요하던 설산이 우렛소리에 뒤덮였다.
그리고 연적하와 독안귀마가 일으킨 소란에 설산이 깨어났다.
쿠르르르-.
묵직한 울림에 연적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확히는 설산에 쌓인 눈이 폭포수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연적하가 발출한 검기에 눈사태가 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연적하는 물론 독안귀마까지도 한순간 정지했다.
곧이어 연적하와 독안귀마는 산 아래로 바람처럼 내달렸다.
산사태보다 그 둘의 발이 더 빨랐다.
한참을 정신없이 내려가던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절벽 앞에서 멈춰 섰다.
이젠 이십여 장(약 60미터) 건너편으로 넘어가든지 눈에 파묻히든지 해야 할 판이다.
연적하는 독안귀마를 힐끔 보았다.
저도 놀랐는지 더 이상 처음과 같은 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야! 일단 눈사태는 피하고 보자. 알겠냐?”
…….
독안귀마는 대답하지 않고 맞은편 산줄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연적하도 지체하지 않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콰르르르-.
쓸려 내려온 눈더미가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 절벽으로 떨어져 내렸다.
건너편 산.
눈사태에 쫓기느라 진이 빠진 때문일까?
연적하와 독안귀마의 대치는 이어졌지만 아까처럼 긴박한 느낌은 없었다.
연적하가 청사로 독안귀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 해볼 테냐?”
그제야 시들한 음성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그만하지.
“내가 불구대천의 원수냐?”
-아니다.
“그런데 왜 나를 뒤따라 다녀? 자고 있는데 기습까지 하고. 원수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
독안귀마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의 기운이 탐나서 그랬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아, 젠장. 자다가 말고 이게 무슨 일이래? 여긴 또 어디고? 돌겠네.”
그렇지 않아도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눈사태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투덜거리는 연적하의 뒤통수를 독안귀마가 힐금 힐끔 쳐다보았다.
딱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인간이 왜 그렇게 강한지 모르겠다.
-너는 소요종의 사람인가?
“전에 석경장의 연적하라고 말한 것 같은데? 신격을 잃으면 머리도 나빠지나?”
-석경장은 종문과 관계가 없느냐?
“전혀.”
-그렇군. 하기야 종문의 제자라면 나에게 먹혔을 테지.
말과 함께 독안귀마는 연적하를 이리저리 살폈다.
종문도 아닌 인간이 이렇게 강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너 종문의 제자도 잡아먹었냐?”
-나에게 도전한 자들을 먹었다. 종문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뭐? 종문이 서로 잡아먹는다고?”
연적하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독안귀마를 보았다.
종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잡아먹을 줄은 몰랐다.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나도 머리만 먹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종문의 제자들이 서로를 먹었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종문의 제자들은 상대의 기운을 빼앗고 죽인다. 나도 그들과 같은 일을 했다.
그제야 연적하는 독안귀마의 말을 알아들었다.
종문이는 신수는 상대에게 기운을 빼앗는 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그래서 내 기운을 빼앗아 가려고?”
-네가 이곳에 온 것도 누군가의 기운을 취하기 위함이 아닌가? 나 역시도 그랬을 뿐이다.
“아닌데? 나는 그냥 영지 선초를 구하러 온 건데?”
-영지 선초? 너에게 영지 선초가 필요하다고? 믿을 수 없다.
독안귀마가 기이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괴랄한 영기는 영지 선초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신수들이 삼천(三天)의 신좌를 차지했을 것이다.
“아, 돈이 좀 필요해서.”
독안귀마는 연적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속세에서 벗어나 신이 되길 바라지 않는가?
“꼭 찾아야 할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찾으려면 돈이 좀 많아야 해.”
독안귀마의 외눈이 번득였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영지 선초라면 타협의 여지가 있을 것도 같았다.
-종문이 아니라면 너의 영기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왜?”
-나는 영지 선초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네가 가진 영기의 내력을 알려 주면, 나도 영지 선초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겠다.
뚱한 얼굴로 대화하던 연적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독안귀마를 보았다.
저 미친 말이 영지 선초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