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5
545회. 천관산맥에서 일어난 일은 천관산맥에 묻혀야 한다.
한 달 보름 전.
천관산맥.
자정 무렵.
어두운 숲속에 일진광풍이 휘몰아쳤다.
바람이 잦아든 자리에는 한 사람이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죽은 것처럼 한동안 미동도 않던 그가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허리야. 삭신이 다 쑤시네.”
투덜거리며 허리를 툭툭 두드리는 그는 구천노도 심통이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냐?”
심통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나무 탓에 ‘풍지산’인지 ‘왕들의 하늘’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잔머리가 뛰어난 그는 이내 풍지산과 이곳의 차이를 발견했다.
나무가 달랐다.
이곳의 나무에 비하면 풍지산의 나무는 어린 묘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건 못해도 수령이 천 년은 넘는 것 같은데…….”
잡목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성인들 서넛이 둘러쌀 정도의 크기였다.
맹세컨대 풍지산에서는 이런 크기의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왕들의 하늘’이구나!”
심통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말로만 듣던 ‘왕들의 하늘’에 직접 오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사람 팔자 알 수가 없다니까.”
팔황신모가 오고 싶어 안달이 난 곳인데, 자신은 너무도 손쉽게 왔다.
“그나저나 공자님을 어디 가서 찾지?”
중얼거리던 심통은 일단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나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나무 위에 올라선 그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헐! 뭐야? 달이 왜 저렇게 많아?”
세 개의 달이 만들어 낸 빛으로 나무 위는 숲속과 달리 거의 대낮처럼 환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산과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압도적인 경관 앞에 심통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미쳤다. 미쳤어! 이런 곳도 있구나.”
연신 ‘미쳤다’를 연발하던 심통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어디서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급히 공력을 귀로 모아 희미한 소리에 집중했다.
챙! 채앵-.
과연! 이건 칼부림을 할 때나 나는 소리다.
잠시 생각하던 심통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누가 싸우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상대의 검기에 밀린 천뢰종의 고수 옥청 진인은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천관 산맥은 넓고, 영물은 많은데, 꼭 이래야겠소?”
그러자 맞은편의 노인, 혈주종의 고수 우이단녹록이 괴소를 흘리며 답했다.
“클클! 그건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 할 법한 소리고. 우리처럼 우열이 분명한 경우에는 정해진 결과가 있지 않은가. 순순히 영기를 바치고 적멸(寂滅)의 세계로 돌아가시게나.”
“허허, 영물이 아니라 내 영기를 달라? 감히 나 옥청의 영기를 노리시겠다?”
옥청 진인이 기가 막힌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담담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필 금란봉황을 제압하느라 원기를 많이 쓴 지금 저런 고수와 만나다니…….’
일각(15분)의 여유만 있었어도 이렇게 당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끌어 봐야 소용없다.”
말과 함께 우이단녹록이 새카만 죽장(竹杖)을 한차례 휘둘렀다.
허공에 거대한 흑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하게도 흑룡의 몸통에는 비늘 대신 수천 개의 칼날이 붙어 있었다.
우이단녹록이 다시 한번 죽장을 휘두르자 흑룡은 한 자루 ‘묵빛 검[墨劍]’으로 화해 옥청 진인에게 날아갔다.
묵검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옥청 진인은 급히 검령(劍靈)을 끄집어냈다.
옥청 진인의 앞에 시퍼런 ‘검기의 벽[劍壁]’이 나타났다.
달빛을 받은 검벽이 바다처럼 푸른 빛으로 일렁거렸다.
이윽고 묵검이 검벽을 찍었다.
꽈광!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천지가 한 차례 요동쳤다.
검벽을 확인한 옥청 진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저 기이한 묵검을 막다니! 역시 비경에서 얻은 ‘활검령’의 공능답다.
그때다.
묵검이 돌연 흑룡으로 변했다.
이윽고 검 형상의 비늘들이 거꾸로 서더니, 이내 흑룡이 검벽을 파고들었다.
가가가각-.
파란빛으로 일렁이던 검벽이 조금씩 찢겨져 나갔다.
깜작 놀란 옥청 진인은 검벽에 자신의 영기를 더욱 밀어 넣었다.
흑룡이 뒤로 밀려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검벽을 헤집기 시작했다.
“크으윽!”
옥청 진인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자신의 검벽은 저 흑룡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는 옥청 진인과 달리 우이단녹록은 여유만만했다.
“클클클, 그대의 ‘활검령’은 아직 나의 ‘살검령’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구먼. 그만 포기하시게.”
이를 빠드득 갈던 옥청 진인이 냉 소를 쳤다.
“흥! 누구 좋으라고!”
그는 자신의 옥청검에 구 할의 공력을 밀어 넣은 후 우이단녹록에게 던졌다.
쉬이이익-.
그러자 우이단녹록이 죽장으로 옥청검을 쳐 냈다.
채앵-.
죽장과 검신이 맞부닥쳤는데 기이하게 쇳소리가 났다.
밤하늘로 튕겨 났던 옥청검이 다시 우이단녹록의 머리로 떨어졌다.
이기어검의 수법이다.
옥청 진인은 ‘검령’과 ‘이기어검’을 동시에 펼치는 기예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 기예는 옥청 진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이단녹록의 죽장은 이기어검을 막고, 흑룡은 검벽을 파고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승패가 드러났다.
옥청 진인의 옥청검은 번번이 죽장에 막혔는데, 흑룡은 검벽을 거의 다 뚫은 상태였다.
흑룡이 검벽을 통과하면 옥청 진인은 큰 낭패를 당할 게 분명했다. 저 무시무시한 ‘살검령’을 맨몸으로 맞이해야 하니 말이다.
검벽이 거의 뚫리자 옥청 진인은 이기어검에 모든 공력을 밀어 넣었다.
쐐애애액-.
귀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옥청검이 우이단녹록을 향해 날아갔다.
기다렸다는 듯 우이단녹록이 죽장을 허공에 던졌다.
풍차처럼 회전하는 죽장에 옥청검이 또다시 걸려들었다.
콰차차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서로에게 힘을 소진한 옥청검과 죽장이 나란히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검벽이 뚫렸다.
콰자작-.
검벽을 통과한 흑룡이 옥청 진인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대경실색한 옥청 진인은 쌍수로 대라장법을 펼쳤다.
거대한 장영(掌影)이 흑룡을 향해 마주 나아갔다.
그러나 ‘활검령’으로 만들어진 검벽조차 막지 못한 흑룡이다.
장풍은 흑룡에 닿자마자 터져 나갔다.
퍼퍼퍽!
옥청 진인은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했지만 ‘살검령’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콰직-.
허공에서 어깨를 얻어맞은 옥청 진인은 강풍에 날리는 낙엽처럼 맥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옥청 진인은 무려 독요 오성(五成)의 경지에 이른 고수.
그 와중에 옥청 진인의 검결지가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옥청검이 뱀처럼 지면을 스치며 우이단녹록에게 날아갔다.
우이단녹록이 ‘쯧쯧!’하고 혀를 차며 가볍게 뛰어올랐다.
동시에 한쪽에 떨어져 있던 죽장이 우이단녹록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기어검의 목표는 우이단녹록이 아니라 옥청 진인이었다.
허초로 잠깐 우이단녹록의 시선을 끈 옥청 진인은 되돌아온 검 위에 훌쩍 올라탔다.
어검비행으로 달아나려는 것이다.
뒤늦게 옥청 진인의 속셈을 알아차린 우이단녹록이 냉소를 날렸다.
“흥! 그 몸으로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옥청 진인은 이미 자신의 ‘살검령’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그러니 자신은 둘째치고, 천관산맥에서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할 터였다.
영물조차 당해 내지 못할 몸이 되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옥청 진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장내를 벗어났다.
우이단녹록이 급히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사이 원기를 회복한 금란봉황은 금빛 눈을 끔뻑이다가 자리를 박차고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삐이이이-.
어부지리로 자유를 얻게 된 어린 봉황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우이단녹록이 말한 대로 옥청 진인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어검비행으로 날아가던 그는 ‘울컥!’ 피를 토한 뒤 아래로 추락했다.
한편 앞으로 달려가던 심통은 섬뜩한 느낌에 우뚝 멈춰 섰다.
곧이어 그의 앞으로 웬 노인과 검 한 자루가 뚝 떨어져 내렸다.
우지끈 뚝딱 -.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니 온몸이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부르르 몸을 떨던 심통은 부리나케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뒤로하고 신선풍의 노인이 검 한 자루에 의지해 힘겹게 서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옥청 진인이 기이한 눈으로 염소수염의 노인을 보았다.
평범해 보이는 일반인이 어떻게 천관산맥의 깊은 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저 말씀이십니까?”
심통은 신선풍의 노인에게서 풍기는 기도에 눌려 어깨를 움츠렸다.
파천마군 석무해나 연적하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기운이라니!
“이곳에 다른 사람이 또 있던가? 그대의 생사가 달려 있으니 신중히 답하라.”
노인의 지적에 심통은 가슴이 철렁했다.
괜히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단박에 숨통이 끊어질 것 같았다.
“소인은 풍지산에서 온 심통이라고 합니다. 어르신께서는 누구신지요?”
“나는 천뢰종의 옥청 진인이라고 한다. 가까이 오라.”
“…….”
심통은 거부하지 못하고 옥청 진인에게 다가갔다.
순간 옥청 진인이 벼락처럼 손을 뻗어 심통의 완맥을 움켜잡았다.
무림의 절정고수인 심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완맥을 내어 주었다.
‘헉!’
무인에게 ‘완맥을 잡힌다’는 것은 생사를 내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
심통은 순한 양이 되어 옥청 진인의 눈치만 살폈다.
다행히 무덤덤하던 처음과 달리 온화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럴 때는 도가 계열의 무공을 다시 익힌 게 잘한 일이다 싶다.
“흐음. 광명정대한 기운을 보니 웅천주의 사람은 아닌 모양이로군.”
옥청 진인이 심통의 손을 풀어 주었다.
‘웅천주’의 무인들은 차갑고 음습하면서도 끈적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심통의 기운은 호탕해 ‘웅천주’의 무인과 상극이라 할 만했다.
“일행은 어쩌고 혼자서 이곳에 있는가?”
옥청 진인은 당연히 일반인인 심통이 혼자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 그게, 그렇지 않아도 일행과 떨어져 찾아다니던 중입니다.”
심통은 뻔뻔한 얼굴로 옥청 진인을 보았다.
십전무후 남궁연과 연적하를 찾고 있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옥청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선(人仙)이라 불리는 ‘독요’의 경지에 들면 거짓말쯤은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눈에 심통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대는 귀식대법을 쓸 줄 아는가?”
귀식대법이란 숨이나 맥을 정지한 상태로 오랜 시간 견디는 수법이다.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옥청 진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인데 심통이 귀식대법을 쓰지 못한다니.
‘죽여야 하나?’
그가 망설일 때 허공에서 흑포를 걸친 노인이 떨어져 내렸다.
한 손에 기다란 죽장을 든 그는 혈주종의 고수 우이단녹록이었다.
“클클, 고작 이 정도밖에 못 오다니? 실망이야. 그 늙은이는 설마 종복인가?”
황당한 얼굴로 듣고 있던 심통이 나섰다.
“저기, 어르신.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이쪽 분의 종이 아닙니다. 그저 헤어진 일행을 찾아다니던 중에 우연히 만난 것뿐입니다.”
눈치 빠른 심통은 살아나기 위해 옥청 진인과 자신이 무관함을 밝혔다.
하지만 우이단녹록에게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천관산맥에서 일어난 일은 천관산맥에 묻혀야 하니까.”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소리다.
나중에라도 천뢰종에서 복수하겠다고 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