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88
588회. 선배님, 소격각이 뭐 하는 데예요?
연적하가 소요종의 ‘비승과해’에 참가한 것은 무슨 대단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목적은 남들처럼 삼천(三天)의 신이 아니라 남궁연을 찾는 데 있었다.
그래서 태을존자가 ‘오! 그래, 너는 무엇이 알고 싶으냐?’고 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요종 최고 미녀가 누군지 궁금해서요.”
“…….”
훈훈하던 장내 분위기가 싸해졌다.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열 명의 노조(독요의 경지)는 잡아먹을 듯 연적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세 명의 제군(현인의 경지)과 당사자인 태을존자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경험이 쌓였음을 의미한다.
제군과 존자는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인물들.
천지 분간 못 하는 청년의 말 한마디에 분노할 사람들이 아니다.
태을존자가 희귀한 생물을 보는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지닌바 영기에 비해 무위가 기이할 정도로 높더니 사고방식마저 남다른 것 같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것은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소요종 종사에게 그와 같이 덜떨어진 질문을 한 사람은 이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적하요.”
그의 맑은 눈망울을 본 태을존자는 다시 한번 그의 척박한 영기가 아쉬웠다.
오행의 영기만 됐어도 자신이 거두어 갔을 것이다.
태을존자는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부터 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그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새로 얻은 여제자를 힐끔 본 후에 답했다.
“내 제자가 소요종 최고의 미녀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종사가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소요종 최고의 미녀는 초월전의 검서린이다.”
잠시 말을 멈춘 태을존자가 한산월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대의 제자가 보이지 않는구려?”
“검서린은 ‘원영 칠 성’의 경지를 앞두고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오호! 벌써 원영 칠 성을 바라보고 있소? 실로 무지막지한 속도로고.”
태을존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제 고작 삼십 대인 검서린이 원영 칠 성을 앞두고 있다니 그야말로 놀랄 일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태을존자가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요종 최고의 미녀가 누구냐고 묻더니 대답을 듣고는 조금 실망한 얼굴이다.
“연적하라고 했더냐.”
“예.”
“너를 위해 한마디 해 주마. 종문에서는 젊은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검서린처럼 영기가 뛰어난 사람들의 경지는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
연적하가 시들한 얼굴로 답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소요종에는 남궁연이 없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확인하고 나니 기운이 쪽 빠졌다.
태을존자는 그런 연적하를 한번 본 후에 은소선에게 손을 슬쩍 흔들었다.
순간 은소선과 태을존자의 발밑에 오색의 운무가 소리 없이 깔렸다.
이윽고 태을존자가 세 명의 제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제군들, 나는 이만 가리다. 구월의 비경(秘境)을 잘 부탁드리오.”
그러자 세 명의 제군이 화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천지종을 누르겠습니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태을존자가 가볍게 뒷짐을 졌다.
오색 운무가 부드럽게 하늘로 떠오르더니 천주봉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태을존자가 사라지자 한산월이 초요산과 진곤에게 먼저 말했다.
“존자께서 내 제자를 거론한 것을 보니 두 분에게 양보하라는 뜻 같소.”
사실 그는 검서린에게 만족하고 있었다.
비록 영기는 오행에 불과하지만 천고의 기재라 벌써 ‘원영 육 성’인 까닭이다.
그녀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새 제자에 대한 욕심을 비워야 했다.
직전 제자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영약과 재물이 산처럼 들어간다.
제자가 뛰어날수록 더 그랬다.
부족한 영기를 채워 줘야 하는데 자질이 뛰어날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한산월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원양(原陽)의 제자를 두고 신경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순간 초요산과 진곤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두 사람은 상품인 원양의 제자를 서로에게 양보할 뜻이 없었다.
둘의 눈싸움을 지켜보던 한산월이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저 아이에게 스승을 선택하라고 하는 건 어떻겠소?”
그 말에 초요산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원양의 제자를 데리고 온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다.
진곤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찡그렸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한산월이 원양의 제자를 단상으로 가까이 불러들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신이승이라 합니다.”
“그래 신이승, 잘 듣고 답해야 할 것이다. 소요종에는 세 분의 제군이 계신다. 각각 무궁전, 초월전, 북명전의 주인이시지. 그중에 무궁전의 주인이신 초요산 제군과, 북명전의 주인이신 진곤 제군이 너를 제자로 원하신다. 너는 어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으냐?”
고민하던 신이승이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저는 초요산 제군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자 한산월이 진곤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곤은 불쾌한 얼굴로 ‘흥!’ 하고 냉소를 치더니 어검비행의 수법으로 사라졌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한산월이 초요산에게 말했다.
“이거 오늘 진곤 제군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소. 나도 이만 가 보리다.”
“감사하오. 오늘의 은혜는 잊지 않고 갚겠소.”
“허허허! 은혜라고 생각되면 내 제자에게 부스러기라도 내려 주시구려.”
말과 함께 한산월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순간 그의 등 뒤에 매어져 있던 고검이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그의 발등 높이까지 천천히 내려앉았다.
태연히 검신을 밟고 선 한산월은 검광에 감싸인 채 동편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초요산과 신이승의 발밑에 오색의 운무가 피어올랐다.
막 날아오르려던 초요산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실로 아까운 재능이로다.’
영기가 하품(下品)인 ‘오행간’만 되었어도 제자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존자나, 다른 제군들이 그를 거두지 않은 것은 영기의 질 때문이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영기의 질이 중요해진다.
그걸 뻔히 알면서 눈앞의 무위에 혹해 연적하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초요산이 제운종의 구결을 암송하자 오색 운무가 둥실 떠올랐다.
신이승은 오색 운무 위에서 연적하를 내려다보았다.
불우산에서 그를 처음 만난 이래 처음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내려다보는 게 확실히 뿌듯하다.
‘연 형. 오늘 이후로는 당신이 나를 올려다보아야 할 게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제군의 제자가 되었으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었다.
존자와 제군들이 모두 사라지자 은근히 사람들을 누르던 압력도 일시에 해소됐다.
대라각(大羅閣) 각주 주역봉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말하기에 앞서 감히 종사에게 망발을 한 연적하를 쏘아보았다.
‘이놈, 알량한 재주를 믿고 종사에게 그따위 질문을 해? 소요종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게 해 주마.’
어지간한 일에 초탈한 존자나 제군들과 달리 노조(老祖)인 그는 연적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주역봉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아홉 명의 노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 저들을 제자로 거두어 가실 분이 계시오?”
노조들의 시선이 일제히 ‘독요 십 성’인 청요를 향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행여나 독요 최고의 고수인 그녀보다 먼저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사십 대로 보이는 중년의 미부(美婦), 청요가 공지유를 가리켰다.
“나는 저 아이가 마음에 드네요.”
청요는 처음부터 공지유를 찍어 두고 있었다.
은소선은 어차피 제군들 중에 누군가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연히 그다음은 오행의 영기다.
그중에 제일은 백 근이나 되는 천종(天鍾)을 가지고 온 여자였다.
그녀라면 한산월 제군의 제자인 검서린을 앞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공지유예요.”
“나는 청요 노조니라. 나를 따라오겠느냐?”
“예!”
내심 공지유를 찍어 두었던 몇몇 노조가 탄식했다.
청요가 공지유를 가까이 불러들인 후에 운종술을 펼쳤다.
곧이어 청요와 공지유가 오색 운무를 타고 북쪽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일곱 명의 노조가 제자를 거두어들였다.
오행의 영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노조의 제자가 된 셈이다.
대라각 각주인 주역봉을 제외하고 아홉 명의 노조가 제자들과 함께 떠났다.
오행의 영기를 가진 사람들이 떠나자 진인들도 하나 둘 떠났다.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몇몇 진인들이 연적하를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막상 나서지는 않았다.
무위는 높은데 영기가 쓰레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소요종의 고수들에게 연적하는 계륵(鷄肋)이나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입문하자마자 ‘여색(女色)을 밝히는 놈’으로 찍히기까지 했다.
연적하는 결국 하품인 ‘오행간’의 영기를 가진 다섯 명과 함께 남겨졌다.
잠시 후 대라각 각주인 주역봉이 대라각 운영의 실무자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용운 진인이 두툼한 장부를 들고 달려왔다.
“남은 여섯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되, 연적하는 반드시 소격각(昭格閣)으로 보내라.”
용운 진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격각은 소요종의 뒷간을 청소하는 곳이다.
연적하가 태을존자에게 헛소리를 했으니 소격각도 황송하다 할 수 있었다.
주역봉은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라각으로 들어갔다.
각주가 사라지자 용운 진인은 어깨를 펴고 입문제자들 앞에 나섰다.
그가 대라각의 사람들에게 손을 까닥였다.
누군가 하얀 띠를 가득 들고 달려와 여섯 명의 입문제자들에게 나누어 줬다.
“지금 받은 띠는 ‘연단(鍊丹)의 제자’를 상징하는 띠다. ‘연단’의 과정에 따라 하얀색, 노란색, 청색, 적색, 흑색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연단 이 성이 하얀색, 사 성이 노란색, 육 성이 청색, 팔 성이 적색, 그리고 십 성이 흑색이다. ‘연허’에 도달하면 더 이상 띠를 매지 않아도 된다. 굳이 연단의 제자에게 띠를 매게 한 것은 다른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왜 구별하냐고? 너희는 불우산에 입산한 뒤로 일반인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여섯 명의 입문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러자 용운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불우산에는 일반인이 없다. 불우산에 오른 일반인은 발견 즉시 죽이게 되어 있다. 불우산에 소요종의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는 ‘천애불문비(天涯不文碑)’가 있기 때문이다. 천애불문비에 관해서는 내일 배우게 될 터이니 생략하겠다.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의 일을 너희 ‘연단’의 제자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울해할 것은 없다. ‘연단’의 수련에 육체를 쓰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일도 없으니까.”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건 한마디로 ‘연단의 제자가 소요종의 잡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문득 오봉산에 입산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주방일을 했는데…….’
연적하가 오봉산의 추억에 잠겨 있을 때 용운 진인의 연설도 막바지로 달려갔다.
“……십 년간 너희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준 소요종에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라. 이제부터 너희가 일할 곳을 알려 주겠다. 임화연 구요각(九曜閣), 이달 구요각, 정지심 구요각, 요범 구요각, 병휴 소격각, 연적하 소격각. 대라각의 제자들이 안내해 줄 테니 그들을 따라가라. 출발 하기 전에 띠 두르는 것을 잊지 말고.”
연적하와 다섯 명의 입문제자들은 허리에 흰 띠를 둘러맸다.
곧이어 대라각의 제자들이 다가왔다.
연적하가 자신의 곁으로 온 대라각 제자를 슬쩍 보았다.
허리에 아무런 띠가 없는 걸 보니 ‘연단’의 과정은 끝난 사람이었다.
‘연허’ 아니면 ‘원영’이리라.
“선배님, 소격각이 뭐 하는 데예요?”
그러자 그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뒷간 청소. 자세한 이야기는 소격각의 네 선배들에게 물어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