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13
613회. 잘했어. 이런 날도 있어야지
백무영 진인은 감히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내리깔았다.
그래도 주역봉 노조의 오해만큼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했다.
“물론 입문한 날을 계산하면 다소 빠른 감이 있습니다만…….”
“다소 빠른 감이 있다고? 천만에! 역대 종사님들도 이루지 못한 크나큰 업적일세. 자네의 그 헛소리가 사실이라면 말이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설사 내가 한쪽 눈을 감아 그걸 묵인해 준다고 치세. 다른 진인과 노조 들이 용납할 것 같은가? 입문한 지 이레도 안 된 방사를 노사로 올리겠다고?”
“저어 말씀 중에 외람되온데 노사가 아니라 진인입니다, 진인. 그것도 최소한이 그렇다는 말씀을 덧붙이겠습니다.”
백무영 진인이 한껏 진지하게 말했지만 주역봉 노조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왜? 종사라고 하지? 연적하에게 약점이라도 잡혔는가?”
답답해진 백무영 진인은 결국 무궁전의 초요산 제군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혹시 어제 정오에 어디 출타라도 하셨습니까?”
“잠시 일이 있어 무상각에를 다녀왔네만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그럼 오후에라도 범천봉 북쪽에서 일어난 폭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겠지요?”
“들었네. 누가 멀쩡한 계곡 하나를 뭉개 놨다지? 쓸데없이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을 말하게.”
그제야 백무영 진인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적하 방사가 ‘천애불문비’가 깨지던 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어제 그 깨달음으로 내단과 원신이 합일하였는데, 그 원영(元嬰)의 파동이 무궁전까지 전해졌다고 합니다. 소격각에 있는 저도 느낄 정도로 어마어마했지요.”
뒤로 한껏 젖혀 있던 주역봉 노조의 상체가 반듯하게 펴졌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저는 노조나 제군님 들 중에 한 분이 벽을 깨신 줄 알고 감히 가 보지 못했습니다만, 초요산 제군님께서 축하를 해 주러 달려가셨다고 합니다.”
“그게 연…… 방사다?”
“여기에 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어제 소격각의 방사 하나가 연 방사에게 ‘천산검영’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천산검영’? 설마……. 지금 연 방사가 진검강을 선보였더란 말인가?”
주역봉 노조가 이야기에 빠져들자 백무영 진인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단지 진검강이면 초요산 제군께서 저를 찾아오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초요산 제군님께서는 ‘연 방사가 만들어 낸 검의 화신이 수백 개나 된다’고 하셨습니다. 범천봉 북쪽의 계곡에 그걸 모조리 때려 부었으니 뭉개지고도 남았겠지요.”
주역봉 노조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연적하와 백무영 진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걸 초요산 제군께서 직접 목격하셨다고?”
“예, 바로 저에게 귀띔해 주고 가셨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제가 연…… 방사에게 결례를 범했을 겁니다.”
백무영 진인은 연적하가 아직 방사인 탓에 직위를 올려 부르지 못했다.
“…….”
주역봉 노조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요산 제군이 증언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레도 안 지난 입문 제자가 ‘검의 화신’을 수백 개나 만들다니?
“조금 전에 연 방사가 승급 심사를 받으러 왔더군요. 장소가 소격각인지라, 일 성의 영기로 시전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일 성의 영기에 ‘검의 화신’이 열 개나 현현(顯現)한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백무영 진인은 이제 어쩔 거냐고 묻는 것처럼 주역봉 노조를 빤히 보았다.
주역봉 노조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백무영 진인이 초요산 제군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칠각 제자들의 승급은 기본적으로 각주의 재량에 달려 있다.
아무리 자신이 노조라 해도 백무영 진인의 승급 청원을 막지 못한다.
하물며 초요산 제군의 증언까지 있음에야 말해 무엇하랴.
여기서 계속 승급을 두고 논하는 것은 초요산 제군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무궁전의 전주이신 초요산 제군님과 소격각의 각주인 그대가 인정한다면 확인할 것도 없겠지. 지금 즉시 연적하 방사를 진인의 명부에 올리도록 하겠네. 연적하 진인, 축하드리오. 조만간 연 진인의 검공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겠소? 진인의 경지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배우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게요.”
주역봉 노조는 감히 하대하지 못하고 하오체를 사용했다.
연적하 진인이 정말 ‘검의 화신’ 수백 개를 쓸 수 있다면 노조의 아래가 아닌 까닭이다.
“아, 예.”
연적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에는 검법이 어색했지만 반복할수록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해서다.
“허면 연 진인의 차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오? 소격각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어디 미리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소?”
“삼전과 육각에 지원하면 바로 갈 수 있나요?”
“육각에는 내가 임의로 보내줄 수 있지만, 삼전은 전주님들의 동의 있어야 하오.”
칠각은 주역봉 노조의 권위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제군이 다스리는 삼전은 무리였다.
하지만 질문과 달리 연적하는 어느 곳에도 속할 마음이 없었다.
남궁연을 찾으려면 자유롭게 구주를 돌아다녀야 하는 까닭이다.
“저는 그냥 자유롭게 지내면서 무상각의 의뢰나 해결할까 해요.”
주역봉 노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연적하 진인을 육각에 밀어넣는 것은 각주들에게 못할 짓이었다.
“잘 생각하셨소. 허면 범천봉, 관음봉, 천주봉, 용화봉, 삼신봉, 이 다섯 개 봉우리 중에 어느 곳을 원하시오?”
“무상각에 갈 일이 많을 것 같으니 관음봉으로 해 줘요.”
“관음봉의 백운정이라면 연 진인이 거하기에 괜찮을 게요. 백운정의 관리자에게 통보해 연 진인의 방을 준비해 두라 하겠소. 오늘 점심 이후에 방문하면 안내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리리다.”
백운정은 ‘원영 십 성’의 진인들만을 위한 특별한 숙소다.
거기다 관리자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사실상 최고의 대우를 의미했다.
***
소격각으로 돌아가는 내내 소격각 각주인 백무영 진인은 연적하의 비위를 맞추었다.
종문의 서열은 나이나 입문 연차가 아닌 경지로 정해진다.
이제는 같은 진인인 데다가 무위가 제군에 육박한 연적하는 그냥 윗분이었다.
“허허, 저는 연 진인께서 ‘암영무 혼장’을 검결지로 상대할 때 벌써 보통 분이 아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자랑 같지만 진인 중에 저의 ‘암영무혼장’을 검결지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는 소격각 방사였던 연적하가 각주인 자신에게 대든 사건도 미화시켰다.
연적하는 그저 웃기만 했다.
강호든 구주든 사람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
인간은 대체로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다.
백무영 진인의 아부는 소격각에 도착해서야 끝났다.
각주의 체면을 생각한 백무영 진인은 연적하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격각 앞에서 연적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지금까지 정신없이 몰아친 느낌이다.
대라각에 다녀온 게 전부지만 승급 심사의 압박이 제법 컸는지 피곤했다.
우두커니 서서 소격각의 낡고 비루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짠하다.
소요종에 입문해서 처음 몸담은 곳이라 그런 모양이다.
마치 오봉산채를 보는 그런 기분이다.
강호에서 오봉산채가 꼭 그랬다.
그러고 보니 여러 면에서 소격각은 오봉산채를 닮았다.
자신을 품어 주고,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과거를 추억하고 있을 때다.
때마침 소격각에서 나오던 병휴가 그를 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연 사형? 대라각에 다녀왔어요? 주 노조님이 뭐래요?”
“내 허리를 보면 모르겠냐?”
연적하는 아무것도 묶여 있지 않은 허리를 툭툭 쳐 보였다.
뒤늦게 병휴의 시선이 연적하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매끈한 허리를 확인한 병휴가 손뼉을 치며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와아! 정말 잘됐네요. 그럼 이제 연적하 진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예요?”
“연 사형이라고 해.”
“예, 연 사형. 헤헤.”
병휴는 헤픈 웃음을 줄줄 흘렸다.
방사들 중에 진인을 사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리라.
한참을 웃기만 하던 병휴가 넌지시 연적하를 불렀다.
“연 사형.”
“왜?”
“검령을 얻으면 연 사형도 최소한 노조가 될 수 있잖아요?”
“그렇겠지? 왜?”
“연 사형이 노조가 돼서 독립적인 거처를 마련하면 저 좀 불러 주면 안 돼요?”
“너를?”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승급하는 것보다 연 사형이 노조가 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저 정말 소격각에서 나갔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검령은 인연이 닿아야 얻는 거라고들 해서. 솔직히 모르겠다. 나에게 검령이 찾아올지 안 찾아올지.”
“그렇기는 하네요.”
처음 비경에 들어가 검령을 얻은 사람도 있지만, 백 년을 넘긴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검령을 얻는 시기처럼 천차만별인 것도 없었다.
“여하튼 노조가 돼서 독립하시게 되면 꼭 저를 불러 주십쇼! 연 사형이 제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래, 그때는 연 사부라고 불러야 할 거야.”
“예, 예, 제발 불러만 주십쇼.”
병휴와 시시덕거리던 연적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아직 내 후임 안정해졌지?”
“당연하죠. 각주님이 사형과 함께 나갔으니까. 이제 곧 정해 주겠죠.”
“그럼 오전에 봉황정 청소 안 했겠네?”
봉황정 말이 나오자 병휴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예. 사형이 오늘부터 제가 본래 맡았던 일만 하라고 했잖습니까.”
“잘했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소격각이 봉황정의 종도 아니고. 안 그래?”
“사형 말씀이 맞습니다. 소격각에 일이 생기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연적하와 병휴가 큰소리를 치고 있을 때, 거친 발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자가 나타났다.
연적하와 병휴를 발견한 그녀는 대뜸 병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 이리 오거라.”
“저요?”
연적하와 대화 중이던 병휴가 즉시 달려오지 않자 여자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놈! 진인이 부르면 냉큼 달려와야지, ‘저요’라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중년 여자, 추신영 진인이 눈을 부라렸다.
소격각에 가까이 가기 싫었던 그녀는 방사에게 각주를 불러오라고 할 참이었다.
그런데 갓 입문한 하얀 띠의 방사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속이 뒤집혔다.
하지만 추신영 진인의 호통에도 병휴는 요지부동이었다.
소격각 각주도 절절매는 연적하와의 대화 중에 어디를 간단 말인가.
가급적 소격각에 다가가지 않으려던 추신영 진인의 인내가 바닥이 났다.
막 발작하려던 그녀의 시선이 방사의 맞은편에 있는 청년에게 향했다.
“나는 봉황정의 관리자인 추신영 진인이네. 자네는 누군가?”
그녀는 띠를 매지 않은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다.
소요종 제자들은 냄새로 인해 소격각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적하가 놀란 얼굴로 추신영 진인을 보았다.
방금까지 병휴와 봉황정 얘기를 했는데 봉황정 관리자가 나타나다니!
이걸 공교롭다고 해야 할지, 운명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연적하 진인인데요.”
진인이라는 말에 추신영 진인은 살짝 당황했다.
저렇게 새파란 애송이가 진인이라니?
자신이 소요종의 진인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진인 같지가 않았다.
저 나이에 진인이라면 스승이 종사는 돼야 한다.
하지만 종사의 제자가 미쳤다고 냄새나는 소격각에서 방사와 노닥거린단 말인가!
“그대의 나이는 진인이라 하기에 젊어 보이는군. 실례가 아니라면 언제 입문했는지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육 일인가? 칠 일인가? 병 사제, 우리가 언제 입문했지?”
“연 사형, 오늘이 엿새째 되는 날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어?”
아련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추신영 진인을 돌아보았다.
“육 일 전에 입문했는데요?”
“지금 육 일 전에 입문했다고 했나? 저 방사가 자네의 사제고?”
“예. 맞아요.”
순간 대로한 추신영 진인은 영기를 끌어 올려 소리쳤다.
“감히 방사 놈들이 봉황정의 진인을 기망(欺罔)하다니! 소격각의 각주를 대신해 네놈들을 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