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14
614회. 승급을 하니 종문의 진면목이 보인다.
추신영 진인은 소격각의 개념 없는 두 놈이 자신을 희롱한다 생각했다.
가끔 상대가 여자라고 통하지도 않을 농지거리를 하는 놈들이 있다.
속세에서도 임자를 만나면 된통 당할 텐데, 감히 종문에서 그런 짓거리라니!
그것도 소요종에서 가장 밑바닥이라 불리는 소격각의 어린놈들이?
띠를 매지 않은 놈은 소격각의 하급 관리자인 노사일 게 분명했다.
그렇게 판단한 추신영 진인은 노성(怒聲)과 함께 벼락처럼 두 남자를 덮쳐 갔다.
그녀는 가까운 방사부터 노렸다.
방사를 지나야 노사에게 닿을 수 있어서다.
단 한 번의 손짓이면 방사쯤은 오 장(약 15미터) 밖까지 날아가리라.
그런데 그때 뒤쪽에 있던 노사가 방사를 제 뒤로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방사와 노사의 자리가 바뀌었다.
그래 봐야 노사이니 날아가는 순서만 앞당겨졌을 뿐이다.
추신영 진인은 상급 장법인 범천장(梵天掌)으로 노사를 후려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노사가 손바닥으로 그걸 쳐 내 버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노사의 얼굴을 보니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힘이 부족했었나 보군.’
그녀는 더 강한 힘으로 범천장을 재차 시전했다.
탁-.
그것마저도 노사가 간단히 쳐 내자,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오냐 그렇다면!’
그녀는 ‘범천십팔수’를 동원했다.
무려 열여덟 개의 장영(掌影)이 사방팔방에서 연적하를 향해 몰아쳐 갔다.
노사라면 절대 막을 수 없는 상급의 연환기였다.
하지만 연적하는 경험은 물론 원영에 있어서도 추신영 진인의 아래가 아니다.
파파파파팟-.
상대가 회심의 ‘범천십팔수’까지 막아 내자 추신영 진인은 무리수를 뒀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범천장을 시전한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심중에 청년을 노사가 아니라 진인으로 인정한 상태였다.
연적하의 손바닥과 추신영의 손바닥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퍼엉-.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추신영 진인이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에 반해 연적하는 어깨만 가볍게 들썩거렸을 뿐이다.
누가 봐도 추신영 진인의 패배였다.
다른 누구보다 추신영 진인 본인이 그 사실을 더 잘 알았다.
손바닥이 닿은 순간 항거하기 어려운 미증유의 원영지기가 느껴졌으니까.
‘이, 이게 진인의 원영지기라고? 거짓말!’
반탄력을 받아 낸 탓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추신영 진인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내상을 입었다면 피를 게워 냈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투기는 어느 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는 우열이 확실한 싸움을 물고 늘어질 정도로 우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연 진인, 손속에 사정을 두어 감사합니다.”
추신영 진인은 자신이 연적하보다 아래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연적하는 그녀의 반응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때마침 소격각의 각주인 백무영 진인과 몇몇 방사들이 튀어나왔다.
이 장(약 6미터)여 거리를 두고 대치하듯 서 있는 둘을 본 백무영 진인이 허겁지겁 나섰다.
“추 진인, 연적하 진인은 우리 소격각이 배출한 불세출의 고인이십니다. 무슨 오해가 있었나 본데…….”
추신영 진인이 그의 말을 막았다.
“백 진인, 괜찮아요.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에요. 내가 연 진인의 정체를 의심해서 먼저 손을 썼지만, 연 진인께서 사정을 봐주어서 잘 끝났어요.”
추신영 진인은 ‘원영 사 성’으로 ‘원영 삼 성’인 백무영 진인보다 윗길의 고수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고 있던 백무영 진인은 이미 정리가 됐음을 알고 안도했다.
‘하기야 누구도 믿기 어렵겠지.’
백무영 진인이 조금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추신영 진인을 보았다.
자신만 해도 연적하가 방사일 때 ‘암영무혼장’으로 그를 공격한 적이 있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추신영 진인이 먼저 꼬리를 내리자 연적하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 진인께서 소격각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백무영 진인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추신영 진인이 조심조심 말문을 열었다.
“어제오늘 봉황정 뒷간이 불결하다고 하소연들을 해서……. 원인을 알아보러 와 봤어요.”
“아, 봉황정.”
그제야 백무영 진인은 추신영 진인이 왜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셨군요. 실은 여기 계신 연 진인께서 방사 시절에 담당하던 곳이 봉황정입니다. 연 진인께서 오늘 오전에 승급 심사를 받고 진인이 되셨는데, 제가 아직 담당자를 배정하지 못해 그리된 것 같습니다. 오후에는 담당자가 정해질 터이니 염려 하지 마십시오.”
멍하니 듣고 있던 추신영 진인은 뒤늦게 정신을 추스르고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연 진인, 승급을 감축드립니다. 뜻 깊은 날에 추태를 보여 면목이 없습니다.”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그런데 어제는 청소를 했을 텐데요?”
연적하의 지적에 병휴가 변명하듯 말했다.
“어제 세심정 청소하고 잠깐 올라왔다가 사형을 만났잖습니까? 그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늦었는데, 그래서 그런 소리가 나왔나 봅니다.”
“아…….”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제야 어제 오전에 세심정에서 올라온 병휴와 노닥거린 기억이 났다.
어제 늦은 것과 오늘 오전에 빠진 게 중첩이 돼서 항의하러 온 모양이다.
이걸 ‘까탈스럽다’ 해야 할지, ‘그럴 수도 있겠다’ 공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생은 이처럼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일투성이다.
그래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걸까?
추신영 진인은 ‘담당자’를 정해 주겠다는 말만으로도 얌전히 돌아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백무영 진인이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추 진인 성격이 좀 급합니다. 가만히 있었어도 오후에 재배치를 해 주었을 텐데.”
“그쪽은 유별나게 오전의 청소에 목을 매더라고요.”
“아, 그랬습니까? 그건 미처 몰랐습니다. 오전이라. 거참.”
백무영 진인은 소격각 방사들이 오전에 개인 수련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건 담당자의 재량에 달린 까닭이다.
연적하가 별말 하지 않자 백무영 진인은 다시 소격각으로 들어갔다.
소격각의 방사들도 하나 둘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은 평소 연적하와 거리를 두었던 터라 감히 축하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
점심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천주봉을 내려갔다.
관음봉으로 가는 것이다.
소격각의 숙소에 남겨 둔 짐이 없어 구태여 다시 들르지도 않았다.
관음봉.
백운정.
관음봉 중턱에 세워진 백운정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청량한 바람 속에 솔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관음봉의 수려한 풍광과 솔향을 배경으로 백운정은 고고하게 서 있었다.
앞마당부터 구린내가 솔솔 나던 소격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연적하가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관우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혹 연적하 진인이십니까?”
“그런데요?”
연적하가 되묻자 노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이곳 백운정의 관리자인 좌경인 진인이라 합니다. 주역봉 노조께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수백 살은 됨 직한 좌경인 진인의 공손한 모습에 연적하는 괜히 미안했다.
“아……. 예에.”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인사를 받자 좌경인 진인은 즉시 돌아섰다.
그는 연적하를 가장 꼭대기인 칠 층으로 데리고 갔다.
복도 끝으로 걸어간 좌경인 진인은 노송이 조각된 방문을 열어 보였다.
“백운정에서 가장 좋은 천향송실(天香松室)입니다. 역대 제군님들께서 진인으로 계실 때에 사용하던 방이기도 하지요. 승급하실 때까지 편안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 예.”
연적하가 방으로 들어가자 좌경인 진인이 방문 밖에서 말했다.
“식사는 아래쪽의 영진관에서 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 때고 백운정의 진인들을 통해 저를 불러 주십시오. 혹여 궁금한 게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저는 물러갈까 합니다.”
“저는 됐으니까 돌아가서 일 보세요.”
“예, 그럼 이만.”
좌경인 진인은 묵례를 한 후에 조용히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창문으로 다가간 연적하는 입을 쩍 벌렸다.
칠 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별유천지(別有天地)였다.
수묵화를 펼쳐 놓은 듯한 산봉우리들과 이렇듯 청량한 바람이라니!
“좋구나!”
탄성을 내지르다 돌아선 그는 방 탐색에 들어갔다.
그런 쪽으로 문외한인 자신의 눈에도 가구 하나하나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솔직히 소격각에서의 생활로 종문에 대한 환상이 다 깨졌었다.
그런데 백운정에 오니 왜 구주의 사람들이 종문, 종문,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승급을 하니 종문의 진면목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 품격 있는 장식들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가만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닌데?’
문득 검령에 생각이 미쳤다.
일단 제군 정도는 돼야 안심하고 구주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남궁연을 찾는 건 속전속결로 될 일이 아니다.
운 좋게 그녀를 찾아도 다시 강호로 돌아가는 문제가 남는다.
‘하늘의 문[天門]을 여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했지.’
막연하게나마 ‘하늘의 문’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라니 강호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늘의 문’을 열기 위해서라도 검령은 필수였다.
종사에게 인정받아야 ‘하늘의 문’ 근처에라도 갈 수 있을 테니까.
“아이고! 무궁전에 가 봐야겠네?”
무궁전에 가면 ‘종문’과 ‘종사’와 ‘하늘의 문’에 대해 기록한 책이 있으리라.
자연스럽게 동기인 공지유, 은소선, 신이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만, 만류각에 빈자리가 없던데.”
하지만 은소선과 신이승은 뒷배가 워낙 좋으니 붙박이로 지내고 있을 게다.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적하의 입가에 얄궂은 미소가 어렸다.
***
천주봉.
연적하는 마치 천주봉이 처음인 사람처럼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산을 올랐다.
“거참 신기하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생활 무대였는데 숙소를 옮겨서 그런지 낯선 느낌이다.
이런 게 혹시 마음의 거리라는 걸까?
잠시 후 그가 봉황정 앞을 막 스쳐 지나갈 때다. 뒤쪽에서 누군가 반갑게 소리쳤다.
“연 사형!”
돌아보니 병휴 방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사제가 왜 거기서 나와?”
“경험 있는 사람이 하라고 아예 저에게 맡기시더라고요.”
봉황정이 까탈스러우니 며칠 해 봤다고 병휴에게 떠넘긴 모양이다.
“그럼 용화봉은 누가 가고?”
“사형들 중에 하나를 그리로 돌리시겠답니다. 용화봉은 말이 없으니까요.”
“그렇구나. 수고해.”
“연 사형! 약속 잊지 마십쇼!”
“그래 인마. 그렇다고 나 믿고 농땡이 치지 마라. 네 승급이 더 빠를 수도 있으니까.”
“예, 예, 걱정 붙들어 매십쇼.”
연적하는 병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식당인 소담관을 지나는데 구요각 사람들이 보고는 어설프게 묵례를 했다.
아직 진인이 된 것까지는 모르는지 놀란 얼굴은 아니다.
연적하는 푸들푸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싸우면서 정이 든다더니 소격각의 사형들보다 더 살갑지 않은가 말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천애곡과 세심정이 나왔다.
병휴의 말대로 천애곡은 노사와 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련처에 처박혀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불현듯 검서린 진인과 그녀를 추종하던 담여화 노사가 떠올랐다.
그녀들이라면 분명 저 무리 속에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연적하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는 대라각을 지나친 뒤로도 한 식경(약 30분)쯤 더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마침내 무궁전이 그 화려한 위용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