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9
659회. ‘대종사’와 ‘구주의 종사’
연적하는 천뢰종 고수들과 함께 천뢰종 종산인 유명산으로 향했다.
천뢰종 고수들이 그를 대종사로 인정한 뒤라 함께 다니는 데 어색함은 없었다.
그를 대종사로 모시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고수들도 많았다.
어차피 종문은 약육강식.
‘삼천의 신’을 꿈꾸는 천뢰종 고수들은 자신들도 대종사인 연적하처럼 되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성물의 기연’과 처음 등장한 ‘구천검령’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나 진인들은 틈날 때마다 모여서 연적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심통이 있었다.
심통은 진인들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갔다.
***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천뢰종 종산 유명산.
일월 보름.
영천주에 첫눈이 내리던 날, 연적하와 천뢰종 고수들은 종산인 유명산에 도착했다.
광성 존자는 천뢰종 제자들에게 연적하를 소개하고 역대 종사들의 거처인 벽력궁을 내어 주었다.
그날 심통은 스승인 옥청 노조의 허락을 구한 뒤에 벽력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강호에서처럼 다시 연적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 연적하는 심통과 함께 천뢰종의 천역(天域)으로 향했다.
천역에 도착한 심통은 뭔가를 찾는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천역에 천문(天門)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문이 안 보여서요.”
연적하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두 개의 석주를 가리켰다.
“저게 천문이야.”
“저 돌기둥이 천문이라고요?”
심통이 반신반의한 눈으로 돌기둥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연적하가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그럼 천문이 대문처럼 생긴 줄 알았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계가 나오고?”
“예.”
심통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할 때 저건 그냥 두 개의 돌기둥에 불과했다.
생김새를 생각하면 천문이 아니라 천주(天柱)라고 해야 옳았다.
“심 노인, 고정관념을 버려.”
“그게 고정관념이었던 겁니까? 사람들이 작명을 잘못한 게 아니고요?”
“태을 존자가 ‘문은 그저 경계일 뿐이다’라고 하더라고.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경계. 내가 왜 천문을 가지려고 하는지 알겠지?”
“강호로 돌아가시려고요?”
“어. 누님도 그러기로 했어.”
“강호보다 구주가 훨씬 넓고, 수명도 불로장생이라 할 만큼 긴데, 굳이 강호로 가시게요? 더구나 공자님은 가모님도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연적하가 한심스러운 얼굴로 심통을 보았다.
“심 노인은 제자들 걱정도 안 돼? 월아과 금아는 벌써 잊어버린 거야?”
“제 제자들인데 잊을 리가요.”
“우리가 모두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에 와 있잖아. 당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석경장을 털어도 열 번은 더 털어 갔겠다. 당가 사람들 얼마나 악독한지 알지? 우리가 없다고 그놈들이 순순히 돌아갔을 거라 생각해?”
“그래도 남궁세가가 있는데 설마하니 식솔들을 잡아갔겠습니까?”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네. 욕심에 눈이 멀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지? 우리가 있을 때도 석경장에 쳐들어온 인간들이야. 그때는 남궁세가가 없었어?”
“끙!”
심통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그는 끝내 강호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심 노인.”
“예?”
“과욕 부리지 마.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알지?”
“그야 당연하지요.”
강호에서 닳고 닳은 심통이 피식 웃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고 연적하가 자신의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줄이야.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해. 종문들이 흡자결로 영기를 갈취하는 거 말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거 이상합니까? 강호에도 흡정공이 있잖습니까.”
“그래, 흡정공에는 부작용이 따르지.”
심통이 바로 말을 받았다.
“하지만 종문의 흡자결에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제가 해 봐서 압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예? 뭐가요?”
“남의 정혈을 갈취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부작용이 없다는 거.”
“그럼 좋은 거지 왜 이상한 게 됩니까?”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늙은이 같으니. 구주의 사람들도 창조신을 믿어. 당장 산을 내려가면 삼천(三天)과 팔왕(八王)의 사당이 있고. 그래도 모르겠어?”
“사당은 강호에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구주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현세와 내세를 믿는다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지 알아?”
“뭔데요?”
“내세를 말한다는 건 즉, 업(業)이 있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짐승들처럼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살아간다고. ‘삼천의 신’이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말야. 그렇게 업을 쌓으면 신격(神格)은커녕 좋은 끝을 볼 수 없어. 그들은 그냥 짐승의 길을 가는 거라고.”
“…….”
심통은 마음이 불편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예.”
심통이 풀죽은 얼굴을 하자 연적하는 더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도 그냥 돌기둥에 불과하네.”
“소요종의 천문도 저렇게 생겼습니까?”
“어, 이러니 그 오랜 세월 천문을 열었다는 사람이 없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뭐가 있으니까 마천의 마귀들도 호시탐탐 노리는 거겠죠?”
“그게 뭘까.”
연적하는 천뢰종의 천문을 꼼꼼히 살폈다.
돌의 종류와 크기만 약간 다를 뿐 소요종의 천문과 대동소이했다.
천태종의 천문은 아직 못 봤지만 다른 종문의 천문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혜문 존자는 종사를 압박해 권한을 받아야 할 것처럼 말했지만, 글쎄다.
그렇게 한다고 돌기둥이 문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뭐지?’
천애불문비에서 ‘하늘의 문[天門]을 열어라. 그것이 너의 사명이다’라고 했으니 열리는 것일 게다.
“젠장. 가르쳐 주는 김에 방법까지 알려 줬으면 좋았잖아.”
연적하가 투덜거리자 심통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있어, 그런 거.”
연적하는 건성으로 답하고 다시 돌기둥을 살폈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돌기둥 주위를 뱅뱅 돌며 조사했지만 특이한 건 없었다.
“아, 몰라. 뭘 어떻게 연다는 거야? 어디 닫힌 게 보여야 열지. 안 그래?”
연적하가 툴툴거리자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해도 졌는데 오늘은 그만하시죠?”
“돌겠네. 천문을 가지게 되면 뭔가 길이 보일 줄로 알았는데…….”
연적하는 장탄식을 터뜨렸다.
무슨 실마리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저 돌기둥에 불과하다.
‘사명은 개뿔. 이러다가 백 년 천 년 세월만 잡아먹는 거 아닌가 몰라.’
그렇게 되면 강호로 돌아간들 의미가 없다.
심통처럼 그냥 구주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천 년 후에 강호로 돌아가 봐야 은원은 물론 지킬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심 노인. 만약 백 년 이내에 천문을 못 열면, 난 그냥 여기 눌러앉을 거야.”
순간 시들하던 심통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때는 가 봐야 공자님과 알고 지내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어차피 강호에 사나, 구주에 사나 한평생인데. 강호에 지킬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면 돌아갈 이유가 없지.”
연적하는 홧김에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심통은 그게 연적하의 진심인 줄 알고 희희낙락했다.
***
그 뒤로 연적하는 무려 보름 동안이나 천역을 드나들며 천문의 조사에 매달렸다.
남는 시간에는 천뢰종의 서각(書閣)에서 천문에 관한 기록을 찾아 읽었다.
천문 연구가 지겨워지면 광성 존자를 찾아가 천뢰종의 무공을 익혔다.
‘연적하가 천뢰종 무공을 익힐수록 소요종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 광성 존자는 전심전력으로 그에게 천뢰종 무공을 가르쳤다.
그때 즈음 구주의 판도가 한차례 요동쳤다.
천지종이 불귀곡에서 대치 중이던 태상종과 무극종을 병탄해 버린 것이다.
벽력궁.
천지종의 도약에 놀란 광성 존자는 이른 아침부터 대종사인 연적하를 찾아갔다.
“대종사님, 사흘 전 천지종이 태상종과 무극종을 병탄했다고 합니다.”
연적하는 짐짓 놀란 척했다.
“한동안 잠잠해서 이상하다 했더니 그쪽을 노리고 있었나 보네요? 그런데 천지종이 두 개 종문을 상대할 정도로 강한가요?”
“빙설화 제군이 천고의 법진으로 태상종과 무극종을 불귀곡에 가두었답니다. 태상종과 무극종으로서는 상대방만 신경쓰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지요.”
“그 자리에 두 종문의 종사들이 있었는데 법진을 뚫고 나오지 못했나요?”
“오죽하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겠습니까. 빙설화 제군의 지혜가 하늘에 닿았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추회 존자도 그걸 알고 일찌감치 빙설화에게 종사패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종사패면 차기 종사라는 건가요?”
“그 이상입니다. 종사패는 종사를 뜻합니다. 추회 존자가 천지종의 일을 빙설화에게 맡긴 거라고 보면 됩니다. 아직 제군이라 종사패만 맡긴 거지, 빙설화가 득물(得物)의 경지에 오르면 종사 자리를 넘길 겁니다.”
“그럼 지금 천지종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빙설화 제군이라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추회 존자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태상종과 무극종 종사 들이 손도 못 쓰고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태상종과 무극종 종사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빙설화 제군이 대종사님의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흉내요?”
“그들에게 천지종을 종주(宗主)로 섬기겠다는 맹약만 받았다고 합니다. 빙설화 제군이 더 세력을 키우기 전에 대종사님께서 조치를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천지종을 치자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러다가 북방의 법요종과 광염종, 혈주종까지 빙설화의 손에 떨어지면……. 대종사님의 권위가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광성 존자는 조심스럽게 연적하 대종사의 안색을 살폈다.
연적하 대종사는 천뢰종 하나만 얻은 반면, 빙설화는 벌써 세 개의 종문을 얻었다.
이래서는 ‘대종사’보다 ‘구주의 종사’가 더 설득력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벌써부터 ‘천뢰종 하나를 얻고 무슨 대종사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물론 천지종에서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이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천지종을 칠 만한 힘은 있고요?”
“소요종과 천태종을 끌어들이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천지종 연합과 천뢰종 연합 간에 전쟁을 하자는 소리였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종문을 빨리 통합할수록 좋았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소요종과 천태종에 사자를 보내 의향을 확인해 보세요. 이번 싸움의 승자가 아홉 종문을 통합하게 되겠죠?”
“그렇게 될 겁니다.”
광성 존자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비록 천문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종문 통합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자신이 그런 대단한 변혁의 한복판에 서게 될 줄이야!
아홉 종문 중에 여섯 종문이 합쳐지면, 다른 세 종문은 알아서 수그리고 들어올 게다.
종문의 통합이 헛된 망상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급전직하로 전개되니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이러다 정말 아홉 종문이 하나가 될지도…….’
대종사의 바람대로 아홉 개의 천문을 손에 넣으면 천지개벽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꿀꺽.’
그런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만약 천문의 비밀이 풀린다면, 그때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광성 존자의 눈에 음험한 기운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