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4
684회. 미친 사람도 자신이 미쳤다고 하지 않는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펄쩍 뛰었지만 광명진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부인한다고 해서 네가 웅천주에서 황천주까지 마신과 동행한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웅천주에서 황천주까지요?”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난 외부 사람이라고 해 봐야 메누아가 전부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메누아와 만난 곳이 웅천주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황천주에서 헤어졌다.
아무래도 광명진천은 어린 소녀 메누아를 마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어, 말씀하신 기간에 제가 만난 사람은 딱 하나가 있는데요. 메누아라고. 하지만 그 아이는 나이가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데다가, 마신과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광명진천의 얼굴이 더욱 이상해졌다.
그는 마치 진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연적하를 뜯어 보았다.
“왜 그렇게 보죠? 제가 만난 사람은 마신이 아니라 어린 꼬마였다니까요?”
“재미있군. 일곱 종문의 대종사가 오가다 만난 열두 살짜리 아이와 동행을 했다? 그것도 법요종과 광염종을 치러 가는 길에?”
“…….”
그 말에는 연적하도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메누아를 거부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초월적인 기도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린 나이는 면죄부가 되지 못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광명진천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지금 메누아를 변호하고 있다. 왜지? 그녀가 마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마신을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하는 거지?”
“몰랐다니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생김새가 신당에서 본 마하수라천과 영 딴판인데.”
“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 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겠지. 메누아가 마신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너는 끝까지 메누아가 단지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왜지? 너는 구주의 종문들에게 마신에 맞서 싸우자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마신을 감싸 준 것이냐?”
실로 끔찍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연적하는 광명진천이 지적한 사실들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았다.
왠지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말씀하신 대로 메누아가 누군지 몰랐고요. 마신이라니까 마신인가 보다 하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메누아가 어린 꼬마였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그러자 광명진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를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마라. 너의 정신은 이미 마신에게 오염됐다.”
“예? 정신이 오염됐다고요?”
“마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마신을 만나고 죽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권속이 되었다는 뜻이다. 너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너는 이미 마신에게 지배당했다. 마신에 맞서 싸우겠다는 네가 마신을 변호한 게 그 증거다.”
“나는 멀쩡하거든요?”
“본래 미친 사람도 자신이 미쳤다고 하지 않는다.”
“…….”
연적하는 황망한 눈으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하지만 확신에 찬 광명진천의 얼굴을 보니 마냥 부인하기만도 어려웠다.
자신은 마신의 실체를 모르지만 그는 잘 알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해진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들어 볼 요량이다.
“마신은 그 자신을 위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게 아니다.”
“그럼 설마 내가 목표였다는 건가요?”
“마하수라천의 무서운 점이 그것이다. 그는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 든다. 너는 메누아의 처지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동정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것조차 아니라고 부인할 테냐?”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죠.”
연적하는 메누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다.
광명진천에게 거짓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한낱 인간이 ‘삼천의 신’인 마하수라천을 이해하고 동정한다니, 그게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 줄 아느냐?”
“쩝…….”
연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상대가 마하수라천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대한 연민은 가당치도 않았다.
‘내가 진짜 마신에게 지배당했던 걸까?’
남궁연이라면 정답을 가르쳐 줄 것도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그에게 광명진천이 말했다.
“마신이 왜 너를 목표로 삼았는지 아느냐?”
“창조신의 생령 때문인가요?”
“네가 가진 창조신의 생령은, 이 세계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보물이다. 창조신의 생령을 취하면 누구라도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이라면 신이 될 테고, 신이라면 그가 바라는 소원을 이룰 테지.”
“저는 여전히 인간인데요?”
“너의 어디가 인간이라는 것이냐? 너는 이미 반신(半神)의 반열에 올라섰다. 너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경지가 아니더냐.”
연적하가 멍한 얼굴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메누아에게 자신의 검공이 반신급이라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반신의 반열에 올랐다니?
뭔가 짜릿하면서도 한편으로 공허한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메누아는 내 생령을 탐내지 않았는데요?”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오히려 저 광명진천을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기까지 했었다.
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그것이 너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너에게 더욱 불리한 증거다. 마신을 아는 자들은 너를 믿지 못할 것이다.”
광명진천은 더 강하게 나왔다.
그는 시종일관 연적하가 마신에게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말했다.
연적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해명할 길이 없었다.
구주를 침략한 마신과 오랫동안 동행했으니 의심을 받는 건 당연했다.
“와아! 진짜 이건 뭐, 벗어날 방법이 없네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뭔가요? 어떻게 해야 내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데요?”
“마신과 다닌 날 수만큼 나와 동행하며 청명신주(靑冥神呪)를 외우면 된다.”
메누아와 육 일 동안 함께 다녔으니 육 일을 광명진천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청명신주는 뭔가요?”
“바른 마음을 찾게 해 주는 주법(呪法)이다. 청명신주를 외우면 마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광명진천은 진심으로 연적하가 마신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러자 광명진천이 곧바로 청명신주를 읊조렸다.
“나는 스스로 삼가며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본 것에 현혹당하지 않을 것이며, 진리에서 어긋난 것을 내 마음에서 지울 것이다.”
내용도 좋고, 생각보다 짧은 주문이라 연적하는 세 번을 듣고 외웠다.
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주문을 읊조리자 광명진천이 웃으며 말했다.
“잘했다. 이후로 너는 하루에 한 차례 내가 보는 앞에서 청명신주를 외워야 한다.”
연적하는 청명신주의 내용이 공명정대한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육 일 동안 그렇게 하면 되는 거죠?”
“네가 전심전력으로 외운다면 더 일찍 끝날 수도 있다.”
“예.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마천과의 싸움에 제가 도와 드려야 한다거나.”
“천지종에 태상종이 합류해 있다. 너와 나는 그들과 함께 영천주로 진격할 것이다.”
“마신이 영천주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러하다. 너와 나는 천뢰종에서 마천의 주력을 막아야 한다.”
“주력이면 군세가 꽤 되겠네요?”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와 광천사 베레드가 마신을 호위하고 있다.”
“그럼 다른 마귀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고범천왕(팔왕)과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천자마(마왕)를 막기 위해 웅천주로, 마조와 북두신군이 혈사자 바르마스를 상대하기 위해 수약주로 향했다.”
“그들을 돕는 종문이 있겠죠?”
“물론이다. 법요종과 광염종이 고범천왕을 따르고 있으며, 무극종과 천태종이 마조와 북두신군을 보좌하기 위해 수약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마천의 군세를 웅천주, 영천주, 수약주에서 막을 것이다.”
간단명료한 계획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신들 숫자만 따지면 구주의 종문이 약간 우세하게 느껴졌다.
내일이라도 구주가 멸망할 것 같았는데 광명진천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마천보다 우리 쪽의 군세가 더 강한 것 같은데, 맞나요?”
“바로 보았다. 마천의 대대적인 침공에 인간을 돕는 신들이 잘 뭉친 결과다. 고범천왕, 우샤스 킨샤사, 마조, 북두신군이 늑장 대응했다면 구주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광명진천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돕는 신들’이라고 했다.
그 순간 연적하는 불현듯 메누아와의 대화가 떠올라 잠시 혼란을 느꼈다.
-누가 너더러 신이 인간의 편이라고 하더냐?
-종문의 사람들이 그러던데? 구주의 인간들을 도와주는 신들이 있다고.
-신에 대해 모르는 자들이 하는 말이다.
-마천의 마귀가 침공할 때마다 구주의 인간을 도와주는 신이 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과 어울려 주는 신이 있을 뿐이다.
-돕는 게 아니라 어울려 주는 거라고?
-신은 자연처럼 정이 없다. 그런 존재가 왜 인간을 돕는다고 생각하느냐?
분명히 메누아는 신이 인간을 돕는 게 아니라 어울려 준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광명진천과 메누아의 말은 빛과 어둠처럼 달랐다.
그런데 마신에게 정신을 지배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메누아의 말이 더 믿어지니 고민이다.
“모두가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네가 왔으니 내일 아침 영천주로 떠날 것이다. 네가 천지종과 태상종을 이끌도록 해라.”
“그러죠.”
그게 끝이었던 듯 그 뒤로 광명진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연적하는 조용히 돌아섰다.
이윽고 그가 걸음을 떼려는 순간, 문득 생각났다는 듯 광명진천이 말했다.
“그런데 빙설화가 재밌는 소리를 하더군.”
“예?”
연적하는 광명진천이 남궁연의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돌아섰다.
“너도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이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
“예.”
“그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냐?”
“예. 하계(下界)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그건데요?”
“재미있군, 재미있어. 알았으니 그만 가 보거라.”
광명진천의 손짓에 연적하는 돌아서 전각을 빠져나갔다.
안학궁에서 나가 건너편 옥녀봉을 바라보니 비로소 보금자리를 빼앗겼다는 게 실감 났다.
‘젠장, 내가 안학궁의 주인인데 누구더러 가래?’
속으로 툴툴거리던 그는 구름을 타고 옥녀봉으로 날아갔다.
***
옥녀봉.
염화전.
염화전 마당에 내려선 연적하는 감개무량한 눈으로 염화전 주위를 살폈다.
천지종 종산을 떠난 지 한 달밖에 안 되는데 일 년은 지난 느낌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염화전 전주인 신무희 노조가 바람처럼 달려와 부복했다.
“대종사님, 어서 오십시오. 빙 제군님께서 기다리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알았으니까 가서 일 봐요.”
“예.”
신무희 노조가 극히 공경하는 자세로 인사를 올린 후 물러났다.
연적하는 남궁연의 방으로 찾아갔다.
한 달 만에 다시 본 남궁연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어딘지 피곤해 보였다.
“어서 와. 이야기는 들었어. 광염종이 법요종으로 피했다지?”
“네. 내친김에 우샤스 킨샤사와 한 판 붙어 보려고 했는데 마천 때문에 돌아왔어요.”
“잘했어. 지금은 종문보다 마천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야.”
“그런데 어디 불편한 데 있어요? 한 달 전보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남궁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안학궁에서 광명진천을 만나고 오는 길이지?”
“예. ‘삼천의 신’이라서 그런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잡겠더라고요.”
“그가 뭐라고 하디?”
“내가 마신과 동행을 했다고 한참 뭐라 하더라고요. 내 정신이 마신에게 지배당했다나? 마신과 있었던 날들 만큼 자기 옆에 있으래요.”
“그리고?”
“하루 한 차례 자기 앞에서 청명신주를 외우래요. 바른 마음을 찾게 해 준다나?”
순간 남궁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