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4
724회. 창조신의 이명(異名)
삼채성.
옥천항.
정오 무렵.
옥천항 앞에 네 사람이 나타났다.
천족들을 만나고 돌아온 연적하 대종사와 세 종문의 대표들이다.
네 사람은 옥천항 중심부까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러다 마침내 갈림길이 나타나자 약속이나 한 듯 걸음을 멈췄다.
대종사는 물론 종문마다 숙소가 달라 이쯤에서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태상종의 진표 존자가 대종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종사님, 고생하셨습니다.”
“에이, 뭐 한 게 있다고요.”
연적하가 손사래를 치자 천뢰종의 광성 존자가 한마디 했다.
“왜요? 고생하셨지요. 페르페투아가 걸어오는 시비를 잘 참아 넘기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때 대종사님께서 그를 들이받을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럴 리가요. 내가 소도 아닌데 왜 그를 들이받아요?”
“허허, 말이 그렇다는 게지요. 여하튼 잘 참으셨습니다. 천족들은 자기들이 대단히 우월한 줄 알아서 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자신이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해도 정도가 있다. 당장 천족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왜 그들과 싸운단 말인가.
물론 피치 못할 상황이면 손을 봐 줄 수도 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갈림길에서 네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다.
문득 수상전 준비가 궁금해진 연적하는 선착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옥천항을 중심으로 좌우의 강변이 거대한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배를 보니 벨 소니아가 말한 수상전이 실감 났다.
“흠! 수상전이라…….”
육지에서 맞붙어 싸우는 것과 수상전은 큰 차이가 있으리라.
곰곰 생각해 봤지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강호에서 본의 아니게 수적들과 싸운 적이 있지만 이건 규모가 달랐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중얼거리던 연적하는 수상전에 대한 고민을 털어 버렸다.
머리 쓰는 일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강변 가득히 늘어서 있는 거대한 배들 앞에서도 마음이 가벼웠다.
***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서각(書閣).
남궁연이 다 읽은 책을 한쪽으로 치웠다.
층층이 쌓여 있는 수백 권의 책들 위에 다시 한 권이 추가됐다.
책 읽기를 마친 그녀는 피곤한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창조신에 관한 책은 오백 권이 넘었다.
모두 천지종과 연적하를 대종사로 받아들인 여섯 종문에서 끌어모은 책들이다.
‘종문은 한 뿌리다’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책의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그녀는 그 미미한 차이에 담긴 의미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천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비교하던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천문과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다 조사했다.
심지어 그것을 만들었다는 창조신까지 훑어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종문의 선조들도 이런 절망을 느꼈으리라.
뒤늦게 남궁연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천문을 열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무모한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였다.
눈을 뜬 남궁연의 손이 탁자 위에 남아 있던 마지막 책으로 향했다.
무심코 책 표지를 넘기던 그녀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책갈피 사이에 종이 조각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창조신의 이명(異名)을 알고 싶다면 칠월 마지막 날 자정에 북악봉 정상으로 오라.]남궁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천문과 창조신에 대해 조사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누구지?’
일곱 종문에서 끌어모은 책에 있었으니 종문 제자의 짓이리라.
그런데 제군이자, 대종사의 처인 자신에게 이런 말투라니?
게다가 쪽지의 내용은 누가 봐도 자신을 유인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상대의 노림수가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남궁연은 망설였다.
지금처럼 답답한 상황에서 ‘창조신의 이명’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생각이 복잡해지자 남궁연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는 해에 검붉게 물들어 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조바심이 났다.
자신과 연적하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무엇을 해도 이미 늦다.
그러니 북악봉으로의 초대가 누군가의 덫이라 할지라도 가야만 한다.
***
동방성.
사천포.
사천포는 옥천항 맞은편에 자리한 항구 도시다.
과거에는 장사꾼들로 북적거리던 그곳이 지금은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마물들로 북적거리는 사천포지만 단 한 곳은 과거처럼 깨끗하고 조용했다.
그곳은 사천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전각인 ‘풍월루’였다.
풍월루에 마물이 얼씬거리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 마신이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거름 무렵.
풍월루.
객청에 홀로 앉아 술잔을 홀짝이던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마족 다이몬이 나타났다.
“마신님의 종 다이몬,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천족의 상황은?”
“오만의 천족 중에 이만이 황천주와 완산주로 각각 일만씩 이동했습니다. 현재 삼채성에 남아 있는 천족은 삼만입니다.”
“삼만이라. 생각보다 적은 숫자군.”
마물들은 천족의 상대가 못 된다.
마치 인간과 마물의 관계만큼이나 둘의 전력 차이는 크다.
하지만 마귀는 다르다.
천족과의 싸움에서 오만의 마귀는 당당하게 전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마귀의 숫자를 생각하면 천족 삼만은 많은 게 아니었다.
물론 상위급 천족의 숫자에 따라 싸움의 양상은 또 달라질 수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족이 오백쯤 되니 마천에 유리한 형국인 것은 틀림없었다.
다이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종문에서 배를 계속해서 징발하는 걸 보면 수상전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백리하에서 막겠다?”
“군세에서 밀리니 수상전에 전력을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쪽 배는?”
“천관산맥에서 브로크족들을 잡아다가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중형으로 백 척을 건조하였습니다.”
“백 척이나?”
메디나 이사엘라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무리 중형이라도 이십 일에 백 척이라니 실로 놀라운 건조 속도였다.
“일단 빠르게 도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뗏목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수상전은 무리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숫자는 많지만 견고함에서 인간의 배에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다이몬이 마신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중형선 백 척도 그나마 난쟁이족의 손재주가 좋아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굳이 천족과 백리하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뗏목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중형선으로는 무리였다.
그런데 마신이 의외의 소리를 했다.
“적이 수상전에 모든 걸 걸겠다면 우리도 그렇게 한다.”
“예?”
다이몬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은밀하게 도하를 하면 훨씬 유리한 형국이 될 텐데, 수상전이라니?
뗏목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까지 말한 그로서는 믿기 어려운 소리였다.
“옥천항까지 적을 밀어붙이라는 소리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적을 우회해서 도하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한 적이 없다.”
“…….”
다이몬은 황망한 눈으로 마신을 보았다.
일대일의 싸움에서야 그럴 수 있다지만 전쟁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아군의 배가 도하에 맞춰 허술하게 만들어졌는데?
의아해하는 다이몬에게 마신이 말했다.
“이번에는 천족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수상전이라니. 우습군, 우스워. 너는 수상전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물 위에서의 싸움이니 변수가 많을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수상전이라고 해 봐야 멀리서 포탄을 날리거나, 불화살을 쏘는 정도다. 마귀들의 실력이면 막고도 남음이 있지. 결국은 배와 배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땅 위에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인간의 배가 튼튼하다고? 그럼 천족을 밀어내고 빼앗으면 된다.”
“아!”
배가 부서질 것만 생각하던 다이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배로 건너가는 건 마물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배마다 마귀들을 적절하게 분산해서 배치해라.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포탄과 불화살만 막아 내면, 그 뒤로는 우리가 싸움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우신 생각이십니다. 마귀와 마족들을 적절하게 분산해 승선시키겠습니다.”
굳어 있던 다이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상대편 배로 건너갈 정도로 거리를 좁히면 마신의 말대로 될 게 분명했다.
***
칠월 말.
마침내 삼채성 성도에 주둔하고 있던 삼만의 천족 부대가 성도를 떠났다.
대로에 피난민들이 몰려나와 행군하는 천족에게 꽃을 뿌리며 환호했다.
“만세!”
“감사합니다!”
선두에서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과 함께 걷던 참모 프리스카가 중얼거렸다.
“인간을 볼 때마다 제가 천족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총사령관 젤라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간을 천족과 비교하다니 고약하군. 인간은 야수에 가까운 존재다. 차이가 있다면 야수와 달리 말을 할 줄 안다는 정도지.”
그러자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끼어들었다.
“야수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왜 자기들을 먹이와 비교하냐며 항의를 할 겁니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천족들이 대소를 터뜨렸다.
천족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지도 모르고 인간들은 열심히 꽃을 뿌리며 환영했다.
성도에서 멀어지자 환영하는 인간도 점차 사라졌다.
대로 주변에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천족들의 행군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나중에는 광풍이 몰아치듯 눈에 잘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삼만의 대군이 폭풍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
성도를 출발한 천족의 군대가 옥천항 외곽에 도착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꼬박 이틀은 걸릴 거리를 삼만의 군대가 하루 만에 주파한 것이다.
옥천항.
영빈관 별채.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옥천항에 도착하자마자 광명진천의 거처부터 방문했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광명진천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입니다. 이제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후훗! 어디서 내가 평안하지 못하다는 말이라도 들은 모양이지?”
“하하! 그럴 리가요.”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웃음으로 무마했다.
광명진천이 빈 의자를 가리켜 보였다.
“앉게.”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군말 없이 조심스럽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광명진천이 물었다.
“벨 소니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뜻밖의 말에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황망한 눈으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광명진천이라 불리는 나로 하여금 같은 소리를 두 번이나 하게 만드는군. 그 맹랑한 계집애가 나에 대해 뭐라 했느냐고 물었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벨 소니아에게 들은 것과는 너무도 다른 광명진천의 모습에 정신이 혼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