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5
725회.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법[脣亡齒寒]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덜컥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총참모에게 해가 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광명진천의 불같은 성격상 벨 소니아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다.
“벨 소니아는 광명진천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을 뿐입니다.”
“한낱 천족 참모장 따위가 최고신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화르르륵-!
광명진천의 몸에서 활화산 같은 기운이 일어났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급히 영기를 끌어 올려 자신을 보호했다.
뜨거운 열기가 별채를 휩쓸고 지나가자 벽체와 가구가 새까맣게 그을렸다.
“…….”
그 가공할 기세에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별채를 녹여 버릴 것 같던 기운이 일시에 걷혔다.
이윽고 광명진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 알았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 주지. 마신과의 싸움에서 나는 선봉에 서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경외해 마지않는 대종사와 함께 잘 해 보아라.”
“헉! 오해이십니다. 저희가 어찌 인간 따위를 경외하겠습니까?”
“흥! 나의 이능(異能)이 천리안이라는 것을 잊었나 보군. 벨 소니아와 너희가 나눈 이야기를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똑똑히 들었거늘 끝까지 발뺌하다니. 네놈이 원정군 총사령관만 아니었어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그때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광명진천이 천리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광명진천의 앞에서 물러났다.
***
옥천항 천족 숙영지.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천족들의 군영으로 돌아오자마자 참모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총참모 벨 소니아와 두 명의 참모(프리스카, 에스테반)에게 조금 전의 일을 알렸다.
“……광명진천님이 천리안으로 원정군의 회의를 지켜보신 모양이다. 우리가 당신에 대한 경외감을 잃었으니, 마신과의 싸움에서 선봉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벨 소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사령관님이 보시기에 광명진천님의 상태는 어떠해 보이던가요?”
“천족으로 현신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떻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이 내뿜는 기세만으로 별채가 다 타 버렸다.”
“…….”
벨 소니아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총사령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그런 것일 게다.
그런데 왜 종문과의 회의에서는 그런 기세를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에스테반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사이에 회복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자 벨 소니아가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며칠 사이에 그게 가능하려면 상품의 영석이 필요해요. 그정도의 영석을 가진 천족은 지휘관들 뿐인데, 그랬다면 벌써 알려졌을 거예요.”
“종문의 도움을 받았다면요?”
“광명진천님의 성정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지금 상황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광명진천님과 자주 만나던 종문 사람을 조사해 봐야겠네요.”
벨 소니아의 말에 총사령관 젤라툼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광명진천님은 스스로 한 말을 번복할 분이 아니다.”
참모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종문의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는지 알아내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걸 안다고 해서 광명진천의 결정이 바뀌는 건 아닐 테니까.
총사령관 젤라툼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보다는 누가 광명진천님에게 부상을 입혔는지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만약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의 말이 맞다면…….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패할 수도 있다.”
프리스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것이 전쟁의 승패와 관계가 있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벨 소니아가 했다.
“광명진천님의 적수는 ‘삼천의 신’밖에 없어요. 구전범천님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요. 그렇다면 남은 건 마하수라천, 즉 마신뿐이니……. 그렇게 말씀하신 걸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벨 소니아의 말에 총사령관 젤라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마신이 광명진천님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면, 전쟁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신에 대적할 존재가 우리에게는 없으니까.”
말하다 말고 총사령관 젤라툼이 벨 소니아를 빤히 보았다.
“너는 아직도 광명진천님을 제압한 존재가 대종사라고 생각하느냐?”
“대종사가 그런 것 같아요.”
벨 소니아의 말투는 조심스럽게 예측하던 며칠 전과 확연히 달랐다.
“증거가 있느냐?”
“옥천항에 와서 인간들을 만나 보았어요. 인간들 사이에 대종사와 광명진천님의 결투가 회자되고 있더군요.”
“결투?”
“선발대가 찾아오기 전에 대종사와 광명진천님이 결투를 벌였다고 해요. 결투는 대종사의 승리로 끝났고요.”
총사령관 젤라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너는 그 소문을 믿느냐? 본디 인간들은 거짓에 능한 존재다. 마신이 벌인 일을 대종사의 짓으로 꾸밀 수도 있음이야.”
“근거 없는 소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목격자가 많더라고요.”
“목격자라고? 천지가 뒤집힐 결투에 목격자라니. 더더욱 신빙성 없는 소리가 아니냐?”
신들의 싸움은 지형이 뒤바뀔 정도로 파괴적이다.
목격자가 많다는 것은 싸움의 여파가 미미함을 의미하니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자 벨 소니아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대종사와 광명진천님이 옥천항 상공에서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
총사령관 젤라툼은 황망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확실히 옥천항 상공이라면 목격자가 많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소문의 진위를 파악했으니 하는 말이겠지?”
“네.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묘사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대종사의 검령이 광명진천님의 날개를 잘랐다고 하더군요.”
“미치겠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인간 따위에게 최고신인 광명진천의 날개가 잘렸다니.
천족들이 알면 들고일어날 일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그걸 잘랐다는 건 천족에 대한 모욕이었다. 천족들에게 날개는 능력의 원천이자 종족의 자부심인 까닭이다.
벨 소니아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최소한 선봉에 누굴 세워야 하는지는 분명해졌으니까요.”
그 말에 총사령관 젤라툼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맞다.
광명진천이 선봉을 거부한 지금 대종사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천족이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차단할 방안을 마련해라. 마신과 싸우기도 전에 내분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예.”
“그런데 천문(天門)의 이양에는 문제가 없겠느냐?”
“대종사도 천문을 넘기는 것에 동의했어요. 전쟁은 한 개인의 무력으로 좌우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도 구주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천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원로들을 설득해야겠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인상을 찌푸렸다.
천족 원로들은 천계에 인간의 거주지가 생기는 걸 반대할 게 분명했다.
그들에게 인간의 거주지란 돼지우리와도 같으니까.
원로들은 집 옆에 돼지우리가 들어서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꼭 설득하셔야 해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구주를 잃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천문을 천계에 옮긴 후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겠느냐?”
“…….”
벨 소니아는 즉시 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천계가 구주를 도운 건 어디까지나 천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천문이 없는 구주라…….’
총사령관의 말처럼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구주는 천계와 마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천계는 외부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 천계의 경계를 지키는 일도 힘들어질 수 있다.
곰곰 생각하던 벨 소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떻게든 원로들을 설득해 주세요.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법이에요[脣亡齒寒]. 우리 천계에는 구주가 필요해요.”
총사령관 젤라툼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원로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총참모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마천과의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
구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백리하에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인간, 천족, 마족들은 백리하에서의 싸움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칠월의 마지막 날.
옥천항.
삼환각.
아침부터 연적하 대종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광명진천까지 힘으로 찍어 누른 대종사가 인상을 쓰자 종문 고수들은 전전긍긍했다.
오전 내내 인상을 팍팍 쓰던 연적하는 정오 무렵 시화관(時和館)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통 진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한참을 걷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삼만이나 되는 천족의 부대가 옥천항에 있는데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숙소 근처라 출입을 통제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화관에 도달할 때까지도 그랬다.
한순간 ‘천족이 철군했나?’ 하는 다소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억측을 떨쳐 냈다.
정말 천족이 철군했다면 종문에서 발 빠르게 알려 왔을 터였다.
시화관 별채로 접어들자 옥청 노조가 반색을 하며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대종사님.”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림으로 인사를 대신한 연적하가 슬쩍 물었다.
“거리에 천족이 보이지 않던데 뭐 들은 소식 있어요?”
“아! 어젯밤 만취한 천족이 주루에서 소란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천족 참모진에서 출정 전까지 금족령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뭘 그만한 일로 금족령을 내린대요?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랬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천족들이 좀 그런 쪽으로는 유난스럽지 않습니까. 인간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 거라면 다행이네요. 나는 갑자기 안 보여서 철군이라도 한 줄 알았네요.”
“허허! 그러셨군요. 천족들 숙영지를 보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섬돌에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옥청 노조는 눈치 있게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방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심통의 얼굴을 확인한 후 창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아!”
괜히 한숨이 다 나온다.
이것 역시 평소에는 없던 일이었다.
연적하의 한숨 소리에 눈을 뜬 심통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끙!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
“그런데 웬 한숨이십니까?”
“몰라. 그냥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하고, 마음도 무겁고 그러네.”
“전쟁이 임박해서 그러는 걸 테지요. 언제쯤이나 출정을 한답니까?”
“사천포를 정찰하고 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곧인가 봐.”
“그렇군요. 가모님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십쇼. 막말로 공자님은 이곳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은 남궁연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