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3
723회. 그 이야기는 그만 넘어갔으면 해요.
사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연적하 대종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선발대로 갔던 동부군 부사령관 파티르의 보고 때문이다.
부사령관 파티르의 눈에 연적하 대종사는 극히 오만하고, 무례했다.
그런 그의 인물평은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에게 영향을 미쳤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천족이자 무려 동부군 부사령관인 파티르의 앞에서 그런 태도를 보인 대종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대종사를 만났으니 고운 말이 나갈 리가 없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의 까칠한 반응에 한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흥미로운 얼굴로 대종사를 보았다.
저런 응대는 그가 동부군 사령관에게 주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비록 분위기는 싸해졌지만, 종문을 길들이려면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다.
대종사는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곡분조 노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에게 변명했다.
“지난밤 상도에 도착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행여나 쉬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딴에는 편히 쉬시라고 배려를 했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기다리신 줄 알았으면 늦더라도 뵈러 올 걸 그랬습니다. 넓으신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십시오.”
노조의 변명으로 성에 찰 동부군 사령관이 아니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종문을 대표하는 자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종문의 대표가 아니라면 나서지 마라. 노조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
곡분조 노조가 찔끔한 얼굴로 물러섰다.
사실 그의 말대로 노조가 나서서 설칠 자리는 아니었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못마땅한 눈으로 대종사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종사는 제삼자인 양 주위를 휘휘 둘러볼 뿐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참다못한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총참모 벨 소니아가 나섰다.
“페르페투아 님.”
“뭔가?”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눈치 없게 끼어든 벨 소니아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벨 소니아가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종문이 인사가 늦은 이유를 알았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 넘어갔으면 해요. 그보다는 좀 더 실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진행해도 될까요?”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황당한 눈으로 벨 소니아를 보았다.
자신이 이러는 것도 알고 보면 벨 소니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 넘어가 달라니.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벨 소니아를 다시 보았다.
그녀가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미련한 천족이 아니다.
총참모인 벨 소니아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뒤로 빠졌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모처럼 천계와 종문이 모였으니 전쟁에 관해 피차 궁금한 것들을 묻는 것으로 하지요. 괜찮으시겠지요?”
벨 소니아가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과 대종사를 번갈아 보았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왠지 시들한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들이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
연적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싸워야 할 전우이니 최소한의 소통은 필요했다.
“원정군 총사령관님과 대종사님이 동의하셨으니 계속 진행할게요. 우선 급한 것부터 확인을 해 보죠. 제가 일전에 수상전을 말씀드렸는데 선박은 얼마나 확보되었나요?”
연적하가 곡분조 노조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곡분조 노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현재까지 대형 목선 열다섯 척, 중형 목선 스무 척, 철선 아홉 척입니다. 계속해서 선박을 징발하고 있 으나 앞으로 열 척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벨 소니아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형 목선 한 척의 정원이 천 명이니, 열다섯 척이면 만오천 명을 태울 수 있다.
중형 목선과 철선의 경우 정원이 각각 삼백 명이니, 승선 인원은 팔천칠백.
그 숫자를 모두 합치면 승선 가능한 인원은 이만 삼천칠백 명이다.
천계의 군대가 삼만에 종문이 이천이니 모두 삼만 이천 명.
그중에 이만 삼천칠백 명이 승선하면 팔천삼백 명은 항구에 남아야 한다.
‘팔천삼백 명이나 남겨 두어야 하다니…….’
막강한 마천의 전력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배가 많이 부족하군요. 이후 징발할 열 척은 전부 대형인가요?”
벨 소니아가 복잡한 눈으로 곡분조 노조를 보았다.
전부 대형이라야지 그나마 나머지 팔천삼백 명을 태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대형과 중형을 모두 합친 숫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지역으로 가서 징발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지역요?”
“황천주나 완산주로 간 배도 있지만, 대부분 마천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무량하로 빠져나갔습니다.”
백리하가 구주를 세로로 가른다면, 무량하는 가로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러니 배를 끌고 최대한 후방으로 달아난 셈이다.
벨 소니아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배가 한산주에서 벗어났다면 더 이상의 징발은 불가능했다.
결국 팔천삼백 명은 예비대로 돌려야 할 모양이다.
그녀는 연적하 대종사에게 천계와 종문 연합군이 당면한 현실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팔천삼백 명은 예비대로 항구에 남아 있어야 해요. 종문은 어떻게 할 건가요? 예비대로 옥천항에 남으시겠어요? 아니면 수상전에 참전하시겠어요?”
“당연히 참전해야죠.”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속전속결을 원하는 연적하에게 참전은 당연한 것이었다.
질문은 대부분 작전을 세워야 하는 총참모 벨 소니아가 했다.
반 시진(1시간)가량 이어지던 질문이 뜸해졌다.
종문의 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천족이 대하기 어려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천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서 종문의 비중이 워낙 작아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삼만이나 되는 천족의 정예부대와 비교하면 종문의 이천은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천족의 총참모 벨 소니아는 시종일관 정중하게 대했다.
벨 소니아가 대종사에게 물었다.
“궁금한 건 없으세요?”
“네.”
대종사의 대답에 벨 소니아는 다소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전을 대비한 병력 배치와 전개는 제가 할게요. 이의 있으세요?”
“전혀요.”
대종사의 시원한 대답에 벨 소니아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었다.
“대종사님이 타게 될 배는, 원하시는 대로 전진 배치해 드릴게요. 총사령관님, 달리 궁금한 점이나 하실 말씀 있으세요?”
총참모 벨 소니아와 대종사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웃으며 말했다.
“없다. 총참모가 워낙 꼼꼼하게 점검해서 눈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런데 광명진천님과도 조율이 끝났나?”
“광명진천님은 저에게 일임하셨어요.”
“아!”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은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광명진천은 천족에서도 권위를 내세우기로 유명한 존재다.
신좌에 오른 뒤에는 더 심해져서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런 그가 벨 소니아에게 일임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벨 소니아의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여하튼 계획에 없이 열렸던 천족과 종문의 대책 회의는 끝났다.
종문이 돌아간 뒤 천족 지휘부는 따로 모임을 가졌다.
천족 지휘부 모두 도깨비에게 홀린 표정으로 벨 소니아를 보았다.
광명진천의 전폭적인 동의를 받아 낸 것도 그렇고,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종문을 감싸고 도는지 다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지휘부의 분위기를 감지한 벨 소니아가 먼저 운을 뗐다.
“궁금한 게 많은 표정들이네요.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는 범위 내에서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물었다.
“내가 대종사의 사과를 받기 위해 말을 꺼냈는데, 자네가 끊더군. 아까는 총참모의 체면을 고려해 거론하지 않았네. 왜 그랬나?”
벨 소니아가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와 총사령관 젤라툼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제가 선발대로 옥천항에 갔었다는 건 아실 거예요. 그곳에서 광명진천님과 대종사를 만났는데…….”
벨 소니아는 자신과 선발대가 느꼈던 둘 사이의 위화감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대종사가 초원의 사자였다면, 광명진천님은 어린 양처럼 조용했어요. 대종사와 광명진천님의 위치가 서로 바뀐 것처럼 보였지요. 믿어지 지 않지만 저는 광명진천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고, 그것이 대종사와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광명진천님은 ‘삼천의 신’이시네! 최고신이라는 말일세. 그러나 대종사는 내가 유심히 살폈지만 아직 신좌에 오르지도 못했더군. 잘해 봐야 반신급에 불과해. 그렇지 않습니까? 총사령관님?”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의 질문에 총사령관 젤라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눈에도 대종사는 반신급에 불과했다.
그러자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나이의 성취치고 놀라운 것은 사실이나, 최고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네. 광명진천님은 본래 특이한 행동을 잘하시는 분이네. 그 걸 이해하지 못하고 광명진천님은 물론 우리 천족의 위신까지도 깎아 내려서야 쓰나?”
“그 특이한 행동에 상대의 무례까지도 참아 준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던가요?”
벨 소니아의 질문에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답하지 못했다.
광명진천은 권위의 화신으로 무례를 극히 혐오했다.
그의 앞에서 무례한 언행을 했다가 팔다리를 잃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심지어 광명진천의 비위를 건드렸다가 목숨을 잃은 천족도 있었다.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머뭇거리자 벨 소니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광명진천님은 대종사보다 먼저 회의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어요. 종문의 대표들도 광명진천님보다 대종사를 더 존중했고요. 대종사에게 머리를 한 뼘이나 더 깊숙이 조아림으로 그걸 드러냈지요.”
“…….”
천족 지휘관들은 숨소리까지 죽이고 벨 소니아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 선발대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던 일입니다만 말씀드려야겠군요. 공식 회의에서 대종사가 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백부장 마그누스 님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러다 마그누스 님이 대종사의 한 수에 제압을 당했지요. 모두가 광명진천님의 면전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광명진천님은 그걸 봤지만 일언반구의 말씀도 없었답니다.”
“으음!”
“허어!”
“쯧쯧!”
천족 지휘관들의 입에서 각양각색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신과의 전쟁을 앞둔 지금 벨 소니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걸 ‘광명진천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일’로 받아들였다.
즉 ‘광명진천이 약해진 틈을 타서 대종사가 제멋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그랬다.
“잘 들었네. 그런데 총참모는 대종사가 광명진천님과 싸운 것을 목격했나?”
“못 보았어요.”
“허면 대종사가 광명진천님의 몸 상태를 알고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음, 저도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벨 소니아는 선선히 인정했다.
서부군 사령관의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광명진천이 대종사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었다.
천족 지휘관들이 광명진천의 이해 못 할 행동을 두고 둘로 갈라졌다.
묵묵히 듣고 있던 총사령관 젤라툼이 말했다.
“조용. 내가 직접 광명진천님을 만나 연유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때까지 일체 광명진천님과 대종사의 일을 입 밖에 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