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4
734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끄아아아-!
먼 하늘에서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천족들의 시선이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에서 동쪽 하늘로 향했다.
하늘 저편에서 검은 매 한 마리가 질풍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이어 광풍과 함께 집채만 한 흑응(黑鷹)이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의 앞에 나타났다.
흑응의 날갯짓에 철선과 목선의 돛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입을 쩍 벌리고 올려다보는 연적하에게 블레이즈가 설명하듯 말했다.
“마천의 금지에서 산다는 마수 흑천응(黑天應)입니다. 신수(神獸)급에 해당하는 괴물이니 주의하십시오.”
그러는 동안 마신이 흑천응 위에 올라섰다.
흑천응 위에 올라탄 마신에게서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실로 ‘삼천의 신’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철선과 목선 사이의 하늘에서 메디나 이사엘라가 연적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연적하가 한 걸음 내딛자 블레이즈가 말했다.
“대종사님,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 같으면 흑천응을 먼저 제거하십시오. 마신에게 흑천응이 있는 한 대종사님에게 불리한 싸움이 될 겁니다.”
운종술은 흑천응에 비할 수 없다.
흑천응은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지만, 운종술을 유지하려면 따로 조종해야 한다.
박빙의 싸움에서 그 차이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연적하는 블레이즈를 향해 웃어 보인 후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익-!
그러자 이번에는 서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날아왔다.
초원의 바람, 신수(神獸) 화풍(和風)이었다.
화풍이 가볍게 갑판에 내려서자 연적하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여어! 화풍. 나를 돕겠다고 한 약속 잊은 거 아니지?”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마수 흑천응이라는데 괜찮겠어?”
-훗! 그래 봐야 새가 아닌가.
“고마워.”
연적하가 화풍의 위에 올라타자 화풍이 천마(天馬)처럼 하늘로 달려 올라갔다.
잠시 후 연적하와 메디나 이사엘라가 하늘 위에서 마주하고 섰다.
끄아아아-!
흑천응이 괴성을 내질렀지만 화풍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메디나 이사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못 보던 말이구나?”
“화풍이라고 해. 그 시커먼 새는 흑천응이라고 불린다면서?”
“잘 알고 있구나. 그럼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도 알겠지?”
메디나 이사엘라의 말에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그건 모르겠는데? 천문(天門)에는 관심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구주에 쳐들어온 거야?”
“지금도 천문에는 관심이 없다.”
“그럼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주겠느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해 줄게. 나는 너와 싸우고 싶지 않거든.”
그때 아래에서 ‘콰드드득!’ 하는 충돌음이 들려왔다.
철선과 목선이 부닥치는 소리였다.
천족과 마족의 싸움이 먼저 시작된 모양이다.
연적하는 마음이 급했지만 속 보이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야릇한 얼굴로 연적하를 볼 뿐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연적하가 다시 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고!”
메디나 이사엘라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죽음이다.”
비록 앞의 말은 입술만 움직여 들리지 않았지만, 뒷말은 분명했다.
연적하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왜! 왜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은 건데?”
그러자 메디나 이사엘라가 생긋 웃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글쎄. 왜일까?”
“우리는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잖아! 원한도 없는데 왜 그러는 거야!”
연적하도 품에서 청사(靑蛇)를 꺼냈다.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병신처럼 죽어 줄 마음도 없었다.
그때 메디나 이사엘라가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를 했다.
“그것이 창조신의 뜻이다.”
그녀의 의지가 흑천응에 전해지자, 흑천응이 쾌속하게 날아갔다.
화풍 역시 지체하지 않고 슬쩍 비켜서 치달렸다.
흑천응과 화풍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찰나지간에 연적하의 청사와 메디나 이사엘라의 검이 한차례 충돌했다.
꽈릉-!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렸다.
배 위에서 싸우던 천족과 마족 들이 깜짝 놀라 하늘을 힐끔거렸다.
연적하를 스쳐 지나간 메디나 이사엘라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연적하의 검은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하지만 ‘삼천의 신’으로 불리던 광명진천보다는 약했다.
잘해 봐야 반신급이다. 저 정도의 무위로 어떻게 최전방에 섰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돌아선 흑천응이 다시 연적하를 향해 섬전처럼 날아갔다.
이번에는 흑천응이 화풍의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화풍은 방금 전처럼 피하지 않았다.
연적하와 메디나 이사엘라보다 둘을 태운 신수와 마수가 먼저 격돌했다.
캬아아아-!
푸르릉!
화풍의 앞발과 흑천응의 날카로운 발톱이 허공에서 맞부닥쳤다.
카카카카캉-!
앞발굽과 발톱이 얽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승패를 가리지 못한 화풍과 흑천응이 슬쩍 진로를 틀자 연적하와 메디나 이사엘라의 싸움이 재개됐다.
흥분한 화풍과 흑천응은 지나치지 않고 서로를 몸으로 밀어 붙였다.
그 바람에 연적하와 메디나 이사에라는 근접거리에서 검을 나눠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공방이 수십 합이나 이어졌다.
차차차창! 창-!
팽팽한 접전이었지만 메디나 이사엘라의 표정은 불만족스러웠다.
연적하의 검공은 자신을 압도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그를 찍어 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설마 내 힘을 빼기 위해서 광명진천이 연적하를 선봉에 세운 것인가? 어쩌면 광명진천이 내 뒤를 노리고 있는지도…….’
후자라면 곤란하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연적하와 싸우면서 주변으로 기감을 확장했다.
그녀의 신경이 분산되자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딴 데 정신을 파네?”
자존심이 상한 연적하는 즉시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으로 찔러 갔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반사적으로 청사를 쳐 냈다.
챙-!
하지만 튕겨 날 거란 예상과 달리 청사는 그녀의 검을 뚫고 전진했다.
진검강이 가슴 앞까지 밀려오자 메디나 이사엘라는 다급하게 상체를 비틀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해 흑천응이 바람처럼 옆으로 빠져나갔다.
쉬이익-.
종이 한 장 차이로 청사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사이 흑천응은 메디나 이사엘라를 태우고 저만치 물러났다.
흑천응이 피하지 않았다면 행지무강에 당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쳇!”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자신의 무위가 마신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모처럼의 기회를 날린 게 아까웠다.
착잡한 얼굴의 그를 향해 메디나 이사엘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 쓸 만한 검공이구나. 이제 조금은 진지하게 싸워 볼 마음이 생겼다. 받아 보아라. 암프로 싼즈(뇌전의 그물)!”
메디나 이사엘라의 손가락이 연적하를 가리켰다.
순간 연적하의 주위로 마치 그물처럼 촘촘하게 뇌기가 쏟아졌다.
파지지지직-!
연적하는 나름 대비하고 있었지만 뇌기의 그물을 피하지 못했다.
사방에 운무처럼 뇌기가 깔렸는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크윽!’
수십 줄기의 뇌기에 직격당한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다른 수가 없었다.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강호로 돌아가지 못하게 됨은 물론, 천족과 종문도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을.
뇌기를 몸으로 받아 낸 건 그뿐만이 아니다.
그를 등에 태우고 있는 화풍도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 내야 했다.
다행히 연적하와 화풍이 쓰러지기 전에 뇌기는 안개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연적하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한번 흑천응이 벼락처럼 날아갔다.
작심한 듯 메디나 이사엘라의 검에서 검은 불이 빠르게 타올랐다.
화르르륵-.
검게 타오르는 불꽃은 마기의 결정체로-스치기만 해도 마기에 중독되게 만드는-마신의 궁극기였다.
그녀는 아예 연적하를 마족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서부군 총사령관의 부관 블레이즈는 백병전이 벌어지자 천족으로 현신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날개는 무려 두 쌍이나 됐다.
마귀들을 베어 넘기던 그녀는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대종사에게 마신이 짓쳐들어 가고 있었다.
“헉!”
마신의 손에 들린 ‘검은 검’을 본 블레이즈는 무턱대고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대종사님! 피하십시오!”
블레이즈의 외침이 화풍 위에 웅크리고 있던 연적하를 깨웠다.
‘헉!’
급히 상체를 세운 연적하는 화풍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깜짝 놀란 화풍은 본능적으로 내달렸다.
지척에 이르렀던 흑천응과 화풍의 거리가 다시 벌어졌다.
아깝다는 듯 혀를 차던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가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먹물처럼 시커먼 진검강이 블레이즈를 향해 날아갔다.
위기를 느낀 블레이즈는 ‘히즈만타 오브라나(절대의 방어)’의 주문을 외웠다.
홀연히 생성된 ‘오브라나의 고리’가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꽈광-!
마신의 진검강에 맞자마자 오브라나의 고리가 수수깡처럼 박살 났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블레이즈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시 한번 블레이즈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메디나 이사엘라에게 화풍이 달려들었다.
“그만해!”
연적하가 메디나 이사엘라에게 청사를 던졌다.
순간 메디나 이사엘라의 칠흑 같은 검이 방향을 바꾸었다.
꽝-!
그녀의 일검에 청사가 산산조각이 났다.
뒤이어 메디나 이사엘라가 잔뜩 날 선 어조로 물었다.
“계속 방해만 하는구나! 광명진천은 어떻게 하고 네가 선봉에 나섰느냐?”
연적하는 떨어져 내리던 블레이즈가 목선 위에 내려서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 직후 메디나 이사엘라에게 되물었다.
“그를 왜 찾는 건데? 그에게 볼일이 있냐?”
“너는 나의 상대가 못 된다! 광명진천을 불러내라!”
메디나 이사엘라는 광명진천에게 허를 찔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앞의 연적하보다 숨어 있는 광명진천을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달아났어. 어딘가에 처박혀 이를 갈고 있을 거야.”
“무슨 소리냐?”
“내가 그의 날개를 몽땅 잘라 버렸거든. 다섯 쌍 전부.”
메디나 이사엘라가 황당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건 광명진천보다 못한 무위를 가진 그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너의 무위는 광명진천의 아래다. 그런데 그의 날개를 잘랐다는 것이냐?”
“나도 신좌(神座)에 한쪽 발을 걸친 몸이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 너라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 텐데?”
연적하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메디나 이사엘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랍게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윽고 차갑던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랬군. 나는 광명진천이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줄 알았다. 신의 섭리란 정말 오묘하구나.”
“창조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신의 섭리가 오묘하다니? 왜 그래? 너답지 않게.”
그러거나 말거나 메디나 이사엘라가 검에 마기를 한계까지 불어 넣으며 말했다.
“연적하, 가련한 인간이여. 오늘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화르르륵-.
그녀가 들고 있는 검에서 검은 불길이 일 장(약 3미터)이나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