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6
736회. 왕가의 적자(嫡子)와 마신의 시체
가슴에 박혔던 구천검령이 사라지자 메누아의 작은 몸은 곧바로 추락했다.
연적하가 급히 손을 뻗자 떨어지던 메누아의 몸이 그에게 날아왔다.
연적하는 얼떨결에 두 팔로 메누아를 안았다.
어린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무게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메누아의 몸에서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가 쑤욱 빠져나왔다.
마력의 결정체는 자신을 취하라는 듯 연적하의 눈앞에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생령으로 충만한 연적하는 마력의 결정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무관심 속에 마력의 결정체는 대기에 녹아들었다.
스스스스-.
이윽고 마력의 결정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적하는 메누아의 몸을 안아 들고 천천히 백리하로 내려갔다.
천족의 배와 마족의 배에서 백병전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전과 달랐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마족의 배가 천족의 배를 포위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전법이다.
이번에야말로 천족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사령선의 돛대에는 아무런 깃발도 걸려 있지 않았다.
총참모 벨 소니아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연적하는 대장기가 걸린 목선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춰!”
영기가 가득 실린 그의 외침에 대장선이 한차례 출렁거렸다.
백병전을 벌이던 천족과 마족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돛대 위 허공에 대종사가 어린아이의 시체를 안고 있었다.
단번에 메누아를 알아본 마족들은 절망한 얼굴로 칼끝을 내렸다.
마신을 죽인 존재의 명에 거역하는 것은 자살행위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메누아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천족들은 그래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연적하가 마족들에게 말했다.
“싸움은 끝났어. 마천으로 돌아가.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백리하에 수장시켜 버린다.”
마족들 중에 최강인 다이몬이 가장 먼저 돌아섰다.
그가 철선으로 향하자 마족들이 우물쭈물 그의 뒤를 따랐다.
지성이 있는 마귀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하지만 마물은 달랐다.
그들은 연적하의 외침에 놀라서 잠깐 싸움을 멈추었지만, 다시 천족들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
“캬아!”
살육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마물들과 천족의 싸움이 재개됐다.
그러나 마귀와 마족의 지원이 없는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물들은 숫자가 절반 이상 줄어든 뒤에야 철선으로 달아났다.
마신의 깃발이 달린 철선이 뱃머리를 돌렸다.
잠시 후 메누아를 팔에 안은 연적하가 천천히 대장선 갑판 위에 내려섰다.
빠르게 다가온 블레이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종사님. 손에 안고 있는 것이 마신입니까?”
“예.”
“아!”
블레이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 어린 시체가 마신이라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마족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선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왜 기뻐해야 할 대종사의 얼굴이 침통한지를 모르겠다.
블레이즈가 연적하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천족 하나가 급히 다가왔다.
“대종사님, 사령선이 위험합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감상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마신은 죽었지만 천족과 마족 간의 살벌한 전투는 여전했다.
아직 마신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특히나 총참모가 타고 있는 사령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연적하는 메누아를 뱃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화풍(和風)을 타고 날아올랐다.
전장의 중심부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아홉 개의 검령을 꺼냈다.
고오오오-.
거대한 아홉 개의 검이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는 배들 위에 나타났다.
전장은 넓었지만 워낙 거대한 검이라 천족과 마족 모두의 눈에 띄었다.
연적하가 앞으로 뻗었던 양 팔을 찍어 누르듯 내렸다.
순간 아홉 개의 구천검령이 일제히 백리하로 떨어져 내렸다.
구천검령은 검신의 폭이 일 장(약 3미터), 길이는 무려 십 장(약 30미터)에 달한다.
그런 검 아홉 자루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꽤나 비현실적이었다.
아홉 자루의 검이 천족의 배를 포위하고 있던 마족의 배에 박혔다.
콰르르릉! 콰광-!
한순간 거대한 목선 아홉 척이 양단되어 침몰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마족과 마귀들이 날파리처럼 날아올라 주변 마족의 배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마물들은 백리하에 사는 괴수들의 먹이가 됐다.
연적하가 다시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목선을 양단한 아홉 개의 구천검령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손바닥이 다시 아래로 향하자, 아홉 개의 검이 전장의 중심부로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꽝-!
이번에는 사령선을 둘러싸고 있던 마족의 배들이 반파되며 침몰했다.
단 두 번의 손짓에 열여덟 척의 배가 침몰한 것이다.
그 가공할 손짓에 놀란 마족들은 허둥지둥 자신들의 배로 물러났다.
마족들은 마신의 철선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 가공할 신위를 막아 줄 존재는 마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마신의 깃발을 발견한 마족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신의 깃발 옆에 나란히 걸린 것은 백기였다.
마신이 흑천응을 타고 당당하게 날아오르는 걸 보았는데 백기라니…….
종족을 불문하고 백기의 의미는 같았다.
항복 혹은 후퇴다.
마족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기야 마신이 건재했다면 조금 전과 같은 일도 없었을 터였다.
판단력이 빠른 마족들은 즉시 뱃머리를 돌렸다.
사령선에서 백병전을 벌이던 마족과 마귀 들도 가까운 마족의 배로 달아났다.
다른 배로 옮겨 갈 능력이 없는 마물들은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거나, 천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족의 배들이 사천포로 뱃머리를 돌리자 연적하는 구천검령을 거두어 들였다.
마족과 불구대천의 원수라면 모를까?
하계(下界)의 인간인 그는 더 이상 이 세계에서 업을 쌓고 싶지 않았다.
연적하를 태운 화풍이 대장선으로 돌아감으로 피를 말리던 수상전은 끝났다.
메누아의 곁으로 돌아간 연적하가 멈칫했다.
피에 얼룩져 있던 메누아의 주먹만 한 얼굴이 세수라도 한 듯 깨끗해서다.
“대종사님께서 마음 쓰시는 것 같아서 제가 닦아 주었습니다.”
연적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블레이즈가 서 있었다.
제 몸을 돌봐야 할 천족이 마족인 메누아부터 수습해 주었다니 고마웠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마신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까?”
블레이즈는 마신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죽은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럴 리가요. 이건 마신이 마지막에 변신한 모습이에요.”
“아!”
블레이즈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마신이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마신이 대종사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마신의 시신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묻어 주려고요.”
“그러지 않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묻지 말라고요?”
“예, 마신의 시체를 주술에 사용하려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체를 주술에 사용한다고요?”
“마신이니까요. 주술사들 외에도 마신의 육체를 노리는 자들은 많습니다.”
“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누아를 묻어 주고 싶어도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조차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화장을 해야겠네요.”
“뼛가루를 백리하에 뿌리면 누구도 욕심을 내지 못할 겁니다.”
연적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뼛가루 뿌리는 곳조차 고려해야 할 정도로 마신의 시체를 노리는 자들이 많을 줄이야.
그러고 보면 백리하만큼 메누아에게 알맞은 장소도 없는 것 같다.
바다처럼 광활한 백리하라면 메누아를 넉넉히 품어 줄 수 있으리라.
***
삼채성.
옥천항.
해거름 무렵.
뿌우우우-!
뿌우-!
요란한 뿔 나팔 소리와 함께 스물다섯 척의 배가 다가왔다.
옥천항에 남아 있던 천족과 종문 고수들이 선착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들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서른세 척의 배가 출항하여 무려 스물다섯 척이나 돌아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윽고 하선(下船)이 시작됐다.
잠시 후 마신의 죽음과 마족들의 후퇴 소식에 항구는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천족들이 떠났지만 연적하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상한 소문이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메누아의 장례를 끝내기 위해서다.
물론 믿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천족이 떠나고 일각(15분)쯤 지났을까?
블레이즈에게 연락을 받은 곡분조 노조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대종사님! 마신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심을 경하드립니다. 종문과 성주들은 물론 구주의 백성들도…….”
곡분조 노조의 입에 발린 말이 길어지자 연적하가 치고 들어갔다.
“됐고. 가서 작은 목선이나 하나 구해 와.”
“작은 목선요?”
“그래, 작을수록 좋아.”
“전투가 끝났는데 목선을 어디에 쓰려고 찾으십니까?”
곡분조 노조가 능청스러운 얼굴로 뱃머리에 있는 어린 소녀의 시체를 힐끔거렸다.
“뭘 그렇게 봐?”
“아, 웬 어린애 시체인가 해서요.”
“알 것 없고, 이 애를 화장시켜 주려고 하니까 적당한 배나 구해 와.”
“아, 배와 함께 불태우시려고요?”
“맞아. 그러니 최대한 작은 배를 구해와야 할 거야.”
“항구에 선원들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가 있습니다. 장례용으로 단장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냥 배만 있으면 돼. 아, 아니다. 말 잘했네. 배에 불에 잘 탈 만한 목재도 좀 실어 와.”
“알겠습니다. 바로 구해 오겠습니다.”
곡분조 노조는 연적하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대장선에서 내린 곡분조 노조는 우선 작은 배부터 찾아다녔다.
다행히 배는 금방 눈에 띄었다.
대형 선박과 항구 사이를 오가는 나룻배들이 곳곳에 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은 나룻배에 채울 목재다.
곡분조 노조는 빠른 걸음으로 항구의 창고를 뒤지고 다녔다.
땀나게 돌아다니던 그가 적당한 목재를 찾아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쉴 때다.
조금 전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천족들이 밀물처럼 항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숫자가 이상했다.
항구에 남아 있던 천족과 배에서 내린 천족의 숫자를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많았다.
전쟁도 끝난 마당에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던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천족 기수가 들고 있는 깃발에 앙겔로스 왕가(王家)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깃발에 그려진 그림은 ‘손에 검을 든 천사’였다.
천계(天界)를 지배하는 왕족 중 하나인 앙겔로스 왕가에서 친림(親臨)한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목재를 팽개치고 왕가의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천족 호위에 막혀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졸지에 구경꾼이 되어 졸졸 뒤따르는 그의 어깨를 누군가 툭 건드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블레이즈 님? 천계군은 숙영지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어쩐 일입니까? 앙겔로스 왕가의 깃발은 또 어떻게 된 거고요?”
반가워 하는 곡분조 노조와 달리 블레이즈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총참모가 보낸 보고서를 보고 천계에서 추가로 대군을 파병했어요.”
“그런데요?”
곡분조 노조는 블레이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천계군의 파병은 환영할 만한 일인 까닭이다.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嫡子)가 대군을 끌고 왔는데……. 그가 마신의 시체를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