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41
741회. 신기(神器)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
남궁연이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연적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좋게 말해 감성적이지 실은 감정에 가깝다.
그는 어떤 일을 맞닥뜨리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명령에 따랐다.
녹림의 표현에 의하면, 꼴리는 대로 살았다.
처음에는 산 너머의 그 해괴한 기운을 마족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 정도로 살육의 광기는 강렬했다.
당하기 전에 먼저 쳐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직 마족이 완전히 퇴각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할 법한 의심이었다.
설사 마족의 것이 아니더라도, 연적하는 저 광기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천둔검.’
그가 허공에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삼 척 길이의 장검이 나타났다.
천둔검을 말아 쥔 연적하는 창끝처럼 솟은 산으로 바람같이 달려갔다.
산을 돌아갈 수도 있지만 저 악한 기운이 어디로 샐지 몰라 그냥 뛰어 넘기로 했다.
쉬이이익-!
평소 게으르게 보일 정도로 느긋하던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음의 선고에서 산을 뛰어넘기까지 그야말로 숨 한 번 쉴 정도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윽고 산 정상에서 아래로, 연적하는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 매처럼 떨어져 내렸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정면에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간들이 저 산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도리산(창끝 산)’이라 부르오. 척 봐도 창날을 세워 놓은 것 같지 않소?”
페라노스 기사단의 단장인 아피쿨라타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대종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무슨 말을 들어도 그저 그랬다.
천계를 떠날 때만 해도 신기(神器) 하나면 다 해결될 줄로 알았다.
‘인간은 열등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그래서 ‘마신을 죽인 인간이니 주의하라’는 왕의 경고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오히려 현장에 있던 원정군 지휘관들을 욕했다.
인간 따위가 왕세자의 팔을 자르는 걸 보고도 가만있었다니!
본래 도둑놈도 남이 도둑질 하는 건 못 봐 준다.
그는 원정군 숙영지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지휘관들의 무능을 욕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막상 와서 만나 본 원정군 지휘관들은 제법 이름 있는 천족들이었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만 해도 천계에서는 ‘철벽의 젤라툼’으로 불린다.
서부군 사령관인 아나타시오는 ‘죽음의 기사’,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는 ‘영원한 재앙’이라는 이명(異名)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알 정도의 이명을 가졌다는 건 ‘잘나간다’는 뜻이다.
무능하다고 욕했던 지휘관들 모두가 천계에서 쟁쟁한 고수였다.
물론 페라노스(피의 손길)라 불릴 정도로 살육에 미친 자신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기야 상대가 마신이니 오죽 엄선해서 보냈을까.
그런 지휘관들이 ‘대종사가 두렵다’고 했다.
자신을 보는 눈빛과 대종사를 입에 올릴 때의 눈빛이 달랐다.
‘거대한 아홉 개의 검령’을 말할 때는 경건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검령의 크기에 다소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해도, 아홉 개의 검령은 의외였다.
그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종문 제자의 검령은 하나인 까닭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일단 대종사를 소개받기로 했다.
대종사와 안면을 트고 지내다가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뭐라고 떠드는 총사령관 젤라툼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산꼭대기에서 뭐가 날아왔다.
아피쿨라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천족 원정군 지휘부와 페라노스 기사단까지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물었다.
“저건 마족이오? 뭐요?”
새처럼 떨어져 내리는 게 만약 마족이라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게다.
원정군 지휘부를 호위하고 있는 부대만으로도 압살해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원정군 지휘관들의 시선이 도리산으로 향했다.
상대를 확인한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와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도 마찬가지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피쿨라타가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고 묻지 않느냐!”
그나마 앙겔로스 왕가 출신의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급히 말했다.
“저 사람이 종문의 대종사요!”
페르페투아의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검영이 쏟아져 내렸다.
저 유명한 ‘천백억 검의 화신(化身)’이었다.
콰콰콰콰쾅-!
아피쿨라타는 검영(劍影)을 피해 미친 듯 달렸다.
그건 다른 천족 호위부대와 페라노스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밑도 끝도 없이 퍼붓는 ‘검의 화신’에 천족들은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튀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피쿨라타가 영기를 끌어 올려 소리쳤다.
“당장 멈추지 못할까! 나는 앙겔로스 왕가의 페라노스 기사단 단장 아피쿨라타다! 무슨 이유로 우리 천족 원정군을 공격하는 것이냐!”
그제야 연적하는 천산검영의 검공을 잠시 멈추고 지면에 내려섰다.
“앙겔로스 왕가에서 보낸 천족이라고?”
“그렇다! 천족 원정군과 왕가의 기사단을 공격하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그래? 나는 하도 사악한 기운이 왕성하기에 마족인 줄 알았네.”
연적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피쿨라타를 분석이라도 하듯 열심히 뜯어보기만 했다.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적하에게손을 들어 인사했다.
“대종사! 왜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아피쿨라타 님은 앙겔로스 왕가의 기사단장이 맞소이다.”
인사는 했지만 총사령관 젤라툼은 연적하와 거리를 유지했다.
어제까지의 전우를 다시 만난 자리 치고는 지나치게 먼 거리다.
그건 다른 원정군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대종사가 아피쿨라타를 제거하기 위해 먼저 움직였다고 믿었다.
대종사와 아피쿨라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일임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했다.
그들이 공격을 받고도 반격에 나서지 않은 건 구천검령 때문이다.
구천검령만 아니었어도 벌 떼처럼 들고일어났으리라.
한편 뜬금없이 기습을 당한 아피쿨라타는 ‘울컥!’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대종사보다 무차별적으로 얻어맞고도 말 한마디 못 하는 지휘관들이 더 얄미웠다.
‘자존심도 없는 버러지들 같으니. 급습을 받고도 변변한 항의조차 못 하다니. 그러고도 너희가 천족 원정군의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느냐!’
아피쿨라타는 한없이 비굴한 지휘관들의 태도를 욕했지만, 실은 자신도 부지불식간에 살육의 광기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연적하는-검집이 없는-천둔검을 어깨에 턱 걸치고 아피쿨라타를 향해 다가갔다.
“앙겔로스 왕가의 기사단장이시라고?”
“그렇다. 아무리 네가 대종사라 해도 앙겔로스 왕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아피쿨라타는 치밀어 오르는 살기를 감추기 위해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종사의 말에 그의 노력은 산산이 부서졌다.
“앙겔로스 왕가는 마천을 다스리나? 왜 마족 같은 놈을 기사단장으로 쓰지?”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아피쿨라타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버렸다.
“크크큿! 재미있는 인간이로군. 애송이. 마신을 죽였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본데. 오늘 네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해 주마.”
아피쿨라타의 눈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결정적인 기회고 나발이고, 당장 찢어 죽이고 싶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지금까지 세운 계획이 수치스럽게 여겨졌다.
항상 먼저 상대를 쳐 죽였는데 이번에는 왜 뜸을 들였는지 후회막급이다.
그는 즉시 허공에서 생유천(生有天)의 왕 앙겔로스 암브로시오스에게 받은 신기(神器)를 꺼냈다.
‘마하담’이라 불리는 ‘공간의 창고’에 고이 모셔 두었던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이이잉-.
‘대종사를 죽일 때만 사용하겠다’는 ‘필사의 언약’을 치른 뒤에야 얻은 앙겔로스 왕가의 비보(秘寶) ‘피나카 아스트라’에서 은은한 공명음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피나카 아스트라’가 스스로 살아 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연적하는 아피쿨라타가 허공에서 활을 꺼내자 흠칫 놀랐다.
마치 득물(得物)처럼 보이는 수법도 놀랍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활은 더욱 대단했다.
‘독사가 뒤꿈치를 물기 전에 대가리를 부숴야 한다’던 본능의 속삭임을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독사 같은 천족을 쳐 죽이기도 전에 신기가 먼저 나와 버렸다.
입술을 깨물던 그는 아피쿨라타가 시위를 당기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천둔검이 번개처럼 아피쿨라타를 향해 날아갔다.
거의 동시에 아피쿨라타 역시 활시위를 뒤로 당겼다가 놓았다.
텅-.
가냘픈 소리와 달리 빛의 속도로 날아간 ‘바람의 화살’이 천둔검에 박혔다.
꽈광-!
아피쿨라타의 얼굴 한 치(약 3센티미터) 앞에서 천둔검이 튕겨 났다.
다행히 진선(眞仙) 여동빈이 만든 천둔검은 신기(神器)에 당하고도 무사했다.
연적하는 검결지를 뻗어 멀리 날아간 천둔검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때 아피쿨라타가 다시 한번 시위를 뒤로 당겼다가 놓았다.
텅-.
슈아악! 연적하는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암경(바람의 화살)’에 깜짝 놀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암경은 마치 그림자처럼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문득 연적하는 아피쿨라타를 돌아보았다.
이기어검처럼 그가 영기로 저 ‘암경’을 조종하는지 알고 싶어서다.
‘헛! 뭐지?’
아피쿨라타는 보란 듯 손을 지면에 늘어트린 채 웃고 있었다.
영기로 투명한 ‘암경’을 조종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원리로 ‘암경’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일까?
이 순간만큼은 신기를 쉽게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끝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던 연적하는 다시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들었다.
허공섭물로 천둔검을 끌어당길 수가 없어서 아예 다시 불러낸 것이다.
허공에서 천둔검이 생겨남과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던 천둔검은 스르륵 사라졌다.
연적하는 구룡번신의 수법으로 허공에서 여러 차례 위치를 바꿨다.
그래도 ‘암경’은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나 초월적인 힘에 의해 한번 정한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직접 타격해 부술 생각으로 천둔검을 힘껏 휘둘렀다.
꽈광-!
어찌나 ‘암경’에 실린 힘이 막강했던지 몸이 뒤로 쭉 밀렸다.
연적하의 시선이 다시 한번 아피쿨라타를 향했다.
필사적으로 ‘암경’을 상대하는 자신과 달리 여유만만한 얼굴이다.
‘제길! 신기를 꺼내기 전에 끝냈어야 하는데!’
허둥지둥 달아나는 놈의 모습에 잠깐 방심한 게 잘못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일단 쳐 죽였어야 하는데, 앞뒤 가릴 줄 모르는 주둥아리가 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자책하는 동안 그의 몸은 천천히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우위를 확신한 아피쿨라타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연적하가 땅에 내려오자 웃으며 손날로 제 목을 쓱 그어 보였다.
그런 직후 연속으로 활시위를 튕겼다.
텅- 텅- 텅- 텅- 텅-.
슈아아아악-!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화살’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아피쿨라타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대종사를 죽일 생각이었다.
놈이 아홉 개의 검령을 언제 꺼낼지 모르겠지만, ‘피나카 아스트라’의 권능을 당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피나카 아스트라’는 창조신이 그의 사자(使者)에게 직접 하사한 창조신의 무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