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50
750회.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네 탓
천계 일곱 왕가들의 관계는 ‘협력’과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곱 왕가들은 ‘태고의 전쟁’이나 ‘내부의 저항’에 직면하면 서로 협력했다.
하지만 그런 혈맹과도 같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태고의 전쟁’과 ‘내부의 저항’이라는 파도가 지나가면 왕가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암투를 벌였다.
프리타 왕가의 정보총국은 그런 경쟁 속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찌 보면 왕가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태고의 전쟁’보다 더 위험했다.
왕가의 뿌리가 창조신의 사자(使者)였던 만큼 그들은 공공연하게 서로를 적대시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 이익에 방해가 되는 천족은 거리낌 없이 죽였다.
많은 천족이 알게 모르게 왕가들의 암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프리타 키아나는 정보총국 국장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프리타 왕가의 실세 중 하나였다.
그녀가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정보총국을 이끌어 가는 그녀가 직접 최전선까지 달려온 것은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神器)인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를 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대종사가 ‘앙겔로스 왕가에 또 부탁할 게 있기는 하지만’이라고 했을 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게 뭔가요? 앙겔로스 왕가에서 하나를 주겠다면, 우리는 그 두 배를 드릴게요.”
프리타 키아나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종사를 보았다.
그녀는 대종사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생각하면 그래야 마땅했다.
“말했잖아요. 언행일치를 중요시하는 공법을 수련 중이라고. 앙겔로스 왕가에 먼저 제안을 했으니까, 대답을 기다려 보려고요. 앙겔로스 왕가에서 거절하면 프리타 키아나 양의 말대로 할게요.”
프리타 키아나가 황망한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앙겔로스 왕가에 먼저 제안을 했으니 기다려 보겠다고? 정말 언행일 치의 공법 때문인가?’
대종사의 얼굴을 보니 단지 상대를 애태우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알겠어요. 그럼 대종사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 볼게요. 그런데 앙겔로스 왕가의 답이 늦으면 어떻게 하죠?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 건가요?”
“십일월 이전까지라고 했으니까 그 전에 연락이 올 거예요.”
“꽤 오래 기다려 주시네요?”
지금이 팔월이니 석 달이나 남은 셈이다.
천계에서 구주를 오가는 데 길어야 한 달, 빠르면 열흘이면 충분했다.
“그런가요?”
천계에 대해 모르는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도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 문제를 빨리 매듭짓는 게 편했다.
언제까지고 활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타 왕가처럼 다른 왕가에서 눈독을 들이면 자신만 피곤해진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물었다.
“천계를 오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원정군의 전령을 기준으로 열흘이면 왕복이 가능해요. 신기를 관리하기가 번거로우실 텐데, 날짜를 조금 당기는 건 어떨까요?”
프리타 키아나는 가급적 빨리 결과를 보고 싶었다.
앙겔로스 왕가에 주어진 시간이 촉박할수록 자신에게 유리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어차피 돌려줄 남의 활을 가지고 다니는 게 너무 귀찮았다.
“지금이 팔월이니까 구월이면 충분하겠죠?”
“충분하다 못해 넘치죠. 아니, 지금쯤 앙겔로스 왕가에서 사자를 보냈을 거예요. 그들이 ‘피나카 아스트라’를 꼭 돌려받고 싶다면 그랬어야 해요.”
그 점은 연적하도 동의했다.
‘피나카 아스트라’가 소중하다면 열일 제쳐 두고 오는 게 맞다.
“그럼 서부군 사령관님에게 부탁을 해야겠네요. 앙겔로스 왕가에 전령을 보내 달라고.”
아무래도 연적하는 북부군 사령관보다 서부군 사령관이 편했다.
“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저도 구월까지 기다려 볼게요.”
그렇게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 지어졌다.
연적하와 프리타 키아나는 뒤뜰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백암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영 행사는 끝났다.
연적하가 숙소로 돌아가려 하자 서부군 사령관은 블레이즈 부관을 불렀다.
“블레이즈. 자네가 대종사님을 숙소까지 배웅해 드렸으면 하는데, 어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블레이즈 부관은 서부군 사령관에게 묵례를 한 뒤 연적하의 옆으로 다가갔다.
연적하는 서부군 사령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블레이즈 부관이 백리하에서 함께 싸운 전우인지라 편한 것도 있었다.
잠시 후 연적하와 블레이즈 부관은 백암궁을 떠났다.
대종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블레이즈 부관이 지나가듯 말했다.
“행사는 어떠셨습니까?”
“음식이 괜찮더라고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블레이즈 부관님은 어땠어요?”
“저도 맛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어떠셨습니까?”
“그 외요?”
연적하가 힐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블레이즈 부관을 보았다.
그녀가 뭘 궁금해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세 개의 달빛 아래 블레이즈 부관의 은빛 머리카락이 신비롭게 빛났다.
‘그러고 보니 프리타 키아나 양의 금발도 저렇게 빛이 났는데…….’
왜 프리타 키아나와 블레이즈의 머리카락에서 빛이 나는지를 모르겠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아, 블레이즈 부관님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아서요. 프리타 키아나 양의 금발도 그렇게 빛이 났었거든요. 여성분들이라 그런가?”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 천족을 많이 만나본 게 아니라서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블레이즈 부관은 빙긋 웃기만 할 뿐 연적하의 궁금증을 풀어 주지 않았다.
“음식 외에는 어떠셨습니까? 이를 테면 프리타 키아나 양과의 대화라든지.”
블레이즈 부관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다.
“프리타 키아나 양과의 대화요?”
연적하가 콕 집어 묻자 블레이즈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 분이 그냥 산책을 나간 것 같지는 않아서요. 프리타 키아나 양도 꽤나 바쁜 분이시거든요.”
“프리타 키아나 양에 대해 잘 알아요?”
“그럼요. 천족에서 그만한 미녀를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키가 좀 작은 게 흠이지만.”
키 작은 게 흠이라는 말에 연적하는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인 자신에게는 프리타 키아나의 키가 딱 적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 상대로 그렇다는 거다.
“나한테는 딱 좋던데요. 말할 때 위로 올려다보지 않아도 돼서.”
“그랬겠군요. 프리타 키아나 양과의 대화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 말에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블레이즈 부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에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블레이즈 부관이 말했다.
“아, 말씀하기 곤란하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프리타 키아나 양과 관련된 것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그녀의 배려에 연적하의 마음이 흔들렸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도 있지만, 대략적인 것은 괜찮을 것도 같았다.
“주로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러자 블레이즈 부관이 바로 치고 들어왔다.
“가지고 계신 ‘피나카 아스트라’를 프리타 왕가에 달라고 하던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블레이즈 부관을 보았다.
어떻게 그 말만 듣고 프리타 키아나 양의 제안을 알아맞혔는지 신기했다.
“프리타 키아나 양이 직접 최전방까지 올 이유라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아! 원래 프리타 키아나 양이 잘 안 움직이나 봐요?”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는 정보총국의 책임자입니다. 그 정도 위치의 책임자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습니다.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라면 다르겠지만요.”
“정보총국의 책임자가 높은 신분인가요?”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 각하도 어려워하는 천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 굉장하네요?”
북부군 사령관에게는 서부군 사령관도 반존대를 썼다.
그런 북부군 사령관이 어려워하는 천족이라니 알 것도 같았다.
‘어쩐지 자기 말에 책임질 위치라고 하더니.’
그녀가 보통 천족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눈을 끔뻑이고 있는 연적하에게 블레이즈 부관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우선은 앙겔로스 왕가에 제안을 한 상황이니까, 답을 기다려 보자고 했어요.”
“잘하셨습니다.”
“프리타 키아나 양은 이 활을 프리타 왕가에 넘겨주면 앙겔로스 왕가를 막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왕가의 일은 왕가에 맡겨 달라나.”
“흥! 그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입니다. 뒷간에 들어가기 전과 나왔을 때는 다른 법이지요. 만약 그 활을 프리타 왕가에 넘기면, 대종사님은 평생 앙겔로스 왕가의 원수가 될 겁니다. 앙겔로스 왕가와 가까운 왕가들도 대종사님을 적대시할 테고요.”
“프리타 왕가에서 막아 주지 못한다는 건가요?”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이야 간도 쓸개도 빼 줄 것처럼 매달리지만, 머지않아 프리타 왕가는 대종사님과 거리를 두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블레이즈 부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가 그려졌다.
블레이즈 부관은 더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연적하도 딱히 할 얘기가 없어 묵묵히 걷기만 했다.
잠시 후 숙소에 도착하자 블레이즈 부관은 절도 있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둘의 역할이 바뀐 느낌이다.
대화할 때는 블레이즈 부관의 딱딱한 말투 때문에 몰랐는데, 달빛을 받으며 홀로 멀어져 가는 걸 보니 아주 조금 짠했다.
물론 남녀의 구별이 없는 천족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
연적하 대종사와 서부군의 합류로 북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북부군과 서부군은 녹수성 천독곡까지 마왕의 군세를 몰아붙였다.
웅천주.
녹수성.
천독곡.
백독문 살천궁.
태사의에 앉아 있던 마왕 천자마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마신의 죽음까지 술술 잘 풀리던 일이 급전직하(急轉直下)로 꼬여 버렸다.
혈주종에 있는 천문(天門)을 붙잡고 씨름할 동안 서부군의 전력이 급 상승했다.
정신없이 쫓기다 보니 천독곡이다.
백독문이라는 곳에 잠시 쉬고 있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천자마가 버럭 소리쳤다.
“오로보스!”
잠시 후 마족 하나가 허겁지겁 살천궁으로 들어왔다.
천자마의 장자방인 오로보스였다.
“부르셨습니까.”
“천문도, 천족도, 모두가 개판이 됐다! 천족군이 천독곡 밖에 진을 치고 있는데 이제 어쩔 셈이냐!”
“…….”
오로보스는 답하지 못했다.
천문을 옮기지 못한 건 자신의 탓만도 아니지만,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천족에 대해서도 그렇다.
갑자기 웅천주에 있는 천족 군세가 늘어난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모두가 네놈 잘못이다! 네놈이 난쟁이들과 어울려 헛짓거리만 하지 않았어도! 진즉에 퇴로를 확보해 뒀을 것이다! 네놈이 금방이라도 천문을 옮길 것처럼 해서 어떻게 됐는지 보아라! 네놈의 광대 짓거리를 넋 놓고 보다가 연전연패(連戰連敗)! 급기야 이런 개 같은 협곡에 갇히고 말았다!”
대로한 마왕 천자마의 적안(赤眼)에서 화광(火光)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죽여 주시옵소서!”
마족 오로보스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쿵쿵!’ 찧었다.
바닥에 깔린 청석(靑石)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는 쉬지 않고 머리를 박아 댔다.
할 말은 많았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본래 잘되면 천자마 덕, 안 되면 자신의 탓인 까닭이다.
빠직-.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조개처럼 닫혀 있던 천자마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대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