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49
749회. 왕가의 일은 왕가에게 맡기세요.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의 관심은 유흥에만 있지 않았다.
대종사를 의식한 그는 하루 만에 동내성의 마물을 모두 토벌했다.
본래 사흘은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동내성 성주의 별궁에서 정말로 환영 만찬을 열었다.
동내성.
백암궁.
낮 동안 마물을 토벌하느라 흩어져 있던 지휘관들과 종문 대표들이 다시 모였다.
천족과 종문 대표들은 멀찍이서 대종사를 힐끔거릴 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대종사와 일면식도 없던 그들에게 대종사는 너무도 먼 사람이었다.
자연히 대종사 옆자리는 그와 함께 온 서부군 지휘관들의 차지였다.
서부군 사령관의 부관 블레이즈가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연적하에게 말을 걸었다.
“지루해 보이십니다?”
“조금 그러네요.”
“그래도 용케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지는 않네요?”
“내가 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하하. 북부군 사령관님이 들으면 기뻐할 소리네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북부군 사령관님과 친해져서 나쁠 건 없습니다.”
“왜요? 그가 뭐라도 돼요?”
“그분은 천계 일곱 왕가 중에 하나인 프리타 왕가의 일원이십니다.”
“왕족이라는 건가요?”
“예. 직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왕가의 일원이십니다. 프리타 왕가와 교분을 맺으면 앙겔로스 왕가에서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겁니다.”
“아! 왕가들끼리 무조건 편들어 주는 건 아닌가 봐요?”
“일곱 왕가는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통해 천계 지배자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겠네요.”
“일곱 왕가 모두 자기들 왕가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구주로 치면 종문의 관계네요?”
“적절한 표현이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는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연회를 떠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잘 차려진 요리 때문이다.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생겼는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고기 볶음을 입에 널고 우물거리던 연적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천족들은 전쟁터에서도 잘 먹네요. 그런 건 부럽네요.”
그러자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벽곡단이나 잘해 봐야 건량입니다. 북부군 사령관 각하께서 특별한 겁니다.”
“설마 왕족이라서 그렇다는 거예요?”
“맞습니다. 북부군 사령관 각하께서 개인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야아! 전쟁터에도 개인 요리사를 데리고 다니고. 참 좋네요. 왕족이라는 거.”
“…….”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는 웃기만 했다.
상대가 진심으로 탄복해서 하는 말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서부군 지휘관들은 왕가를 주제로 한 대화가 불편한지 식사에만 열중했다.
그즈음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나왔다.
그런데 그의 옆에 못 보던 자그마한 키의 천족 미녀가 서 있었다.
전투복이 아닌 화려한 의복을 입은 걸 보니 전사가 아닌 모양이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천족 미녀와 함께 연적하의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하하. 뜻하지 않은 손님을 모시고 나오느라 늦었습니다. 인사 나누시지요. 프리타 왕가의 정보총국에서 근무하는 프리타 키아나 양입니다. 전황을 직접 확인하고 오라는 전하의 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키아나 양, 저 훤칠하게 생기신 분이 대종사님이시네.”
프리타 키아나가 연적하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정보총국에서 일하는 프리타 키아나예요.”
연적하는 씹던 고기를 얼른 삼키고 화답했다.
“연적합니다.”
“북부군 사령관님에게 대종사님의 전공에 대한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마족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셨다고요. 프리타 왕가를 대신해 대종사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괜찮습니다. 그게 어디 남의 일인가요.”
구주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니 프라타 왕가가 감사할 일은 아니었다.
프리타 키아나는 대종사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쉬운 상대가 아니구나.’
보통의 종문 제자들은 천계 왕가 소리만 나와도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대종사는 프리타 왕가의 이름 앞에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삼천의 신’ 중에 둘이나 꺾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머지 하나는 실체조차 모호한 ‘구전범천’이니 그가 이 세계 최강자라 해도 무방했다.
프리타 키아나는 인사를 마친 뒤에도 떠나지 않고 연적하의 옆에 머물렀다.
그 행동이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다.
프리타 키아나가 연적하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대종사님, 바람을 쐬고 싶은데 혼자 나가기가 좀 그렇네요. 잠시 동행해 주실 수 있으세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연적하가 고개를 돌렸다.
천족치고 작은 키의 프리타 키아나는 얼핏 인간처럼 보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만 아니라면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연적하는 별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배도 적당히 부른 참이라 연회에 미련이 없었다.
세 개의 달빛 아래 연적하와 프리타 키아나는 궁전 뒤뜰을 걸었다.
문득 프리타 키아나가 말했다.
“그거 아세요? 대종사님은 반신으로서는 최초로 이 세계의 정점에 오르셨어요.”
“제가요?”
“훗! 네. 모르셨어요?”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요.”
연적하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놀랍기는 했다.
강호에서 천하십대고수와 비교되던 게 어제 같은데,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이 세계의 정점에 올랐다니.
하기야 최근 자신을 돌아보면 이전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구름과 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건 일도 아니다.
심지어 신수(神獸) 화풍(和風)을 타고 하늘에서 마신과 싸우기도 했다.
불현듯 마신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봐, 어이, 하고 부를 수는 없잖아.”
잠깐 생각하던 소녀가 말했다.
“메누아(안식).”
“메누아라고?”
“그래, 메누아. 그렇게 부르거라.”
“그게 무슨 뜻인데?”
그러자 소녀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뭐라고 했지?”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알면서 왜 자꾸 묻느냐? 그건 역시 머리의 문제인가?”
씁쓰름하게 미소 짓는 그의 귓가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대종사님은 명실상부한 이 세계의 최강자예요. 반신에 불과한 몸으로 진신들을 물리쳤죠. 그 바람에 인간의 위상도 전과 달리 아주 높아졌고요.”
“인간의 위상이 높아졌다니 다행이네요.”
연적하는 그것 하나만은 마음에 들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살육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마물보다 못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천계의 일곱 왕가에서 대종사님을 주목하고 있다는 건 아세요?”
“처음 듣는 소리네요.”
“혹시 프리타 왕가가 처음으로 대종사님을 찾아온 건가요?”
“네.”
“와아! 다행이다.”
프리타 키아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놀란 연적하가 힐끔 돌아보았다.
‘뭐지? 처음으로 나를 찾아온 게 뭐 대수라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프리타 키아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종사님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 세계에서 ‘삼천의 신’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종사님은 비록 반신이지만 진신보다 윗길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봐야 아무 의미 없어요.”
연적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뒤틀린 욕망의 세계에서 무소불위는 멸망의 지름길인 까닭이다.
프리타 키아나는 그런 연적하의 말을 잘못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가 앙겔로스 왕가와의 불화로 힘들어 한다고 생각했다.
“앙겔로스 왕가와 불편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혹시 해결이 됐을까요?”
“해결 중이에요.”
“어떻게요?”
“어쩌다 보니 내가 왕가의 신기(神器)를 얻게 됐거든요. ‘생명의 나무’ 열매와 신기를 바꾸자고 했어요.”
프리타 키아나의 시선이 대종사가 등에 매고 있는 활을 향했다.
“아! 그러시구나. 그래서 앙겔로스 왕가에서는 뭐라고 해요?”
“아직 답을 듣지 못했어요.”
“흐음. 무소불위의 자리에 오르셨다고 해도 천계 왕가와 싸우지 않는 게 좋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원래 싸우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요.”
사실이다.
본의 아니게 시비가 일어나 자꾸 싸우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싸움을 싫어했다.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들어 보시겠어요?”
“뭔데요?”
“앙겔로스 왕가 때문에 불편하신 거잖아요?”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지요.”
“왕가의 일은 왕가에게 맡기세요. 우리 프리타 왕가를 대종사님의 든든한 바람막이로 세우는 건 어떨까요?”
“프리타 왕가가 내 편에 서겠다는 건가요?”
“네, 말씀하신 그 ‘생명의 나무’ 열매도 구해 드릴 수 있어요.”
“공짜로 그렇게 해 줄 리는 없고, 조건이 뭐예요?”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를 주세요. 그럼 천계 왕가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 드릴게요. 대종사님이 ‘피나카 아스트라’를 저희에게 넘기면, 천계 왕가들의 관심도 대종사님에게서 멀어질 거예요.”
“그러니까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를 그쪽에 넘기면 만사가 해결된다?”
“네. 원하시는 ‘생명의 나무’ 열매도 얻고, 앙겔로스 왕가는 물론 천계 왕가들의 견제로부터도 자유로워지실 수 있어요. 어떤가요?”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프리타 키아나를 보았다.
이제야 정보총국 소속의 그녀가 최전방까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프리타 왕가에서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를 노리고 있는 거다.
“그쪽은 프리타 왕가의 사람이죠?”
“네. 맞아요. 저는 프리타 왕가의 직계로,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프리타 왕가에는 신기가 없어요?”
“그럴 리가요. 일곱 왕가를 지탱시켜 주는 힘은 신기에서 나온답니다.”
“그런데 왜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를 탐내는 거죠?”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신기는 곧 왕가의 힘이에요. 프리타 왕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세요.”
“뭐 나는 신기가 어느 왕가에 가도 상관은 없어요.”
그러자 프리타 키아나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대종사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앙겔로스 왕가에 먼저 한 말이 있거든요. ‘생명의 나무’ 열매를 가져오면 돌려주겠다고. 나는 내가 한 말은 꼭 지켜야 돼요. 내가 수련하고 있는 공법은 ‘언행일치’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단지 ‘언행일치’ 때문인가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다른 이유가 뭐 있겠어요?”
“앙겔로스 왕가에 또 원하는 게 있다거나, 아니면 흥정을 위해서 거절 하셨다거나.”
“전혀요. 물론 앙겔로스 왕가에 또 부탁할 게 있기는 하지만…….”
연적하는 ‘마하담(공간의 창고)’의 주법을 떠올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그것도 가르쳐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 연적하의 말에 프리타 키아나는 다시 오해를 하고 말았다.
‘전혀 아니라고 하더니, 역시 더 바라는 게 있었구나.’
그녀는 앙겔로스 왕가보다 더 얹어 주면 신기를 얻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게 뭔가요? 앙겔로스 왕가에서 하나를 주겠다면, 우리는 그 두 배도 드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