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48
748회. 이 세계와 함께 멸망하리라
자신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 강호에서 위험에 처하게 될 일이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연적하는 자신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본 사람들은 ‘그가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그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었다.
예컨대 상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치 못하게 강자와 싸울 때는 달아날 준비를 하고 싸웠다.
실제로 강호에서 천하십대고수들과 싸우다 달아난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무공으로 진신(眞神)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나선 것은 구천검령을 믿어서다.
만약 구천검령이 없었다면 진신들과 시비를 벌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신이 진신 둘과 싸운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물론 구천검령이 없다면 그렇다는 거다.
연적하는 즉시 자신의 몸에서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구천검령 둘을 불러냈다.
스스스스-.
연적하의 좌우편에 거대한 구천검령 두 개가 나타났다.
이윽고 두 개의 검령은 길게 잔상을 남기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흡사 붓으로 칠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진경에서의 움직임은 다르구나.’
구천구검의 마지막 초식인 능운소요(凌雲逍遙)도 그렇고, 구천검령의 움직임도 바깥 세상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이 알고 있던 ‘초식’과 ‘물질’의 한계를 초월한 그런 느낌이랄까?
‘저 진신들도 그러려나?’
연적하는 눈에 힘을 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령에 맞서 싸우는 진신들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겠다 싶어서다.
고범천왕이 우샤스 킨샤사보다는 조금 앞섰다.
이기어검을 앞세우고 날아오르던 그는 갑자기 오싹한 느낌에 흠칫했다.
뒤이어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유성처럼 긴 꼬리를 이끌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헉! 검령이다!”
어떻게 검령이 이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에 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대종사의 검령이 분명했다.
방향을 바꿀 틈도 없었다.
벼락처럼 떨어진 대종사의 검령에 고범천왕의 이기어검이 박살 났다.
콰직-!
뒤이어 이기어검의 뒤를 바짝 따르던 고범천왕이 검령에 찍혔다.
고범천왕은 급히 신형을 틀었지만 한쪽 어깨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아악!”
육신의 아픔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격통에 고범천왕은 한 손으로 어깨를 움켜잡고 추락했다.
우샤스 킨샤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령에 대한 방비 없이 육탄전으로 들이밀던 대가는 너무도 컸다.
콰창-!
앞서 날아가던 검이 산산조각 났다.
뒤이어 거대한 검령이 우샤스 킨샤사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우샤스 킨샤사는 급히 상체를 뒤로 꺾었지만 검령이 너무 컸다.
고범천왕의 경우 한쪽 어깨가 잘렸다면 우샤스 킨샤사는 상반신이 갈라졌다.
“크악!”
우샤스 킨샤사 역시 피를 뿜어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고범천왕과 우샤스 킨샤사의 움직임은 바깥세상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한 것을 보면 틀림없다.
물 만난 고기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구천검령에 비하면 진신들의 움직임은 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후 연적하는 두 개의 구천검령을 거두고 아래로 내려갔다.
고범천왕과 우샤스 킨샤사는 진경에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달아나시겠다?”
연적하는 즉시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 합일(合一)했다.
저 멀리 현청의 담을 넘어가는 고범천왕과 담장 아래 주저앉은 우샤스 킨샤사가 보였다.
“흥! 누구 마음대로?”
냉소를 치던 연적하가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고범천왕에게 던졌다.
쉬이이익-!
파공성에 깜짝 놀란 고범천왕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천둔검을 피했다.
그러나 연적하가 검결지를 옆으로 슥 긋자 천둔검이 다시 고범천왕에게 돌아갔다.
츠츠츠-.
고범천왕은 이리저리 피했지만 움직임이 신통치 않았다.
육체는 멀쩡했지만 진경에서 입은 부상 탓에 상체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등은 훤하게 드러났고, 천둔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퍼억-!
천둔검이 그의 등을 관통하자 고범천왕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이윽고 허공을 선회한 천둔검이 연적하에게 돌아왔다.
천둔검을 손에 든 연적하가 이번에는 우샤스 킨샤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지런히 달아나던 고범천왕과 달리 우샤스 킨샤사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진경에서 상반신이 완전히 갈라졌던 그는 안마당 한쪽에 겨우 서 있었다.
영체가 받은 충격은 육체가 베인 것보다 크고 중하다.
비록 사지육신은 멀쩡했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우샤스 킨샤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본 미래는 이렇지 않았다고……. 나는 이렇게 끝나지 않아…….”
“그럼 어떻게 끝나는데?”
연적하를 응시하던 우샤스 킨샤사가 갑자기 푸들푸들 웃었다.
“흐흐흐. 이제 보니 내가 종말의 사자(使者)를 불러들였구나. 그래, 그런 것이었어.”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우샤스 킨샤사가 돌연 버럭 소리쳤다.
“창조신! 나는 당신을 증오한다! 모든 게 당신의 뜻대로 될 것 같은가! 크하하핫! 나는 죽음으로 당신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것이다! 죽여라! 죽여!”
말과 함께 우샤스 킨샤사는 마지막 힘을 모아 연적하를 덮쳤다.
번쩍-.
연적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천둔검으로 우샤스 킨샤사를 베어 버렸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우샤스 킨샤사가 조롱하듯 말했다.
“크크. 이제야 알겠다. 연적하. 창조신의 개여. 나는 죽음으로 이 세계를 떠날 테지만……. 너는 죽어서도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세계와 함께……. 멸망하리라.”
그 말을 끝으로 우샤스 킨샤사의 머리가 툭 꺾였다.
연적하는 우샤스 킨샤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그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대부분의 말이 이상했지만, 특히 ‘창조신의 개’라는 말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창조신의 생령을 얻어서 그렇게 부른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 다른 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가 허겁지겁 달려와 그의 발 앞에 오체투지 했다.
“대종사님!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우샤스 킨샤사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항의 중심에 서 있던 페라르바 존자는 우샤스 킨샤사를 팔았다.
연적하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생각할수록 뻔뻔한 사람이다.
우샤스 킨샤사를 믿고 끝까지 저항하던 사람의 변명치고는 너무 속이 보였다.
“이 개…….”
시원하게 욕을 퍼부으려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를 보니 욕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아직 마물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상황.
당장 저들을 쳐 죽일 게 아니라면 용서하고 넘기는 편이 나았다.
“휴우! 두 사람은 마물들에게 고마워해요. 마물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팔 하나씩은 잘랐을 거야. 특히! 백은 존자! 당신은 내가 사자로 보낸 목수평 노조의 팔을 잘랐잖아! 그 죄를 어떻게 씻을 거야!”
백은 존자가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소리쳤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후로 대종사님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광염종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종사가 머리를 박자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수치심에 몸을 떠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대종사의 분노가 백은 존자를 책망하는 것으로 끝나기만을 바랐다.
표독한 눈으로 백은 존자를 노려보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백은 존자.”
“예.”
“천지종의 목 노조에게 사죄하고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줘. 그럼 용서해 주지.”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백은 존자는 정말 이것으로 끝인가 싶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대종사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됐다.
주위를 둘러보던 연적하는 현청의 대청마루로 걸음을 옮겼다.
문호의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제대로 된 회의를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붕에 큰 구멍이 뚫렸지만 다행히 대청마루는 멀쩡했다.
연적하는 신을 신은 채로 마루에 올라갔다.
한달음에 달려온 원정군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쓰러져 있는 의자를 세워 주었다.
연적하는 그를 쓱 쳐다본 후에 말 없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뒤늦게 북부군 사령관의 부관 크리스가 달려와 넘어진 의자들을 모두 세웠다.
이윽고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와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연적하의 왼쪽에 나란히 앉았다.
대종사와 천족 사령관들이 앉자 북부군 참모장 퀴리아노스가 앞으로 나섰다.
“회의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웅천주의 수복을 위해 친히 왕림해 주신 구주 종문의 대종사님과 서부군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종사의 무위를 목격한 퀴리아노 스 참모장은 대종사에게 왕림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아부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천족 지휘관들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동감을 표했다.
‘대종사가 마신을 죽였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청마루에 두 진신의 자리만 마련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대종사가 진신들을 손쉽게 때려잡는 걸 본 뒤로 태도를 바꿨다.
천족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것도 구주의 인간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신좌(神座)에 오른 존재들에 비하면 천족은 한참 아래다.
하물며 대종사는 신좌에 오른 진신 둘을 때려잡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수.
왕가의 일원인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괜히 그의 의자를 세워 준 게 아니다.
퀴리아노스 참모장은 회의 도중에 수도 없이 대종사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연적하는 시종일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회의 내내 그는 우샤스 킨샤사가 죽기 전에 한 말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본 미래가 이렇지 않았다고 했다.
‘미래가 바뀌기도 하나? 아니면 그가 뭘 놓친 게 있었을까?’
우샤스 킨샤사가 죽기 전에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그에게는 물어볼 게 많았다.
하지만 그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질문거리를 남겨 놓고 죽었다.
‘뭐? 나는 죽음으로 이 세계를 떠날 테지만 너는 죽어서도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솔직히 미래 어쩌고 한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한 말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마신 메누아처럼 우샤스 킨샤사도 같은 눈으로 이 세계를 보았던 게 틀림없다.
천문(天門)을 열지 못한다면, 자신 또한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그는 왜 ‘죽음으로 이 세계를 떠난다’고 한 것일까?
게다가 이 세계와 함께 멸망하라니?
그건 저주일까?
아니면 그가 보았다는 미래와 관계된 ‘앞날에 대한 예언’ 같은 것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었다.
연적하가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폐회를 선언했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연적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어, 대종사님. 오늘 밤 대종사님을 위해 환영회를 열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왕가의 일원답게 그는 전장(戰場) 한복판에서도 즐길거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