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9
799회. 본래 사물에는 여러 가지 면이 있소.
목소진 백호의 반격에 연적하는 움찔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유명교 편에 선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가만 이 년간 변방의 오랑캐들을 물리쳤다고?’
문득 팔황신모(유명교 교주)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신언으로 나를 이끌어 준 존재가 금사다. 결국 금사가 내 앞길을 막아 버린 셈이지.”
“아…….”
“그런데 그 금사가 현신하여 염마왕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십만 명을 참수하면 그 업의 무게로 염마왕의 손에서 풀려난다는구나.”
‘헉! 설마…….’
그날 팔황신모는 금사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요망한 늙은이다.
‘변방의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명목으로 십만 명을 참수했구나.’
연적하는 목소진 백호를 힐끔 보았다.
뜨거운 눈빛을 보니 팔황신모가 왜 그랬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이봐요. 아저씨.”
“말씀하시오.”
“유명교의 제사에 대해 좀 알아요?”
“과거 인신공양을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소이다.”
“그걸 안다니 말이 좀 통하겠네요. 잘 들어요. 유명교의 인신공양에는 알려지지 않은 게 있어요.”
연적하는 십두마병, 백두마군, 천두마왕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유명교주는 염마왕에게 바쳐진 몸이라 죽으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그때 어떤 사악 한 신이 유명교주에게 염마왕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십만 명을 참수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유명교는 뜬금없이 국경으로 달려갔죠. 그게 호국 종교에 숨겨진 비밀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연 대협은 유명교를 싫어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게요. 본래 사물에는 여러 가지 면이 있소. 유명교에 대한 연 대협의 평가처럼 말이오. 그렇다 해도 유명교가 국경을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소. 나 같은 관인에게는 그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하오.”
“그래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유명교를 욕하면 대역죄인이다?”
“유명교가 강호에서 잘못된 일을 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인해 나라에 공을 세운 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외다. 유명교와 싸운 연 대협을 녹림 출신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지 않소?”
연적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로는 목소진 백호를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아저씨 말을 들으니 북진에서 왜 유명교 뒤를 봐주는지 알 것 같네요. 하지만 나까지 그러라고 강요하지는 말아요. 나는 유명교와 팔황신모 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나니까.”
“역도들을 잡는 것은 황명으로 하는 일이외다. 연 대협의 무위가 뛰어나다 해도 어찌 한 나라의 힘에 비하겠소? 부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으시길 바라오.”
“뭘 또 선택해요? 나는 이미 말했는데. 유명교 소리만 들어도 짜증 난다고.”
“연 대협과 남진의 인연을 생각해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우리 북진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외다. 아무쪼록 연 대협이 더 이상 역도와 얽히지 않기를 바라오.”
“에이! 잘 포기하면서 그런 말을 하신다. 유명교에 피해를 입은 북진이 지금은 유명교 욕하는 사람들을 잡아가고 있잖아요. 그게 포기가 아니면 뭐예요?”
“말했다시피 그건 유명교가 국경을 지키기 이전에 벌어진 일이외다.”
“한번 보자고요. 그 말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그러십시다. 그럼 이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목소진 백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청성파.
별궁.
별궁은 최근 들어 도관이 아니라 여염집 안방의 분위기를 풍겼다.
남궁연이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까지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괜히 저 때문에 남천 대협과 석경장이 피해를 입게 될까 봐 걱정되네요.”
한소양의 말에 남궁연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답니다. 게다가 이전부터 우리는 유명교와 좋은 관계가 아니었어요.”
대담한 발언에 한소양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아기와 함께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는 남궁연은 태평한 얼굴이었다.
금의위에서 백호가 찾아온 지금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금의위에 표적이 되면 반드시 잡혀간다고 들었어요. 청성파 도사님들은 금의위가 군사를 동원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기 전에 제가 청성파를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무엇이든 한 소저의 뜻대로 하세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두세요. 남천 대협은 타고난 지략가예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승산 없는 싸움을 한 적이 없죠. 그가 질 것 같았으면 우리는 진즉에 청성파를 떠났을 거예요.”
“아…….”
그 말에 한소양은 마음이 놓였다.
연적하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십전무후 남궁연의 판단력을 믿어서다.
“감사해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지…….”
“남천 대협이 그러더군요. 한 소저의 의기가 남궁세가 사람들을 닮았다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세요. 남천 대협에게 인정받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니에요.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남궁 세가 분들과 비교가 되겠어요.”
한소양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남궁세가가 거상이라면 낙성문은 노점상만도 못하다는 걸 알아서다.
그러자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한 소저가 욕한 상대는, 사천무림은 물론 호천맹조차도 어려워하는 유명교예요. 그런 의기라면 남궁세가 사람들에 비교할 만하죠.”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한소양은 뜨거워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아기가 참 예쁘네요. 그윽한 눈빛이 마치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남궁연은 아기의 칭찬에 배시시 웃었다.
“아기 이름은 뭔가요?”
“아직 짓지 않았어요. 남천 대협이 제 부친께서 정해 줬으면 한다고 해서요.”
“아, 그러시구나.”
한소양은 방긋방긋 웃는 아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하제일미로 알려진 남궁연을 닮아서인지 아직 갓난아기인데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금의위가 다녀간 뒤 청성파는 ‘당분간 향화객을 받지 않겠다’며 산문을 닫아걸었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자 도관은 금방 조용해졌다.
별궁의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 했지만 청성파 도사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청성파 도사들은 모일 때마다 ‘금의위가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다’는 말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의위가 다녀간 다음 날 아침.
굳게 닫힌 청성파의 산문 앞에 무려 일천이 넘는 군사가 집결했다.
청성파 도사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상청궁에 모여들었다.
상청궁.
등운정을 비우고 달려온 자운산인이 장문인인 원양 진인에게 말했다.
“장문인, 팽주에 주둔하고 있던 정천호 황지원의 군사가 몰려왔습니다. 그가 장문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청성오수의 일인인 적운산인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자운 사제. 황 정천호가 왜 장문인을 찾는 것이냐? 찾으려면 별궁의 연 장주를 찾아야지. 내 말이 틀렸느냐?”
“일단 장문인을 통해 연 장주를 압박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금의위의 말도 귓등으로 듣는 연 장주가 장문인의 말이라고 듣겠느냐?”
“연 장주를 직접 상대하기가 껄끄러워 그러는 걸 테지요.”
“어째 청성파가 만만하다는 소리로 들리는구먼.”
“…….”
자운 산인은 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렸다.
청성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의 이야기가 샛길로 새자 원양 진인이 나섰다.
“공무 도사.”
“예.”
“산문 밖에 천호소의 군사가 진치고 있다는 걸 별궁에 알렸느냐?”
“제가 직접 연 장주께 알리고 왔습니다.”
“연 장주는 뭐라고 하더냐?”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호법인 덕양 진인이 기가 막힌 듯 한마디 했다.
“허어! 청성파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지 말라니. 훗날 금의위에서 청성파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일이거늘.”
덕양 진인은 장문인의 사형인지라 누구도 그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장문인 원양 진인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덕양 사형. 내가 황 정천호를 만나 청성파의 입장을 전하겠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황 정천호가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 말이 통하겠소?”
“사형은 그가 달리 청성파에 원하는 게 있다고 보십니까?”
“있으니 그러는 게 아니겠소? 그게 아니라면 연 장주를 찾았어야지. 이번 일에 청성파가 관여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장문인부터 찾느냐 이 말이오.”
“흐음!”
원양 진인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맞다.
청성파는 이번 일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관여는 둘째치고, 연적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금의위나 황지원 모두가 그걸 알 텐데 왜 자신을 찾는지 모르겠다.
“일단 황 정천호를 만나 보겠습니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정천호가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게 마땅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원양 진인은 상청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상청궁 앞마당에 도열해 있던 청성파 도사들이 일제히 장문인의 입을 주목했다.
잠시 멈칫하던 원양 진인이 입을 열었다.
“모든 건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황지원 정천호가 대화를 원하니 그와 만나 볼 생각이다. 금의위도 우리 청성파가 황실에 충성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잘 해결될 것이다. 천호소의 군사와 마찰이 있으면 안 되니 모두 상청궁을 떠나지 말거라. 알겠느냐?”
“예!”
청성파 도사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원양 진인은 별궁 쪽을 힐끔 보았다.
이 정도로 일이 커졌으면 먼저 나서서 입장을 표명해 줄 법도 한데 너무 조용하다.
‘허어! 거 참!’
연적하의 무위를 알기에 따질 수도 없고, 중간에서 난감할 뿐이다.
고개를 젓던 원양 진인은 청성오수들과 함께 산 아래로 내달렸다.
***
청성파 산문 앞.
천호소의 임시 지휘 막사.
“오해는 무슨 오해! 연적하가 금의위 앞에서 유명교를 비방하고, 역도를 숨겨 주었소! 거기에 무슨 오해고 말고 할 게 있소!”
정천호 황지원의 호통에 원양 진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꼬인 걸 풀어 보려고 ‘오해’라는 말을 꺼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황지원은 칼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펄펄 뛰었다.
원양 진인은 ‘그럼 연적하에게 따지지 왜 나에게 그러시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바로 칼부림이 날 것 같아서다.
“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청성파는 이번 일에 눈곱만큼도 연관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정하고 쳐들어온 황지원에게 그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시오! 여기가 무주공산이라도 되오? 청성파가 연적하를 보호하고 있다는 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소! 그런데 연관되지 않았다니? 개가 웃을 소리!”
마침내 ‘개’라는 말까지 나오자 원양 진인과 청성오수의 얼굴이 굳었다.
원양 진인이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황 대인. 더 이상 빈도를 모욕하지 마시고, 청성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냥 말씀해 주시오. 청성파는 대인의 뜻에 따르겠소이다.”
“험! 장문인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소. 여하튼 내가 바라는 건 하나요. 청성파가 이번 일에 무관하다면 당장 연적하를 내보내시오. 그를 내보내지 않으면 청성파도 역도들과 한 패라 생각하겠소.”